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깨고 참회하는 군인들

2011-09-07     메론 라포포르트

“끔찍했던 순간을 말씀드릴까요? 당시 우리는 가자에서 작전을 개시하던 중이었죠. 참호에 있었는데, 아이들이 다가와 우리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내부의 지령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사람 하나가 우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건 수류탄을 들고 우리에게 달려들 수도 있다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위에다 대고 총을 쐈어요. 아이는 아마 12∼15살쯤 됐을 거예요. 나는 아이를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믿으려 애써 노력하죠. 그래야 마음의 진정을 찾고 밤에 좀더 편히 잠잘 수 있으니까요. 정말로 끔찍했던 건 패닉 상태에 빠진 제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가서 내가 (총으로) 누군가를 겨눠 뒤에서 다리를 쏘았다고 말한 순간이었어요. 사람들은 모두 흡족해하더군요. 나는 영웅이 됐고, 다들 교회에 가서 내 이야기를 전하더군요. 그걸 보면서 큰 충격에 휩싸였죠.”(1)

군인들의 증언을 수집한 전직 군인 아비하이 스톨러는 “이 병사의 부모가 그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아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걱정하지 마라, 얘야. 어린애 하나 죽인 것뿐이잖니”라고 말한 그 부모는 차라리 아들의 고민에 관심을 끊는 편이 나았다.

“돌 던지는 아이 쏴 죽이자 영웅 대접”

<영토 점령>은 2000년 제2차 인티파다가 시작된 이후 요르단 서안과 가자지구에 주둔한 이스라엘의 여러 부대에서 군복무를 했던, 혹은 현재 군복무 중인 군인들의 증언집이다. 넓게 보면, 점령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모두스 오페란디’, 즉 이들이 그곳에서 어떤 식으로 행동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일 수 있다. 이 책에는 저 위의 높으신 분들이 무대 뒤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 그보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활 터전, 거리와 도로, 살림과 일과, 요르단 서안과 가자지구의 각 거주민의 삶과 죽음 등 일상의 생생한 현실에 더 주목한다.

믿을 만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4만∼6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투부대에 참여했다. 이 책에는 그 가운데 750명의 인터뷰만 담겨 있다. (공군과 해군을 제외한 지상 병력의) 이 모든 전투부대원들이 한때 점령지에서 지낸 적이 있다고 전제하면, 전체 육군 가운데 1~2%가 극명한 증언을 제공한 셈이다. 설문조사나 학계의 연구를 훨씬 웃도는 상당한 표본 크기다. 증언한 사람들의 결론에는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든 생활 양상을 긴밀히 통제하는 일이 이스라엘의 안보에서 필수적이란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상황이 이러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다.

이스라엘 비정부기구 ‘쇼브림 슈티카’(Shovrim Shtika·침묵을 깨라)는 헤브론에서 군복무를 했던 군인 몇몇이 2004년에 창설한 조직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점령 사태를 자신들의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증언에는 학대나 이유 없는 폭력, 임의적 살상 행위 등에 관한 얘기도 나오고,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것도 있다. 구타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정신지체자도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회교사원 꼭대기에 올려보내 수상한 물건을 폭파시키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곳까지 로봇이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증언집에는 무장한 것도 아닌데 지붕에 올라갔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남자의 이야기도 있다. (한 병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총을 쏘았는지 이유가 궁금한가? 단지 압박 때문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압력에 밀린 것이다.”) 무장해제한 팔레스타인 경찰을 계획적으로 살인하거나 처형한 경우도 있었다. 옆 초소를 공격한 것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테러리스트로 추정되는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 있거나 부상당했거나 죽었을 때, 이에 대해 상부에서 내려온 행동지침은 ‘곁으로 다가가 이 사이로 총을 겨누고 발사하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절도, 약탈, 기물 파손, 차량 파괴 등 수많은 증언이 실려 있다.

가자지구 등 주둔 750명 증언집 발간

아비하이 스톨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은 ‘차할(이스라엘 방위군)의 호러쇼’가 아니다. 한 세대의 이야기, 바로 우리 세대의 이야기다. 1967년 전쟁 이후 30년간, 이스라엘에서 이뤄진 논란의 대부분은 점령의 필요성 혹은 잔혹함에 관한 것이었다. 이후 대중 연설에서는 ‘점령’이라는 단어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영토를 가리키는 말은 ‘유대아’, ‘사마리아’, ‘웨스트 뱅크’(요르단 서안지구), 혹은 ‘영토’ 정도이지, ‘점령지’라는 용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점령’이라는 단어는 거의 금기시됐고, 불길한 조짐을 가리키는 말로서 절대 공개적으로 발설해서는 안 되었다. 기자 또한 일하는 도중 방송에서 한 게스트가 “점령 때문에 이스라엘 사회에 폭력이 증대되고 있다”고 주장한 대목을 편집해야 했다. 편집국의 동료 기자들은 모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들은 “진행자에게 이 게스트가 방금 한 말을 취소하도록 부탁하라”고 간청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2차 인티파다의 자살테러는 군대에 테러 근절을 위한 전권을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이렇다 할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끝없이 이어지는 ‘평화 구축 절차’는 대중에게 그저 하나의 배경음악처럼 들리게 되었고, 이에 따라 두 개의 상반된 결과가 나타난다. 하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 이상 시급히 분쟁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됐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영토 양보에 합의했으니 분쟁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다. 두 나라를 위한 하나의 해법을 선택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도 자결권을 부여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논설기자 나훔 바네아는 최근 ‘영토의 역사가 끝나다’라는 글을 썼다. 반면 2010년 9월, 미국의 <타임>에는 ‘이스라엘은 왜 평화를 우습게 보는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2)

”우리 임무는 시민 괴롭히는 것”

다른 하나는 군사적 요인이다. 제2차 인티파다가 시작된 이후, 하물며 분리장벽이 세워진 이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군의 통제는 더욱 체계적·조직적이며 과학적인 양상을 띠었다. <영토 점령>은 이런 방식들을 분석하고, 군대에서 사용되는 은어들을 적나라하게 밝히려고 한다. 쇼브림 슈티카는 수집한 증언들을 토대로 현실에 더 적합한 새로운 용어를 찾으려고 한다. 가자 및 요르단 서안에서의 ‘테러 예방 조치’는 ‘민간인 사이에 두려움 전파’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야 하고, ‘분리’라는 말보다는 ‘착복, 병합’이란 말이 더 적절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도로 보급망을 가리키는 군사적 표현인 ‘Life Fabric’(생활 조직)보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든 생활 양상 통제’라는 표현을, ‘통제’보다는 ‘점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게 더 낫다.

증언을 한 어느 군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임무는 시민들의 생활을 ‘방해’하고 이들을 괴롭히는 일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이 곧 시민이고, 우리는 저들의 활동을 방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령이 바뀌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런 일을 자행하고 있을 거다.” 이 증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지역 주민의 생활이 안정되지 못하도록 괴롭히는 일이 단순한 학대나 부주의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일반 시민들의 삶을 방해하고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요르단 서안과 가자지구 같은 점령지의 핵심적인 운영 방식이다. “마을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다니면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아비하이 스톨러는 헤브론 지역에서 3년 가까이 머물렀다. 그는 그곳에서 마을 한복판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폭탄을 던진 병사들을 만났다. ‘소란스러운 정찰’, ‘과격한 정찰’, ‘존재감 표현’, ‘눈에 띄지 않게 활동’, ‘즐겁게 부림절 축제 즐기기’ 등은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독특한 행동 방식을 가리키는 말들이다. 크고 작은 마을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고 수류탄을 던지며 즉흥적으로 초소를 세우고, 아무 집이나 무작정 수색해 그곳에서 몇 시간 혹은 며칠씩 진을 치고 눌러앉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 박해의 느낌을 만들어내 저들이 결코 평온을 느끼지 못하도록 한다.” 스톨러는 이런 명령들에 복종해야 했다.

부대는 주검 수 따라 성과 평가

스톨러와 아브너 그바랴후는 정예부대에서 근무했는데, 한 고위급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들의 부대 활동은 누적된 테러리스트 주검 수에 따라 성과가 평가된다고 한다.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사회가 들어주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에 한탄했다. 이스라엘의 그 어떤 텔레비전 방송사도 그들의 책 출시 소식을 전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병사들의 고충에 관심 갖는 게 일본인과 오스트레일리아인뿐인 것 같다. 그바랴후는 이렇게 털어놓는다. “아버지는 홀로코스트 2세대다. 아버지가 보셨을 때 역사의 비운아로 박해받는 건 바로 우리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신기할 정도로 낙관적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회가 결국 알아주고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바뀌어야 하는 건 군대가 아니라 사회이기 때문이다. 스톨러는 이렇게 회고한다. “언젠가 콜롬비아 여기자가 나를 인터뷰했다. 그가 내게 묻기를, 이 모든 게 우리에게 왜 문제가 되느냐는 것이다. 콜롬비아에서는 군인들이 매일같이 반발 세력을 참수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더라. 하지만 나는 이스라엘 사회가 어느 정도는 도덕이란 걸 간직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공동의 의지가 없다면 우리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바랴후도 단언한다. “이스라엘 사회는 볼모로 잡혀 있었다. 인질범들의 이익은 우리의 이익과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저들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 마치 스톡홀름 신드롬에 걸리기라도 한 것 같다. 이런 행패에 대해 윗사람들의 얼굴을 갈기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질범의 진짜 얼굴은 바로 우리 얼굴이다."

글•메론 라포포르트 Meron Rapoport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 기자)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주요 역서로 <성의 역사> <방법서설> 등이 있다.

<각주>
(1) <Occupation of the Terrioiries>, 제1장, 45개의 증언, 쇼브림 슈티카(침묵을 깨라), 이스라엘, 2010.
(2) ‘Why Israel dosen’t care about peace’, <Time>, New York, 2010년 9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