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룬에서 영향력 잃고 속 타는 프랑스 기업

두알라 자치항 운영권 잃은 볼로레

2021-03-31     파니 피조 | 기자

이탈리아에서 주가 조작 혐의를 받고, 자사 TV채널 <CNews>의 극우적 성격으로 비판 받고 있는 볼로레 그룹 뱅상 볼로레 회장의 ‘아프리카 물류제국’에 암운이 보이고 있다. 물론 현지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나, 볼로레가 두알라 항(港) 운영권을 빼앗긴 것은 한 시대의 막을 내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2020년 1월 1일, 두알라 자치 항만공사의 시뤼스 응고오 대표는 어두운 색의 작은 모자를 둘러쓴 뒤 항구로 향했다. 부두에는 이미 많은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새해 첫날인 데다가, 화물터미널 운영권을 되찾은 첫날인 만큼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카메룬의 주요 항구인 두알라 자치항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지만, 불과 하루 전만 하더라도 이곳의 운영업체는 프랑스 볼로레 그룹과 덴마크 해운사 A. P. 묄레르 메르스크의 합작 기업 ‘두알라 인터내셔널 터미널’이었다.

 

두알라 자치항 운영권 잃은 볼로레 그룹

하지만 이 획기적인 변화가 모두에게 반가운 일은 아니다. 프랑스와 덴마크의 두 다국적 기업은 어떻게든 기존의 계약을 연장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항만당국의 반대로 오랜 법적공방이 이어졌고, 결국 볼로레 그룹은 그 엄청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무릎을 꿇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휴무일이었던 이날, 운영권 회수를 자축하기 위해 모인 직원들 앞에서 응고오 대표는 강조했다. “지난 15년간 이곳 터미널을 운영해 온 이들은 떠나고 싶어하지 않지만, 계약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법입니다. 그 끝이 바로 어제였습니다.” 지금껏 볼로레 그룹이 카메룬에서 고배를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일은 정계, 외교계, 사업계 할 것 없이 수십 년간 거짓, 위선, 압력행사, 알선수재 등으로 얼룩진 프랑스-카메룬 관계의 이면을 들추는 계기였다. 

맨 처음 시작은 1986년, 볼로레 그룹이 수에즈 회사에서 한 물류회사를 인수했을 때였다. 1940년대부터 현지 사업을 이어온 이 회사를 손에 넣은 뒤, 볼로레 그룹은 곧이어 국제금융기관들의 민영화 계획으로 이득을 봤다. 1999년에는 35년 기한으로 철도 운영권(캄레일)을 양도받았고 이어 오일팜 농장에도 투자를 진행했으며, 2004년에는 A. P. 묄레르 메르스크와 손잡고 두알라 화물터미널 운영권까지 따냈다. 두알라 화물터미널은 카메룬과 차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상품 수출입의 95%가 이뤄지는 곳이다.

그리고 1994년 두알라 항 목재특화 터미널 운영권을 양도받았고, 2015년에는 중국항만엔지니어링(CHEC), 프랑스 종합해양해운사(CMA-CGM)와 함께 크리비 신항의 화물터미널 운영권을 손에 넣었다. 이로써 볼로레 그룹은 직접 고용한 직원 3,000명을 거느린 카메룬 굴지의 최대 민간기업으로 비상했다. 볼로레 그룹의 카메룬 자회사들은 목재, 석유, 가스, 대량 소비품 등의 물품을 수령·통관·보관과 더불어 해당 물품을 육로·철로·항공로로 수송하는 일까지 담당했다. 

카메룬에 이 ‘물류제국’을 세우고자 볼로레 그룹은 (프랑스에서의 행보와 마찬가지로) 카메룬 고위 인사들과 연줄을 맺었다(가족이 대다수 지분을 보유한 볼로레 그룹의 전체 수익 중 약 80%는 아프리카에서 창출됐다).(1) 개중에는 여당 의원과 정부 각료는 물론 (고도의 중앙집권체제인 카메룬 내 서열 2순위인) 대통령 비서실이나 국무부 소속 인사도 포함됐다. 뿐만 아니라 볼로레 그룹은 폴 비야 대통령의 영부인인 샹탈 비야 여사가 설립한 재단에도 수만 유로를 지원했으며,(2) 2007년과 2008년에는 자사 발행 신문 <마탱 플뤼스(Matin Plus)> 1면에 폴 비야 대통령 얼굴을 싣기도 했다. 2007년에는 체류비까지 지원해가며 카메룬 언론사 사주들을 프랑스로 초청했고,(3) 필요한 경우 당시 사르코지 대통령이 카메룬의 비야 대통령을 변론한 것을 볼 때 프랑스 당국의 지원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4) 

그러나, 갈수록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카메룬 경제에서 볼로레 그룹이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이 우려를 낳았으며, 두알라 자치 항만공사 대표였던 에마뉘엘 에툰디 오요노 역시 2009년, 볼로레 그룹이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2010년에는 공익수호시민연합 측에서 캄레일의 저수익성 여객운송에 대한 투자 미비와 해당 부문의 유지·보수작업 및 서비스 개선작업 미비를 지적했다. 이밖에도 다수의 비정부기구, 노조, 언론사 등에서 (볼로레 그룹이 주주로 있는) 소카팜(Socapalm, 카메룬 오일팜 회사)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생활환경을 고발했다. 

문제의 원인은 일단 철도와 크리비 신항의 터미널 운영권을 포함하여 다수의 계약이 기준 없이 체결된다는 데 있다. 볼로레 그룹이 입찰 2순위였음에도 계약을 따냈다. 그리고 우선대상자가 아님에도, 참여했던 선발 절차가 불발됐을 때조차 계약이 성사됐다. 볼로레 그룹이 가져간 두알라 화물터미널 운영권 역시 스페인 경쟁사 프로고사 측에서 부정 및 특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오랜 파트너에 등 돌린 비야 대통령

그런데 이 모든 의혹은 순식간에 덮여버렸다. 일단 두알라 터미널과 관련한 수사부터가 끝까지 마무리되지 못했는데, 이를 담당했던 예심판사가 2008년 11월 해당 건에서 손을 떼고 다른 도시로 전보 발령됐기 때문이다. 그가 최고경영자 뱅상 볼로레를 포함한 볼로레 그룹 지도부를 증인으로 소환하기로 결정한 며칠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볼로레 그룹과 관련한 다른 수사 역시 결국 용두사미 격으로 종결됐다.(5)

뭔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중반부터였다. 2016년 10월 21일 캄레일 열차 탈선으로 사망자 79명과 부상자 551명이 발생했는데, 전문가들은 사고의 원인이 과적재 및 제동장치 결함에 있다고 밝혔다. 결국 2018년 말 소송이 끝난 뒤 캄레일은 (계속 혐의를 부인하는 가운데) ‘형사상 책임’을 졌고, 이때 기업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모회사 볼로레 역시 2018년 12월 토고에서의 부정 의혹으로 프랑스 내 조사가 진행중이다). 게다가 볼로레 그룹의 카메룬 세력 기반도 힘을 잃었고, 중국, 터키 등의 부상으로 현지에서의 경쟁도 점점 심화됐다. 

볼로레 그룹이 의지할 만한 각료가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비중 있는 다수의 후원세력은 영향력을 잃었다. 2018년 해임된 전 국무장관 마르탱 블랭가 에부투도 그중 하나였고, 전 대통령비서실장이자 전 국토·지방분권화 장관으로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신임을 등에 업고 대권까지 노렸던 마라파 아미두 야야 역시 2012년 부패혐의로 25년 형을 선고받았다.(6) 그 사이 볼로레 그룹과 무관한 고위공무원이 요직에 임명됐는데, 그중 일부는 프랑스 기업이 부당한 관행과 요율로 카메룬 경제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했다. 카메룬 내부의 이 같은 변화가 바로 볼로레 그룹이 두알라 화물터미널 운영권을 빼앗긴 배경이다. 

우직한 성향의 고위공무원 시뤼스 응고오가 2016년 두알라 자치 항만공사의 수장이 됐을 때, 그의 임무는 명확했다. ‘두알라 인터내셔널 터미널’이 쥐고 있던 터미널 운영권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이었다. 필레몽 양 총리의 지시에 따라 작성된 공식 문건에 의하면 ‘두알라 인터내셔널 터미널’은 재정 면에 있어서나 투자 면에 있어서나 계약조건 규정상의 내용을 전혀 준수하지 않았다. 시뤼스 응고오는 현 대통령비서실장은 물론 폴 비야 대통령의 신임까지 얻고 있다. 1982년부터 집권한 폴 비야 대통령이 지금에서야 볼로레 그룹에 책임을 추궁하는 상황은 의아스럽다. 그간 폴 비야 대통령은 볼로레 회장과 종종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밀 서신에 의하면, 폴 비야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볼로레 그룹의 터미널 운영권을 회수할 생각이었다. 2007년 비야 대통령은 당시 두알라 자치 항만공사 대표였던 오요노에게 “볼로레 그룹 측에 양도한 운영권” 정지와 신규입찰 시행에 대한 서면동의를 내준 바 있기 때문이다(오요노는 1년 전쯤 대통령에게 “현재 볼로레 그룹이 운영하고 있는 화물터미널” 양도권 취소에 대한 계획안을 보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비야 대통령이 프랑스 그룹을 저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프랑스 쪽 파트너의 호감 여부에 정치적 생명이 일부 달려있다고 생각한 비야 대통령은, 프랑스 정부와 기업 측에 반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런데 폴 비야 대통령의 측근은 2007년의 기밀지령을 지키지 않은 듯하다. 사실 정부의 수장이라고는 해도 정부인력을 완전히 장악한 적은 없다. 또한 대통령과 정부관료 사이가 “선수와 코치” 같으면서도, “때때로 서로 손발이 맞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대통령 주위 고위 관료의 충성심이 한결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2016년 두알라 자치 항만공사 대표가 된 시뤼스 응고오도 - 어쩌면 대통령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 볼로레 그룹과의 본격 전투를 개시했다. 두알라 자치 항만공사 측은 일단 ‘두알라 인터내셔널 터미널’과 협상을 진행했으나, 협상은 결렬됐다. 2019년 초 응고오는 다시 한번 상황을 바로잡을 기회를 줬다. 그러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고 법적 절차를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고, 계약기간 만료 후 신규 운영권 양도대상자를 공개 선발하는 과정에서 기존 사업자인 ‘두알라 인터내셔널 터미널’이 배제되면서 사태는 악화됐다. 결국 2019년 9월, 스위스 업체인 ‘터미널 인베스트먼트 리미티드’가 운영사업자로 선정됐고, 2020년 1월 1일부로 운영권이 넘어갔다. 그러나 볼로레 그룹과 A. P. 묄레르 메르스크는 승복하지 않았으며, 부정 의혹을 이유로 카메룬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극도로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볼로레 그룹은 또 다른 구명줄을 찾았다. 신임 CEO로 취임한 시릴 볼로레가 2019년 9월 12일 “(부친인) 뱅상 볼로레와의 옛정을 생각해달라”며 폴 비야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내 ‘윗선의 중재’를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10월 23일, 혼돈의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 외무장관이자 뱅상 볼로레의 오랜 친구인 장이브 르 드리앙이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카메룬을 방문했다.(7) 

이때, 비야 대통령은 꽤 흔들린 듯하다. 이후 발 빠르게 응고오에게 서신을 보내 두알라 행정소송 판결이 날 때까지 신규사업자 선정을 유예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항만당국도 이런 요청에 순응했으나, 대통령 측은 사실 겉으로는 볼로레 그룹 편을 드는 척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딴죽을 걸고 있었다. 르 드리앙 장관이 다시 한번 카메룬을 방문했을 때, 비야 대통령이 응고오에게 보낸 편지를 소셜미디어에 유출한 것이다.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언론이 프랑스의 내정 간섭을 적극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충격 속에 만회를 노리는 볼로레

2019년 9월 26일, 신규사업 예정자인 ‘터미널 인베스트먼트 리미티드’ 측에 운영권을 양도하지 못하도록 한 행정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볼로레 그룹은 신규입찰 때까지 영업을 계속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같은 판결을 예상한 두알라 자치 항만공사는 몇 주 앞서 ‘화물터미널 사무국’이라는 신규 관리조직을 창설했다. 2020년 1월 1일부터 화물터미널을 운영하는 조직이었다. 이로써 두알라 항의 실질적인 국유화가 이뤄지며 사태가 마무리됐다. 이번 사건으로 프랑스가 카메룬 측에 얼마나 지속적으로 강한 압력을 가해왔는지가 드러났으며, 비야 대통령이 완전히 파리에 종속된 게 아니냐는 의심이 사실로 확인됐다. 

볼로레 그룹은 이번 사건을 축소하고자 애쓰고 있다. 볼로레 그룹 홍보팀은 “카메룬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문제삼으며 “다수의 경제주체들이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볼로레 그룹은 통상 장기간으로 사업을 벌이며, 앞으로도 카메룬에서의 사업을 지속할 예정이고 현지의 사회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알라 인터내셔널 터미널’의 경우, 현재 두알라 자치 항만공사와의 재정 분쟁과 관련하여 파리 국제상공회의소 중재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하지만 야운데(카메룬의 수도-역주)에서는 ‘두알라 인터내셔널 터미널’에 관한 다수의 조사가 진행 중이며, 특히 전직 간부의 내부 고발로 크리비 화물터미널과 두알라 항 목재특화 터미널의 운영권과 관련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8) 대통령 측에서도 이들 사건의 결과에 귀추를 주목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두알라 자치 항만공사는 화물터미널 사무국이 최소 2024년까지는 사업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글·파니 피조 Fanny Pigeaud
기자. 저서로 『프랑스 코트디부아르, 잘려진 역사』(Vents D'ailleurs, 2015)가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번역위원


(1) Sabine Delanglade, ‘La machine Afrique de Bolloré 볼로레의 아프리카 사업’, <Les Échos>, Paris, 2013년 2월 28일.
(2) David Servenay, ‘Bolloré attaque France Inter et se retrouve sur la défensive 프랑스앵테르 공격하고 방어 태세 취하는 볼로레’, <Rue89>, 2016년 11월 8일.
(3) Thomas Deltombe, ‘Port, rail, plantations : le triste bilan de Bolloré au Cameroun’(한국어판 제목: ‘아프리카 황제’ 행세하는 프랑스 기업의 일탈), ‘Les guerres africaines de Vincent Bolloré’(한국어판 제목: TV프로그램 <아프리카의 목소리>의 진짜 목소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9년 4월호, 한국어판 2009년 5월호.
(4) Renaud Dély, Didier Hassoux, 『Sarkozy et l’argent roi 사르코지와 돈의 힘』, Calmann-Lévy, Paris, 2008.
(5) ‘Au Cameroun, les arrangements de Bolloré avec les droits douaniers 카메룬에서 관세 부정 저지른 볼로레’, Mediapart, 2020년 2월 3일, www.mediapart.fr
(6) Clarisse Juompan-Yakam, ‘Marafa Hamidou Yaya, sur la touche 세력 잃은 마라파 아미두 야야’, <Jeune Afrique>, Paris, 2011년 12월 27일.
(7) ‘Jean-Yves Le Drian s’invite dans la course au port de Douala 두알라 항 경쟁에 초빙된 장이브 르 드리앙’, <Africa Intelligence>, 2019년 10월 25일, www.africaintelligence.fr
(8) 필레몽 망도(Philémon Mendo)라는 이 간부는 자신의 직장이었던 크리비 화물터미널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기업이 2019년 12월 적법한 절차 없이 자신을 부당 해고했다는 것이다. 이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볼로레 그룹 측은 필레몽 망도를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