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위 공무원들의 번아웃 증후군

2021-03-31     야기시타 유타 | 독립 저널리스트(도쿄)

‘고위공무원’ 하면, 안정성을 보장받으며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일본의 고위공무원들은 매월 야근 시간이 300시간에 가까울 만큼 노동조건이 혹독하다. 이미 보호막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열악한 노동법마저도 고위공무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결국 중앙부처에서 퇴사하는 고위공무원들이 늘면서, 전례 없는 인력부족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새벽 1시 반, 중앙 행정기관이 밀집해 있는 도쿄도 가스미가세키(霞ヶ關). 끝없이 늘어선 택시들이 중앙부처의 웅장한 건물들을 둘러싸고 있다. 지하철 막차를 놓친 공무원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택시 안으로 쓰러진다. 그들을 태운 택시들은 밤의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아내에게 난 새벽 유령 같은 존재”

일본 공무원들의 일상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일본의 공무원들은 부러움을 사는 위치에 있으나, 실제 그들의 삶은 고달프다. 그들은 공익을 위해 일하고, 긴급상황에는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는 이유로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야근시간은 월 45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노동법은 공무원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게다가 공무원 조합은 시위할 권리도 없다.

가스미가세키에서 일하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일본의 최정예 엘리트층이지만 근무시간은 무한대다. 게이오대학교의 이와모토 다카시 교수가 2018년 실시한 연구(1)에 의하면,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추가 근무시간은 매달 평균 100시간으로 나왔다. 민간기업의 추가 근무시간보다 무려 7배나 많은 수치다. 후생노동성이 자체적으로 정한 과로사 유발 추가 근무시간 범위가 매달 80시간인데,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추가근무 시간은 이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러면 추가근무 수당은? 행정 예산이 법적으로 엄격히 정해져 있어 중앙부처 공무원들에게는 대개 지급되지 않는다. 

“가스미가세키의 젊은 공무원들은 죽을 정도로 일합니다. 저는 매달 200시간 이상 추가 근무를 하곤 했죠.”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전직 공무원 K.L. 씨가 한 말이다. 정부 부처에서 일한 K.L. 씨는 새벽 2시와 5시 사이에 택시를 타고 퇴근해 집에 갔다가 오전 8시 정도에 다시 출근하곤 했다. “아내에게 저는 새벽 유령과 같은 존재였죠.” K.L. 씨가 씁쓸하게 말했다. 잠잘 시간도 부족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생각도 못하는 가운데, 우울증에 빠지는 공무원들이 많다. 

 

공무원 자살률, 민간기업의 2배

공무원 조합이 2019년 발표한 자료(2)에 의하면, 가스미가세키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 중 32.4%가 “건강이 좋지 않다”, “약을 먹고 있다”, “병원에 다니고 있다”라고 대답했고, 28%는 “과로사할까 무섭다”라고 답했다. 이와모토 다카시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공무원의 자살률은 전체 자살자 10만 명 중 16.7명에 달하는데, 이는 민간기업 노동자 자살률의 2배에 달한다. 공무원의 채용과 급여를 담당하는 공공기관 ‘인사원(人事院)’은 2019년 일본에서 과로사한 187명 중 6명이 공무원이라고 밝혔다.(3)

일본 공무원의 과로사 원인은, 국회 회의 조직과 정치 및 행정부의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2012년부터 국회 의석의 절대다수는 자민당(우파)과 공명당(중도우파) 연립정권이 차지하고 있다. 회의가 끝나면 검토 중인 법안들이 묻혀 버린다. 수적으로 열세인 좌파 정당들은 다수가 통과시키려는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회의를 연장시키고자 애쓴다. 그런데 국회 회의에서 논의되는 주요 대상은 정작 고위공무원들이다.

게다가, 행정부와 입법부의 경계가 모호하므로 고위공무원들이 여당 의원들에게 법안을 제출할 때가 많다. 고위공무원들에게 법안을 제출받은 의원들은 이를 국회에 상정한다. 이처럼 의원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고위공무원들은 정당들의 내부 회의 일정 조정, 의원들의 법안 통과 절차를 위한 협상 준비 등을 도맡아 한다. 국회에서 장관들이 받을 질문에 대한 답변 준비까지 고위공무원들이 떠맡는 것이다. 이처럼 법안 수정과 국회 회의 준비는 고위공무원들의 일이다. 민감한 사안은 특히 준비 기간이 매우 짧을 때가 많다. 업무 마감일이 다음 날까지로 정해지면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모든 질문을 검토하느라 밤을 새기도 한다. “질문지를 밤 10시쯤에 받을 때도 많습니다. 답변은 국회 회의가 열리는 오전 9시 전에 준비해야 하고요. 답변을 작성하는 일, 오류나 정부 입장과 맞지 않은 부분은 없는지 각 부처에 확인을 받는 일, 질문에 답변할 장관에게 최종확인을 받는 일까지, 최소 6~7시간이 걸립니다. 집에 가려면 택시나 아침 첫 열차를 타야 합니다.” K.L. 씨는 이같이 털어놓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계승하는 내각마다 신자유주의 영향을 받은 탓에, 2020년 국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50%에 달한다는 이유로 정부의 행정 인력을 꾸준히 줄였다. 이 같은 정책과 일부 공공기관의 민영화로 공무원의 수는 2004~2020년 약 10% 감소했다.(4)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은 각 부처마다 소규모 인력으로 업무를 감당할 것을 주장하며, 소규모 팀으로 운영되는 구글을 예로 들었습니다.” 마키하라 이즈루 도쿄대 정치행정학 교수의 설명이다. “기후 위기, 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처럼 중앙부처 사이에 조율이 필요한 문제가 늘면서, 공무원들은 격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비효율적인 업무방식도 문제다. 정부가 추진하는 데이터 디지털화도 전혀 진전이 없으며 공무원과 의원 사이의 소통은 아직도 대부분 팩스로 이뤄진다. 의원들과 법안을 논의하는 데 필수적인 화상회의도 ‘예의에 어긋난다’라며 생략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당이 주최하는 회의 때 법안의 내용을 설명하고 의원들의 승인을 얻기 위해 필요한 문서를 수백 장씩, 수백 건 인쇄하고 준비하는 일까지 공무원들이 해야 한다. 

 

‘후생노동성’은 ‘강제노동성’

중앙부처 중에서도 특히 후생노동성은 노동력 착취로 악명이 높다. 1998년에 후생성과 노동성이 통합돼 탄생한 후생노동성은 연금과 사회보장 사안에서부터 아동정책, 외국인노동자 권리 보호, 민간 부문의 노동조건 개선 사안까지 담당하는 거대 조직이다. 급속한 고령화를 맞이하고 있는 일본에서 이 같은 사안들은 정치적으로 중요해질 수 있다. 

“1980년대부터 공무원의 수는 계속 줄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사회보장 관련 연 지출액이 25조 엔(약 1,950억 유로 이상)에 달했습니다. 40년 만에 이 금액이 4배로 늘었습니다! 업무량도 그에 비례해 늘었고요.” 후생노동성의 사무국에 근무했던 구메 하야토의 설명이다. 일부 직원들은 절망과 자조 섞인 목소리로 후생노동성(일본어 발음으로는 고세-로도-쇼)을 ‘강제노동성(일본어 발음으로는 교세-로도-쇼)’이라고 부른다.

2020년 봄, 제1차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후생노동성 직원들은 한계점에 이르렀다. 후생노동성은 자체 여러 부서의 인력을 끌어다가 수백 명으로 이뤄진 코로나 대응팀을 꾸렸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이 기존의 업무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떠맡게 됐다. 컨설팅 회사 ‘워크 라이프 밸런스’(5)는 후생노동성의 공무원 7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의 보고서에 의하면 조사 대상의 공무원들 가운데 13명이 2020년 3월과 5월 사이에 매달 추가 근무시간이 200시간을 넘었다고 밝혔다.

“당시에 임신 8개월이었는데요, 업무 인력이 모자라 매주 24시간 추가 근무까지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벽 2시까지 사무실에 남아있을 때도 있었죠.” 어느 젊은 여성 공무원이 익명으로 털어놓은 말이다. 3월 중순에 몸에 심상치 않은 이상을 느낀 이 여성 공무원은 병원에 갔다. 그리고 의사로부터 조산 위험이 있다는 말을 들은 후 즉시 입원했다. 다행히 이 여성 공무원은 5월달에 아무 문제없이 첫 아이를 출산했다. “만일 그때 병원에 가보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탈 공무원’과 ‘공무원 기피’ 현상

살인적인 야근을 견디지 못하고 가스미가세키를 떠나는 젊은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고노 다로 행정개혁 담당상에 의하면, 2019년 ‘개인적인 이유로’ 사표를 내는 20~29세 공무원들의 수가 87명에 달했다. 6년 전만 해도 사표를 내는 공무원의 수는 20명에 불과했다.(6) 더구나 민간 부문의 노동조건이 개선되면서 사표를 내는 공무원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명문대 출신의 공무원들이 민간 부문으로 이직하면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는 대학생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대학생 수를 보면 1996년에는 4만 5,000명을 넘었으나 2018년에는 2만 2,559명으로 줄어들었다.(7)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상황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질 것입니다. 모든 부처의 업무가 점점 느려지고 행정 실수가 엄청나게 많아지겠죠. 그러면 그 피해는 결국 시민들에게 돌아갑니다.” 구메 하야토가 걱정스럽게 이야기했다.

상황이 아무리 심각해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은 공직 부정부패 스캔들을 계기로 일본 시민들은 공무원들을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 2018년에 중앙조사사(中央調査社)는 공무원 신뢰도 조사를 하면서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1점)’부터 ‘매우 신뢰한다(5점)’까지 답하도록 했다. 그 결과 공무원을 바라보는 시민의 신뢰도는 2.6점에 불과한 것으로 나왔다.(8) 

조사에 응한 시민들 가운데 46%는 정부의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 일에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표를 얻는 것도 아니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소속된 자유민주당의 의원들도 이 문제에 관심이 없습니다.” 후생노동성 대신을 지낸 시오자키 야스히사 의원의 말이다. 시오자키 야스히사는 가스미가세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2020년 9월에 구성된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온라인 재택근무, 문서 디지털 전환 등 새로운 업무방식을 시급히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법무성 부대신을 지냈고 자민당의 유력 정치인에 속하는 고노 다로가 행정개혁 담당상에 임명됐다. 

고노 다로 행정개혁 담당상은 취임하자마자 출퇴근시 도장을 찍는 비효율적인 행정절차를 없앴다. 일본식의 비효율 업무방식을 상징하던 행정기관의 도장이 사라지면서 문서 디지털화 과정이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고노 다로 행정개혁 담당상은 추가 근무시간에 대한 조사도 서둘러 실시했다. 마침내 후생노동성은 올해 자체 인력을 582명 늘리기로 하면서 근무 인력의 수가 2020년보다 2%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9) 20년 만에 처음 일어난 일이다. 지난 12월에 후생노동성 장관은 이렇게 강조했다. 

“가스미가세키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공무원 인재들이 끝없는 야근에 지쳐 커리어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민들에게도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현재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10) 

 

 

글·야기시타 유타 Yuta Yagishita 
독립 저널리스트(도쿄)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번역위원


(1) 이와모토 다카시, ‘가스미가세키의 업무방식 개혁을 향해서. 장시간 근무의 종식,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생산성 개선’, <PR 타임즈>, 2018년 6월 6일(일본어), https://prtimes.jp
(2)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추가 근무시간에 관한 조사’, 가스미가세키 중앙부처 공무원 조합의 투쟁 위원회, 2019년 7월 31일(일본어), http://tk-kokko.or
(3) 『과로사에 관한 백서』, 후생노동성, 도쿄, 2020년 10월 30일(일본어).
(4) ‘중앙정부 공무원의 인원수 변화’, 내각부, 2020년 6월 16일(일본어), www.cao.go.jp
(5)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중앙부처의 노동조건에 관한 조사’, 워크 라이프 밸런스, 도쿄, 2020년 8월 3일(일본어), http://work-life-b.co.jp
(6) ‘늘어나는 일본의 젊은 엘리트 공무원들의 퇴사 - 장관의 걱정’, <마이니치 신문>, 도쿄, 2020년 11월 20일.
(7) 『2018년 공직에 관한 백서』, 인사원(人事院), 도쿄, 2018년 6월 1일, www.jinji.go.jp
(8) ‘의원, 공무원, 대기업과 정책에 대한 일본 시민들의 신뢰도 조사’, 중앙조사사(中央調査社), 도쿄, 2018년 3월(일본어).
(9) ‘2021년도 후생노동성의 인력 소개’, 2020년 12월 21일(일본어), www.mhlw.go.jp
(10) 고노 다로, ‘가스미가세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청원 소개’, 워크 라이프 밸런스, 2020년 12월 25일(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