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럽의 천연가스 시장을 뒤흔들다

러시아의 자리를 빼앗기 위한 미국의 집중 공격

2021-04-30     마티아스 레몽 | 경제학자

우크라이나와의 갈등, 푸틴 대통령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의 운명, 노르트 스트림 2 가스관 건설 등을 두고 2014년부터 러시아와 서유럽은 사사건건 부딪쳐왔다. 이러한 긴장 상황의 배경에는 러시아의 전략, 미국의 요구, 독일의 이익, 기후 변화 문제, 그리고 유럽 집행위원회의 자유주의적 교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거대한 에너지 게임’이 자리하고 있다.

 

EU의 집행위원장 장 클로드 융커는 2018년 7월에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다음 내용에 합의했다. “우리는 에너지 분야에서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EU는 에너지 공급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미국산 LNG를 수입하고자 한다.” 양 측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1) 그러나 사실 이는 판로를 모색하고 있던 북미의 천연가스 생산업체들과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수입국인 EU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천연가스 수송관인 노르트 스트림 2(하단 기사 참조)를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갈등과, 키프로스 섬 인근에서 터키가 천연가스 시추 작업을 강행하면서 촉발된 긴장으로, 천연가스의 생산과 공급은 지정학적 게임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환경 오염에 대한 우려가 점점 더 커지는 상황에서 천연가스는 재생에너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석유나 석탄보다는 더 친환경적이다. 또한 저렴한 비용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도 있으며, 이전 세기에 비해 운반하기도 한결 용이해졌다.

천연가스를 LNG로 만들어 수송선으로 운반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천연가스는 이제 전 세계 어디로나 공급이 가능해졌고, 가스관을 사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수출국-수입국 간의 상호 의존 문제에서도 자유로워졌다.(2) 그러나 LNG의 해상 운반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채취된 천연가스는 우선 섭씨 영하 161도에서 냉각 및 액화되어 배로 운반된 후 현장에서 재기화되어야 한다. EU에는 30여 개의 터미널이 재기화 설비를 갖추고 있다(지도 참조). 여전히 전 세계 천연가스 수출의 대부분은 가스관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격차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다. 2005년에는 가스관의 비율이 78%, 수송선의 비율이 22%였지만 현재 이 비율은 63%와 37%이다.

천연가스에 비해 운반이 쉬운 LNG는 에너지 분야 자유화의 찬성론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과 함께 에너지 관련 기업들은 유럽, 대서양, 태평양 등 다양한 시장에서 LNG의 가격을 결정하는데, 그날그날 거래가가 달라지는 현물 계약(spot contract)을 체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반면 천연가스의 또 다른 거래 형태인 가스관 계약은 길게는 20~30년까지 이어지는 장기 계약이 일반적이다.(3)

 

트럼프, EU에 미국산 천연가스의 수입을 종용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생산국인 미국은 15년 전보다 생산량이 88%나 증가한 데 반해 러시아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감소하는 추세이고 유럽의 생산량도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이다. 왜일까? 2000년대 초반에 개발된 수압파쇄법(hydraulic fracturing)으로 지하에서 셰일 가스를 채취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기법은 심각한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탓에 논란이 많지만, 2008년부터 “미 연방 정부의 에너지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와 “지하자원의 소유권이 토지 소유주에게 귀속되는 미국의 자원 개발 및 생산 관련 법적 체계” 덕분에 미국에서 굉장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4),(5) 다시 말해, 미국에서는 자기 땅에서 지하자원을 개발할 때 정부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는 대부분 국내에서 소비되기는 하지만 그 잉여분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세계 3대 천연가스 소비 시장 가운데 유럽은 가장 매력적인 대상이다. 미국은 다양한 형태로 EU를 압박하면서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수입량을 줄이도록 종용하고 있다. 2017년 7월에 트럼프 대통령은 ‘3개 바다 이니셔티브(Three Seas Initiative)’에 투자했다. 2016년에 처음으로 개최된 이 회의는 발트해, 흑해, 아드리아해 주변에 위치한 12개국 정상들이 “에너지, 교통, IT 분야의 인프라 개발을 위한 협력을 도모”하는 자리였다.(6)(7) 이때 트럼프 대통령은 투자 목적을 감추지 않았다. 폴란드의 지원 하에 그리고 독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의 시비노우이시치 LNG 터미널로 미국산 천연가스를 들여와 유럽 전역에 공급함으로써 러시아 가스관을 통해 수입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경쟁하겠다는 것이다.(8)

 

러시아 가스관 추가건설을 저지하는 미국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 1이 건설 중이던 2005년부터 2011년까지는 미국이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수출하지 않던 때라 미국은 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노르트 스트림 2의 건설을 저지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노르트 스트림 2를 둘러싼 이 국제적 스캔들에는 또 다른 쟁점이 숨겨져 있다.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와 갈등 관계에 있는 러시아는 가스관이 우크라이나를 우회하도록 노르트 스트림 2를 설계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2020년 1월 8일에 러시아는 터키를 통해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기 위한 ‘터키 스트림’ 가스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합의했다. 이미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는 그리스와 북마케도니아를 통해 세르비아, 헝가리, 불가리아, 오스트리아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또 다른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도 현재 ‘테슬라’라는 가칭으로 계획 중이다.(9) 이 가스관의 노선은 2014년에 추진되었다가 EU가 관련 회원국들에 압력을 가하면서 결국 건설이 취소되었던 사우스 스트림의 노선과 유사하다.(10) 유럽 시장에서 마주한 각종 난관과 러시아 가스관을 향한 서구의 적대적인 시선 때문에, 러시아는 LNG 수출량을 늘리는 한편 아시아 쪽으로도 눈을 돌렸다. 2019년에 착공한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은 중국으로 연결되어 30년 동안 연간 380억 m3의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할 예정이다.

미국은 유럽에서 폴란드보다 더 강력한 동맹에 의지하고 있는데, 바로 EU의 자유주의적 교리이다. 에너지 분야가 개방된 이후, 유럽을 통과하는 가스관의 운영은 천연가스 생산 기업들이 자사의 천연가스 수입에 관여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독립된 업체들만이 담당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국영 기업으로 천연가스를 생산 및 유통하고 가스관까지 관리하는 가즈프롬은 미국을 등에 업은 유럽 집행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다. 미국산 천연가스의 수입과 관련하여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몇 개월이 지난 2019년 4월 17일, 유럽 의회가 2009년에 제정된 EU 가스 지침을 대폭 수정한 새로운 가스 지침이 포함된 제3차 에너지 기후 패키지를 급히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번 수정은 에너지 분야에 관한 EU의 핵심 법적 원칙의 적용 범위를, 제3국으로 향하는 그리고 제3국에서 EU 영토의 경계선까지 도달하는 모든 가스관으로 확대하기 위해 이루어졌다.”(11) 프랑스의 에너지규제위원회는 이같이 설명했다. 필리프 세비유 로페즈 컨설턴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본 수정안은 미국 또는 다른 국가로부터 LNG를 수입하는 프로젝트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할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일단 LNG는 EU의 뒤죽박죽 관료주의와 규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12)

러시아와 노르웨이의 천연가스 수출 규모를 당장 능가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미국은 EU에 새롭게 LNG를 수출하게 된 입장에서 유럽 집행위원회가 정한 새로운 규칙의 덕을 보게 됐다. “대서양 협력”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LNG 수입 허가증 발급에 필요한 불필요한 단계들을 제거함으로써 미국산 LNG의 수입을 가속화”하고 “운영 업체들과 정기적인 교류 및 홍보 활동을 계획하여 미국이 유럽의 주요 가스 공급국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13)

그러나 중부 유럽 국가들이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EU가 지지를 표명한 이 야심을 가로막는 몇 가지 장애물이 있다. 우선, 러시아는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산 LNG는 가격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보다 더 저렴하다 해도(동일한 에너지 효율 기준으로 22% 차이) 액화, 운반, 재기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손실되는 양을 고려하면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가격 책정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넓은 러시아의 가즈프롬은 현재의 천연가스 수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계약서의 일부 조항을 어기고 유럽의 고객들에게 천연가스 가격을 할인해줄 수도 있다”.(14)

또한 천연가스 수입처를 다각화하겠다는 EU의 의지는 EU 회원국들이 계속해서 천연가스를 수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EU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 목표에 따라 신재생 에너지, 수력 에너지, 원자력 에너지의 비중이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2011년에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신뢰는 사라졌다.

그러면 남는 것은 신재생 에너지이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의 생산에 필요한 코발트, 리튬, 아연, 니켈, 알루미늄 등의 광물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 오염이 초래되고, 이 광물들은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중국, 콩고, 모잠비크 등 일부 국가에서만 매장되어 있는 까닭에 새로운 에너지 의존 관계가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전기에 기반한 경제를 만들고, 환경 발자국이 적은 풍력 발전 단지, 발전소, 고압선, 변압기, 콘덴서, 스위치, 차단기 등의 시설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재생 에너지를 늘리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에너지원의 사용을 줄이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장 타당한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수요 자체를 줄여야 한다. 즉, 에너지 절약, 제조 및 생산 시설의 이전, 교통량 감소를 통해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 체인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글·마티아스 레몽 Mathias Reymond
경제학자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번역위원


(1) ‘융커 EU 집행위원장의 백악관 방문 이후 발표된 EU와 미국의 공동 성명’, EU 집행위원회, Bruxelles, 2018년 7월 25일.
(2) 마티아스 레몽, ‘경쟁과 독점의 딜레마에 빠진 유럽 에너지 공동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09년 1월호
(3) Mathilde Godard, ‘Le GNL : l’énergie fossile de demain? LNG는 미래의 화석 에너지인가?’, <Forbes>, 2020년 6월 23일, www.forbes.fr
(4) 막심 로뱅,  ‘노스 다코타의 꼬리없는 암소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3년 8월호
(5) Jean-Pierre Hansen & Jacques Percebois, 『Énergie. Économie et politiques 에너지, 경제, 정치』, 3차 개정판, De Boeck, Paris, 2019.
(6)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에스토니아, 헝가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체코 공화국,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7) www.3seas.eu
(8) <Reuters>, 2017년 7월 4일.
(9) ‘Rencontre Erdoğan-Poutine : nouveau gazoduc, Libye et Syrie sur la table 에르도안과 푸틴의 만남 : 새로운 가스관 건설, 협상 테이블에 앉은 리비아와 시리아’, <Le Figaro & AFP)>, Paris, 2020년 1월 8일.
(10) Jean-Michel Bezat, ‘Gazoduc South Stream : pourquoi la Russie a décidé de jeter l’éponge 러시아는 사우스 스트림 가스관을 왜 포기하기로 결정했나?’, <Le Monde>, 2014년 12월 2일.
(1) ‘Gaz et électricité. Cadre législatif européen 가스와 전기와 관련된 유럽의 법적 틀’, 에너지규제위원회, 2020년 4월 29일, www.cre.fr
(2) Philippe Sébille-Lopez, ‘Le gaz naturel en Europe : quels enjeux énergétiques et géopolitiques? Première partie 유럽의 천연가스와 관련된 에너지 및 지정학적 문제들, 파트 1’, Diploweb, 2020년 10월 25일, www.diploweb.com
(3) 인용 : Philippe Sébille-Lopez, ‘Le gaz naturel en Europe 유럽의 천연가스’, op. cit.
(4) Philippe A. Charlez, ‘Le gaz naturel liquéfié américain pourra-t‑il concurrencer à terme les marchés gaziers russes? 미국의 LNG는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맞설 수 있을까?’, <La Revue de l’énergie>, n° 633, Paris, 2016년 9-10월.
(5) Lorène Lavocat, ‘Les minerais : le très noir tableau des énergies vertes 광물 : 녹색 에너지의 암울한 현황’, <Reporterre>, 2020년 10월 29일, https://reporterr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