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분양사기에 기만당한 러시아 국민들

2021-03-31     에스텔 레브레스 | 기자

아파트 분양 사기 사태가 러시아 가정 수만 가구를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피해자들의 규탄 시위가 줄을 잇자, 정부는 보다 철저한 부동산 시장 규제를 약속하며, 사기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만으로 과연 구소련 시절부터 주택을 국가가 보급해야 할 중대한 자산으로 여겨온 러시아 시민들이 주택을 다른 여타 상품과 똑같이 인식하는 날이 찾아올 수 있을까?

 

행인들의 눈에 띄는 큰 길가에 천막촌이 설치됐다. 밤 추위를 대비해 나무 막사에 방수포 천막을 치고, 난로를 한 대 들였다. 내부에는 작은 주방 공간과 여러 개의 침낭들을 구비했다. 2020년 여름 내내(정확히 88일 동안) 우랄산맥 남쪽, 바시코르토스탄공화국의 수도 우파에서는 주택단지 ‘밀로브스키 파크’의 조합원 50여 명이 순번을 돌아가며 천막을 지켰다. 그들은 1,200명 이상 피해자를 낸 부동산 대규모 사기 사건에 대해, 당국에 관심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였다.

바시코르토스탄(‘바시키르’라고도 불린다-역주)의 수도에 가면 여러 지구에 걸쳐 건설이 중단된 채 버려진 신축 건물이 수십 채에 달한다. 하지만 이는 이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러시아 연방 전역에서 벌어지는 문제다. 2020년 12월 18일, 건설부의 공식통계(1)에 의하면 (총 85개 지역 가운데) 73개 지역에서 시공이 중단된 건물은 모두 2,910채에 이르렀다. 공식적인 피해자가 20만 명(2)에 달했다. 류보프 포슬라브스카야도 그 피해자들 중 한 명이다. 이 60대 부인은 주방장 자격으로 지난 여름철 우파 천막농성에 적극 참여했다.

10월 초의 도시는 가을빛이 완연했지만, 그녀의 휴대폰에는 여전히 여름밤의 풍경이 담겨 있다. “온정의 손길이 넘쳐나던, 참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예술인들이 저희를 찾아와 응원 콘서트를 열어줬고요. 생면부지의 시민들이 지나가던 길에 잠시 들러 도움의 손길을 주기도 했어요.” 몇 년을 집단투쟁 중인 그들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주택을 ‘배급’ 받았던 구소련 시절

러시아인들은 구소련 시절, 거의 무상으로 주택을 공급받았다(비록 일정한 면적의 주택을 공급받기 위해 몇 년씩 기다리는 일도 많았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1991년이 돼서야 비로소 부동산 시장을 경험하게 됐다. 이 때, 많은 이들이 부동산 시장의 덫에 걸려들었다. 포슬라브스카야 부인의 가족사도 이런 현실을 여실히 증명한다. 그녀는 “처음에 할머니가 국가로부터 아파트를 한 채 받았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당시 임대료는 관리비까지 포함해, 평균 소득의 3% 이하였다. 국가로부터 공급받은 아파트는 대개 면적이 너무 작고, 여러 세대가 한 지붕에 모여 사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릴 때부터 이 아파트에서 오랜 기간 거주해온 포슬라브스카야 부인의 어머니는 결국 이 집의 ‘주 임차인’ 자격을 얻었다. 그녀는 난생 처음 그동안 살던 아파트를 조금 더 넓은 다른 아파트와 교환했다. 이후 여러 번 비슷한 방식으로 집을 옮겨 다녔다. 부동산 현금 거래가 금지된 구소련 시절,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아파트를 서로 교환해 살았다. 때로는 10여 채의 주택을 거래하는 복잡한 교환사슬을 구축해, 상당 수준으로 생활환경을 개선한 가구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대개 조금만 넓은 집으로 옮기고 싶어도 대기자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우선권은 주로 대가족이나 퇴역군인들에게 돌아갔다. 포슬라브스카야 부인의 형제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다가 1986년 퇴역한 군인이었기에, 우선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소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구체제에서 시민들이 누리던 권리를 계속 보장해주기를 원했지만, 해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정부는 기존의 권리를 전면 철폐하는 대신 권리를 금전화하는 길을 선택했다. 다시 말해 주택 배급의 약속을 금전적인 보상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2013년 27년간 주택 배급을 기다려온 포슬라브스카야 부인의 남자 형제는 53만 루블(약 1만 2,520유로)(3) 상당의 증서를 받았다. 그는 국가에서 받은 돈을 미건축 아파트를 매입하기를 바라는 누이에게 빌려줬다. 누이는 아들을 위해 새집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들은 그녀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집에 함께 얹혀살고 있다. 

“다행히 우리는 거리로 나앉지는 않았어요.” 그녀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어요. 집을 사려고 빚까지 졌거든요. 쫓겨나지 않으려면 임대료도 내고, 빚도 갚아야 하는 실정이죠. 그러니 이제 정부가 나서서 뭐라도 해줘야 할 때입니다.”

불운한 다른 희생자들처럼, 포슬라브스카야 부인도 이런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라고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착공식 때는 루스토프 하미토프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 대통령이 테이프를 끊으러 친히 발걸음 했다. 대가족·국가보훈 대상자·퇴역군인 등 서민 가정 수백 가구가 ‘러시아 가정을 위한 주택’ 프로그램을 비롯한 다양한 정부지원정책에 힘입어 저가 주택을 매입했다. 스베르방크·로셀크호즈방크 등 러시아 대형은행도 투자에 참여한 만큼, 더욱 신뢰가 가는 사업으로 보였다.

 

중단된 건설, 반복된 도산과 사기행각

현재 건설이 중단된 건물은 흉물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곳에는 학교, 상점, 카페는커녕, 기타 시공사가 약속된 어떤 인프라 시설도 들어서지 못했다. 공사를 완공하고 입주에 들어간 건물은 35개 중 단 7동에 불과하다. 나머지 28개 건물은 공사가 85% 진행되거나 혹은 1~2층 정도만 올라간 상태다. 심지어 기초공사만 겨우 끝낸 건물도 있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벽돌 더미와 시멘트 자루만이 갑작스럽게 중단된 공사 현장을 증명할 뿐이다.

무엇보다 문제의 원인은 매입자가 위험 부담을 떠안는 자본조달 구조에 있다. 매입자는 ‘공동건축참여계약’에 따라 지분투자자 지위로 주택을 매입하고, 부동산개발업자에게 미리 선수금을 지불한다. 이 경우, 부동산개발업자는 별도로 자금을 대출할 필요가 없고, 미래의 입주민은 완공 후 가격보다 20~40% 낮은 금액에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어 좋다. 애초 은행시스템의 약점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재정조달체계가 2017년 신축 아파트 판매량의 80%를 차지했다.(4) 하지만 문제는 매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법적 장치나 보호막도 없다는 점이다.

공사대금 계산 오류에 따른 시공 중단, 부동산개발업체의 도산, 부정부패·뇌물로 얼룩진 계획적 사기 행태 등 수년에 걸쳐 부동산 사기 피해가 수없이 줄을 이었다. 2000년대 초 러시아에는 실체가 없는 주택을 매입한 사람을 이르는 말로 ‘우롱당한 투자자’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부동산개발업체들이 줄도산을 한 뒤, 사기 피해는 더욱 급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2018년 모스크바주 최대 건설업체 ‘어반그룹’의 파산이었다. 어반그룹의 도산으로 거리에 나앉은 가정만 무려 2만 가구에 이르렀다. 채무 규모는 700억 루블(9억 4,500만 유로), 건축이 중단된 토지 면적은 350만㎡에 달했다. 러시아의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우롱당한 투자자’ 모임이 결성됐다. 피해자들은 집회·피켓시위·천막농성·단식투쟁 등으로 목소리를 높였고, 지역 언론도 피해자들의 재정과 가정을 파탄 낸 부동산 사기 사건을 주기적으로 다뤄주었다.

2014년 니키타 신초프도 ‘밀로브스키 파크’ 단지에 아파트 한 채를 매입했다. 205만 루블(약 4만 235유로)에 60㎡짜리 아파트를 구입한 것이다. 피해자 모임에서 운영자로 활동 중인 그는 처음 프로젝트가 시작된 때를 생생히 기억했다. “처음에 몇 동이 금방 세워졌어요. 먼저 세워진 건물들은, 실상 모델하우스나 마찬가지였죠. 그걸 본 사람들은 진행이 순조롭다고 생각하고 안심했으니까요.” 하지만 2016년 돌연 공사는 중단됐다. 그러다 2018년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잠시 공사가 재개되는 듯 보였지만, 결국 그것으로 끝이었다.

수도 우파에 자리 잡은, 웅장한 소비에트 양식으로 개축한 바시코르토스탄 자치정부 청사 건물 앞. 신초프는 이곳에서 피켓 시위를 벌인 세월을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피켓 시위는 러시아에서 비교적 수월한 항의 수단이다. 2인 이상 집회는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주 지긋지긋합니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목소리를 높여야만 조금이나마 상황이 개선돼요.” 신초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사기꾼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느꼈다. “밀로브스키 파크 아파트 단지 개발을 맡았던 ‘킬스트로이인베스트’의 경영진 3명 중 감옥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한 명은 가택연금, 나머지 두 명은 사법통제(경죄 또는 중죄의 예심대상자에게 석방된 상태에서 법원의 처분에 응해 장소이동의 제한 등 일정한 의무를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조치-역주) 조치를 받았을 뿐이죠.”

반복된 도산과 사기 행각, 수년째 계속되는 피해자들의 농성 사태를 지켜보던 정부도 수차례 규제책을 내놓았다. 가령 ‘주택지분보유매입자’에 대한 보호를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뜯어고쳤다. 2004년 이후, 정부는 부동산개발업자에게 건축허가 취득 전에 자금을 모집할 수 없게 금지했다. 계약서상에 일부 보호 조항을 포함시키는 등 계약서 양식과 관련한 기준도 더욱 강화했다. 2010년 새 연방법은 모든 미건설 아파트 분양 사업과 관련해 엄격한 계약서 기준을 도입했다. 

하지만 부패한 개발업자들은 언제나 한발 앞서 법의 허점을 찾아냈고, 결국 사기 피해를 완전히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우파의 ‘이글리노’ 단지 조합원들도 부패한 개발업자에 대해서라면 익히 잘 알았다. 한 사기 피해 여성은 “우리 개발업체도 건축허가서를 위조했지만, 관할기관이 허위 사실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녀는 현재 도시 외곽의 한 시골집에서 살고 있다. 이 54세 주부는 지역당국이 부동산개발업자와 공모한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도움을 받을 만한 확실한 공모자 없이 혼자서 그런 사기 행각을 벌이기는 힘들죠.” 신변의 위협을 우려한 그녀는 익명을 조건으로 취재진과 인터뷰에 응했다.

 

“11년째 이삿짐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

2009년 41세의 마리나는 남편과 우파에 건설될 예정인 대규모 단지 아파트 ‘머큐리’를 280만 루블(약 6만 3,450유로)에 매입했다. 당시 부부는 딸과 함께 건설 현장 맞은편에 거주하고 있어서, 창문 너머로 공사가 시작되는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20여 층짜리 건물 여러 채를 짓는 이 대형 건설 사업이 향후 이 지역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줄 것으로 기대했다. 부부는 자금 마련을 위해 그간 보유한 집(마리나는 “1999년 남편의 부모님이 매수한 원룸아파트”라고 설명했다)을 팔고 임차인으로 입주했다. “그때부터 꼬박꼬박 1만 5,000루블(현 시세로 약 167유로)씩 임대료를 내고 있어요. 그때는 정말이지 집을 넓혀가고 싶었어요. 왜 그렇지 않겠어요. 9살이었던 딸이 어느새 20살 대학생이 됐는데, 우리는 이룬 게 아무것도 없어요. 11년째 이삿짐 위에서, 이사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형국이죠.” 

대부분의 피해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정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호소했다. 또한 선거철인지 아닌지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처지를 한탄했다. 절박한 처지에 몰린 피해자들은 결국 달리 호소할 곳이 없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도움을 청하기로 결심했다. 대통령만이 문제를 해결해 줄 유일한 구원투수라고 믿었다. ‘머큐리’ 주택단지 매입자들은 건축이 중단된 건물 외벽에 대문짝만하게 ‘푸틴, 우리를 도와주세요’라는 글씨를 적어 넣었다. 그때가 2019년이었다. 하지만 이후 호소문은 새롭게 칠한 페인트칠에 묻혀 사라졌고, 마리나의 아파트도 영영 짓다 만 상태로 남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우리는 선량한 사람들이라고요. 제 딸은 도시를 위해 자원봉사자로 일하기까지 했어요.”

분양 사기 문제는 러시아에서는 한층 더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인은 주택을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매우 기본적인 사회적 권리”(5)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 대두된 주거에 대한 권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1950년대 말 공산당은 “1980년까지 전 가정에 개별 주택을 보급하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여러 가구가 함께 모여 살던 부유한 도심 건물의 공동주택은 이미 한계에 달한 상태였다. 대도시 외곽에도 허름한 가건물들이 즐비했다. 정부는 대규모 건설 사업에 돌입했다. 이른바 ‘흐루시초프카’(니키타 흐루시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집권한 시기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량 건설된 조립식 패널 아파트-역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로써 천편일률적인 형태로 지어진 5층짜리 주택단지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1955~1970년, 도시 주택단지는 2배 이상 증가했고, 소련 인구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1억 2,700만 명이 새로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6)

놀라운 속도로 주택단지가 건설됐지만, 공급은 끝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소련 붕괴를 목전에 둔 1990년, 4가구 당 1가구가 여전히 집을 보급 받지 못해 대기하는 처지였다. 당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주택이 보급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사유재산제가 도입되고, 부동산 시장이 확립된 뒤에도 여전히 희망은 지속됐다. 하지만 새로운 경제 현실이 발목을 잡았다. 1991년 러시아 정부는 무상으로 주택을 사유화하기로 결정했다. 모든 시민에게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의 소유증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주택단지의 품질이 고르지 않아, 주택 사유화 사업은 금세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정부는 수차례 사업 기간을 연장했다. 하지만 노후주택에 살던 사람들은 비싼 관리비 부담 때문에 선뜻 주택을 보유하려고 하지 않았다. 더욱이 새집 입주를 위해 대기 중인 경우라면 더 말할 나위 없었다. 2009년 모스크바 아파트의 25%가 사유화되지 않은 채로 남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10년 뒤 전체 주택단지의 88.6%가 사유화됐다.(7)

 

시장경제 30년, 여전히 열악한 주거환경

한편, 정부는 1992년 이후 미국식 주택담보대출의 활성화에 주력했다.(8) 하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2001~2002년, 러시아 전역의 담보대출 건수는 약 1만 건, 대출액도 50억 루블(약 1억 5,200만 유로)에 그쳤다. 2년 동안 약 두 배로 증가한 것이 그 정도였다. 이후 담보대출 규모는 빠른 속도로 증가해, 2004년에는 대출액이 최소 250억에서 최대 300억 루블에 달했다.(9) 하지만 정부는 만족하지 않았다. 2007년 러시아 대통령은 ‘시장 길들이기’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부동산개발 분야를 지원하고 규제하겠다는 뜻이었다. 정부는 주택 건설을 ‘국가우선과제’로 선포했다.

정부는 2006년 주택사업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모성자본’ 제도를 도입했다. 둘째를 출산하거나 입양하는 여성에게 25만 루블(약 7,139 유로)의 ‘모성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지원금은 주택 구입이나 교육비 지출, 어머니의 연금저축 등에 사용 가능했다.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러시아의 저조한 출산율을 높이고,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고자 했다.(10) 원래 모성수당은, 둘째 자녀가 3세가 되기 전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09년 1월 이후 글로벌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각 가정에 주택담보대출금을 갚기 위한 경우에는 모성수당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정부는 모성수당으로 주택담보대출금을 분할상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여 홍보했다. “최대한 많은 시민이 자력으로 주택담보대출 등의 방법을 이용해 새 아파트를 구매하거나 생활환경을 개선할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2010년 2월, 당시 러시아 총리였던 푸틴은 국가우선과제 실행을 위한 대통령위원회 회의에서 이같이 발언했다. 

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러시아의 부동산담보대출 규모는 다른 국가에 견줘 저조한 수준에 머물렀다. 러시아의 부동산담보대출 규모는 201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6%에 불과했다. 반면 미국과 프랑스는 각각 50%와 44%를 기록했고, 폴란드·체코 등 다른 동유럽 국가도 20~30%를 기록했다. 러시아 가정은 장기대출을 꺼리는 경향이 강했다. 대출 금리가 높아서이기도 하지만, 경제 상황이 불투명한 데다(2008년 경제위기, 2014년 이후 국민 다수의 소득 감소를 불러온 유럽과 미국의 제재조치), 무엇보다 장기대출에 대한 문화적 반감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시장경제로 전환한 지 30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러시아의 주거 현실은 열악하다. 전체 가계 예산 중 주거비(임대료와 관리비) 비중은 2009년 6%에서 2019년 16%로, 약 2.7배로(11) 증가했다. 대출금 이자는 별도다. 주거비는 이렇게 올랐는데, 1인당 평균 주택면적은 별 차이가 없다. 1995년 18㎡였던 1인당 평균 주택면적은 2019년 26㎡에 그쳤다. 한편, 프랑스·독일은 39㎡, 미국은 70㎡에 달한다.(12) 

러시아 정부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보조금 지원만으로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자, 주택문제와 관련한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력투구했다. 2017년 푸틴은 3년 안에 분양 사기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할 것을 내각에 주문했다. 무엇보다 주택건축 지분 참여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기금을 설립함으로써, 부동산개발업자가 계약체결 때마다 총비용의 1.2%를 기금에 이체하도록 강제했다. 각 지역별로도 자체 기금을 설립하게 하고, 지역 내 시공에 문제가 생긴 사업을 면밀히 조사해, 공사를 지속하는 방안과 피해자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하는 방안 중 어느 쪽이 더 적합한지 평가하게 했다. 

 

시민에게는 주거비 폭탄, 은행에는 호재

정부 역시 재정조달구조 개혁에 착수했다. 2019년 7월 1일 발효한 법에 따라, 주택 매입자가 인출 불가능한 통장에 돈을 예치하도록 제도화했다. 은행이 정해진 예산에 따라 부동산개발업자들에게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고, 입주 절차가 시작된 이후 매입자가 예치해두었던 돈을 돌려주기로 한 것이다. 이 시스템 덕에 분양 사기 문제는 “현재 해결 중에 있다”고 고등경제학교 산하 소득생활수준연구소의 수석 연구원 나탈리아 주바레비치는 평가했다. 하지만 그녀는 부동산개발업체의 은행 대출 비용이 추가되면서 건축 비용이 더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부는 “국민이 빚을 내서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주택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친 셈이 됐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2020년 4월 푸틴은 2021년 7월까지 부동산담보대출을 연장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발표했다. 신규 주택 매입에 대해 최대 6.5%까지 대출 금리 상한을 제한했다. 그로부터 수개월 전 정책 방향을 발표하는 연례 연설에서 대통령은 ‘모성자본’을 첫 자녀까지 확대하고, 앞으로 매년 금액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가령 2021년에는 첫 자녀의 경우 48만 3,800루블(약 5,375유로), 둘째 자녀의 경우 63만 9,400루블(약 7,104유로), 이미 첫 자녀 때 ‘모성자본’을 수령한 가정에 대해서는 15만 5,600루블(약 1,728유로)까지 지원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정리하면, 정부는 2021년 ‘모성자본’ 명목으로 총 4,433억 루블(약 49억 2,000만 유로)의 예산을 할당한 것이다(2010년에는 970억 루블에 불과했다). 

주바레비치는 “이 정책으로 담보대출 수요가 증가했지만, 주택 건설 면적 수가 감소하면서 오히려 부동산 가격은 급등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이 두 대도시와 남부지역에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됐다. “몇 년 전부터 이 세 지역으로 국내 이동이 집중됐다”라고 루바레비치 연구원은 설명했다. 결국 시민들은 이사를 하려면, 늘어난 주거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했다. 이는 은행에는 호재였다. 부동산담보대출 확대를 원하는 은행에 있어, 러시아는 일종의 엘도라도였다. 

“러시아는 아직 다른 국가에 비해 대출 규모가 저조하다. 아직 발전할 여지가 많이 남아 있는 셈이다. 앞으로 러시아에 다른 대안은 없을 것이다. 생활수준을 유지하지 하기 위해 국민들이 더 많이 대출을 받는 수밖에 없다.” 알파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나탈리아 오를로바는 이같이 설명했다.

이미 수십 년 전 상업적인 색채가 가미된 이 새로운 시민권이 널리 확대되면서(부동산담보대출의 증가를 동반) 구소련 시대로부터 계승한 사회적 보호장치들도 잇따라 해체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러시아인은 이사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만 하면, 살고 있는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객이 담보로 잡은 자산을 압류할 수 없다면, 은행이 돈을 빌려주겠는가? 시민들이 대개 인지하지 못하는 변수가 하나 있다. 2004년 담보로 잡힌 부동산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민사소송법이 개정됐다는 사실이다.(13) 

그리고 2019년 대법원판결도 이런 경향을 더욱 강화했다. 이후 과다 채무 해결 절차의 일환으로, 모든 주택에 대한 압류가 가능해졌다. 채무자 개인이나 가정이 주택 매각을 통해 기존의 빚을 청산하고 다른 적절한 크기의 집을 새롭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됐다.(14) 현재 러시아에서는 매년 주택 압류 건수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연방판결집행기관에 의하면, 압류 건수는 2015년 32만 6,447건에서 2019년 55만 1,776건으로 현격히 증가했다. 부동산담보대출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이런 추세는 앞으로 뒤집기 힘들어 보인다.

부동산개발 규제와 피해자 보상으로 향후 부동산 시장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채무로 이뤄진 시장은 합법적인 시장이 되기 어렵다. 현재 분양사기 피해자들은 결집해 행동하고 있다지만, 과연 주택을 압류당한 채무자들도 집단행동이 가능할까? 지금도 부동산담보 대출을 이토록 백안시하는 러시아인들인데, 미래는 더욱 암울하기만 하다. 

 

 

글·에스텔 르브레스 Estelle Levresse 
러시아 모스크바 기반의 언론인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문제 시공 건 통합기록’(러시아어), 주택통합정보시스템, 건설부.
(2) Finmarket, 2020년 4월 3일, www.finmarket.ru
(3) 연평균 환율 기준 유로화 환산
(4) <Rossiskaïa Gazeta>, 모스크바, 2017년 12월 10일, www.rg.ru
(5), (6), (8) Jane R. Zavisca, 『Housing the New Russia』, Cornell University Press, 이타카·런던, 2012년.
(7) <Kommersant>, 모스크바, 2016년 7월 4일, www.kommersant.ru
(9) Hélène Richard, ‘Du troc au marché : le marché immobilier à Moscou 물물교환에서 시장까지 : 모스크바 부동산 시장’, <Autrepart>, 제4권 48호, 파리, 2008년.
(10) 2009년 출산율은 1,000명 당 12.4명이었다.
(11) Rosstat, www.rosstat.rov.ru
(12) Tass, 2020년 8월 24일.
(13) 2004년 12월 29일 ‘러시아연방 민사소송법 제446조 개정에 관한’ 연방법.
(14) <Kommersant>, 2019년 1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