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급, 기권에 투표하다

2011-09-07     블레즈 마냉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전망하기 위해 각 후보자의 당선 가능성을 측정하는 여론조사가 많아지고 있다. 후보자의 공약과 함축된 말들이 정치평론가들에 의해 분석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평론가들은 대의민주정치 시스템의 기능을 교란시키는 기권표에 대해서는 적절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투표 기권 행위는 대의민주주의 신화와 모순된다. 대의민주주의는 각각의 시민이 자신의 의견과 정치적 선호를 표현하는 주권적 행위를 선거 참여로 수행한다. 그러나 극소수의 유권자들만 공약과 이념을 평가해 투표한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는 사회적 그룹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문화적·사회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은 정치의 장을 이해하고 실제로 그것을 향유할 수단을 박탈당하고 있다.  

과거 높은 투표율은 그룹 투표 덕분

그럼에도 프랑스의 선거참여율은 1848년부터 시작해 투표율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1980년대 초까지 높은 수준에서 안정되어 있었다(70~80%). 이런 명백한 역설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호가 다른 사회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해결될 것이다. 결국 선거 동원은 집단별로 이루어지고, 투표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리고 어느 당을 찍을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대부분 어느 사회 그룹에 속하느냐에 달려 있다. 2005년의 유럽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처럼 극단적으로 대립된 쟁점에 대한 투표가 실시될 때, 그 결과는 대체로 사회적 양극화와 일치한다. 파리의 16구(부자가 사는 지역)에서는 80%가 찬성하고, 오베르빌리에(파리 북동쪽으로 7km 정도 떨어진 지자체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 사람들은 30%만 찬성했다.

서민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대규모 투표 기권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연구원 장이브 도르마장과 셀린 브라코니에는 생드니(오베르빌리에 바로 옆 지자체)의 코스모노트 구역의 평균투표율이 1980년대 중반부터 50%로 떨어졌고(1980년대 초반까지는 70~80%대 유지), 전국 평균보다 10~20% 낮아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1) 앞으로 선거에서 사회적·공간적 분리는 더욱 가중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룹으로 투표한다.”(2) 예를 들어 사회학자인 모니크와 미셸 팽송 샤를이 ‘실용적 공동체주의’(3)라고 묘사한 사교행사, 주거공간, 특별 여가활동 등에 의해 맺어진 인간관계를 통해 상층 부르주아 계급은 결속 감정을 갖게 된다. 이 감정은 아는 사람들을 선거에 동원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보수적 투표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사회 그룹으로의 귀속 감정은 해당 그룹의 공동 이익에 의해 다져지고, 정치 대표와 노동조합 대표, 협회 대표들이 쏟는 환경과 교육에 대한 노력에 대부분 달려 있다. 이 규칙은 지적 중산층에도 적용된다. 지적 중산층은 학력이 가장 높은 그룹에 속하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이 많고, 투표소에 갈 의향이 가장 높은 그룹이다. 2002년 학사·석사·박사 과정 졸업자의 평균투표율은 80%였으며, 그들 전체 중에서 5%만이 모든 투표에 기권했다. 반면 졸업장이 없는 사람들의 투표율은 62%였으며, 그들 전체 중 20%가 기권했다.(4) 사회당에 가입한 교사들과 나눈 대담은 정치적 동원 작업이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증명해준다. 그들 중 대다수는 투표에 기권한 적 없으며,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다른 당에 투표한 적도 없다. 그들은 ‘시민적 윤리’에 의거해, 또는 장 조레스(프랑스 사회주의자)와 레닌, 드골식 사고의 장점과 사회당, 프랑스공산당, 대중운동연합(UMP)의 공약들을 비교·토론해 어느 정당에 대한 충성도를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교사들은 ‘좌파’에 대한 애정(불평등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연관되어 품고 있는)을 불러일으키고, 사범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끊임없이 받은 자극을 통해 갖게 된 정치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그들은 자신이 자주 들락거리는 구역(Quartiers) 또는 협회들, 일터에서의 선거운동이 주는 짜릿한 순간을 이야기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선거운동에 휘말렸다.

서민 지역, 80년대 중반 이후 급락

피지배 계급에게 정치는 거리감과 빈정대는 의심의 시선이 놓이는 비의적 놀이지만, 피지배 계급은 어떤 정치 ‘진영’에 온전하고 완벽한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일체감을 느낀다. “온전하고 완벽한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가장 빈곤한 사람들은 일괄적으로 자신들이 선택한 정당에 무한한 신뢰를 표한다.”(5) 이데올로기적 신념이나 정치의식의 발전에만 근거해 투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는 생활·여가·노동 공간을 정치화하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전국 평균 이상의 투표율을 가능하게 한 조직들이 소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기권표가 엄청 증가했다.

코스모노트 지구에서는 예전에 활발하게 활동한 공산당의 말단조직이 1990년대 초 붕괴했다. 생드니가 탈공업화하고, 실업이 늘어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경쟁과 하청이 심화됨으로써 직업적 연대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고, 노조활동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에서는 어떤 공통의 정체성을 표출할 수도, 동원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거주자들은 그들이 처한 존재조건과 사회·경제적 지위의 불안정한 상황에 그대로 내버려졌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일상의 실제적인 어려움들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정치 세계에 무관심해졌다. 그들은 정치 세계에 개입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코스모노트 지구에서는 거주민의 20%가 다른 지역의 선거 사무소에 등록되어 있고, 등록 유권자의 28%가 그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권자들, 어쩌다 한번 투표하는 유권자들 대부분이 바로 이 ‘질 나쁜 등록 유권자들’에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잠재 유권자(사회보장 혜택을 받는 사람은 잠재적 유권자가 됨)의 25%는 선거명부에 등재되어 있지 않으며, 투표권이 없는 외국인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실제 유권자 수는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인구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국민전선(FN)에 찬성하는 표 중에는 몇몇 사회계층이 자신들의 신분 격하에 분노해 투표장에서 푸닥거리함으로써 나온 표도 있을 것이다. 이런 투표 선택은 노동계의 몇몇 분파와 관계 있지만, 20년 전부터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좌파 르펜주의’(르펜은 FN 당수의 이름)의 환상과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노동계 전체에 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좌파 르펜주의는 노동자의 표가 공산당에서 FN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한다.(6) 그런데 현재 FN에 투표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예전의 극우파 유권자다. 한편 노동자의 ‘제1당’은 기권당이라고 봐야 한다. FN은 노동자 계급뿐 아니라 자신들의 노동조건과 생존조건이 악화되거나 불안정해진 다양한 이질적 그룹을 유혹하고 있다.(7) HLM(서민아파트)에서 이민자들과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하는 퇴직자, 경제위기로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한 소기업 사장과 수공업자, 유산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생활방식과 신념이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일부 쇠락한 부르주아 계급, 상층 중산계급이 그들의 구역을 떠나고 터키 망명객들이 차츰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신분상승을 상징하던 중산계급이란 자부심을 훼손당한 파리 근교 작은 건물의 주인들인 하층 중산계급이 이런 다양한 이질적 그룹에 속한다.

정치적 냉소 혹은 극우당 지지

구조적이거나 경기변동에 의한 이유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은 모두 자신의 원한과 사회적 추락의 두려움을 표현할 수 있는 통로를 FN의 정치공약에서 발견할 수도 있고, 자신의 이미지를 ‘이민자 반대’라는 구호에 투사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주장하기를 포기하거나, 자신의 개별적 이익을 만족시키지 못한 정부와 정당들에 불신을 표현할 수도 있다. 공화국의 제도 안에 자리잡지 못하고, 주요 정치 당사자들에게 배척당한 FN이 이질적·경제적 불만들을 결집하고 있다.

FN의 지지자들은 끊임없이 변한다. 20년 전부터 유권자의 4분의 1 이상이 이미 자신의 표를 FN 후보자에게 주었음에도, FN의 고정 지지자는 전체 유권자의 3%에 불과하다.(8) 그러므로 FN의 지지표를 유권자들의 포퓰리즘, 독선 또는 외국인 혐오증 탓으로 돌릴 수 없다. 더구나 FN의 신임 여성 당수의 최근 입장 변화 속에서 그녀가 인기를 얻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적어도 이런 인기 상승은 FN이 구상한 가장 우파적인 주제들을 적시에 가로채 그 주제들을 정당화하고, FN의 지지자들을 UMP의 지지자들로 끌어온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인기가 하락하는 정도만큼 연관돼 있을 것이다.

상층 투표율은 여전… 대의제 왜곡

30년 전부터 전국적 차원에서 투표기권율이 상승한 사실은 정치적 쟁점에 어떤 주의도 기울이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선거놀이에서 멀어져가는 사람들의 수가 끊임없이 증가한다는 사실과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기권은 정치적 쟁점을 알고 있지만 선거를 통한 경쟁에 집착하지 않는 방관자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선택이 될 수 있다. 게다가 프랑스 사람들은 점점 더 불규칙하게 투표하며, 앞으로 불규칙한 유권자들이 규칙적인 투표 참여자들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9) 국가의 개입 후퇴 정책은 노동자 그룹을 광범위하게 해체하는 데 기여했고, 결과적으로 노동자 계층 내부의 기권표 상승에 기여했으며, 개입 후퇴 정책이 계속 시행되고 이런 정책에 동반된 패배주의 담론들 때문에 기권주의가 팽창했다.

시장의 요구에 대처하지 못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무능력이 보수주의의 부흥을 용이하게 한다. 지속 가능한 대중 사회운동들이 전개되는 동안 대중의 저항은 거리(2003년과 2010년의 퇴직연금 수호 운동)와 투표소(2005년 유럽헌법 협정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표현되었는데, 이런 대중의 저항이 정치 지도자들의 무능력 탓에 무력화되고 있다. 힘겹게 표결에 부쳐진 두 경우에서 본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민주주의의 신화를 손상시킨다. “사람들은 왜 통치자들이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통치할 합법성을 얻으려는 순긴에만 투표해야 하는가?"

글•블레즈 마냉 Blaise Magnin (파리 낭테르대학 정치과학대학 연구원)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
주요 역서로 <성의 역사> <방법서설> 등이 있다.

<각주>
(1) 장이브 도르마장 · 셀린 브라코니에, <기권의 민주주의>, 파리, 갈리마르, 2007.
(2) 유권자를 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 속에 재정립해보려고 한 선거사회학의 선구자인 폴 라자스펠트(Paul Lazarsfeld)의 저서 <국민의 선택>(1944)에서 사용된 경구.
(3) 모니크 팽송 · 미셸 펭송 샤를, <거부(巨富)들>, 파리, 페이요, 1996.
(4) 프랑수아 클랑셰, ‘2002년 봄의 선거참여율’, <국립통계경제연구소 1판>, 877호, 2003년 1월.
(5) 피에르 부르디외, ‘정치적 표현’, <사회과학 연구활동>, 36~37호, 1981년 2, 3월.
(6) 2011년 4월 20일과 21일에 IFOP에 의해 실시된 여론조사 참조. 이 여론조사는 2012년 노동자 유권자들이 마린 르펜을 찍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7) 자클린 블롱델·베르나르 라크루아, ‘그들은 왜 FN에 투표하는가?’, 노나 메이에, 파스칼 페리노 감수, <숨김 없이 드러난 FN>, FNSP 출판사, 파리, 1989.
(8) 파트리크 르앵그, ‘유권자들에 대한 통계적 객관화: 우리는 FN 지지자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자크 라그루아이에 감수, <정치화>, 파리, 브랭, 2003.
(9) 프랑수아 에랑, ‘투표의 불규칙성’, <국립통계경제연구소 1판>, 546호, 1997년 9월. 프랑수아 클랑셰, ‘2002년 봄의 선거 참여’, <국립통계경제연구소 1판>, 877호, 2003년 1월. 알린 데세스켈, ‘2004년 봄의 선거 참여’, <국립통계경제연구소 1판>, 998호, 2004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