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인권유린… 일본 외국인 노동자

2008-12-30     안느 로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도쿄 특파원

지난해 10월 일본은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26년 만에 두 번째로 일어난 일이다.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일본이기에 미국과 유럽의 경기침체 영향은 치명적이었다. 특히 경기 침체의 찬 바람을 가장 많이 받는 건 자동차 산업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정확히 말하면 외국인 산업 연수생들이다. 이들은 선진 기술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일본 열도로 건너 왔지만,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 당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인 여성 두 명이 부푼 꿈을 안고 일본으로 일자리를 찾아 왔다. 이 여성들이 생각하는 일본이란 나라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곳이었다. '고급스럽고 다양한 옷이 넘쳐나는 패션의 나라, 경제 강국'. 이 두 여성의 이름은 각각 부아 주, 두안 얀 홍. 재단사이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중국의 남쪽 후베이 성에서 직접 채용되어 일본으로 오게 된 이들은 애당초 봉급 문제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리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하늘이 내려 준 기회였다. 부아 주와 두안 얀 홍은 일본어가 능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면접에서 고용주가 직접 언급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질문할 처지도 아니었다.
 
 착취·박봉에 시달리는 중국인 노동자
 2005년 12월, 다른 동료 네 명과 함께 부아 주와 두안 얀 홍은 도쿄 남서쪽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야마나시의 기성복 제조 회사에 산업연수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일본에선 산업 연수생 제도를 통해 개발도상국 출신들이 회사에서 교육을 받고, 첫 일년은 최저 임금의 절반을 월급으로 받고 거주지를 제공받게 되며, 추가로 2년 동안엔 인턴이 되어 좀더 높은 봉급을 받게 된다.(그러나 대부분 집세는 봉급에서 삭감되는 구조다.) 이 같은 취업 비자는 1990년대에 마련되었다. 10년간의 경제 위기 동안 일본의 중소기업들은 이를 통해 저렴한 인건비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아 주, 두안 얀 홍은 날이 갈수록 일본에 대해 실망했다. 일주일에 6일을 근무하고 매일 12시간 동안 일을 하지만, 그나마 본래 지원했던 재단사 일이 아니라 빨래 같은 허드렛일만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시간외 초과 수당은 법정 최저 금액의 1/3만 지급되고 있었다.
 "2008년 8월 말, 참다 못한 저희는 사장을 찾아 가 시간외 초과 수당을 제대로 지급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자신의 친구들을 부르더니 저희들을 '손 좀 보라'고 지시했어요. 아마도 사장은 이런 식으로 겁을 주면 저희들이 포기하고 중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이 일이 커져서 언론에 소개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겠죠."  두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다.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이 두 여성도 고용주를 폭행상해로 고소했다. 이들은 도쿄의 젠토이츠 노동조합으로 가서 사진 및 언론 기사를 증거로 제출하면서 그동안 고용주에게 부당하게 당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외국인 산업연수생 보호를 위해 젠토이츠 노동조합은 이들이 당한 심각한 인권 유린 건을 폭로했다. 이같은 폭로에 맞춰 농장에서 과일 따는 일을 하던 산업 연수생 두 명도 자신들이 당한 피해를 호소했다. 이들은 주말에는 쉬게 해달라는 요구를 했다가 정해진 봉급도 받지 못하고, 매정하게 쫓겨난 사연을 들려주었다. "고용주는 '쉬는 시간을 달라면 주지. 그냥 나가기만 하면 돼.'라고 하더군요." 중국에서 온 이들은 농장에서 쫓겨나면서 소득이나 거처도 동시에 잃었을 뿐만 아니라 만기가 가까운 비자 갱신도 어려워졌다.
 
 산업연수비자, 사실상 '노동허가증'
 1993년에 일본 국제연수협력기구(JIT-CO)를 통해 이같은 산업 연수 프로그램을 공식화하기 전부터, 이미 중국, 필리핀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도요타, 파나소닉과 같은 다국적 기업에서 산업 연수를 받아 왔다. 그러나 한 이민 문제 전문가는 "산업 연수 시간은 한두 달에 불과한 단기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기실 산업 연수생 프로그램이 생긴 것은 인력난을 겪으면서 아시아와 중동 출신의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민에 소극적인 일본에서 정부가 단순직 노동에 대해 노동 허가권을 발급해주자는 말을 꺼냈다가는 여론에서 난리가 날 것"이란게 이 전문가의 배경 설명이다. 현재 '일본 고용주 연합'이 겪고 있는 인력난을 해결하려면 정식 외국인 노동자들이 필요하다는게 그의 시각이다.
 현재 '일본 고용주 연합'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외국인에게 노동 시장을 개방하란 요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인구 감소와 노령화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일본에서 발급되는 취업 비자의 수는 서서히 감소했으나, 산업 연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적어도 15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현재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다른 말로 하면 산업 연수 비자가 점점 정식 노동 허가증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 연수생들의 분포를 보면 중국 출신이 67%로 압도적으로 많고, 그 뒤를 이어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과 같은 동남아 출신이 대부분이다. 이들 산업 연수생들은 농업, 어업, 섬유,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1997년과 2006년 사이에는 여성 산업 연수생의 비율도 33%에서 55%로 늘어났다. 젠토이츠 노동조합 사무총장에 따르면 대다수 고용주가 남성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여성 산업 연수생을 선호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산업연수생들의 피해 사례 가운데는 성추행 건도 있다. 이 밖에도 산업 연수생들은 당연히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수당은 제대로 못 받는 경우도 많았다. 악질 고용주들은 미루고 미루다 연말에 가서나 수당을 줌으로써 산업 연수생들이 제때 일을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불평등 계약, 열악한 근무 조건
 고용주들은 거리낌 없이 산업 연수생들의 취약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 고용주의 요구에 잘 따르지 않는 산업 연수생들은 무자비하게 쫓겨나곤 했다. 산업 연수생 보호 단체가 나리타 공항에서 촬영한 비디오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민간 보안업체 직원들이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산업 연수생 한 명을 억지로 비행기에 태우는 모습이 찍힌 것이다. 대부분 산업 연수생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저 침묵을 지킬 때가 많다.
 그나마 용기 있는 산업 연수생들은 단체와 노동조합에 소극적으로라도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 뿐이다. 아이치현의 젠로렌 노동조합 관계자에 따르면 도요타는 최근 히로시마에서 산업 연수생을 집중적으로 고용하고 있다.
 "도요타는 2002년에 생산 비용을 30% 낮추겠다는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이와 함께 산업 연수생들을 더 많이 고용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곳 사이치 쿠레마츠 사무총장의 사무실에 베트남인 두 명이 찾아 왔다. 각각 나이 25세와 21세인 안과 탐이었다. 이 두 사람은 여러 다국적 자동차 기업으로부터 일을 수주 받는 하청 공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1년 동안 탐은 일주일에 6일 일하고 한 달에 6만 5천 엔(600 유로)을 받았으나 토요일마다 했던 추가 작업에 대해서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치현에서 정한 추가 수당은 최저 731엔에서 820엔 사이로 정해져 있다.
 "사장님에게 가서 추가 수당을 달라고 하니까 그런 돈은 없다고 하더군요." 탐이 말했다.
 "안과 탐은 베트남 주재 중개업체와 계약을 했습니다. 그 업체에서는 업무 시간을 일본법이 아니라 베트남법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게 문제죠. 한 시간 추가로 근무할 때마다 300엔(2.5 유로)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계약서도 있습니다."
 더구나 안과 탐이 근무했던 하청 공장에서는 서류에 들어간 비용과 3년 연수에 대한 보증금까지 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 연수생들은 이를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래서 탐도 1만 달러를 빌릴 수 밖에 없었지만, 비자가 만료된 후 고국에 돌아가서야 갚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탐은 기업이 제시한 규칙을 위반해선 안 되는 처지라고 했다.
 사이치 쿠레마츠 사무총장은 "계약서를 보면 파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면서 "제가 낸 보증금을 되돌려 받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탐은 이곳 일본으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일이 끝나면 취미로 유도를 연마할 수 있으리라는 꿈에 부풀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가 베트남에서 들은 이야기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일은 쉽고 돈도 저축할 수 있으며, 일본어 수업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1엔도 저축할 수 없었고, 최근에는 용접 일을 하다가 앞쪽 팔을 다치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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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국무부 2007 인권보고서' 지적도
 탐은 베트남으로 돌아가면 일본에서의 산업 연수를 절대로 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이치 쿠레마츠 사무총장이 "베트남으로 돌아가 보증금을 다시 되돌려 받았다는 산업연수생들의 전화가 왔으니 걱정 말라."고 탐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산업 연수생들이 내야 하는 보증금은 문제다. 산업 연수생들에게는 부담스런 금액일 뿐만 아니라, 보증금 때문에 봉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도 불만을 털어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산업 연수생들의 처지는 여러 모로 열악한 실정이다.
 산업 연수생에 대한 일본의 인권 유린 현실이 미국 국무부의 2007년 인권 보고서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되자, 일본 언론들도 앞다투어 이 문제를 다뤘다. 그 후 다행히 여권 압수와 같은 충격적인 인권유린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현재 일본 정부는 2009년까지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산업 연수생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아닙니다. 법적으로는 학생 신분이죠. 그래서 모국의 단체도, 일본의 기업도 이들에게는 노동법을 적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절망의 공장>에서 도요타의 충격적인 노동 현실을 고발, 유명인사가 된 사토시 카마타 기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