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미국인, 내부의 적

『노-노 보이즈』 서평

2021-03-31     마리나 다 실바 | 사회학자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발생했고, 그 다음 날부터 모든  일본계 이민자, 즉 ‘닛케이’(1) 10만여 명이 미국 여러 주의 수용소에 수감됐다. 미국내 일본계 공동체는 서부에 60년 동안 터전을 이루고 살았다. 그러나 진주만 공격 이후, 일본계들은 미국인에서 이질적인 존재가 돼버렸다.

1943년 미군은  ‘니세이’, 즉 일본계 미국인 2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미군에 입대할 준비가 됐는가’와 ‘미국에 충성을 바칠 준비가 돼 있는가’, 그리고 ‘천황 혹은 미국 이외 나라의 정부나 권력기관에 어떤 형태로든 복종하지 않을 준비가 돼있는가’였다. 이같은 질문에 ‘아니오’ 라고 대답한 일본계 2세들이 있었다. 그들은 결국, 감시등급이 가장 높은 캘리포니아의 툴레이크 수용소를 중심으로 강제수용소에 감금됐다. 이들은 이후 배신자로 낙인찍혀 죽을 때까지 배척당했다.

이렇게 두 항목에 ‘아니오’라고 대답한 일본계 2세들의 비율은 20%에 달했다. 존 오카다(1923~1971)의『 노-노 보이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음울한 소설이다. 주로 에세이와 단편소설을 썼던 존 오카다에게,『 노-노 보이즈』는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1957년 초판됐으나 외면을 받아 자취를 감췄던 이 장편소설은 1976년과 2014년에 재발행 됐고, 여러 언어로 번역이 됐다. 작가인 존 오카다 자신도 수용소 생활을 경험했고, 미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했던 적도 있었다. 

25세 이치로 야마다는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일본계 미국인들의 다양한 군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치로는 2년간 수용소에 감금되고 2년간 더 감옥에 갇힌 후 부모가 있는 시애틀로 돌아온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그에게 ‘벽의 틈새’ 같았고, 모든 게 낯설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술독에 빠졌고, 어머니는 일본이 승전국이고 아들은 영웅이라는 망상에 빠져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 다수의 일본계 2세들은 미군 입대를 선택했고 선배인 주인공 이치로를 증오와 오만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치로는 엔지니어링 공부를 시작한 대학에서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다. 이치로를 기억에서 지운 옛 친구들 중에서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이들까지 있었다.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고립된 이치로는 그동안 어머니의 영향력 속에서 행동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치로는 ‘방황하던 힘든 시기에 온전한 미국인으로 편입되는 것을 포기한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다시 한 번 온전한 미국인으로 편입될 길이 더 이상 없을까?’라고 자책하듯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그는 ‘시간이 흐르면 내 자리를 다시 찾을 거야’라고 다짐하듯이 독백까지도 한다. 다른 일본계 청년들은 저녁에 술집에서 흥청망청하며 자신들끼리 뭉친다. 이치로는 실존적인 방황을 하며 극빈자, 사기꾼, 마약상들과 얽히는 운명이 된다. 

이치로는 시애틀과 포틀랜드 사이를 오가며 ‘추하고 역겹고 악취 나고 비천한’ 세상 속에서, 새로운 인연들과 조우한다. 이 중에는 참전했다가 한쪽 다리를 잃고 앞으로 2년 밖에 살지 못하는 겐지, 탈영한 오빠가 있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버림 받은 에미, 이치로를 비난하지 않고 일자리를 주려는 게릭 등이 있다. 이런 새로운 인연들은, 이치로에게 희망을 예고하는 듯하다. 

 

 

글·마리나 다 실바 Marina Da Silva
사회학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번역위원


(1) 세대와 관계없이 외국에 이민해 사는 일본계들을 전부 가리키는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