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민 보수주의의 실종

2021-04-30     대니얼 루반 | 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 연구원

조 바이든은 경제위기가 한창인 와중에 백악관에 입성했다. 12년 전 그가 버락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이 됐을 때와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가 맞서야 할 야당은 변했다. 전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이 오랫동안 고수한 지침을 박살내버렸다. 공화당은 언제나 작은 정부를 권장하고 기업과 고액 자산가들을 우선시했다. 트럼프가 이 지침을 약자를 보호하고, 공익을 섬기는 정부를 지향하는 새로운 형태의 서민 보수주의로 대체했을까? 

아니다. 사실 상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물론 자유무역을 논하는 어조가 변했고, 세계화는 더 이상 찬양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 주제를 제외하면 공화당은 바이든 임기 4년 내내 변함없이 국가 부채와 재정 적자를 걱정하고 긴축정책을 주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동시에 바이든을 긴 불황의 늪에 밀어 넣고자 의회에서 소모전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임기 동안 이 모든 주제에 대한 우파 야당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당연히 트럼프 지지자들의 히트곡들도 계속 울려 퍼질 것이다. 이민자들의 침략, 해변가 저택에 사는 엘리트들의 교만함, 중국을 겨냥한 ‘황화론(yellow peril)’, 지식인 계급의 배신, 심지어는 소아성애 비밀 결사까지 말이다. 이와 같은 주제들을 ‘포퓰리즘적이다’라고 규정짓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주로 서민층만 공략하는 주제들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을 이런 종류의 반동적인 정신착란으로 요약해버리면 ‘우파 포퓰리즘’이라는 표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우파 포퓰리즘의 의미는 더 구체적으로 변해 신자유주의에 적대적인, ‘서민 보수주의’를 지칭해왔다. 경제적 개입주의와 사회적 보수주의를 결합해 저소득층 유권자를 공략하는 이 사조는 오랫동안 공화당 내부에서 소수에 불과했다. 2016년 이전까지 이 노선의 주요 추종자들은 ‘리포미콘(Reformicon)’으로 불리는 개혁적 보수세력이다. <뉴욕타임스>의 논설위원 로스 도댓과 <내셔널리뷰>의 평론가 라메시 포누루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GOP(Grand Old Party, 공화당의 별칭)’가 레이건주의의 정통성에서 탈피해 한층 서민친화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독려했다. 하지만 이 노력은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들은 이미 티파티(Tea Party) 운동이 벌어지는 동안 ‘이슬람-마르크스주의자’ 버락 오바마의 위협을 외면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게다가 트럼프의 후보시절부터 대통령 당선 후에도 그에게 맞서왔다. 이들의 운명은 결정됐다. 이 개혁적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정치 강령에 진심으로 애착을 보이며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의 슬로건)’ 포퓰리즘의 주변부에 머물렀다. 

 

“우파가 좌파 경제정책을 펼치는 것은 쉽다” 

사실 뉴욕의 억만장자 출신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은 허풍쟁이들이었다. 2016년 트럼프 당선 직후, 당시 트럼프의 고문이었던 스티브 배넌은 인프라 분야 1조 달러 투자안과 최상위 소득층의 세금 인상을 제안했다. 그는 “우리가 약속을 지키면 백인의 60%와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40%의 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50년 동안 집권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우쭐거렸다.(1) 배넌은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이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트럼프의 멕시코 국경 장벽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돈을 낸 기부자들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배넌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그는 현재 재판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진심으로 우파 포퓰리즘의 승리가 멀지 않았다고 믿었다. 

“우파가 좌파 성향의 경제정책을 펼치는 것은 좌파가 우파 성향의 문화 정책을 펼치는 것보다 훨씬 쉽다.”

2019년 12월,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이 승리한 후 영국의 정치학자 매튜 굿윈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굿윈의 글이 미국에도 적용된다고 믿는다면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오래전부터 미국의 많은 유권자들이 문화적 보수주의자인 동시에 경제적 진보주의자인 것은 사실이다. 공화당이 금권주의와 조금만 거리를 두면 유권자 과반수의 표를 얻기 훨씬 쉽다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보수주의는 최근 일련의 가짜 포퓰리즘 운동(깅리치 혁명(2), 티파티 운동, MAGA)을 경험했다. 하지만 약속한 경제적 전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화당은 언제나 세금을 인하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으로 복귀해 기부자들을 만족시켰다.

예상했듯 트럼프는 좌파로 선회하지 않았다. 임기 초기 3년간 노동자들이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기는 했다. 트럼프 주위에서는 그의 탁월한 사업 감각에 공을 돌렸다. 빌 클린턴 지지자들이 1990년대의 급격한 경제성장이 클린턴의 천재성 덕분이라고 믿은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일시적인 경제호전을 기회 삼아 인프라에 투자하는 대신 기업의 세금을 대폭 인하했다. 그리고 육아휴직 보장법 제정 대신 수천만 명의 의료보험 박탈을 시도하다 실패했다. 연방정부 관료체계에서는 민간분야 출신들의 노동권과 환경보호의 와해를 주도했다. 트럼프는 또한 ‘법과 공공정책 연구를 위한 연방주의자 협회(Federalist Society for Law and Public Policy Studies)’(3) 소속 법관 수십 명을 판사로 (종신) 임명했다. 이들은 모두 자본의 대의에 충성하는 법조인들이다. 

 

방역 실패, 공약 실종… 그럼에도 트럼프!

만일 버니 샌더스가 대선에서 승리한 후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고 산업 규제를 완화했다면? 당연히, 그의 지지자들이 분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칭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그들이 원하는 계획의 상당 부분을 트럼프가 포기해도 전혀 분노하지 않았다.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터커 칼슨은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았다. 가장 열성적인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의 미실천 공약에 대한 비난들에 분노로 대응하며 4년을 보냈다. 이 같은 행태는 트럼프가 친경영자 성향의 두 로비스트 래리 커들로와 스티븐 무어의 조언으로, 코로나19 대응 2차 부양책 발표를 망설인 지난 몇 개월 동안 정점에 달했다. 

트럼프는 지지기반의 강한 압력 때문에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이 법안을 채택하지 못하게 막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압력도 받지 않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과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분노를 쏟아내기 바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구제안을 사수하지 못한 트럼프의 무능함은 그가 임기 동안 저지른 가장 궁극적이고 치명적인 실수로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뉴욕포스트>의 선동적인 칼럼니스트 소랍 아마리는 “미국의 지도자는 서민의 어려움을 국가의 위대함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다”라며, 끝까지 트럼프에게 찬사를 보냈다.(4)

트럼프 임기를 결산하며, 가장 놀라운 점은 그의 지지자들 중 이탈자가 드물다는 것이 아니다(물론 이 진영에서 가장 이단적인 목소리를 낸 매거진 <아메리칸 어페어스(American Affairs)>의 창간인 줄리어스 크레인 등 몇몇 예외는 있다). 주목할 사항은 트럼프가 경제공약을 지킬 의도가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음에도, 그에 대한 어떤 비판도 제기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수동성은 이념 전쟁에 몰두한 투사의 태도가 아니다. 이 소극적인 태도는 트럼프 지지운동의 성격 자체가 테두리가 명확한 이념 운동이라기보다 적과 아군의 경계가 분명한 개인숭배에 가깝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다. 자칭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공화당의 ‘기부 계층’을 조롱하기 좋아한다. 이는 공화당에 막대한 기부금을 내는 재계의 거물들을 말한다. 하지만 명실상부한 금권정치가들이 선거운동과 임기 내내 트럼프와 함께했다. 

그 대가로 트럼프는 이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며 ‘공급의 경제’에 복종했다. 의회에서 트럼프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던 티파티 운동 참여 의원들은(아울러 그의 두 전직 비서실장은) 공화당 내 초강경파 의원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Freedom Caucus)의 가장 열성적인 회원이다. 이들은 경제철학이 아니라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척도로 적을 정의했다. 일부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트럼프가 조쉬 하울리나 마코 루비오처럼 한층 신뢰할 만한 기수에게 자리를 물려주면, 좌파 성향의 경제정책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트럼프 일가가 무대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상황을 배제하더라도, 이런 기대가 실현되기는 어려워보인다. 

 

루비오, ‘공익을 위한 자본주의’ 전파

조쉬 하울리는 (세금 인하 주장, 오바마 케어 비난,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처럼) 철저하게 전통적인 공약으로 2018년 미주리 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그는 중국, 실리콘밸리, 세계무역기구(WTO)처럼 멀리 있는 적들을 공격하는 편리한 방법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재능을 발휘했다. 반면, 민생 개선에는 열정적이지 않았다. 2020년 8월, 미주리 주는 메디케이드(Medicaid,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장 제도-역주) 수혜 대상을 확대하고자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당시 동료 공화당 의원들은 이 조치를 무산시키려 했으나, 하울리 의원은 침묵을 지켰다. 

2010년 티파티 운동에 힘입어 상원에 입성한 마르코 루비오 의원은 최근 “공익을 위한 자본주의”라는 운동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임기 동안 긴축정책의 열렬한 옹호자로 이름을 떨친 그의 고문 마이클 니덤과 함께 세운 개념이다. 자칭 가톨릭 사회교리에 뿌리를 둔 모호한 개념의 이 운동은 특히 중국과의 대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루비오 의원은 <뉴요커>와의 인터뷰(2018년 6월 4일)에서 2016년 대통령 선거운동 중 탈산업화의 타격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공동체들을 목격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털어놨다. 루비오 의원이 경제 대침체 기간 내내 (그의 정치적 앞날에 너무나 편리하게도) 미국 서민의 고통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바이든 임기 동안에도 충분히 이들의 고통에 눈감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팽팽하게 양분된 현 상원에서 대규모 경제회복 계획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있다면, 소수라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같은 시나리오를 기대할 근거가 없다. 하울리 의원과 루비오 의원은 2024년 선거에만 정신이 팔려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적과의 동침’이 공화당 내부경선에서의 승리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상원의원에 재당선될 확률이 향후 4년 동안 미국 국민이 감내해야 할 경제적 고통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들은 바이든을 무력화하기 위해 다른 강경파 의원들과 연합해 긴축정책을 주장할 것이다.

서민 보수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공화당 내부의 소수 의원들은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 의원들은 침묵을 지키거나, 일시적으로 타협했을 뿐 머지않아 방향전환이 있을 것이라고 설득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우파가 좌파에 가까운 경제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트럼프 임기 동안 ‘우파 포퓰리즘’이 정치적 담화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지만 현실이 주는 교훈은 이 노선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트럼프는 우파 포퓰리스트들에게 약속한 공약을 저버렸지만 결국 2020년 대선에서 4년 전보다 더 많은 표를 획득했다.

우파 포퓰리즘의 가장 큰 장애물은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우파의 핵심인물들은 55%의 지지를 얻으면서 부를 조금 잃는 것보다, 45%의 지지만 얻더라도 부를 유지하고자 한다. 오늘날 미국 정치 체제의 구도나 선거제도를 고려하면 철저하게 합리적인 전략이다. 이 계산법을 바꾸려면,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실수를 인정하게 하는 것보다 이 전략을 유지할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미국 정계를 민주화시켜 과반수의 지지가 통치를 위한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 되도록 해야 한다. 

 

 

글·대니얼 루반 Daniel Luban
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 연구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Louis Nelson이 기사에서 인용, ‘Steve Bannon hail’s Trump’s “economic nationalist” agenda’, <Politico>, 2016년 11월 18일, www.politico.com
(2) 강경보수파 공화당 의원 뉴튼 깅리치가 시작한 이 운동으로 1994년 공화당은 40년 만에 민주당을 누르고 하원 다수당의 입지를 되찾았다. 공화당은 이때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이라는 강령을 발표해 연방정부의 역할을 제한하고, 세금을 낮춰 기업가를 장려했다.
(3) 연방주의자협회(Federalist Society)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단체는, 헌법의 자구적 해석을 주장하는 강경보수파와 자유지상주의 법조인의 모임이다. 
(4) Sohrab Ahmari, ‘The right after Trump’, <The Spectator>, 2020년 8월 24일, www.spectato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