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관 건설을 방해하는 방법

2021-04-30     피에르 랭베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과거의 가스관 외교는 어땠을까? 1970년대, 서유럽과 소련의 가스 교역은 양측을 만족시켰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가스관은 경쟁관계에 있던 구대륙의 두 진영에 가교역할을 했다.(1) 미국은 유럽의 긴장완화를 방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유럽과 시베리아를 잇는 가스관 건설에 참여한 다수의 유럽 기업에 제재를 가했다. 이 가스관이, 유럽의 소련 의존도를 높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2)

하지만 유럽경제공동체(EEC) 10개 회원국은 통상금지조치 적용을 거부했다. 프랑스는 민간기업을 통해 소련에 자재를 인도하기까지 했다… 몇 달 후, 미국은 후퇴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가스시설은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불화의 씨앗이자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 이론적인 동맹국들의 지정학적 이해 대립, 미국에 대한 무력함의 상징이 됐다. 러시아에서 출발해 발트해를 가로질러 독일로 이어지는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2(Nord Stream 2)’의 운명은, 이런 상황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가스관을 타고, 상호 의존성이 흐른다

1,230km에 걸쳐 강철로 만든 거대한 뱀처럼 뻗어있는 노르트 스트림2의 사업비는 95억 유로에 달한다. 2019년 12월, 이 사업은 완공을 앞두고 중단됐다. 유럽의 비난과 미국의 제재라는 폭풍을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유럽에는 이미 수십 개의 가스관이 존재한다. 그런데 왜 완공이 얼마 남지 않은 노르트 스트림2는 EU 내부에 불화의 씨를 뿌리고 미국과 독일 사이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외교 위기를 일으키는 것일까?

사업 초기에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러시아의 가스 재벌 가즈프롬(Gazprom)은 2018년 4월 유럽의 5개 가스 기업(오스트리아 OMV, 독일 빈터샬(Wintershall), 유니퍼(Uniper), 프랑스 엔지(Engie), 영국과 네덜란드 합작법인 쉘(Shell))과 공동으로 ‘노르트 스트림1’의 수송능력 강화 사업에 착수했다. 2012년 완공된 노르트 스트림1은 이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비보르크에서 독일 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주(州) 그라이프스발트로 연간 550억m3의 가스를 수송 중이었다. 이 가스관의 연결 노선은 크렘린궁의 전략적 요구사항을 충족시켰다. 그것은, 유럽으로 수출되는 시베리아산 메탄가스의 절반 이상이 경유하던 우크라이나를 우회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과도한 통행료를 부과하고 수송량의 일부를 가로채며, 부채를 상환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2005~2009년에는 수차례 분쟁이 발생해 수송 중단 사태로 이어졌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열렬히 지지한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 이후, 특히 같은 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노르트 스트림1&2는 나름의 방식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 악화를 반영했다. 노르트 스트림1은 역시 서구의 지지를 받은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 1년 후 첫 삽을 떴다. 노르트 스트림2 건설 합의는 2014년 우크라이나 위기사태 직후 체결됐다. 러시아는 가스수출에서 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도약 중인 우크라이나를 수출경로에서 제외해야 했다. 1994년에는 러시아가 유럽으로 수출하는 가스의 91%가 우크라이나를 통과했다. 하지만 2018년에는 이 비율이 41% 미만으로 감소했다. 현재 남유럽에 건설 중인 가스관 터키스트림(Turkish Stream)(지도참고)은 노르트 스트림2와 함께 마침내 가즈프롬을 우크라이나에서 해방시킬 것이다. 

가스관은 관으로 연결된 국가들을 상호 의존적으로 만드는 특성이 있다. 독일과 러시아의 상호 의존성 증가는 다른 국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노르트 스트림2는 이내 초강대국 미국을 중심으로 동맹을 결성한 국가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반대가 당연했던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발트해 국가들과 폴란드 또한 여기에 동참했다. 프랑스 의회의 보고서는 이 국가들은 “반(反)러시아 이데올로기 때문에 사업에 반대”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인정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노르트 스트림2 반대 동맹은 독일과 독일의 전직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이끈 지지 동맹을 능가하지 못했다. 가즈프롬은 총리 퇴임 후 로비스트로 전향한 슈뢰더를 노르트 스트림2사(社) 이사회 의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유럽 내 가스 소비 1위국인 독일에서 신규 가스관 확보는 중대한 문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22년까지 탈원자력, 2038년까지 탈석탄이라는 목표를 수립했다. 재생 에너지의 급속한 발전을 기다리며 추진 중인 독일의 ‘에너지 전환’은 난항 중이다. 한파가 닥치거나, 날이 흐리거나, 바람이 멈추면 갈탄 화력 발전소는 온실가스 배출 목표 달성에 실패한다. 올해 2월 상황이 잘 말해준다.(4) 석탄보다 오염물질 배출량이 적은 가스의 지속적인 공급과 안정적인 가격 보장이 필요한 이유다. 독일의 입장에서는, 러시아와의 무역 제휴로 이 절대적이고 전략적인 필요성을 충족시키려는 시도는 정당한 노력이다. 비록 2014년 이후 양국관계가 악화되고 있지만 말이다. 

 

협박에 이어 공격에 나선 미국

그러나, 친미성향을 지닌 미국·독일·러시아 3국 관계 전문가 안젤라 스텐트는, “독일은 경제적 이익 추구를 성공적인 대외정책의 궁극적인 지표로 여긴다”라고 주장했다.(5) 도널드 트럼프가 온갖 수단으로 노르트 스트림2의 완공을 방해한 것도 텐트와 같은 철학 때문이다. 노르트 스트림2를 표적으로 삼으면 미국 정부는 지정학적 이익만큼이나 중상주의적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러시아의 가스관보다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의 유연한 시장에 더 우호적인 EU 집행위원회와 EU 내부에서 범대서양주의 성향이 가장 짙은 회원국(폴란드, 덴마크 등)은 미국을 지지한다. 이에 힘입어 미국은 러시아의 계획을 저지하고, 특히 미국산 액화셰일가스 잉여분을 유럽 시장에 수출할 심산이다. 그 와중에 미국과의 무역 분쟁이 축적된 독일에 압력을 가할 계획이다.(6) 이를 위해 미국은 온갖 외교술책을 동원 중이다.

취임 직후부터 관세 제재로 유럽을 협박한 트럼프는 2018년 7월 EU의 항복을 받아냈다. EU는 ‘전체주의적인’ 가스관 대신 “자유의 LNG”(트럼프의 표현)에 유리한 방식으로 가스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는 데 동의했다. EU가 이듬해 채택한 새로운 가스 지침서는 노르트 스트림2를 저지하기 위한 행정조치들로 채워졌다. 이 조치들은 궤변에 가까워 입안자들이 법적, 무역적 구조를 재검토해야 할 정도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급격한 방향전환이 없었다면 이 지침서는 2019년 2월 EU 정상회의에서 채택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노르트 스트림2를 지지하는 국가들(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스, 키프로스)은 프랑스의 은밀한 지지에 기댈 수 있었다. 마크롱은 “러시아에 대한 의존성을 높이지 않기 위해서”(7)라고 입장 변경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추진하는 EU 개혁안에 반대하는 독일을 설득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미국은 협박에 이어 실제로 공격에 나섰다. 예정된 수순처럼 미국이 유럽의 에너지 정책을 결정했다. 2019년 12월, 미국 의회 양당은 ‘유럽 에너지 안보 보호법’을 통과시켰다. “러시아에서 독일 또는 터키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 건설을 위한 관 매설 선박을 알고도 돕는 모든 외국인의 비자와 재산을 동결하는 제재”로 요약되는 이 법은 노르트 스트림2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국외를 대상으로 하며 국제법상 근거가 없는 이런 미국의 조치로 노르트 스트림2 공사는 즉각 중단됐다. 이듬해 미국의 제재는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에까지 강화 및 확대됐다. 기술지원업체와 보험사 대부분이 사업에서 이탈했다. 

2020년 7월, 러시아에 협력하는 모든 사업체를 재정적으로 파멸시키기로 작정한 미국은 노르트 스트림2를 2017년 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했다. ‘제제를 통한 미국의 적 대처’라는 이름의 이 법은 원래 러시아, 이란, 북한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NATO 회원국이자 EU 내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독일이 이 법의 제재 대상에 포함돼, 달러 체제 접근 차단의 위협을 받게 됐다. 3명의 미국 의원은 2020년 8월 5일 독일 항만 2곳 책임자에게 서한을 보내 노르트 스트림2와 관련된 모든 작업을 중단하라고 통지했다. 그리고는, “중단하지 않으면, (해당 항만)회사의 재무 생존성을 파괴하고, 주가를 폭락시키고, 자산을 동결하며, 미국 내 사업을 금지하겠다”라고 위협했다. 베네수엘라나 쿠바에 사용하던 조치와 어조다…

 

메르켈의 제안, 나발니 투옥 그리고 녹색당

이런 모욕에 사회민주당 소속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미국은 지난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2배 이상 늘렸지만 우리는 이를 비난하지 않는다. 미국은 독립적인 에너지 정책을 시행할 권리가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2,000만 명이 넘는 러시아인”(8)을 언급하며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마지막 다리 중 하나”의 완공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독일 지도자들은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치 세력 대부분은 노르트 스트림2를 지지하고 있지만 정세는 분열된 상태다. 기독민주당(CDU), 사회민주당(SPD), 좌파당(Die Linke),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은 여전히 노르트 스트림2를 지지하고 있다. 반면, 유럽 의회의 유럽인민당(EPP) 대표인 만프레드 베버가 이끄는 반러시아 성향이 가장 강한 기독민주당원들은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자유당원들은 무엇보다 경제적 이익에 민감하지만, 러시아 반체제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독살 시도 사건 이후 입장을 변경해 사업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노르트 스트림1 때부터 적대적이었던 녹색당원들은 노르트 스트림2를 언급하는 것조차 거부한다. 이들의 반대는 1월 21일 채택된 유럽의회 결의안, 환경 단체의 결집 그리고 서구 언론의 반(反)러시아 강박증으로 더욱 완강해졌다. 미국의 강한 영향력과 환경 보호주의적 감성의 인기는 노르트 스트림2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일으키며 독일 정부에 양보를 강요하고 있다. 

2019년, 메르켈 총리는 미국이 노르트 스트림2을 공격하지 않는 조건으로, 독일 연안에 미국산 LNG 재가스화 시설 2개 건설사업에 정부자금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알렉세이 나발니가 2020년 여름 독극물 테러를 당하고 2021년 2월 투옥되자,(9) 노르트 스트림2에 반대하는 이들의 논거에 더 큰 힘이 실렸다. 독일이 나발니를 열렬히 지지했기 때문이다. 바르샤바에서 브뤼셀을 거쳐 파리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지도자들은 메르켈 총리가 노르트 스트림2 사업 중단을 대(對)러시아 제재에 포함시킬 것을 촉구했다. 조 바이든의 백악관 입성은 자유당원들의 열등감을 해소시켰다. 노르트 스트림2에 반대하는 것이, 더 이상 트럼프에의 동조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이상으로 노르트 스트림2 무산에의 의지가 강해 보인다. 

그럼에도 강철 뱀의 전설은 여전하다. 러시아 선박들은 발트해 해저 가스관 매설 작업을 재개했다. 독일은 미국의 마음을 돌릴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주(州)는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기후·환경 보호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의 목표에는 노르트 스트림2 완공도 포함된다. 운명의 장난처럼 노르트 스트림2 완공 일정은 독일이 9월 26일 연방하원 선거를 치른 후 정부 연정구성 협상 시기와 겹칠 듯하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선전하고 있는 녹색당이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과연, 녹색당원들이 노르트 스트림2를 용인할 것인가?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미디어비평 행동단체 ‘Acrimed’에서 활동 중이며, 대안언론 <르플랑베(Le Plan B)>를 발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Libération, de Sartre à Rothschild 해방, 사르트르에서 로스차일드까지』(Raisons d'agir, 2005) 등이 있다.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Thane Gustafson,『The Bridge: Natural Gas in a Redivided Europe』, Harva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2020.
(2) Claude Julien, ‘La paix selon M. Reagan 레이건이 구상한 평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83년 2월.
(3) EU 위원회가 EU의 에너지 의존성에 대해 제출한 정보 보고서, 프랑스 하원, Paris, 2020년 6월 24일.
(4) Odile Tsan, ‘Nord Stream 2. Pourquoi Berlin a besoin du gazoduc de la discorde 노르트 스트림2. 왜 독일은 불화를 일으키는 가스관이 필요한가’, <L’Humanité>, Saint Denis, 2021년 3월 2일.
(5) Thane Gustafson이 인용, 『The Bridge』, op. cit.
(6) ‘De Varsovie à Washington, un Mai 68 à l’envers 바르샤바에서 워싱턴까지, 거꾸로 된 68혁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1월.
(7) <Süddeutsche Zeitung>, Munich, 2019년 2월 7일.
(8) <RND>, Hanover, 2020년 10월 17일 ; <Rheinische Post>, Düsseldorf, 2020년 2월 6일.
(9) Hélène Richard, ‘Alexeï Navalny, prophète en son pays?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의 선구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1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