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 활기 불어넣는 시민 생물학

2021-04-30     모르간 펠레넥 | 기자

창고 등 비공식적인 실험실에서 탄생한 ‘시민 생물학’은, 지적재산권이나 기업의 지배에서 벗어나 일반인들이 협업하는 열린 과학을 장려한다. ‘DIY(Do It Yourself)’ 생물학자들은 자유주의 정신에 입각해, 지식에의 자유로운 접근과 방법론적 전환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기업 논리가 이런 창조적인 이들을 뒤쫓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팔고자 하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기술혁신이 아니라 해방과 자율이다.” 3월 초, 우리에게 자신을 ‘제로니모’라고 소개한 한 50대의 생물학 박사는 ‘대안적·연대적·실험적인 생물학 독립 연구소(Labase)’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38세의 생물학 연구원인 앙토냉 드망주와 함께 개인이 만든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용 마스크의 효능 시험을 위해 고안한 장치를 실험하고 있었다. 제로니모는 “우리가 돈을 주고 산 것은 12유로짜리 분무기 한 개가 전부”라고 말했다. 나머지는 재활용품에서 수거해온 냉장고 컴프레서, 이탈리아산 커피 필터, 페트병이었다. 이 실험의 목적은 비용부담이 적고 신뢰할 수 있으며, 전 세계에서 생산 가능한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 DIY 생물학자들은 2019년 1월부터 몽펠리에 남동부에 위치한 이 실험실에 모여들었다. 실험실에 비치된 실험대, 정밀저울, 환풍기, 건조기는 모두 대학 연구소나 폐업한 병원에서 버린 것들이다. 그들은 작업장에서 ‘박토(박테리아)’나 한천배지라는 용어들을 사용했고, 균류 배양법, 박테리아 식별법, 약용식물의 항균작용을 테스트하는 법을 익혔다. 이런 단체들 중 최초는 2008년 미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한 주점의 뒷방에서 탄생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주변에서 생물학에 호기심과 열정을 품은 30여 명의 아마추어 생물학도들이 매켄지 코웰과 제이슨 보브가 시작한 ‘DIY바이오’의 첫번째 모임에 참석했다. “대중이 생물공학에 대해 알고 생물공학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확신한 두 사람은, “활기차고 생산적이며 안전한 DIY 생물학자들의 공동체”(1)를 만들고자 했다.

정보를 해킹하는 해커들의 조직 방식에 착안해 흔히 ‘바이오해킹’으로 알려진 이 운동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56개의 실험실과 5,000여 명의 생물학자가 참여하고 있다.(2) 파리 국립고등광업학교(Mines ParisTech) 연구소 소장인 사회학자 모르강 메예르는 이렇게 말한다. “바이오해커들의 프로필은 매우 다양하다. 많은 이들이 이미 생물학, 컴퓨터, 공학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들은 호기심 많은 예술가이자 IT 전문가들이기도 하다. 이들 대다수가 생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위 소지자들이다. 바이오해킹은 서민적이거나 열린 과학이 아니다. 진입 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민 생물학으로 인해 과학은 전통적으로 공공 및 민간 연구소가 주류를 이루는 영역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됐다. 시민 생물학의 목표는 이제까지 전문 과학자의 영역에 속해 있던 고전적 실험들(박테리아, 효모, 균류 등의 배양)에 일반인들도 쉽게 참여하고, 생물유전학(분자 분석, 염기서열 등)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파리 생명공학 사립학교(Sup’Biotech) 연구소 소장인 프랑크 예이츠는 “우리는 더 많은 대중이 도구와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프로토타입을 구현하고 시험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여기서 혁신이 나오는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생물학자들은 자금조달 문제와 한정된 범위에서 연구 주제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스스로 프로젝트와 실험을 선택해 연구한다. ‘라 파야스’의 공동 설립자인 토마 랑드랭은 “이 열린 장소들은 전혀 새로운 표현공간을 제공한다. 여기에는 제도가 구성원들에게 줄 수 없는 주도권의 가능성이 있다”라고 분석한다. ‘라 파야스’는 프랑스 최초의 공동체 실험실이며, 토마 랑드랭은 2011~2017년에 이 실험실을 이끌었다. 몽펠리에에서 만난 앙토냉 드망주는 “이게 바로 땡땡이”라고 했다. 메예르는 시민 생물학의 부흥이 역으로 기업 논리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30여 개의 신생 기업들이 이런 흐름 속에서 생겨났는데, 특히 북미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다. 프랑스에서는 PILI를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이 신생 기업은 미생물을 이용해 바이오색소를 개발했는데, 이 색소를 석유화학 제품을 대체할 친환경 제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PILI의 공동 설립자인 랑드랭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처음에 우리는 PILI를 오픈소스로 운영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연구 및 개발이 가능하려면 기금 모금이 필수다. 기술혁신에 대한 특허권을 부여함으로써 투자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 수없이 비난도 받았지만 나는 실용적인 접근을 지지한다. 목표는 환경과 사회에 충격을 가하는 것이다.” PILI는 2015년, ‘친환경 시민 실험실’인 라 파야스에서 출범했다. 현재 라 파야스는 수에즈, 로슈, 사노피 같은 기업들과 합작으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북미 공동체 실험실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캐나다 출신의 사회학자 다프네 에스키벨 사다는, 이런 현상이 본래의 취지에서 그렇게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분석한다.(3) 대안적·연대적·실험적인 생물학 독립연구소(Labase)의 무정부주의적이고 집단적인 정신과 달리, 에스키벨 사다는 차고 생물학이 신자유주의의 분위기를 풍긴다고 본다. “이들은 자기 안에 잠재된 발명가나 혁신가의 기질을 펼치기 위해 생명공학을 가로채, 최소한의 규제 안에서 자신들이 ‘행동할’ 권리를 요구하는 개인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생명은 시민의 자율적 행동의 새로운 매개체로 소환된다. 기업가 정신은 이런 취지에 모순되지 않고, 이 운동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이 신성시된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시장 모델을 따르지 않는 야심찬 프로젝트들도 기획했다. 예를 들어 2015년에 컴퓨터공학자인 안토니 디 프랑코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자신의 공동체 생물학 실험실에서 ‘오픈 인슐린’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전 세계 바이오해커들은 로열티 없는 인슐린 생산 프로토콜을 개발해, 누구나 인슐린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이 운동을 시작한 이들이 케임브리지에 모였을 때 DIY바이오의 회원들이 던진 한 가지 질문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DIY바이오는 생물학의 홈브루(home-brew, 자가 제조품) 컴퓨터 클럽이 될 수 있을 것인가?” 1975~1986년에 이 전자기기 마니아들의 모임은 실리콘밸리의 한 차고에서 첫만남을 가졌고, 이후 정보 접근의 민주화를 이끈 주역이 됐다. 이 클럽의 회원 중에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있었으니, 바로 애플 제국의 설립자들이다. 

 

 

글·모르간 펠레넥 Morgane Pellennec 
기자, 행위예술단체 엑스트라 뮈로(Extra-Muros) 소속

번역·조민영 sandbird@hanmail.net
번역위원


(1) Sipra Bihani 외, ‘Comparing network structures of commercial and non-commercial biohacking online-communities’, Collaborative Innovation Networks, Tokyo, 2015년 3월에서 재인용.
(2) https://diybio.org
(3) Daphne Esquivel-Sada, ‘Un labo à soi : l’idéologie DIYbio de démocratie des biotechnologies et la conjonction entre facultés manuelles et autonomie 개인 실험실: 생명공학 민주주의의 DIY바이오 이데올로기, 개별 능력과 자율성의 결합’, Université de Montréal, 2017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