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미디어는 어떻게 공적 생활을 유린했는가

2021-03-31     세르주 알리미 외

지난 1월 일어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의 반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는 계속해서 공화당의 결정을 좌우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상황들은 트럼프가 여전히 미디어를 사로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5년 전부터 트럼프와 미디어가 벌이고 있는 비뚤어진 전쟁은 미국의 정치 생활을 오염시키고 있다.

 

규제완화 이전의 미국 금융계는 ‘3-6-3’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 예금 3%, 대출 6% 그리고 오후 3시의 골프… 평온함은 ‘카지노 자본주의’로 깨졌다. 이 투기적 자본주의는 당시 호황을 누린 경기에 힘입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했다. 이후 투기의 거품은 결국 붕괴했다. 미국 미디어의 현 상황은 금융계가 앞서 경험한 이 과정을 상기시킨다. 미국 미디어에 있어 ‘도널드 트럼프’는 훌륭한 돈벌이 수단이었다.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했다고 해서 미디어가 그에게 건 판돈을 줄인다는 보장은 없다.

오랫동안 미국 미디어의 ‘오후 3시의 골프’는 광고수익은 물론(<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3월호 기사 ‘분열을 팔아야 먹고사는 언론’ 참조) 언론이 스스로 자랑하던 객관성을 지키는 일이었다. 사실에 근거하고, 정확하며, 편향되지 않고 과장하지 않는 미국의 저널리즘은 전 세계의 모범이 됐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번역 게재하거나, 심지어는 원문을 게재하는 일은 특별하게 인식됐다. 프랑스의 <르몽드>, <르피가로>, <리베라시옹>도 이 기발한 착상을 연이어 채택했다. 그렇다고 미국 언론에, 정치적인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숨겼을 뿐이다. ‘A는 이렇게 말했지만, B는 저렇게 말했다’라는 식으로, 분별력 있는 독자들이 둘 중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직접 판단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라틴아메리카의 쿠데타, 근동 지역의 전쟁 등 당대의 화두 대부분에 대해서는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의견이 거의 일치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미디어는 같은 목소리로 부시 행정부의 범죄적인 거짓말을 도왔다. ‘좌파’ 신문사 <워싱턴 포스트>도 우파 TV채널 <폭스뉴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미디어가 처음으로 자기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됐다. 켄 실버스타인 기자는 “우리는 기껏 조사를 해 놓고 정작 글을 쓸 때는 생각을 멈춘 채 양측의 ‘의견 제시(Spin)’를 그대로 옮겨 적는다. 우리는 편파적이라고 비난받을 만한 의견을 표출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라고 지적했다.(1) 즉, 한 정치인이 사소한 과실이나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비난을 받으면 모범적인 기자가 그의 상대편을 난처하게 할 정보를 공개하며 퇴로를 확보해준다. 그런 다음, 그는 골프를 치러 간다…

2015년 이후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부상하면서 이 조악한 ‘객관성’은 돌연 “가짜 균형”, 심지어는 “진정제”에 비교당하며 종말을 알렸다. 그리고 ‘저항 저널리즘’이 탄생했다. 이 새로운 저널리즘의 탄생을 알린 것은 2016년 8월 8일자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린 글이다. 신문사의 새로운 십계명을 발표한 이 기사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도널드 J. 트럼프가 미국의 최고 악질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을 이용하고 반미 독재자들을 애지중지하는 선동가라고 생각한다면, 이와 함께 그에게 핵무기 암호를 맡기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 20세기 후반부 미국 저널리즘을 지배한 원칙을 무시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 진영에 합류해야 할 것이다. (…)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이를 부당하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 부끄럽지 않길 바란다면 저널리즘은 독자들에게 진실을 말할 의무가 있다.”(2) 

힐러리 클린턴이 예상치 못했던 패배를 맞이한 대선 다음날,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대통령이라는 현실에 맞서는 민주당원, 학생, 해외 동맹국’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1면을 장식하며 숭고한 포부를 밝혔다. 더 이상 관찰과 사실 전달, 즉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참여할 것을 선언하면서, 독자들(민주당원, 학생, 해외 동맹국)에게 그들의 고통과 시련을 함께하겠다고 알린 것이다.

일단 이렇게 방향이 설정되자, 다음은 순조로웠다. 뉴욕의 백만장자 트럼프는 허언증 환자에다 파렴치하고 자기중심적이다? 주제와 상관없이 거의 모든 기사의 모든 문장이 트럼프가 대통령이라는 현실을 상기시켰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랑’, ‘과장’, ‘험담’, ‘장광설’ 또는 ‘독설’이라는 단어들만 아낌없이 써넣으면 충분했다. 2016년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 사람들은 러시아의 음모뿐만 아니라 그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병적인 심리상태에도 책임을 물었다. <보스턴 글로브>의 한 기자는 어떤 집단 심리치료가 필요할지 모르겠다며 “어떻게 해서라도 트럼프 지지자들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은 모든 트럼프 지지자들이 노동자 계층이든, 상류층 부르주아든 자신의 주된 이익을 위해, 즉 백인의, 기독교인의, 이성애자의 나라라는 미국의 정체성 보존을 위해 투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길 거부한다”(3)라고 설명했다.

위 발언을 인용한 책의 저자가 지난 11월 대선에서 백인 남성이 4년 전보다 트럼프에게 투표를 적게 한 몇 안 되는 집단이라는 사실과, 흑인과 히스패닉계에서 트럼프가 얻은 표는 오히려 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경악했는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통설의 힘은 일종의 폭력을 행사하며 위와 같은 가설을 제기하거나 그 동기를 탐구하는 것을 금한다. 그간 미디어가 보도한 모든 이야기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더 시급하면서도 더 쉬운 일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인종차별 집단 KKK단, 극우 음모론 단체 큐어넌(QAnon) 또는 오하이오주의 신나치주의 활동가 토니 호베이터 관련 기사(2017년 11월 25일)에 대한 조사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위험성은 존재한다. <뉴욕타임스>는 호베이터의 인종차별주의와 동성애 혐오를 폭로하는 동시에 그의 일상과 관련된 몇몇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기재했다는 이유로 해당 보도 다음날 사과문을 실어야 했다. 사실 <뉴욕타임스>는 이 나치 신봉자를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 기사를 읽은 가장 ‘깨어있는’ 독자들이 그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한 것은 단 한 가지, 그가 나치 신봉자라는 사실뿐이었다.

 

백악관의 가짜뉴스들에 매달리기

역사상 ‘저항’이 이처럼 쉽고 돈벌이가 된 적은 드물다. 쉬운 이유는 모든 시사 문제가 트럼프라는 단 하나의 주제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환자의 모든 질문에 “폐병, 폐병이 맞아”라고 답하는 몰리에르 작품 속 돌팔이 의사처럼 미국의 거대 미디어들은 모든 사건을, 심지어 이탈리아의 경제 악화조차 트럼프라는 프리즘을 통해 해석했다. 미디어가 쓴 이 희극의 주인공, 또는 조롱의 대상은 겸손하지도 신중하지도 않기에 풍부한 볼거리(공연)를 보장했다. 마이클 매싱 기자는 어떤 날의 경우 “<워싱턴 포스트>가 트럼프와 워싱턴 정계 관련 기사를 최소 12개 실은 반면, 여타 지역에 관한 기사는 1~2개에 그쳤다”라고 토로했다. 다른 국가에 대한 기사는 (트럼프가 연관됐거나 연관성을 부여한 경우를 제외하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 병적인 고착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매싱 기자는 “백악관 출입기자 중 몇몇은 트럼프를 취재하며 유명세를 얻었다. 덕분에 이들은 매회 수만 달러를 받고 강연을 다녔으며 수십만 명의 트위터 팔로어를 얻었다”(4)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운 좋게도 트럼프에게 공격당한 기자는 황금 펜을 얻었다. 거액의 출판계약을 체결했고, 트럼프에 적대적인 다수의 방송국에 자문위원으로 영입됐다. <CNN>의 짐 아코스타 기자가 발표한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공영방송 <PBS>의 야미체 알신도르 기자는 케이블 뉴스채널 <MSNBC>의 해설자를 겸직하게 됐다. 두 사람이 발언의 강도를 높이기에 충분한 동기부여다…

정확성과 사실 존중을 숭배하던 시절은 끝났다. 숙적(트럼프)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거침없는 거짓말을 내뱉으면 트럼프에 ‘저항했던’ 기자들도 즉시 그 뒤를 따랐다. 기자들은 백악관의 가짜뉴스에 종일 매달렸다. 본인들의 직업적인 실패에 대한 검토는 뒤로 미뤘다. 앞으로도 전혀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일상적인 조작에서 모든 적수를 가뿐히 쓰러트렸다. 하지만 그가 정보 조작 경기에 출전한 유일한 선수는 아니었다. 트럼프의 집회 참여자가 적다고 믿게 하기 위해 집회 시작 전에 찍은 사진을 사용(<워싱턴 포스트>)하거나, 법무부 장관의 발언을 보도하면서 일부러 삭제한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편집 행태(<NBC뉴스>)에 이르기까지, 평상시 같으면 전시 상황이나 해외의 적들에게나 사용하던 거짓말들이 국내까지 침범했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던 날, <타임>지는 백악관의 마틴 루터 킹 목사 흉상이 새 세입자가 도착하기 전에 치워졌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며 포문을 열었다. 트럼프는 무쇠 같은 뻔뻔함으로 사실과 거리가 먼 내용은 모조리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했다. “기자들 때문에 모든 것이 나쁘게 보인다. 그들은 사실을 조작하고 역겨운 기사들을 쓰기 때문이다. 정직한 언론과 저널리즘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언론이 거의 3년간 공세를 펼치는 동안 ‘러시아게이트’라는 이름이 붙여진 산더미 같은 거짓 정보와 수천 시간의 편집증적인 방송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뉴욕타임스> 조정관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역방향의 워터게이트가, 이 미국 저널리즘의 진주만이 ‘역사에 부끄럽지 않다’라는 평가를 받을지는 확실치 않다. 모든 것은 심사관들의 판단에 달려 있을 것이다. ‘뮐러 특검 보고서’는 언론이 제기한 가설의 핵심을 부정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제출되기 몇 개월 전 기자들은 러시아와 트럼프 선거운동의 연관성을 조사한 공로를 인정받아 (열등생에게 벌로 씌우는 당나귀 모자 대신) 퓰리처상을 수상했다.(5) 

숭배 받기를 원하고, 이에 열중하는 대통령에게 반대파의 집착에 가까운, 때로는 증오에 찬 집중포격보다 더 득이 되는 것은 없다. 그가 미디어를 가지고 놀고, 미디어에 맞서고, 미디어를 무시한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절제된 표현일 것이다. “내가 왜 당신을 공격하는지 아는가?” 어느 날 트럼프는 명백하게 적대감을 표출하는 한 <CBS> 기자에게 질문한 뒤 말을 이어갔다. “당신의 신용을 떨어뜨려, 당신이 내게 불리한 정보를 공개할 때 누구도 당신을 믿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다.” 뉴욕의 백만장자 트럼프는 커뮤니케이션의 귀재다. 1987년에 출간된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그는 이미 “언론은 언제나 눈길을 끄는 이야기를 원한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눈에 띄고 논쟁을 일으킨다면 언론은 당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기자들 대부분은 당신의 요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극적인 관점을 추구한다”라고 설명한 뒤 “이점은 내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책이 출간된 지 30년 후,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처음 연 기자회견은 상당부분 미디어에 대한 공격에 할애됐다. 기자들은 곧 이 회견이 그에게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한 보수주의 해설자의 실제 경험담은 매우 달랐다. “나는 당시 헬스센터에 있었다. 모든 사람이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그들은 웃으면서 트럼프가 기자들을 산 채로 잡아먹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트럼프가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기자회견 직후 <워싱턴 포스트>의 한 블로거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트럼프는 그의 지지자들이 혐오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다. 언론이 ‘미국 내 최고 사립학교를 나와 해변가 저택에 살면서, 보통 사람들은 멍청하고 무지하다고 여기는 엘리트들’처럼 행세한다는 사실을 말이다.”(6)

 

신념과 증오를 공고히 하다  

증오에는 증오로 답한다. 이 전략은 반트럼프 성향 신문사들의 발행 부수, 뉴스채널(<폭스뉴스>, <CNN>, <MSNBC> 등)의 시청률, 트럼프의 트위터 팔로어 수(계정 정지일 기준 8,800만)에 이상적인 윤활제 역할을 했다. 민주당 출신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인정한다. 카터 자신도 언론에게 관대한 평가를 받지는 못했으나, 트럼프의 경우 훨씬 혹독한 대접을 받았다고 말이다. “미디어는 서슴지 않고 트럼프가 정신질환자라고 주장한다. 언론은 내가 지금껏 본 어떤 대통령보다 트럼프에게 혹독했다.”(7)

언론의 표현은 ‘정신질환자’에서 멈추지 않았다. 조셉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 지 몇 시간 후, <CNN>의 간판 앵커 앤더슨 쿠퍼는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아직 임기가 남아있던 트럼프 대통령을 “뜨거운 태양 아래서 뒤집힌 채 발버둥 치는 살찐 거북이”로 묘사했다. 거의 같은 시점에 <MSNBC>에 출연한 역사학자 마이클 베슐로스는 안도감을 털어놨다. “아시다시피 우리 부부는 20대 두 자녀가 있다. 지난 3년 10개월 동안 나는 내 가족이 위험에 처했다고 느꼈다. 이제 나는 우리 정부의 관료들이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한다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늘밤부터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 것 같다.”

반대진영 언론의 어조 역시 고양됐다. 물론 이들의 목소리가 대형 언론사에는 잘 반영되지 않았지만 많은 민주당 혐오 사이트의 지지를 받았다. 작년 3월 30일, <폭스뉴스>에서는 한 젊은 기자가 자신의 영웅을 측은히 여기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대통령님,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대통령님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드리면 될까요?” 

이보다 몇 주 전, 트럼프가 “위대한 루 돕스”라고 부르던 경제 기자는 역시 <폭스뉴스>(그는 얼마 전 여기서 해고당했다)에서 미국은 지금 선거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화를 냈다. “대통령이 이미 이룩한, 그리고 지금도 매일 실현하고 있는 모든 업적 고려하면, 우리가 굳이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몹시 불쾌하다. 만약 민주당이 대통령의 지혜, 통찰력, 자유세계의 리더가 될 만한 능력을 인정한다면 11월 선거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시합을 포기할 것이다.”

양쪽 진영의 언론 모두 전투적인 독자와 시청자의 신념, 편견 그리고 증오를 공고히 하는 데 열중했다. 이들이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추종하는 미디어 없이는 한순간도 숨쉬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들은 미디어가 조금이라도 일탈을 하면 분노에 찬 댓글을 폭풍처럼 쏟아내며 비난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는 조정관의 권고사항을 충실하게 적용했다. 모든 소속 칼럼니스트들이 지금은 ‘마라라고(Mar-a-Lago)’ 골프 리조트 투숙객이 된, 당시 백악관의 주인을 혐오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즉시 해고당했을 것이다. 매싱 기자는 2018년 8월 실시한 조사에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인 찰스 블로우의 경우 그해 작성한 42개 기고문 중 36개를 트럼프를 고발하는 데 할애했다고 지적했다. 조사 기간 중 블로우가 쓴 마지막 기고문은 ‘트럼프, 반역죄를 저지른 배신자’(8)라는 간결한 제목의 글이다.

자신들을 지지하는 대중에 호소하고, 그들의 모든 분노를 예측하고, 그들이 불편해할 만한 정보를 은폐하고, 이를 통해 찬사와 보상을 얻어내는 것은 모든 ‘저항’의 통상적인 여정이 아니다. ‘세계 민주주의의 등불’ 미국은 자신도 모르게 아랍 독재자들의 조종기법을 일부 답습했다. 중동문제 연구가 피터 할링은 이 독재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그들은 분열을 조장하고 악화시키며 갈등을 추구한다. 사회의 일부세력을 급진화시켜 다른 세력 내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고 모든 건설적인 계획을 회피한다. 독재의 대체물에 대한 두려움은 독재자들의 권력을 유지시켜 주기에 충분하다.”(9) 

소셜 네트워크에서 통상적으로 반복되는 상황들은 이 악순환을 고착화시킨다. 분노와 과장이 끊이지 않고, 모든 잠재적 불안을 어디에나 존재하는 사악한 적과 연관 짓는다. 패닉 상태의 한 주기가 끝나면 즉각 다음 주기로 넘어가 버린다. 최악의 상황이 왜 아직도 남아있는지 설명할 의무는 없다. 이와 같은 상황들은 상반된 두려움과 편집증을 중심으로 공동체와 연대를 응집시킨다. 하지만 좌파기자 맷 타이비가 유머를 섞어 요약했듯, 이처럼 대립된 입장으로 나뉜 공동체와 연대도 한 지붕 아래 동거할 수 있다. <폭스뉴스>는 “머리가 살짝 돈 우파 삼촌을 겨냥해 이민자와 소수인종의 범죄에 대한 내용을 계속 방송했다. 이후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는 조카의 취향에 맞추려는 다른 미디어가 시장에 등장했다. 만약 이 삼촌과 조카가 각자 다른 방에서 다른 채널을 시청한다면 당신은 이들이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 수 있다.”(10) 

하지만 이들이 꼭 정당한 이유로 서로를 증오하는 것은 아니다. ‘체 게바라’의 숭배자가 트럼프 ‘저항 채널’ <MSNBC>로 정치 교육을 받았다고 가정하면, 그 사람은 트럼프 임기 동안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선택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다. 예멘의 후티 반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말한다. 바이든은 얼마 전 이 지지를 철회했다. 2018년 당시 예멘의 민간인 피해자가 이미 수천 명에 달했지만 <MSNBC>는 이와 관련된 보도를 한번 밖에 내보내지 않았다. 대신 트럼프와 포르노 여주인공과의 관계는 끊임없이 다뤘다. 관련 보도수만 455건에 달한다.(11)

몇 년 전, 일찌감치 선거 준비를 시작한 버니 샌더스는 자신이 중점을 둔 선거운동 주제들(기후변화, 소득과 부의 불평등, 교육과 보건비용)의 목록을 작성하며 “미국 지도층의 도구인 미디어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보다 쓸데없는 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선호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미국 여론의 분극화에 대한 논평의 사각지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현재 가장 돈벌이가 되는 ‘문화적’ 주제(남부연합파 장군들의 위신 실추, COVID-19로 인한 마스크 착용, 본인은 부정한 샌더스 의원의 성차별 발언 논란, 한 트럼프 지지 청년과 아메리카 인디언의 언쟁)에서는 여론이 더 쉽게 분극화된다. 주요 두 진영 사이에 그 어떤 대규모 토론도 진행된 적이 없고 근본적인 불일치도 존재하지 않는 주제들의 목록이 많을수록 그렇다.

그런데 몇몇 사례들을 보면, 이런 주제들이 부차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상하원은 이미 과도한 국방부 예산을 압도적인 다수의 찬성으로 증액시켰다. 상원은 4년 전 찬성 98표, 반대 2표로 대러시아 제재를 채택했다. 얼마 전에는 찬성 97표, 반대 3표로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잔류를 결정했다. 과거 오바마는 반대했었던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를 판매하는 사안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의회와 미디어의 거의 만장일치 지지를 받으며 이를 승인했다. 2017년 4월, 트럼프가 시리아 폭격을 지시했을 때 미국 내 100대 주요 신문의 47개 사설 중 46개가 이 국제법에 반하는 전쟁행위를 환영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후안 과이도가 베네수엘라의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뒤를 이어 미국이 저지른 전쟁범죄 일부를 폭로한 후 미국의 박해를 받고 있는 줄리언 어산지의 범죄인 인도를 요구했다. 

분열이 심화되고, 방향을 잃은 사회에서는 ‘문화전쟁’ 장사가 미디어를 번성시킨다. 교묘하게 부각된 이런 형태의 반목이 국민들에게 안겨주는 것은, 행복한 미래가 아니라 서커스 공연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파리 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합류한 뒤 2008년 이그나시오 라모네의 뒤를 이어 발행인 겸 편집인 자리에 올랐다. 신자유주의 문제, 특히 경제와 사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신자유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그 폐해를 집중 조명해 왔다.

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저서로 『해방, 사르트르에서 로스차일드까지』(Raisons d'agir éditions, 2005)가 있다.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Michael Massing, ‘The press : The enemy within’,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2005년 12월 15일. 이로부터 13년 후, 마이클 매싱은 기자라는 직업이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하는 기사도 썼다. ‘Journalism in the age of Trump : What’s missing and what matters’, <The Nation>, New York, 2018년 7월 19일.
(2) Jim Rutenberg, ‘Trump is testing the norms of objectivity in journalism’, <The New York Times>, 2016년 8월 8일.
(3) 맷 타이비가 『Hate Inc. Why Today’s Media Makes Us Despise One Another』(OR Books, New York, 2019)에서 인용한 내용. 미국(그리고 다른 몇몇 국가)의 미디어가 어떻게 변했는지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4) Michael Massing, ‘Journalism in the age of Trump’, 위의 책
(5) ‘Tchernobyl médiatique 미디어의 체르노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5월.
(6) Chris Cillizza, ‘Donald Trump delivers a series of raw and personal attacks on the media in a news conference for the ages’, <The Washington Post>, 2017년 2월 16일.
(7) Maureen Dowd, ‘Jimmy Carter lusts for a Trump posting’, <The New York Times>, 2017년 10월 21일.
(8) Charles Blow, 'Trump, treasonous traitor', <The New York Times>, 2018년 7월 15일.
(9) Peter Harling, ‘Ce qu’annonce l’éclatement irakien 이라크의 분열이 예고하는 것’,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7월.
(10) Matt Taibbi, 『Hate Inc.』, 같은책
(11) Marlo Safi, ‘MSNBC is too busy serving up red meat to cover a humanitarian crisis’, <National Review>, New York, 2018년 7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