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된 노예, 가정부

2011-09-07     줄리앵 브리고

프랑스 정부와 좌파 세력은 ‘개인 서비스 부문’에서 좋은 일자리를 찾고자 했다. 필리핀에서는 의무교육과 연수를 거친 가정부를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 국가산업이 되다시피 했다. 이들 중 10만 명 이상이 홍콩에서 일하고 있다. 2011년 6월, 국제노동기구(ILO)는 사상 처음 전 세계 수억 명의 가사노동자들에게 ‘적절한 노동’을 보장하기 위한 협정을 비준했다.

구불구불한 도로, 푸른 소나무 숲, 그리고 유니폼을 입은 남성들이 보이더니, 갑자기 홍콩만의 우편엽서 이미지 같은 풍경과 빌딩 숲 그리고 한 무리의 배들이 나타난다. 컨버터블 세단을 운전하던 샤를로트가 경비에게 고개로 신호를 보내자, 영국의 유명 탐험가의 이름을 붙인 사유지 ‘스탠리’의 차단기가 올라간다. 2005년부터, 프랑스와 벨기에의 이중국적자인 샤를로트와 프랑스인 남편 폴은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경제도시(홍콩)’(1) 심장부에서 30분 거리의 테라스를 갖춘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남편은 대형 프랑스 은행의 자금부장을 맡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부인은 스탠리 베이에서 수영과 테니스를 즐기거나 프랑스의 대형 비정부기구에서 인도주의적 활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다.

샤를로트와 폴은 네 자녀와 큰집 살림을 꾸려갈 이른바 유럽화된 ‘가정부’, ‘유모’가 한 명 필요했다. 안주인은 “레니가 정말 헌신적”이라며 극찬했다. 레오노라 산토스 토레스(‘레니’는 애칭)는 아이들을 돌보고 요리와 집안 청소를 한다. 그는 2011년 홍콩에서 고용한 외국인 가정부 29만600명 중 한 명이다. 그는 대다수의 동료들이 그렇듯, 주인집에 딸린 5㎡도 안 되는 방에 기거하며 밤낮으로 고용주의 편의를 책임지고 있다.

‘4년째 슈퍼마켓에 가본 적 없는’ 샤를로트는 집안일에서 벗어난 것을 ‘진정한 해방’처럼 받아들였다. 그녀는 해변에서 돌아오면 “레니가 물어보지도 않고 수영복을 말려주는 것에 놀랐다”고 했다. 이 부부는 일주일에 6일 동안 24시간 내내 이런 서비스를 받는 대가로 프랑스에서 내던 돈의 4분의 1에 불과한 5천 홍콩달러(약 450유로)를 레니에게 준다. 샤를로트는 “하루 10시간 이상 일한다는 조건으로 홍콩 가정부의 최저임금보다 100유로를 더 주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그녀와 남편은 피고용인이 냉장고 음식에 손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매달 55유로를 더 주고 있다. 그는 “그것이 홍콩법이다”라고 했다.(2) 또 “450유로면 괜찮은 급여인데, 일부 외국인들은 월급을 심지어 600~700유로까지 줘서 시장을 파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사 도우미 두고 자신은 봉사활동

그런데도 이 주부는 자신의 ‘진정한 작은 왕궁’인 주방을 예로 들면서 나름의 불만을 토로한다. “지난여름 프랑스에서 바쁜 주부에게 적격인 멋진 주방 기계, 테르모믹스를 샀다. 삶고 썰고 (…) 그 밖에 온갖 기능을 갖춘 멋진 ‘로봇’이다. (…) 이 훌륭한 로봇만 있으면 나도 부엌일을 다시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지난 1월 그 로봇을 가져와서 딱 4번밖에 써보지 못했다. 레니가 항상 우리를 위해 요리하기 때문이다.”

샤를로트가 방으로 들어가고, 가정부 토레스가 ‘자신’의 주방에서 나온다. 49살의 초췌한 모습을 한 이 여성은 다섯 자녀 중 세 자녀를 필리핀 북부 관광지역 루손의 칼라타간 마을에 두고 왔다. 전보처리기사 자격증이 있는 그녀는 1999년부터 홍콩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한다. “매달 세 아이의 대학 학비를 대기 위해 봉급의 80%를 송금한다. 수수료 28홍콩달러(약 3유로)를 부담하면서 말이다. 난 아이들이 10대일 때, 그들을 떠났다. 필리핀은 교육비가 너무 비싸 아이들을 교육하려면 우리가 희생할 수밖에 없다.”

필리핀 가정부들은 ‘희생’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토레스는 “주인집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음식이 충분한 적도 거의 없지만 우리는 주인 가족에게 헌신한다. 또한 많은 필리핀 동포들이 비참한 환경에서 산다”고 말했다. 필리핀 가정부들은 언어 및 육체적 학대, 고용주의 사소한 요구에 상시 복종, 부족한 임금, 일상적 착취에 시달린다. 홍콩 노동부에 따르면, 매년 가정부의 10% 가량(2만5천 건)이 임금체납, 계약 조건의 부당성, 학대나 성추행 등으로 고용주를 고소하고 있다. 토레스도 처음 6개월간 일한 홍콩인 가정에서 부당한 일을 당한 뒤 뛰쳐나왔다. “그들은 내가 휴가를 반납하기 바랐다.” 한번은 6년 동안 일한 중국인 가정에서 할머니가 그녀를 구타하고 모욕했다. 토레스는 상대적으로 현재 주인들은 잘 대해준다고 했다. 홍콩법은 계약이 만료된 가정부들에게 14일간 홍콩을 떠나게 하는데, 이 때문에 이들 중 상당수가 고용주들을 감히 고소하지 못한다.

 

필리핀 여성에겐 ‘희생 유전자’가 있다?

샤를로트는 “저들의 유전자 속에는 헌신 유전자가 있다”는 말로 자신이 고용한 가정부의 ‘헌신’을 설명했다. “필리핀 여성들은 사교성이 좋다. 그리고 그들이 헌신적인 것은 그들의 문화다. 그들은 아이들을 무척 좋아한다. 그들에게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일종의 레크리에이션이다. 레니는 자신을 지탱해주는 성당에서 산다.” 실제로 토레스는 복음단체 ‘본어게인’(Born-again)의 복음 전도사로 활동하며 “주님과의 관계에서 힘을 찾고 있다.” 이 독실한 신자(대부분의 필리핀인들이 그렇듯)는 신의 가르침과 고용주의 가르침을 일치시켜 그 가르침대로 행동한다. 그녀는 “난 빈부를 구분하지 않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했다. 그녀의 작은 방에는 스카이프·페이스북·야후 등에 접속한 컴퓨터와 주인집 자녀들이 밤에 잘 때 켜놓는 작은 전등, 그리고 그 자녀들의 초상화 등이 쌓여 있다. 컴퓨터 위쪽에 “주께 항상 감사하고, 항상 참아라”라고 쓰인 커다란 현판이 하나 걸려 있다.

‘유전자 속에’ 가정부가 되려는 성향이 있어서일까? 매년 10만 명이 넘는 필리핀 여성들이 가정부로 일하러 해외로 나간다. 심한 경제적 타격에 시달리던 필리핀은 1974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65~86) 통치 때 인력수출 정책을 공식 도입했다. 마르코스는 1973년 1차 석유파동으로 중동이 도약하자 필리핀 노동자들을 ‘한시적으로’ 중동에 송출할 기회로 삼았다. 1974년, 3만5천 명이 해외에서 취업했다. 35년 뒤, 이 흐름은 주로 여성 인력 수출로 바뀌었다. 2010년 필리핀의 인력 송출 공식 규모는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800만 명을 웃돌며, 필리핀 가용 노동인구의 22%를 차지했다. 2010년 세계은행에 따르면, 필리핀 국내총생산(GDP)의 12%는 해외로 송출된 필리핀 여성 노동자들이 송금하는 213억 달러로 채워진 것으로 밝혀졌다.(3) 인구 9,500만 명의 섬나라인 필리핀은 이주 노동자들의 본국 송금 세계 순위에서 중국, 인도, 멕시코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 캐나다, 중동 등지에 분산돼 상주하거나 한시적으로(이들 중 4분의 1은 불법체류자다) 거주하고 있다. ‘슈퍼 가정부’(4) 프로그램을 도입한 글로리아 아로요 전 필리핀 대통령(2001~2010)은 2006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한 이후, 당시 폭격 속에서 살던 필리핀 노동자 3만 명을 일컬어 “현대판 영웅들”이라 불렀다. 아로요는 가정부에게 ‘고용주의 언어’를 가르치고, 국가자격증 제도를 통해 ‘가전제품 이용법’과 ‘응급처치법’을 가르쳐 준비된 슈퍼 가정부를 송출하겠다는 속셈이었다. 이 아이디어의 목표는 ‘기관 수수료 폐지’와 모든 가정부들에게 ‘최저 임금 400달러 보장’, 그리고 전 세계에서 이들을 상대로 자행되는 ‘구조적인 폭력(경제적·육체적)을 줄이는 것’이었다. 5년 뒤 가정부 전문 양성 스쿨들이 필리핀 전역에 우후죽순처럼 설립됐지만, 해외 송출 인력에 대한 필리핀 사회의 최소한의 권리 보장 요구는 여전히 수용되지 않았다.

 

국가산업이 된 가정부 해외 송출

2011년 5월, 마닐라의 아베스트 스쿨에 재직하는 교수 4명 중 하나인 미셸 벤테닐라가 “리틀 홍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아베스트 스쿨은 필리핀 열도의 ‘가정부 서비스’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인가가 난 364개 스쿨 중 한 곳이다. 작은 건물의 벽돌 담 뒤쪽엔 전형적인 홍콩 상류층 가정이 재현돼 있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안뜰에 세워진 세단, 보기 드문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는 수족관, 유럽식 욕실, 분홍색 커튼으로 장식하고 밝은 녹색으로 칠한 자녀들 방과 부부 방 등이 갖춰 있었다. 2007년부터, 아베스트 스쿨은 필리핀 여성 가정부 1,500명을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도 채 안 되는 홍콩으로 수출했다. 등록비가 9천 페소(약 130유로)에 달하는 이 스쿨은 채용회사와 제휴를 맺고 있다.

2011년 5월 13일 금요일, 최종 자격증 시험이 치러졌다. 연약한 몸매를 지닌 지원자 5번이 두 손으로 도자기 수프 그릇을 받쳐 든 채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분홍 비닐 식탁보가 덮인 식탁으로 서서히 다가가 수프를 내오는 시연을 했다. 41살의 레아 탈라비스는 216시간의 교육과정을 거쳐 가정부 자격증, 국가자격증(NCII) 시험에 매년 응시하는 10만 명의 응시생 중 한 명이다. 직업교육기관인 ‘기술교육 및 기술개발 기관(TESDA)’의 시험관 롬멜 벤테닐라(5)가 ‘테이블 서비스’ 시험을 치르는 탈라비스를 찬찬히 관찰한다.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초등교사직을 그만둔 탈라비스는 가상의 주인에게 다가가 한 발짝 비켜서며 몸을 바로잡고 묻는다. “수프 드릴까요, 사장님?” 벤테닐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라고 했다. 탈라비스는 주인 왼쪽에 있는 흰 접시에 수프를 덜어 담은 뒤, 한쪽으로 비켜서며 남은 수프 그릇을 주방으로 가져가야 할지 아니면 주인이 나중에 더 먹을 수 있도록 옆에 놔둬야 할지 몰라 멈칫거렸다. 시험을 치르느라 얼이 빠진 이 응시생은 고개를 숙이더니 서둘러 들고 있던 모든 것을 탁자 위에 내려놨다.

시험관은 그녀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줬다. 구두 질문을 던졌다. “물컵엔 물을 얼마나 따라줘야 하죠?” 시험관이 부르주아 홍콩 가정의 식탁처럼 세팅된 식탁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물컵 3개, 접시 받침대 3개, 생선용 칼과 고기용 칼 등이 대칭과 간격을 제대로 지켜 배열돼 있다. 그러자 시험관의 오른쪽에 서 있던 탈라비스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물 주전자를 들더니 물컵의 4분의 3을 채웠다. 의연한 벤테닐라는 탈라비스의 테이블 서비스 시험을 합격 처리할 것이었다. 탈라비스가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침대 세팅, 타일 및 수족관 청소, 옷 다림질, 세차 시험 등을 치러 최종 점수를 얻게 된다.

 

전문학교에서 배우는 복종의 품성

벤테닐라는 “능력 20%, 이론 지식 20%, 태도 60%로 최종 점수를 낸다”고 설명했다. TESDA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담당자인 수잔들라라마는 “우리는 현재 더 이상 ‘가정부’라는 말을 쓰지 않고 ‘가사도우미’라는 말을 쓴다. 우리는 몇 해 전 그랬던 것처럼 (…) 필리핀에 붙은 가정부 수출국 딱지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2005년, 영국의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세계판에 ‘필리핀 여성’을 ‘필리핀 출신 여성 가정부’로 표기해 필리핀 정부의 분노와 그 분야 전문가들의 반발을 샀다.

벤테닐라 시험관은 “많은 고용주들이 예의 바르고 공손하고 참을성 있고, 특히 말수가 적은 가사도우미를 찾는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에게 홍콩 고용주들의 다혈질 성향에 적응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애쓴다. 가사도우미는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특히 성심을 다해 일해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슈퍼 가정부’ 프로그램의 핵심 사안을 설명했다. 수족관 위쪽에 붙어 있는 표어 가운데 ‘청결은 신앙심에 가깝다’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교실엔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차트가 하나 있다. 전자는 ‘해결책을 찾고’ 주인에게 “제가 할 테니 그냥 놔두세요”라고 말하고, 후자는 ‘핑계 대상을 찾으며’ 자신에게 시킨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항상 ‘구실’을 찾는 사람으로 묘사돼 있다. 한편 ‘주인에게 대들지 말 것’, ‘다른 가정부와 얘기를 나누지 말 것’, ‘주인이 지적할 때,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지 말 것’, ‘문제가 있을 때, 친구들에게 털어놓지 말고 당신을 소개한 직업소개소에 연락할 것’ 등이 학교 규율로 정해져 있다.

 

죽어서 고국 돌아오는 이주 여성들

분명한 것은, 이곳에서는 사회주의의 싹을 키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조도 없고, 파업도 없고, 복지 시위도 없고, 예속의 원칙을 문제 삼지도 않는다. 학교 교과서 6장에는 ‘시간을 항상 지킬 것’이라고 쓰여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거론한 장에는 ‘훌륭한 가사도우미가 되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들 중’ 하나로 ‘절대로 자기 시간을 챙기지 말 것’이라고 명시해 놨다.

해외 거주 필리핀인 권익 옹호 단체 ‘미그런트 인터내셔널’의 명예회장 게리 마르티네즈는 “노동현장에서 사망한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주검 6~10구가 매일 본국으로 송환되고 있다. 이것은 매일 노동자 4,500명을 해외로 송출하는 국가의 불명예다. 필리핀은 이제 ‘가정부 제조 공장’이 돼버렸다”고 했다.

오후 2시, 탈라비스는 이제 바닥 타일 청소 시험을 준비한다. 그녀는 잘 해낼 것이다. 마닐라 몬텐로파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그녀는 이미 부유한 홍콩 가정에서 10년간 가정부로 일한 적 있지만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합법적으로 출국하려면 ‘마법의 열쇠’인 국가자격증이 특히 필요했다. 어부와 택시운전사로 일하는 남편과 두 아이를 놔두고 해외 취업을 다시 결심했다. 그녀는 “내가 떠나는 것은 가족을 위해서다. 홍콩에서 내 월급의 두 배 이상을 벌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가정부 양성 스쿨이 학생들에게 최우선으로 가르치는 것이 ‘주인의 지시에 순종하고 따르라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모두 훌륭한 가정부가 되기 위해 빚을 냈기 때문이다.”

탈라비스는 예금을 깨서 교사 월급 6개월 치에 상응하는 직업소개소 비용 7만8천 페소(약 1,290유로)를 냈다. “난 현금으로 지급하고 영수증도 받지 못했다. 필리핀 이주노동자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의 인가를 받은 직업소개소였지만, 이곳 직원들은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고’라는 식이었다. 난 홍콩에 가서 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돈을 냈다.” 그녀가 선발대로 먼저 홍콩에 나간 뒤, 남편과 자녀들이 뒤따라 합류할 계획이다.

최종 목적지는, 해외에서 일하는 동포들 중 10%가 그렇듯 유럽이다.(6) 그녀는 “평생 가정부로 살 생각은 없다”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3주 뒤, 목적지에 도착한 그녀는 고용주가 “자신들을 두 번째 가족처럼 생각해달라고 했다”며 “기쁘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것은 고용주 집에 있는 와이파이망이다. “난 밤마다 웹캠 덕분에 아이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난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홍콩은 기착지… 목적지는 유럽

홍콩 중심가 상류층 거주지인 미들레벨 한복판, 경비원과 수영장이 딸린 아늑한 건물 ‘엘레간트 테라스’의 13층 문이 열리자 실루엣이 나타난다. 주인 조지프 로(65살)였다. “엘레나, 프랑스 신문기자 줄리앵인데 홍콩에서 일하는 필리핀 가정부에 대한 기사를 쓴답니다. 우리에게 밀크티 좀 주세요.” 그녀는 셔츠를 가리키며 “셔츠는 항상 중앙에 주름을 잡아서 다림질하라고 요구합니다. 요렇게요, 보이죠?”라며 가죽 소파에 털썩 주저앉더니 말을 이었다. “남이 해주니 좋으냐고요? 멋진 질문입니다. 고백건대, 내가 손수 일하는 것보다 남이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난 35년째 외국 가정부를 쓰고 있습니다. 필리핀 여성을 선호합니다. 이들은 다른 나라 여성보다 영어를 잘해 소통 문제도 없습니다. 일도 훨씬 헌신적으로 잘합니다.” 완벽한 주택, 완벽한 외모, 완벽한 생활수준 (…), 이 모든 것을 위해 엘레나의 육체노동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홍콩소방서 부국장에서 홍콩외국인가정부고용주협회 대변인으로 변신한 로는 “엘레나에게 법정 최저임금인 3580홍콩달러(약 327유로)를 지불한다”고 했다.(7) 달리 말하면 이 협회는 가사노동 부문 사용자의 지위를 대변하는, 홍콩 가사노동자들이 설립한 6개 노조의 적이다.

필리핀에 18살 난 딸을 두고 온 엄마이자 16년 넘게 가정부로 일하는 51살의 엘레나 메르도레스가 다가왔다. 짧은 바지에 방금 설거지하다 젖은 티셔츠 차림을 한 그녀가 쟁반에 찻잔 2개와 찻주전자 하나를 받쳐 들고 와 주인 앞에 내려놓는다. 그녀는 주인에게서 “다음부터는 좀 더 큰 쟁반에다 손님 대접을 하세요. 아시겠어요?”라는 잔소리를 들으며 주인 옆 가죽 소파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앉았다. 로가 말을 이어갔다. “왜 이토록 저임금이냐고요? 그것은 필리핀 여성들이 엘레나처럼 자격미달에다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이 말을 강조하듯 “엘레나, 안 그래요?”라고 하자, 엘레나가 고개를 떨구며 “사장님 말씀이 옳아요” 했다.

엘레나가 자신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느낀 주인은 그에게 자유롭게 얘기하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가정부가 웃음을 터뜨리며 긴 머리를 매만진 뒤 “아니죠, 제 동포들 대부분은 박사학위 취득자, 교사, 학사학위 취득자들입니다. 이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거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정부가 된 것입니다. 또 정부가 가정부 양성 스쿨을 설립해 연수시키는데, 사장님께서 우리가 자격 미달이고 유능하지 않아 저임금을 준다고 설명하시면 안 되죠”라고 쏘아붙였다. 로는 손사래를 치며 가정부 양성 스쿨은 다 헛소리라고 했다. 그녀는 “스쿨 얘기는 최고의 허풍이자, 고용주와 가정부 간 가장 큰 분쟁의 씨앗”이라며, 엘레나에게 다시 물었다. “엘레나, 난 홍콩에서 일하는 가정부의 50%는 고용주와 평화롭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엘레나가 소파에서 몸을 추스르며 “전 10~15%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장님”이라고 반박했다.

주인은 짜증이 난 듯 “뭐요, 분명히 말하지만 15%는 아니잖아요. 엘레나, 좀 솔직해집시다”라고 반박했다. 엘레나는 “고용주 대다수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거짓입니다. 저들은 체면 유지를 위해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사장님은 안 그러시지만…”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인이 그의 말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 “홍콩은 외국인 가정부의 천국입니다. 천국!”

 

ILO 협정 반대하는 홍콩의 고용주들

그는 단순히 자신의 가계소득(매달 1만 유로를 웃도는 소득)과 가정부의 임금을 연관시키는 것에 분통을 터뜨렸다. “홍콩은 필리핀 가정부들이 꿈꾸는 곳입니다. 저들은 고용계약을 맺고 최저임금을 받는 데다, 고용주들은 저들에게 주택, 음식, 항공료, 의료보험, 5년 차부터 근속수당을 제공합니다. 고용주들이 지불하는 평균 월급이 5500홍콩달러(약 500유로)에 달합니다. 아주 많은 돈이죠.” 물론 그도 고용주 대부분이 자신처럼 상류층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작은 선물 공세로 그런 불평등은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매년 신년과 중국의 명절인 춘절 때 엘레나에게 선물을 합니다. (…) 안 그런가요, 엘레나?” 엘레나는 신년 때 받은 작은 봉투를 떠올리며 “네, 40유로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로는 필리핀 정부에서 전 세계적으로 최저임금 400달러(약 278유로)를 필리핀 가정부에게 보장하는 정책을 펼치며, 2010년 말부터는 수천만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의무보험을 신설해 고용주들에게 200홍콩달러(약 17유로)를 보험료로 징수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정부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만약 저들이 계속 바보 같은 정책을 펼치며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면, 난 중국인 가정부에 대한 금수조치를 해제할 것이다.”(8) 로에게는 근심거리가 있다. 가정부 수출 부문에서 가장 공격적인 정책을 펼치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가 2011년 6월 “가사노동자들에게 적절한 노동을 보장해주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정을 비준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가사노동에서 시간을 헤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고용주들은 이 협정 비준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했다.

3일 뒤 이른 일요일 아침, 메르도레스는 빨간 우산을 쓰고 성모 무염수태 성당에 갔다. “내 가족과 로씨 가족을 위해 기도하러 간다. 신앙에서 이기적이면 안 된다.” 정오가 되자, 그녀는 필리핀 가정부들의 모임에 갔다. 그는 대형 투자은행들의 본사가 우뚝 솟은 중심가로 향했다. 뱅크오브차이나와 보석상 반클리프아펠 사이에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있다. 일요일마다, 메르도레스처럼 가정부로 일하는 필리핀 여성 수천 명이 HSBC 본사 빌딩 아래 모인다. “우리는 쉬는 날이면 갈 데가 없어 이곳에 모인다. 일주일 내내 혼자서 먼지를 떨고, 아파트를 청소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주인의 손에서 벗어나 약간의 자유시간을 갖는다. 이것은 우리의 자존심이다.”

 

‘딸, 아내, 어머니’가 되는 그녀들의 회합

밖에 비가 잦아들자 패션쇼를 시작할 수 있었다. 특별히 오늘 패션쇼 주제는 ‘딸, 아내, 어머니로서의 여성’ 찬양이었다. 홍콩에 있는 바기오(북부 필리핀 지방) 출신 필리핀 여성들이 어머니날을 기념하려고 개최한 패션쇼였다. ‘딸, 아내, 어머니’로서 여성의 역할을 홍보하는 것은 수백만 여성을 가정부로 채용하며 생기는 성차별과도 잘 부합했다. 예쁘게 치장하고 한껏 멋을 낸 40~50대 여성들이 뱅크오브아메리카 아래쪽에 위치한 커다란 빨간색 연단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패션쇼를 펼쳤다. 참가자들은 모두 ‘필리핀이주노동자’(Overseas Filipino Workers) 소속의 간호사와 가정부 등이었다. 이들은 이날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뽑았다. 연단에서 수십m 떨어진 곳에서는 가정부 수천 명이 손에 든 작은 웨스턴 유니온 깃발을 열광적으로 흔들어댔다. 2010년, 이 회사를 통해 해외로 송금한 210억 달러의 주 고객은 필리핀인들이었다. 이 회사는 이날 필리핀 스타 가수들을 초청해 고객들을 위한 음악축제를 개최했다.

HSBC 빌딩 양쪽엔 이 회사의 창업자로 유명한 두 은행가 A. G. 스테판과 G. H. 스티트를 상징하는 청동 사자 두 마리가 있다. 오른쪽 사자 ‘스티트’는 입을 다문 채 심각한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있고, 왼쪽 사자 ‘스테판’은 입을 크게 벌린 채 기뻐 포효하는 것처럼 보였다. 웃는 사자상은 홍콩에 거주하는 필리핀인들에게 유명한 약속장소가 됐다. 고르고냐는 “나는 웃는 사자상이 우리의 힘든 노동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 상 앞에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22년 전 이곳에 온 이 필리핀 여성은 자신이 여전히 저임금을 받는 가정부란 사실에 놀라워했다. 고용주와 이들의 번영의 메타포인 이 사자는 배불리 먹고 HSBC 빌딩을 향해 포효하고 있다. 그 아래에선, 수천 명의 힘없는 노동자들이 일요일 휴식을 즐기고 있다. 고르고냐는 즐거운 자태를 뽐내는 이 야수 앞에 서서 “중국인들에게는 이 사자상이 돈을 상징한다. 우리가 없다면 이 사자가 이처럼 배불리 먹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글: 줄리앵 브리고

독립 프리랜서로서 제국주의의 지배를 겪은 동유럽 및 인도, 동남아 등을 주로 다니면서 포스트 식민사회의 현장과 그 후유증을 텍스트뿐 아니라 사진 및 필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빈곤층의 불안한 일자리를 고발한 <망할 놈의 일(Boulots de merde)!>(2016) 등이 있다.

번역: 조은섭

(1) 2011년 경제자유지수 보고서에서 홍콩은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 실제로 가정부에게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 고용주는 가정부에게 음식비로 750홍콩달러(약 67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3) <Remittances to PH ranked 4th biggest in world>, www.ofwngayon.com, 마닐라, 2010년 11월 11일 참고.

(4) <Housemaids to Supermaids Soon!>, www.ofwguide.com, 마닐라, 2006년 8월 24일 참고.

(5) 교수 미셸 벤테닐라와 롬멜 벤테닐라 간에는 인척관계가 없다.

(6) 2006년 해외로 송출된 필리핀인들 중 43.4%는 미주(캐나다 5.3%, 미국 33.1%)로, 32%는 아시아(동남아 14.9%, 중동 22.3%)로, 그리고 10.8%가 유럽으로 갔다. 출처: 필리핀 이주노동자위원회.

(7) 2009~2011년 3,580홍콩달러(약 327유로)로 동결됐던 최저임금이 2011년 6월 3,740홍콩달러(약 340유로)로 올랐다. 하지만 1999년 경제위기 전 임금인 3,860홍콩달러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

(8) 1970년, 홍콩에 거주하는 영국인들은 중국인 가정부에 대한 금수조치를 공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