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유닛’과 회복력

어디에나 존재하는 편리한 개념

2021-04-30     에블린 피에예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새로운 제약을 어디까지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사회가 수용하게 만들기 위해 이 제약을 어떻게 정당화하고 더 나아가 이로운 것처럼 보이게 만들 것인가? 인지과학을 활용하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을 공공정책에 부여하고 우리의 행동을 조형할 수 있다. ‘회복력’을 강조하는 이유다.

 

“이곳에서 회복력(Résilience)은, 크레피네트(Crépinette, 돼지, 양, 송아지고기 다짐육 등을 대망(大網)으로 감싸 납작한 소시지처럼 만드는 요리-역주)의 풍미와 함께 다가온다.” 

2015년 11월 13일 파리 연쇄 테러가 발생한 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르몽드>가 한 식당을 찬양하는 기사에 쓴 표현이다. 총격이 벌어졌던 구(區)들 중 한 곳에 위치한 식당이었기에, 크레피네트로 회복력을 연상시킨 듯하다. 독창적이면서 선견지명이 담긴 말이다. 이로부터 5년 후, 회복력이라는 단어는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즉 양념이 됐다. 

 

정치인들이 사랑하는 단어, ‘회복력’

국제기관에서부터 금융계, 경영과 공공 보건 분야, 경제학자, 도시 계획 설계자, 기후학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단어다. 조 바이든은 1월 20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미국 헌법의 ‘회복력’을 거론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곳저곳에 이 단어를 가져다 붙였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회복력 시나리오’를 언급하고, 다른 맥락에서도 이 단어를 창의적으로 활용했다. 2020년 11월 9일 열린 드골 장군 타계 50주년 기념식에서 마크롱은 드골의 “회복력 정신”에 경의를 표했다. 2020년 3월에는 군대 동원령에 ‘회복력 작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올해 1월 26일에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회복력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최근에는 한 법안에 ‘기후와 회복력’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장관들도 대통령의 어휘를 공유하고 있다. 로즐린 바슐로 문화부 장관은 장기간 폐쇄 상태인 “문화 시설의 회복력 있는 운영 모델”(2020년 12월 23일 트위터 게시글)을 열렬히 거론하고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회복력이 없는 상태로 지낸 것은 사실이다. 드골 장군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의 기억이 맞다면, 그는 회복력보다 저항력을 더 중시했다. 회복력은 모호하지만 독특한 ‘긍정성’을 발산하는 개념인 것은 분명하다. 프랑스에서 회복력이 대중화된 것은 신경정신의학자 보리스 시륄니크가 이 단어를 저서에서 사용한 이후다.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수립한 아탈리 위원회(Commission Attali)의 일원이었던 시륄니크는 ‘프랑스의 국민 정신의학자’로 불린다. 2000년대 초부터 그의 저서들은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로 꼽히고 있다.(1) 

시륄니크는 회복력을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하는 고위험성 스트레스나 시련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이고 사회적으로 용납 가능한 방식으로 좋은 결과를 도출하며, 삶을 영위하고 발전을 이루는 능력”(2)으로 정의한다. 긍정적 태도! 이 멋진 능력과 관련된 많은 어휘가 성행했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면 ‘인생의 사고’가 닥쳐도 ‘재건’하고, ‘재도약’하고, 나아가 ‘재창조’ 할 수 있다. 창조적 파괴의 심리학 관점에서는 고통은 이로운 것일 수 있다….

이 감동적인 개념을 부각했을 때의 이점은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회복력은 모호한 방식으로 개인과 집단에 적용되는 매력이 있다. 마치 개인의 위기와 사회의 위기가 중첩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또한 회복력은 용기, 행운, 상부상조, 투쟁과는 다르다. 이 덕목들은 실제로 ‘난관을 극복하게’ 돕지만 회복력보다 ‘정신의학적’ 측면이 훨씬 부족하므로 우리를 구원하고 재창조하는 정신적 과정이 지닌, ‘멋’과 ‘신비로움’이 없다. 따라서 회복력을 강조하는 것은 티에리 리보의 명확하고 신랄한 표현처럼, “고통을 유발하는 조건에 문제를 제기하는 대신 고통에 끊임없이 적응”(3)하며 상황을 호도하는 우리의 경이로운 능력을 찬양하는 매우 성공적인 전략이다. 

 

회복력에 대한 숭배, 그리고 허점

회복력을 극도로 신뢰하는 경향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이익 창출을 위한 ‘자산’으로 여기게 만드는 시류에 일치한다. 더 넓게 보면, 시련을 이로운 방식으로 극복하는 막연한 모델로 회복력을 장려하는 것, 그리고 회복력을 갖춘 사람을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개선한 ‘겸허한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것은 이념적·정치적 무기다. 실제로 오늘날 회복력은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한 ‘바로 그’ 해결책으로서 찬양받고 있다. 국립 고등보안사법연구소(INHESJ)도 회복력을 강조했다. 현재 내무부에 통합된 이 연구소는 2020년 3월 “회복력을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축”으로 제안했다. 

프랑스 정부의 팬데믹 관리를 컨설팅하는 BVA 그룹 행동통찰팀인 BVA 넛지 유닛(Nudge Unit)이 2020년 3월 17일 프랑스 정부와 체결한 계약을 보면, 새로운 ‘동의 만들어내기(Manufacturing consent)’의 역할과 활동범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넛지’는 비강압적 방식으로 동기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유연한 개입으로 ‘올바른 관행’ 채택을 방해하는 충동성과 비합리성을 떨쳐낼 간접적 암시기술을 일컫는 무해한 용어다. 현 팬데믹 상황에서 ‘올바른 관행’이란 다름 아닌 회복력을 가리킨다.(4)

BVA 그룹 홈페이지에 의하면 이 연구·컨설팅 기업은 프랑스에서 “주요 동태를 예측할 수 있도록 개인을 이해하기 위한 전문지식과 이 지식의 새로운 활용법”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사고, 상상력, 창의력의 놀라운 힘을 통해 창조, 감동, 전환을 이끌어내는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한다. 그룹 계열사인 BVA 넛지 유닛의 목표는 더 직접적인 표현으로 명확하게 설명돼 있다. “우리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변화의 요인’을 활성화시킨다.” 세상에 대한 인식과 해석은 신경과 신경세포(뉴런)망을 따라 전기화학적 정보로 전환된 신호로 전달된다. 즉, 뉴런은 정보를 ‘암호화’한다. 신경과학은 이 전달을 묘사·검토하기 때문에 행동·의사 능력과 연관된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의 기능은 무엇인가? 도파민은 중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뇌의 어느 부분이 사고력을 담당하는가? 이 부분이 활성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인지신경과학은 이처럼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유발하는 요인을 찾아내고, 인식과 무의식의 연결을 파악하고, 인지기능장애검사로 병리학적 상태와 정상을 구분 짓는 생리학적 과정을 규명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인지신경과학은 매우 중요한 주제를 다룬다. 건강한 정신 또는 행동의 표준을 ‘과학적으로’ 수립하는 데 기여하고 결함 있는 ‘기제’의 교정, 개선 또는 변화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5) 

우리는 어떤 화학적 메신저가 감정에 개입하는지, 뇌의 어느 부분이 주의력을 담당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놀라운 과학적 발전을 위기극복, 잠재력의 효과적 발휘에 활용하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신경과학을 통해 정신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려면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신경회로망의 상세한 지도를 만들며, 기제를 재설계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이 인지 편향(Cognitive bias)에 대한 조사가 기여하는 지점이다.

1970년대, 두 명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노벨 경제학상’으로 불리는 스웨덴 국립은행 경제학상 2002년 수상자)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일부 경제적 선택에서 비합리성을 밝혀냈다.(6) 사람들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대부분의 이유는 무의식적 지름길을 통해 정보를 처리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왜곡이 발생한다. 이런 경향성을 지칭하는 ‘인지 편향’은 (뇌를 많이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정보처리 속도가 빠르고 (확실성이 넘치기 때문에) 자명한 이치처럼 보이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는 약 200종류의 인지 편향을 파악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를 선호하는 경향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질문을 제시하는 방식이 유도하는 답을 선택하는 경향은 ‘틀짓기 편향(Framing bias)’이다. 단기적인 측면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편향도 있다. 이 다양한 인지 편향들은 편견, 수사법, 기질의 영향력과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따라서 굳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조사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신경과학이 인지 편향을 연구하는 것은 이 왜곡 현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다. 

 

비합리적 개인에게, 합리적 정보가 도움이 될까?

신경과학에 의하면, 기억작용부터 사회관계까지 모든 분야에 존재하는 ‘인지 편향’은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예측 불가능한 ‘실수’와는 달리, 체계적이며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인지 편향’은 태곳적부터 존재했으며 선사시대에는 “뇌 활동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기능을 했다.(7) 그러나 과거 이처럼 유용했던 인지 편향은 오늘날 “우리의 일상적 결정”(8)을 왜곡하고 있다. 이 보편적 약점은 정서 상태를 유발하고 우리 생각의 방향을 결정한다. 하지만 다른 메시지를 주입하면 그 작용을 조정할 수 있다. 즉, 한층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하려면 메시지의 연결을 바꾸면 된다. 

이것이 바로 ‘넛지’의 역할이다. 암스테르담 공항은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안에 파리 과녁을 그려 넣은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 발상으로 화장실 청소비용이 실제로 확연히 감소했다. 워낙 잘 알려진 일화다. 이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많은 ‘넛지 유닛’이 정치 활동에 조언을 제공하기 위해 수립됐다. 2010년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정부와 2013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가 그 예다. 프랑스에서는 이스마엘 에멜리앙이 마크롱 대통령의 보좌관 시절 BVA 그룹의 계열사를 고용했다. 

에멜리앙이 요약했듯, 프랑스 정부가 넛지 유닛을 도입한 목표는 파리가 그려진 과녁과 큰 차이가 없다. “우리는 그저 사람들이 올바른 방향을 바라보게 할 뿐이다. 이것은 철저하게 공익에 부합한다.”(9) 참으로 친절하다! 올바른 방향을 볼 줄도 모르고, 제대로 생각할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대중을 위해 대신 생각까지 해주다니! 참으로 황송한 일이다. 정부가 고용한 넛지 유닛은 구체적으로 “장기적인 안녕과 회복력 건설”을 목표로 한다. 회복력은 개인적인 호의나 천부의 재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건설’해야 한다는 의미다.

착각하지 말자. 넛지는 천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의 단순한 기교가 아니다. BVA 넛지 유닛의 책임자 에릭 싱글러는 “합리적이지 않은 개인의 행동은 합리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설득해도 변화시킬 수 없다”(10)라고 강조했다. 그는 “넛지는 이미지의 변화뿐만 아니라 행동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 넛지의 목적은 동기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에서 실행으로 옮겨가길 유도하는 것이다. 의도는 학습과 커뮤니케이션으로 만들어진다. 실행은 행동의 전환으로 만들어진다”(11)라고 주장했다. 실로 대단한 역할이다. 철학자 바르바라 스티글레르의 표현에 따르면, “의식으로도 지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행동을 조형하는 것”(12)이 넛지의 목표다.

물론 넛지 유닛은 눈에 띄게 활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탈자’에게는 죄의식을, ‘올바른 관행’을 따르는 이에게는 만족감을 내면화시킨다. 이런 의도에 따라 뉴런이 암호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의 모든 감정은 제약당할 것이다. 싱글러의 표현처럼, 인지과학은 공공정책을 이와 같이 ‘무장’시켜 도덕적이고 이타적이며, 모두에게 이로운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사회 규범들을 수용하게 만든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규범화를 위한 정치적 시도의 ‘과학화’는 섬뜩하다. 불복종을 야기하는 감정과 정신을 파괴시키는, 이념적 조종과 적응을 찬양하는 냉소주의는 공포를 유발한다.

그러나 대중이 회복력을 지지하게 하려면, 벌금처럼 고전적이고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 또한 ‘여론’은 위기와 비상사태 때 가능하다는 재발견의 힘에 전적으로 설득당하지 않았다. 꽤 다행스러운,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이다. 

 

 

글·에블린 피에예 Evelyne Pieille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작가 겸 문화평론가, 극작가 겸 영화배우. 격주간지 <La Quinzaine Littéraire>에도 비평 기사를 쓰고 있다. 영화 <L’inconnue de Strasbourg>(1998)를 비롯해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Nicolas Chevassus-au-Louis의 신랄한 논문, ‘Le grand bazar de Boris Cyrulnik 보리스 시륄니크의 대잡화점’, <Revue du Crieur>, n° 6, Paris, 2017년 1월호.
(2) Boris Cyrulnik, 『Un merveilleux malheur 경이로운 불행』, Odile Jacob, Paris, 1999.
(3) Thierry Ribault, 『Contre la résilience. À Fukushima et ailleurs 회복력에 반대하며. 후쿠시마 외』, <L’Échappée>, Paris, 2021.
(4) 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의 공저 『Nudge. La méthode douce pour inspirer la bonne décision 넛지.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Vuibert 총서, Signature, Paris, 2010)으로 대중화된 용어다. 리처드 세일러는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5) 신경과학은 특히 교육학적 고찰에 이미 활용되고 있다. Cf. Stanislas Dehaene, 『Les Neurones de la lecture 글을 읽는 뉴런』, Odile Jacob, 2007. 저자 스타니슬라스 드앤은 장미셸 블랑케 프랑스 교육부 장관이 임명한 교육과학위원회의 위원장이다. 
(6) Laura Raim, ‘Pire que l’autre, la nouvelle science économique 더 나쁜 형태의 새로운 경제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3년 7월호.
(7) Eléonore Solé, ‘Comment notre cerveau nous manipule-t-il 우리의 뇌는 어떻게 우리를 조종하는가?’, <Sciences et Avenir>, Paris, 2019년 7월 21일. 
(8) Jérôme Boutang & Michel De Lara, 『Les Biais de l’esprit. Comment l’évolution a forgé notre psychologie 정신의 편향. 진화가 우리의 심리를 빚어낸 방법』, Odile Jacob, 2019.
(9) Géraldine Woessner가 인용, ‘Emmanuel Macron et le pouvoir du “nudge” 에마뉘엘 마크롱과 “넛지”의 힘’, <Le Point> Paris, 2020년 6월 4일.
(10) Éric Singler, ‘Pour une “nudge unit” à la française 프랑스식 “넛지 유닛”을 위해’, <Libération,> Paris, 2014년 5월 11일.
(11) Hubert Guillaud가 인용, ‘Où en est le nudge (1/3)? Tout est-il “nudgable”? 넛지의 현주소 3부작. 1부: 모든 것에 “넛지를 적용”할 수 있는가?’, <InternetActu>, 2017년 6월 27일, www.internetactu.net
(12) Barbara Stiegler, 『De la démocratie en pandémie. Santé, recherche, éducation 팬데믹 시대의 민주주의. 보건, 연구, 교육』, Gallimard, ‘Tracts’ 총서, Paris,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