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귀한 시간 지키는 우리의 저렴한 시간

2011-09-07     프랑수아자비에 드베테르 & 프랑수아 오른

한 가정에 고용돼 그 가정만을 위해 일하는 유형의 가사도우미는 걸프만 연안, 아시아 등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 · 스리랑카 · 필리핀 등의 국가는 여성인력 ‘수출’을 주력산업으로 삼고 있다. 유럽의 경우 여러 명의 고용주를 둔 노동자가 가사 관리나 아동 · 노인 돌봄 활동을 담당하는데, 자신들의 권익 보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대인서비스’ 활성화 정책은 편의 제공 서비스와 취약계층을 위한 돌봄 서비스도 구분하지 않는다. 이런 서비스 부문이 남녀 간 불평등뿐만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바탕으로 발달한다는 점도 간과한다.

2011년 프랑스 극장가에서는 필리프 르게 감독의 〈6층 여인들〉과 세드리크 클라피슈 감독의 〈내 케이크 조각〉 등 가사노동자를 다룬 작품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외젠 라비슈, 조르주 페도 등의 작가들로 대표되는 통속 연극의 전성기 이후 ‘가정고용인’이라는 캐릭터는 유행에서 멀어진 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경제부흥기에 접어들면서 과거의 하녀들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고, 영화작품들도 이런 사회 · 통계학적 현실을 반영했다. 4인조 중창단 ‘레 프레르 자크’는 “더 이상 하녀도 부르주아도 없다”고 노래했고, 미국의 경제학자 루이스 알프레드 코저는 가사서비스를 ‘한물간’ 활동으로 보기까지 했다.1

 

그렇지만 ‘하인들’은 오랫동안 중요한 직업군을 형성해왔다. 1920년대 미국이나 1950년대 그리스 등 다양한 나라에서 여성인력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 프랑스에서는 20세기 초 경제활동인구 2천만 명 가운데 약 100만 명이 가정 고용 인력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수적으로 막대했던 이들의 일은 전통적 의미의 직업이라기보다 임시적 상황으로 간주되면서 열외 취급을 받았다. 이들이 시민의 권리를 쟁취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2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사회적 권리에서 배제됐다. 이런 상황은 비단 프랑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 가사노동자의 권리 인정을 두고 여전히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3

열외적 존재였던 100만의 하인들

가정고용인의 지위 개선은 그 수가 줄어들면서 더욱 어렵게 됐다. 적어도 초기에는 수요가 아니라 공급의 감소가 가사노동 부문의 문제였다. 20세기 초만 해도 “하녀들이 갓 구운 빵처럼 팔려나갔다.”4 지원자들이 희소해지면서 ‘가정부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가정고용인 중 여성의 비율이 증가했고, 시골에서 올라온 하녀도 늘어났다. ‘베카신Bécassine’5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여성들이 공장에 취업하면서 최초로 급격한 변화가 발생했다. 1929년 경제위기 무렵 가정고용인 수가 늘어나는 듯하더니 전례 없는 감소에 돌입했다. 이런 추세는 1945년 이후 가속화됐다. 그러면서 스페인, 뒤이어 포르투갈에서 온 여성들이 시골 출신 아가씨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특히 고용주의 가정에 입주한 하녀 유형은 급속도로 사라졌다. 대신 동시에 여러 명에게 고용된 가사도우미가 점차 자리를 잡았다. 마리아 아론도는 이런 환경 변화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 바 있다.6 사용자당 가사노동 이용 시간이 줄어들고 고용관계가 약해져 갈수록 비공식적 계약 형태를 취하게 됐다. 한마디로 고용 건수와 신고 건수가 모두 감소했다. 가사노동 부문은 1980년대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당시 프랑스의 가사노동자 수는 20만 명을 갓 넘은 것으로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는 집계했다. 그러다가 경제위기와 지속적인 대량실업 사태는 가사노동 부문에 ‘새로운 기회’가 돼주었다. 한물갔다고 치부되던 활동이 고용 창출원으로 급부상했고, 이를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싹텄다. 1990년대 초부터는 각종 지원책이 잇달아 등장했다. 가사고용 촉진을 위해 사회분담금과 소득세를 감면해줬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고용수표CES’(이후 ‘보편적 서비스고용수표CESU’로 확대됨.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때 바우처 혹은 은행수표를 사용해 행정 절차 간소화에 기여)를 도입했고, 2005년에는 국립대인서비스청ANSP을 설치했다. 이런 정책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분에 힘입어 쉽게 합의됐다. 정권이 교체되면서도 소득세 감면 한도만 조정됐을 뿐,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이들을 지원해 일자리를 만들거나 투명성을 높이자는 원칙에는 이의가 없었다.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부유층 가정만 혜택을 보는 지원책이라는 점은 문제 삼지 않았다.

경제위기 맞아 새 일자리로 눈길 끌어

유럽집행위원회까지 보편적 서비스고용수표와 같은 제도의 이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벨기에도 서비스고용 바우처를 도입했는데, 이 바우처는 혜택 폭이 훨씬 넓은 대신 서비스 기관을 통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다른 많은 국가들도 지원책을 검토 또는 시범 운영을 넓혀나갔다. 자국의 이주정책을 수정하기도 했는데, 지중해 연안국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처럼 이른바 ‘우선순위 부문’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주를 전개하거나, 그리스처럼 불법노동을 묵인해줬다. 따지고 보면 각기 대응책은 다르지만 핵심이 되는 질문은 모두 같다. 어떻게 하면 싼값에 가사노동을 이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프랑스는 보조금을 지급해 가사서비스 비용을 절반으로 줄였다. 그리스는 알바니아나 우크라이나에서 온 여성들을 활용하고, 이탈리아는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스페인은 남미 출신자들을 이용해 프랑스에 준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과거 미국처럼 유럽에서도 가사서비스 부문의 고용이 다시금 활기를 띠면서 이민이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이민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우크라이나 등 일부 국가는 여성인력 수출을 주력산업으로까지 육성하려는 듯하다.

가사고용의 부활은 두 가지 본질적 문제와 맞물려 있다. 하나는 정부가 지원하는 서비스의 범위이고, 다른 하나는 제공되는 서비스의 조직화 정도다. 첫 번째는 정부의 재정 지원 혜택이 적용되는 서비스를 규정하는 문제인데, 특히 청소와 돌봄 활동의 구분 여부가 중요하다. ‘대인서비스’라는 용어 뒤에는 다양한 활동이 숨어 있는데,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부유층 경제활동가구에서 누리는 편의 제공 서비스(가사관리)와, 아동 · 노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을 위한 도움 제공 서비스(돌봄)가 있다. 실생활에서 두 활동은 비슷해 보인다. 삶의 터전을 관리하고 일상생활을 돕는 데는 분명 겹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두 유형의 서비스 수요를 유발하는 원인은 상반된다. 첫 번째 서비스는 허드렛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용하지만, 두 번째는 자립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필요로 하는 서비스다. 또한 취약계층의 가사서비스 이용은 재정적 수준과 별로 관계가 없는 반면, 편의 제공 서비스 수요는 소득수준이 좌우한다. 부유층 상위 5%에 속하는 경제활동가구 중 약 3분의 1이 유료로 가사도우미를 이용하지만, 중위소득 이하로 버는 가구 중에는 그 비율이 2% 미만이다.7 돌봄 서비스 관계자들(노동자, 협회 등)도 일반 가사서비스와의 차이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국가들이 가사관리와 돌봄을 구분하지 않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지중해 연안국들이 그러한데, 이들은 남반구(개발도상국) 출신의 간병인, 간호사, 산모 · 신생아 도우미를 다수 유입시켜 노인 가정에 입주고용을 시킴으로써 국가 복지의 공백을 메우려 한다.

도우미 고용 땐 감세… 부자에게 특혜

프랑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2006년 사회통합 장관의 이름을 딴 일명 ‘보를로Borloo 계획’이라는 대인서비스 발전 전략이 시행되면서 가정에서 이뤄지는 모든 노동 활동은 사회적 사명 여부와 상관없이 동일한 혜택을 누리게 됐다(이때 세금 감면이 세금 공제로 바뀐 것도 노인층보다 경제활동계층에 유리한 조처다. 세금 감면은 납부할 세액만 줄여주지만, 세금 공제는 경제활동인구라면 납부 금액이 없더라도 공제분을 환급해준다). 개혁의 일환으로 탄생한 대인서비스청은 가정에 제공하는 서비스를 ‘세심한 엄마, 친절한 동료, 성숙한 여성’이 되는 데 필요한 ‘상품’으로 광고하고 있다. 반면 스칸디나비아 등지의 국가들은 두 종류의 서비스를 확실히 구별하려 애쓴다. 이들은 취약계층을 위한 돌봄 서비스에 공적인 노력을 집중해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상당 규모의 부문으로 육성하는 반면, 편의 제공 서비스는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 원리에 맡겨 다른 산업 분야와 동일한 법칙을 따르도록 한다. 그러다 보니 가사도우미 고용은 지나치게 비용이 높은 탓에 발달하지 못하고 웬만한 일은 직접 처리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대인서비스에 관한 공공정책을 관통하는 두 번째 문제는 암암리에 행해지는 비공식 고용, 혹은 노동자와 사용자 간 합의로 체결되는 직접고용이 공공기관 · 협회 · 기업 등의 관리를 받는 용역대행에 견줘 상대적으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서도 남유럽과 북유럽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비공식 부문이 확대되도록 방치한 지중해 연안국에서는 직접고용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각종 관련 기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사용자와 노동자를 쉽게 연결해주는 것이 주된 목적일 뿐, 고용관계 자체에 간섭하려 들지 않는다.

취약계층 돌봄 서비스에 역차별

반대로 북유럽 국가와 프랑스에서는 2005년 이후 가사서비스 용역업체와 협회가 늘어나면서 고용이 좀 더 조직화되고 있다. 이 기관들이 개입한다고 노동자의 고용 · 노동 조건이 꼭 개선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용자와 노동자는 개인 대 개인이 아닌 공식적 관계를 맺게 된다. 간단히 말해 도우미들이 전문 청소인력과 유사한 지위를 갖게 된다. 미국의 경우 대형 홈 클리닝 체인이 확산하면서 업체 고유의 장비를 갖춘 (이를테면 진공청소기를 짊어진) 작업자들이 팀 단위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면적당 비용을 청구하며, 거의 기업화된 분업 체계를 구축했다. 요컨대 지중해 연안국의 전통적 가사고용 모델과 대조를 이루며 영미권에서는 비즈니스형 모델이,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는 사회사업형 모델이 발달했다.

사회사업형 모델은 대인서비스라고 규정된 광범위한 분야 자체를 거부하고 편의 제공 서비스와 돌봄 서비스를 뚜렷이 구분하려는 반면, 나머지 두 모델은 명백히 사회적 불평등 유지에 일조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배제한다면 이 서비스들의 이용 현황은 상당한 소득 격차가 직접 반영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의 경우를 살펴보든 각국의 실태를 비교해보든, 가사도우미를 이용하는 가정의 비율은 소득불평등과 상관관계가 있다.8 고전적 방식의 경제 분석을 통해서도 이런 ‘전문성’ 논리는 쉽게 드러난다. 즉, ‘비전문적 여성들의 시간보다 내 여가가 더 가치 있는데 굳이 그들의 서비스를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하는 사고방식이다. 대인서비스가 발달하려면 사용자 가정과 노동자 가정의 소득이 5대 1 비율에 달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사서비스 용역업체들은 ‘불평등’이라는 필요악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미국의 한 대형 용역 체인은 광고에 ‘당신의 시간은 소중하고 우리의 시간은 저렴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이처럼 불평등은 부정적으로 여겨지기는커녕 고용 창출의 무기로 인식된다. 부유한 일부가 결국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스며들기Percolation’ 원리에 부합하는 것으로, “누군가의 필요가 다른 누군가에게 일자리가 된다”는 대인서비스청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불평등 기반으로 산업만 번창

부유층에게 여력이 없다면 이들을 금전적으로 보조할 수도 있다. 프랑스가 마련한 정책이 바로 그러하다. 1950년대까지 특별과세 대상이던 가정인력 고용은 이제 오히려 지출 촉진 대상이 됐다. 세금 및 사회분담금 감면 형태로 부유층 가정에 지원된 금액만 50억 유로(경제활동가구 23억 유로, 과세 대상 퇴직가구 29억5천만 유로)가 넘는다. 이는 노인들의 수발 · 가사 지원을 위해 지급된 개인자립수당의 총액(33억 유로)을 능가한다.

가사고용이 발달하려면 부유층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일자리를 받아들일 빈곤층도 필요하다. 이 점에서도 2005년 이래 프랑스가 추진해온 정책은 일관성이 있다. 핵심은 빈곤층이 저임금노동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능동적 연대소득’RSA(실업자가 생계유지를 위해 받던 수당보다 낮은 급여의 일자리로 재취업할 때 정부가 차액 보전)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빈곤층이 가사고용 부문에서 경제활동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런 조처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해도 대개 제공되는 일자리가 ‘합리적’일 경우 수락할 수밖에 없다. 도우미 30여 명이 등록된 한 중개업체 대표가 2008년에 들려준 이야기는 일부 사용자의 생각을 대변한다. “젊은 여성들은 우리 집에 와서 오래 일할 생각이 없어요. 거쳐 가는 직업일 뿐이죠. 하지만 40대 여성들은 이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저임금의 도우미 여성에게만 이민 개방

가사서비스 발달은 소득불평등을 기반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그 심화에도 한몫한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지위’에 따른 불평등이 가사서비스 고유의 사회적 관계에서 중심을 차지한다. 이런 관점에서 가사서비스의 가치를 제고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가사 부문의 일자리는 여성, 이민자 등 피지배 사회계층이 주로 차지한다. 이런 노동은 폐기물 및 배설물과의 연관성 때문에 인도에서는 불가촉천민만 종사하는 등 예로부터 ‘비천한’ 직업으로 여겼고, 다른 비전문직들과 구별되는 상징성이 있다. 이 일자리들은 일종의 유형지流刑地를 형성한다.9 즉, 종사자들은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며 이들이 수행하는 일은 제대로 못 했을 때만 티가 난다. 대인서비스청은 마치 귀신이 조종하는 듯 진공청소기와 유리창 세제 스프레이가 저절로 움직이는 모습을 광고캠페인에 담았는데, 이는 가사노동자를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는 현실의 절정을 보여준다. 유지 · 관리와 연관된 일자리(가사도우미 · 청소원 · 돌보미 · 룸메이드 등)는 학력이나 경험, 인맥이 없거나 혹은 단지 프랑스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열악한 처지에 놓인 여성들이 대거 진출하는 분야다.10 이탈리아나 스페인보다 규모는 작지만 프랑스에서도 대인서비스부문의 외국 인력 활용 문제는 공식 보고서에 특별히 언급됐을 정도로 중요하다. “보건 및 인적 · 가사 서비스 직종은 일시적으로라도 더 많은 이민자 인력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단, 신규 입국자들이 제공되는 일자리에 취업할 조건을 실제로 갖추고 있는 경우에 한한다.”11 2008년 6월 이민부와 경제부는 가족 재결합 차원에서 프랑스에 입국한 이민자들이 대인서비스청을 통해 대인서비스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12

가사 평등 대신 사회적 불평등 조장

이런 정책은 비용이 많이 드는 동시에 불평등을 조장한다. 정작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적 향상은 도모하지 않은 채 가사 활동을 상품화 논리에 따라 취급한다. 이런 제도는 조세 혜택을 도입한 초기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미 20여 년 전 앙드레 고르는 가사서비스 부문이 사회서비스를 발전시키기보다 저임금 일자리 창출에 앞장선다며 이를 ‘3차 반反경제 부문’이라 표현하고 그 본질적 불평등성을 지적했다.13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가 가사를 분담함으로써 사회 전반적으로 시간을 덜 잡아먹도록 한다는 취지는 이제 온데간데없다. 대신 이 활동들을 매매서비스 형태로 만들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종사시키고 되도록 많은 시간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 관건이 됐다. 따라서 인적 서비스는 점차 증가하는 사회적 불평등, 즉 일부 계층이 고소득 활동을 독점하면서 나머지 계층을 하인 역할에 묶어두는 상황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14


글·프랑수아자비에 드베테르┃릴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프랑수아 오른┃릴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프랑수아자비에 드테베르는 노동 및 서비스산업에 관심이 많고, 『빗자루에 대해: 가사노동과 가정성의 회복에 관한 시론(Du balai. Essai sur le ménage à domicile et le retour de la domesticité』(2011)을 썼으며, 프랑수아 오른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사회문제를 진단하는 논문을 주로 써왔다.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졸. 역서로 <텔레비전의 종말>(2007) 등이 있다.


1 Lewis Alfred Coser, ‘Servants: The obsolescence of an occupa
tional role’, 〈Social Forces〉, vol.52, n°1, University of North Caroli
na Press, 1973년 9월.
2 프랑스는 1848년 보통선거에 관한 법을 채택(1793년에는 부결)해 하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으나, 피선거권과 배심원 자격은 인정하지 않았다. Jacqueline Martin‒Huan, La Longue Marche des domestiques(가정부들의 대장정), Opera éditions, Nantes, 1997 참조.
3 독일과 지중해 연안국들이 대표적이다. Helma Lutz, Migration and Domestic Work, Ashgate, Farnham(Royaume‒Uni), 2008 참조.
4 ‘가정고용인 일지’, Journal des gens de maison(가정고용인 노조 소식지), 파리, 1908년 9월 8일자.
5 만화가 조제프 팽숑과 소녀잡지 〈La Semaine de Suzette 라 스멘 드 쉬제트〉의 책임편집자인 자클린 리비에르가 1905년 탄생시킨 만화의 여주인공으로, 리비에르가 고용한 브르타뉴 지방 출신 하녀를 모델로 삼았다.
6 Maria Arondo, Moi, la bonne(나는 하녀), Stock, Paris, 1975.
7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의 2005년 가계예산 실태 조사.
8 미국 대도시들의 사례 비교. Ruth Milkman, Ellen Reese et Benita Roth, ‘The Macrosociology of Paid Domestic Labor’, Work and Occupations, vol.25, n°4, Thousand Oaks(California), 1998년 11월 참조.
9 Bridget Anderson, Doing the Dirty Work? The Global Politics of Domestic Labour, ZED Books, London, 2000 참조.
10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의 고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모로코 · 알제리 · 튀니지 여성의 40%와 아프리카 여성의 50%가 이 부문에 종사하고 있다.
11 전략분석센터 보고서 ‘Besoins de main‒d’œuvre et politique migra
toire(인력 수요와 이주 정책)’, Paris, 2006년 5월.
12 François‒Xavier Devetter · Florence Jany‒Catrice · Thierry Ribault, Les Services à la personne(대인서비스), Repères, La Découverte, Paris, 2009.
13 André Gorz, ‘Pourquoi la société salariale a besoin de nouveaux valets(노동사회에 신종 하인들이 필요한 이유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0년 6월호.
14 André Gorz, Métamorphoses du travail. Quête du sens(노동의 변모: 의미의 추구), Galilée, Paris, 1988.

 


페미니즘이 본 가사서비스

 

가사도우미나 돌보미의 고용을 논할 때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통계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9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 가사노동 시간이 남성보다 2시간 30분가량 많다고 한다.1 이런 격차는 나라별로 편차가 심한데,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높을수록 줄어든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남성의 무상 노동시간이 가장 높게 나타난 덴마크 남성들조차 여성의 무상 노동시간이 가장 낮은 노르웨이 여성들보다 적은 시간을 무보수 노동에 할애한다”고 밝히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여성들이 반일제 일자리에 종사(2010년 유럽연합 통계를 보면, 회원국 경제활동 여성 중 32%)하고 장기 육아휴직을 대거 이용한다는 점은, 여성이 가사와 육아에 매여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남녀 간 불평등은 집요하게 지속돼왔다.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의 ‘생활시간 사용 조사’를 보면, 1984~99년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불과 8분 증가했다.

 

전일제 근무가 정착하면서 고소득 가정들에선 가사 대행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프랑스에서 이런 사회모델은 ‘더 많이 벌기 위해 더 많이 일하라’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구호에 힘입어 불평등의 골을 심화하고 있다. 덕분에 일부 계층은 자신의 전문성을 이용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반면, 나머지 계층은 낮은 임금의 허드렛일을 받아들여야 한다. 여성의 ‘이중 노동’이 가사 대행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1970년대 페미니스트들은 이 문제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여성혐오주의자들은 이를 악용하기도 했다. 1908년 좌파 주간지인 〈라시에트 오뵈르〉는 ‘여성이 투표하게 되면’이라는 제목의 풍자 삽화에서 한 부르주아 여성이 남편에게 “여보, 하녀를 내쫓았어요. 나를 대적하고 사회주의를 지지한대잖아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그린 바 있다.2 이런 사고방식은 남편도 아내와 마찬가지로 가사노동자 고용의 책임자이자 수혜자라는 사실을 은근슬쩍 감춘다.

드베테르와 루소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지적한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한 프랑스 부부는 그렇지 않은 부부보다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가사를 훨씬 더 불평등하게 분담하고 있었다. 후자의 경우 여성과 똑같이 진공청소기로 집안을 청소하는 남성의 비율이 40%인 반면, 전자는 그 비율이 18%에 불과하다. 드베테르와 루소는 “가정의 평화와 평등한 평화는 별개의 문제”라는 의미심장한 주장을 던졌다.3

 

 

글·모나 숄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전문기자로, 여성들이 곤경에 처한 사회 환경에 관심이 많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만평 전문지 〈샤를리 에브도〉의 계약직 기자였으나, 2000년 편집 책임자가 팔레스타인인들을 야만적인 사람들로 규정지은 편집방향에 항의해 사표를 냈다. 주요 저서로 『리얼리티의 폭군(La Tyrannie de la réalité)』(2006) 등이 있다.

 

1 ‘Panorama de la société 2011(2011년 사회 파노라마)’, www.oecd.org, 2011년 7월 26일.
2 Geneviève Fraisse, Service ou servitude. Essai sur les femmes toutes mains(서비스인가, 예속인가: 여성 잡역부들에 관한 시론), Le Bord de l’eau, Lormont, 2009에서 재인용.
3 François‒Xavier Devetter · Sandrine Rousseau, Du balai. Essai sur le ménage à domicile et le retour de la domesticité(빗자루에 대해: 가사노동과 가정성의 회복에 관한 시론), Raison d’Agir, Ivry‒sur‒Seine,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