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권력을 한손에, 신문 접수 나선 자본가들

2011-09-07     마리 베닐드

판매부수 감소, 인터넷 매체와의 경쟁. 프랑스 일간 언론은 과연 현 상황을 타개할 묘안이 있을까? 과거 기업인이 차지했던 언론사 주주 자리는 오늘날 금융인이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양자 모두 언론사를 이권 보호 도구로 활용하기에만 급급하다. 반면 주주의 개입을 줄이고 견제할 힘은 계속 약화되고 있다.

다음 프랑스 대선전에서 정치 지도층이 인쇄언론과 그 유관산업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을 우려는 없는가? 그렇다면 국가가 언론사 구조조정을 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일까? 지난 6월 <르피가로> 경영진은 트랑블래엉프랑스 인쇄소를 리코보노사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달 <르몽드> 경영진도 아직 멀쩡하게 작동하는 이브리쉬르센 인쇄소 윤전기 2대 중 1대 운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루이 드레퓌스 <르몽드> 사장은 ‘지역일간신문’(PQR)에 <르몽드>의 지역 인쇄를 맡겨 다음날 아침이 아닌 당일 저녁에 지방 판매를 하고, 연간 300만 유로의 손실을 메우려고 한다. 한편 <이코노미스트>(1)에 따르면, <르몽드> 대주주 자비에 니엘은 인쇄소 직원 260명 가운데 220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니엘을 1980년대 영국 인쇄노조의 저항을 꺾은 인터넷 미디어계의 거부 루퍼트 머독에 비유했다. 하지만 전국지인 <르몽드>가 ‘프랑스도서조합’(Syndicat du livre)의 정치력을 위협하는 경우 거센 분쟁을 자초할 수 있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이번 <르몽드>의 구조조정으로 전체 프랑스도서조합 조합원의 4분의 1가량이 타격을 입을 듯 보이기 때문이다.

위기의 신문사들, 물주 품속으로

오늘날 인쇄소를 폐쇄하면서 대신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거나 온라인 부문에 주력하려는 프랑스 신문사가 늘어나고 있다. 파리 일간 언론사들은 인쇄산업과는 인연을 끊었지만 반대로 다른 산업과 사이좋게 뒤를 봐주며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를테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고문 에티엔 무조트(2)가 편집국장으로 있는 <르피가로>는 대통령 정적들의 부상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 예로 7월 19일 <르피가로>는 스트로스칸 스캔들에 연루된 프랑수아 올랑드에 관한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덕분에 대통령실을 전폭 지원한 공을 인정받아, <르피가로> 사주 세르주 다소(라팔 전투기의 경우 프랑스 정부가 유일한 고객이다)는 프랑스군으로부터 소형 무인 정찰기 수주 계약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받아낼 수 있었다. 더욱이 이는 참모총장과 방위사업청 청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 소속의 에손 지역 상원 의원이기도 한 세르주 다소는 요즘 들어 <르피가로>에서 자신의 의정 활동을 다룬 기사(7월 6일자 신문은 노동자에 대한 성과급 지급 문제, 7월 8일자 신문은 일간지 유통업체 파업에 대한 다소 의원의 상원 발언 내용을 소개했다)를 찾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2010년 10월 12일 ‘미디어기자협회’(AJM)에 출석한 자리에서 무조트 <르피가로> 편집국장이 인정한 바와 같이, 세르주 다소는 매일같이 편집국장과 전화 통화를 하는 식으로 보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기업인은 심지어 2010년 6월 26일 ‘페르시아 걸프 지역 내 이스라엘의 막후 비즈니스’에 대해 취재한 조르주 말브뤼노 기자(그는 이라크에 인질로 붙잡혔다 풀려난 기자로 유명하다)를 해고하라는 요구도 서슴지 않았다. 말브뤼노 기자가 쓴 기사가 아랍에미리트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다소의 라팔 수주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이다. 몇 달 뒤, 말브뤼노 기자 해고에 반대한 모렐 사장 역시 사주와의 ‘성격 차’를 이유로 <르피가로>에서 쫓겨났다.(3) 4년 전만 해도 모렐 사장은 비교적 고분고분한 인물로 통했다. 2007년 12월 12일 그는 두말없이 <르피가로>에 무아마르 카다피에 관한 홍보성 기사를 실어주었다. 당시 다소는 프랑스를 방문한 카디피와 라팔 전투기 14대 공급을 위한 세부 협상을 한창 진행 중이었다.

<라트리뷴>을 소유하고 있던 1993~2007년(이후 프랑스 최대 경제 일간 <레제코>도 인수했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 모에헤네시’(LVMH) 그룹 회장은 지인들에게 언론의 공격을 피하려면 언론사를 소유하라고 귀띔했다. 대체 그 어느 기자가 세계 4대 부호이며, 자기 회사의 최대 광고주(피가로 그룹 전체 광고의 10% 차지(4))인 기업인을 감히 취재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그가 잠재적 고용주이기까지 하다면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레제코> 내부에는 이렇듯 매 순간 이익 충돌이 일어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를테면 카르푸 파업과 관련한 핵심 쟁점을 보도해야 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아르노 회장이 ‘콜로니 캐피탈’과 함께 대주주로 있는 카르푸는 2010년 3억8천만 유로의 수익을 내고도 4500명을 감원하면서 파업 물결에 휩싸였다.

지면 통해 이권 챙기고, 기자 자르고

2007년 <레제코>를 인수하면서 아르노 회장은 직업윤리헌장 준수와 주주의 경영 간섭 제한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아르노 회장이 니콜라 베투 <레제코> 사장(그는 2007년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날 밤 ‘푸케’ 레스토랑에서 열린 저녁 만찬에 초대받기도 했다)에게 자신의 이권 보호 임무를 맡기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2008년 3월 베투 사장은 좌파의 시의원 선거 승리가 사르코지 대통령의 패배로 비치지 않게끔 1면 기사 수정을 지시했다. 또 최근 에르메스 인수전이 한창일 때는(주식 관련 법규를 어기고 ‘금융감독원’(AMF)에 사전 신고 없이 2010년 10월 에르메스 지분 17%를 매입했다), 아르노를 위해 지원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3월 14일 <레제코>에는 ‘에르메스, 만천하에 공개된 가족싸움’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반면 2010년 (눈부신) 경영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파트리크 토마 ‘에르메스 셀리에’ 사장이 했던 돌출 발언은 일언반구도 보도하지 않았다. 토마 사장은 그날 “아름다운 여인을 유혹하겠다고 다짜고짜 뒤에서 여인을 덮쳐서는 안 된다”며 아르노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5)

언론사에 자금줄 노릇을 하는 기업인들은 언론을 자신의 이권 보호를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고 싶어한다. 무가지 일간 <디렉트 마탱>의 사주 뱅상 볼로레도 예외는 아니다. 볼로레 그룹은 그룹 소속 물류운송회사가 코트디부아르 아비장항 운영권을 따내자, ‘아바스’의 자회사인 ‘유로 RSCG’를 통해 로랑 그바그보 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의 선거전 지원에 나섰다. 그바그보는 2010년 11월 대선전에서 패배한 뒤 권력 이양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1월 5일 <디렉트 마탱>은 ‘와타라, 그바그보가 내민 손 거부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6)

때때로 기업인 출신의 주주는 언론사를 자신의 사업에 유리하도록 정치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싶어한다. 라가르데르 그룹이 연초 국외 언론을 전부 매각한 뒤에도 국내 유력 매체(<유럽1> <르주르날 뒤 디망슈> <엘르>)를 그대로 남겨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그는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의 측근이자 사르코지 대통령의 신망이 두터운 드니 올리벤에게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이 국내 매체 경영을 맡겼다.

“라가르데르 그룹이나 베르나르 아르노, 에두아르 드 로쉴드(<리베라시옹>의 대주주)와 같은 이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인쇄언론의 운명은 대체 어찌 되었을까?” 2007년 12월 9일 <RTL-르피가로-LCI 그랑 쥐리>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르노 라가르데르가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기업 총수의 참여로 프랑스 언론사가 덕을 본 것은 전혀 없다. 언론사 주주들은 각자 기록적인 수익을 챙기고 있지만, 정작 언론사 편집인들은 어떤 야심찬 경영 개선 계획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상황이다. 결국 편집국도 판매부수 및 수익 감소로 인한 긴축재정의 칼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주주들은 언론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할 기자 대신 무조트(<르피가로>), 베투(<레제코>) 등 자신이 믿을 만한 인물을 경영 일선에 세웠다. 감원도 서슴지 않았다. 프랑스노동총연맹(CGT) 산하 프랑스기자노조(SNJ)에 따르면, 2010년 파괴된 기자직은 3천 개에 달한다. 그렇다면 <르몽드>의 새주인, 피에르 베르제, 마티유 피가스, 자비에 니엘 등은 언론사를 구원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새 주주들은 편집국 독립 보장에 관한 헌장을 체결했다. 하지만 여러 사업가로 구성된 이 체제도 앞으로 많은 이익 충돌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하다. 이를테면 니엘의 손아귀에 있는 ‘프리’, 피가스가 프랑스 지점을 맡고 있는 ‘라자르 은행’, ‘시닥시옹’의 회장인 베르제와 충돌을 빚은 ‘텔레통’ 등에 관해 대체 어떻게 정당한 보도가 가능하겠는가? 더욱이 베르제는 결코 ‘잠자는 주주’에 만족하지 않을 태세다. 그는 지난 5월 11일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을 비판한 역사가 프랑수아 퀴세의 칼럼에 대해 “극우파 언론에나 어울릴 추잡한 기사”라고 폄훼하며,(7) <르몽드> 사장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심한 반감을 표시했다. 물론 신문편집인협회의 힘을 고려할 때 언론 검열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기검열이라면 그리 불가능할 것도 없다.

언론의 ‘금권’ 투쟁은 역사 속으로

이제 기업인에 이어 금융인이 언론을 되살릴 구원투수로 나서려는 것일까? ‘크레디 뮈튀엘’은 미셸 뤼카스 회장의 뜻에 따라 <도피네 리베레>에서 <레스트 레퓌블리캥>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지역 일간신문을 장악했다. 모든 언론사가 똑같은 보도를 내보내는 언론의 ‘상호부조’ 현상이 강화되거나 크레디 뮈튀엘 은행의 상업적 이익 관계가 복잡하게 뒤얽히면서 언론의 다원성이나 독립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벌써부터 <주르날 드 손 에 루아르>는 크레디 뮈튀엘 은행의 아이티 구호활동을 취재할 전담 기자 1명을 급파했다. 한편 기자들에게 이제 파업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급여 인상을 요구하며 <레퓌블리캥 로랭> 기자들이 벌인 파업은 결국 신문 매각 사태를 불러왔다. <AFP통신>에서 뤼카스 회장은 “나는 더 이상 여러분에게 개인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여러분과 나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인간적 차원의 거래 가능성을 여러분이 차단해버렸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 <라 부아 뒤 노르>는 ‘북부 크레디 아그리콜’에게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최적의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25% 지분 참여를 허용했다. 신문사를 탄생시키고, 언론의 ‘금권’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과거의 레지스탕스 정신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새 주주는 일간지 독자를 상대로 금융 서비스 상품을 판매하는 데만 골몰할 뿐이다. 사르코지는 <누벨 옵세르바퇴르>(2007년 12월 13일자)에서 “신문사 투자자가 영미계 연기금이 아니라 기업인인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총수냐, 연기금이냐? 프랑스 언론의 미래에는 정녕 이것 말고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글•마리 베닐드 Marie Bénilde
<그들은 두뇌를 사들인다: 광고와 언론>(Raison d’Agir·파리·2007)의 저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각주>
(1) ‘The revolution at Le Monde’, <이코노미스트>, 런던, 2011년 7월 30일.
(2) ‘니콜라 사르코지 재선을 위한 포천 그룹의 막후 활동’, <르몽드>, 2011년 8월 15일.
(3) ‘성격 차 때문에 <르피가로>에서 쫓겨난 프랑시스 모렐’, <르몽드> 온라인판, 2011년 1월 25일.
(4) <카나르 앙셰네>, 파리, 2011년 4월 27일. 장 피에르 타이예르, ‘감시받는 경제기자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9년 9월호 참조.
(5) <카나르 앙셰네>, 2011년 3월 9일.
(6) 콜랭 브뤼넬, ‘볼로레 언론사, 친구 그바그보를 돌보다’, www.acrimed.org, 2011년 1월 13일. 토마 델통브, ‘TV 프로그램 ‘아프리카의 목소리’의 진짜 목소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4월호.
(7) www.electronlibre.info, 2010년 5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