‘문화계의 다윈’, 지라르

2011-08-08     크리스토프 바코냉

미디어에서 유명해져야 위대한 작품이 된다면 르네 지라르의 작품은 아마 후세에 가서야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르네 포미에는 지라르가 그동안 나타난 모든 오만함의 기록을 깰 만한 인물이라 생각한다.(1) 실제로 지라르는 지난 한 세기 동안 가장 뛰어난 한 업적을 남겼다는 이유로(2) ‘문화계의 다윈’이라 칭송받는다. 이와 관련해 장클로드 기이보는 “그의 이론서가 사상의 범주를 끊임없이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2010년 8월 5일자 <누벨 옵세르바퇴르>).

‘타인의 욕망만이 또 다른 욕망을 만들어낼 수 있다.’(3) 즉, 타인의 욕망을 그대로 따라 하려는 욕망이 나타난다는 원리다. 타인이 지닌 욕망을 나 자신도 모방하면서 자연스럽게 경쟁이 생기고 폭력을 낳는다는 것이다. ‘인간 문화의 완전 이론’(4)이라 불리는 모방적 욕망은 폭력을 낳고 이 폭력을 막기 위해 금지사항과 규범이 생겨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불행을 가져오는 블길한 존재라 할 수 있다. 모방적 욕망이 가진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를 낳는 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 기독교는 가해자에게서 일체의 정당성을 없애고, 희생자의 명예를 다시 높여준다. 이 점에서 기독교는 혁신적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기독교가 보편적 의식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라르는 종말론 개념을 다시 세웠다. “요한계시록은 세상의 종말을 예언한 적이 없다. 오히려 희망을 세워준다. 단번에 현실을 보는 사람은 현대의 부조리에 무조건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것에 의미가 있는 세상을 다시 꿈꾼다.”(5) 더욱 놀라운 것은 지라르는 학문의 중립성을 내세웠다는 점이다.(6) 하지만 지라르의 이론이 말하는 내용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지라르의 이론은 개인적 믿음과 윤리적 가치가 문화에 반영된다는 이론을 단호히 부정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비정치적 관점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폭력이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지라르의 이론에서는 정치적 부분도 폭력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지라르의 작품에는 이같은 허점이 발견되는데, 지라르가 인간의 역사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두 사건, 즉 철학의 탄생과 정치의 발명에 관심이 없어서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을 그저 지나가는 인간 사회의 현상으로만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철학을 바탕으로 종교인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방법을 바꿔 종교인을 통해 철학을 읽어야 한다.’(7) 이런 생각에서 지라르는 “인간이란 서로 팽팽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인간의 문화는 18세기 이론가들이 상상한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 계약의 산물이 아니다”(8)라고 주장하게 된다.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도 흥미롭다. 지라르는 대립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야말로 다른 전통, 문화의 초석에 대한 다른 생각을 탄생시킨다고 본다. 우리는 지라르의 저서를 통해 당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잠시나마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글•크리스토프 바코냉 Christophe Baconin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각주>
(1) 르네 포미에, <르네 지라르, 자신을 등대로 생각한 불빛>(René Girard, un allumé qui se prend pour un phare), Paris, 2010.
(2) 미셸 세르,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임명된 르네 지라르의 연설에 대한 대답>(Réponse au Discours d‘investiture de René Girard), 2005년 12월 15일.
(3) 르네 지라르, <낭만적인 거짓말과 소설적인 진실>(Mensonge romantique et vérité romanesque), Hachette, Paris, 1999.
(4) <세상이 만들어진 후 숨겨진 것들>(Des choses cachées depuis la fondation du monde), Livre de Poche, Paris, 1983.
(5) <클로즈비츠를 완성하기>(Achever Clausewitz), Carnet Nord, Paris, 2007.
(6) <핏빛 기원>(Sanglantes Origines), Flammarion, Paris, 2011.
(7) <세상이 만들어진 후 숨겨진 것들>(Des choses cachées depuis la fondation du monde), Livre de Poche, Paris, 1983.
(8) <핏빛 기원>(Sanglantes Origines), Flammarion, Paris,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