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착유기에 거액 투자한 낙농업자들의 비극

영세 농민들이 자살하는 이유

2021-04-30     마엘 마리에트 | 탐사보도 기자

프랑스에서 농업 분야는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직업군이다. 매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농부가 한 명은 나온다. 얼마 되지 않는 우유 매입 가격을 보충하기 위해 과도한 경쟁을 강요받는 낙농업자들은 ‘사업가’를 꿈꾸지만, 실제로는 사업가(대기업)를 위해 노예처럼 일하는 처지다.

 

무려 5,000㎡에 달하는 건물 안, 평생 풀을 밟지 못하는 젖소 수백 마리가 조용히 돌아가는 안개 분무 환풍기 아래를 어슬렁거린다. 농장 안에서 레일을 따라 일정 간격으로 움직이는 작은 수레는 사일로(가축 사료인 엔실리지를 만들기 위해 설치한 원통형 창고-역주) 사이를 오가며 사료를 섞고, 젖소들에게 사료를 분배한다. ‘축사’ 안에서 젖소들은 4대의 빨간색 기계들 주위를 오간다. 위압적인 느낌의 이 기계들은, ‘로봇 착유기’다.

배합 사료에 이끌린 젖소들이 밤낮 구분 없이 언제든 기계 안으로 들어가면 젖소 옆구리 쪽에서 기계 문이 닫히고, 모든 과정이 자동 시스템으로 진행된다. 로봇은 먼저, 젖소에 달린 전자 인식표를 통해 젖소를 식별하고, 내장된 카메라를 이용해 유방의 위치를 탐지한다. 그런 다음 세척 롤러가 유방 주변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하면, 빨간색 3D 레이저가 유방을 스캔하고, 밀리미터 단위로 유방들의 위치를 측정한다. 이어서 기계가 유두컵을 부착하고, 착유를 시작한다.

 

“쉬지 않고 젖을 짜는 모범 직원 서비스”

2020년 9월, 모르비앙주의 아르잘에 위치한 물랭드 크롤레 농장에서 1일 개방 행사를 열었다. 40대의 낙농업자 에라븐 가레크는, 시장을 장악한 렐리(Lely)사의 최신형 로봇 착유기 실연에 참석하고자 농장까지 1시간을 운전했다. 로봇 착유 시스템 기업의 브로셔는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수년 동안 쉬지 않고 당신 젖소들의 젖을 짤 수 있는 ‘모범 직원’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라고 광고한다. 전시장의 한 판매원은 “당신을 시간 제약과 착유 노동에서 해방시켜 주는 시스템이다. 사소한 이상이나 고장이 발생해도 스마트폰으로 알림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속 착유 시스템 덕분에, 이 로봇 착유기는 “생산성을 10~15% 향상시킨다.”

가레크는 스마트폰이 없지만, 홀로 100마리가 넘는 젖소를 돌보며 하루 15시간씩 365일을 쉴 새 없이 일하는 그는 이런 기술이 가져올 자유를 꿈꾼다. 하지만 자유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모범 직원’ 서비스를 제공받으려면 우선 15만 유로를 지불해야 하고, 매년 1만 2,000유로의 유지관리비를 별도 부담해야 하며, 로봇설치를 위한 축사 정비공사도 해야 하며, 10년 주기로 로봇 착유기를 교체해야 한다. 로봇 한 대가 최대한으로 수용 가능한 젖소는 약 60마리. 따라서, 가레크의 농장에는 두 대의 로봇이 필요하다. 판매원은 그를 안심시키고자 “우리가 대출을 주선해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농업 은행에서는 고객인 농민들에게 시설 현대화를 권장한다. 우리는 그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가레크는 이미 대출을 여러 번 받았다. 우선 축사 건물 때문이었다. 그는 농장의 생존을 위해 젖소 수를 두 배로 늘렸다. 늘어난 숫자 때문에 훨씬 넓은 착유실을 만들고, 더 많은 옥수수를 저장하기 위한 두 번째 사일로를 설치하는 등 가족 농장의 크기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 옥수수가 더 많이 필요했으므로 옥수수밭 규모도 2배로 늘려야 했고, 결국 새로운 트랙터까지 여러 대 구매했다. 가레크는 현재 연간 100만 리터의 우유를 생산한다. 프랑스 낙농업자들의 평균 생산량 대비 3배에 달한다.

 

도살장으로 향하는 소, 30%에서 50%로

이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가레크가 매일 시간과 전쟁을 치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그는 100㎡ 규모의 방목지를 달려서 가로지른다. 방목지는 농장 한 구역에 지은 그의 집과 축사를 분리하는 역할도 한다. 작업복 차림의 가레크는 양동이를 손에 들고 다시 달린다. 이번에는 옥수수 엔실리지(1)의 역한 냄새가 둥둥 떠다니는 2,000㎡ 규모의 축사를 가로지른다. 시간과 전투를 벌이는 그의 동작은 반복적이고 정교하다. 오늘 아침에도 그는 손목시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괜찮아, 시간 안에 들어왔어!”

가레크는 “저 사료 덕분에 소들의 생산성이 높아졌다”라고 설명했다. 풀을 뜯게 하는 것은 시간도 많이 들고 성가신 일이다. 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료는 비용이 많이 든다. 주변 밭에서 옥수수를 기르는 비용은 그의 “지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종자, 비료, 관개 그리고 시간 부족으로 인한 농사일 하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옥수수 엔실리지에는 단백질이 함유되지 않다. 따라서 젖소에게 배급하는 사료에는 라틴아메리카산 유전자 변형 콩 배합사료와 분말형태의 미네랄및 무기질을 섞는다. 가레크가 사육하는 소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생산성이 높다는 프림-홀스타인 종이다. “문제는 이 소들이 허약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수의사 진료비가 엄청나게 든다.” 그나마 가레크는 동물 수정 및 유전 협동조합인 ‘에볼뤼시옹’의 도움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황소 백여 마리에 대한 정보가 기입된 카탈로그 덕분에, 예를 들어 소들의 외형(특히 유방의 크기와 길이)을 착유기의 특징에 맞추면서 소들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매년 전체 소들 중 30%가 유방과 유두가 우유 생산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도살장으로 보내진다. 렐리 아스트로넛 로봇 착유기를 사용해 유방 크기를 선별할 경우, 도살장으로 가는 소의 비율은 50%까지 늘 수 있다. 

“우리는 공장 노동자처럼 반복작업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업가다.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살게 하고 일하게 한다.” 가레크가 착유기를 소에 끊임없이 연결하며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 1위 유제품 기업이자 13위 농산물 가공업체인 락탈리스가 가레크를 먹여 살리고 있다. “지금 나는 9월분 우유를 생산하는 중이다. 하지만 판매가는 아직 모른다.” 왜냐하면 이 업계에서는 고객(가레크의 경우 락탈리스지만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이 가격을 정하고, 매달 생산자에게 ‘우유 대금’을 보내주며 생산대금 청구서를 작성하기 때문이다. 두 당사자 간의 계약서에 가격은 미정인데, 생산량은 명시돼 있다.

새벽 1시가 돼서야 가레크의 ‘전투’가 끝난다. 저녁 착유가 끝나면 그는 축사의 불을 끈다. 그리고 온기가 남아있는 우유 두 병을 손에 든 채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아침과는 반대 방향으로 방목지를 가로지른다. 기진맥진한 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 세몰리나를 넣은 네스퀵을 먹는다. “식사는 5분이면 충분하다.” 몇 시간 후,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 

이 지역 대부분의 젖소 사육자들 그리고 공장 생산라인의 노동자들처럼 가레크도 자기 노동의 최종결과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아마 모짜렐라 치즈나 분유가 되지 않을까?” 최종 제품에 대해서는 의문도 금기사항이다. 기업에서 낙농업자들에게 부당한 조건을 강요해도, 낙농업자들은 항의할 수 없다. 은퇴를 앞둔 이웃 낙농업자 베르나르 르비항은 락탈리스와 생산자들의 계약서에는 “기업이나 제품 이미지 훼손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에서 매년 50억 리터 이상의 우유를 ‘프레지덩’ 카망베르 치즈, ‘소시에테’ 로크포르 치즈, ‘락텔’ 우유, ‘라 레티에르’ 요구르트, ‘갈바니’ 모짜렐라 치즈 등으로 만들어 마트 진열대를 채우는 기업과 맺은 계약을 파기한다고? 그럴 수 있는 낙농업자는 없다.

가레크는 락탈리스의 영업 성공을 칭찬했다. “그들은 가치 상승을 만들어낸다. 락탈리스 제품은 인기가 많다. 혁신적이고 선도적이며, 계속 발전한다. 올해에도 우유 공장 몇 개를 사들였다.” 주기적으로 가레크의 농장을 방문하는 락탈리스의 기술자들이 하는 말도 같다. 락탈리스의 기술자 니콜라스 위에에 의하면, “우리는 우유 생산자들이 일하는 방식에 문제는 없는지 그들을 주시한다. 예를 들어, 축사가 너무 더러우면 청소를 하라고 말한다. 세계 1위 기업의 이미지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우유 품질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 그래서 생산자들에게 “유제품 관리자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대 다국적 기업이 “그 생산자들의 우유를 가져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육 보조업체가 제공하는 이런 서비스의 기본 이용 금액은 1년에 1만 2,000유로 선이다. 젖소 사육자들 주변을 맴도는 것은 이들 관리 업체뿐만이 아니다. 위에는 이렇게 설명했다. 

“농민들을 찾아갈 때 우리는 물건을 팔아야 한다. 소들이 물을 먹는 물통, 젖소들의 유방 위생을 위한 제품들, 엔실리지용 방부제 등을 말이다. 민감한 점은, 우리가 생산자들에게 산 우유의 대금지불을 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다른 제품 판매가 가끔은 잘 안 되기도 한다. 우리 부모님도 낙농업을 하셨기 때문에 나도 그 상황을 잘 안다. 그래서 종종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우리 회사, 락탈리스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 우유를 팔아야 한다.  우리는 생산자들의 수입과 지출을 모두 알고 있고, 그래서 생산자들의 약점도 안다. 판매를 위한 강력한 무기다. 생산자들이 개선해야 할 사항들도 알고 있다.”

농장을 방문하다보면 종종 영업관계가 은밀한 관계로 변하기도 한다. “낙농업자들이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이 바로 우리들이다. 그래서 간혹 우리가 사회적 혹은 심리적인 관계가 되기도 한다. 축사에 들어갔는데 낙농업자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그들의 호의가 사실은 농민들에게 “저마다 가장 혁신적인 신제품들을 들이대는 약장수들의 행렬” 속에서 “최대한 많은 물건을 팔아먹기 위한 것”임을 가레크 같은 농민들이 알아차리더라도, 락탈리스는 엄청난 강점 덕분에 경쟁자들을 물리칠 수 있다. 

락탈리스는 다른 전문 농업용품 업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빚에 허덕이는 농민들에게까지도 물건을 판다. 우유 대금에서 농업용품 판매비용을 공제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른 판매업자들이 부채가 많은 농민은 상대하지 않지만, 락탈리스는 판매 대금을 확실히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거래를 한다.” 많은 농민들은 이런 식으로 농업 기업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곳을 찾아갈 수 없다.” 이 지역 농업 고등학교에서 경영 교사로 일하다가 퇴직한 파트릭 당제는 “바로 그것이 기본 시스템이다”라고 설명했다.

 

농민 4명 중 1명, 빈곤한계선 밑에서 허덕여 

하지만 낙농업자들은 은행에 빚을 지고 있다. 은행들은 농민들이 강요받는 모든 종류의 투자를 장려하면서 신용대출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농업설비 판매자들은, 농업관리센터에서 장려하는 투자면세제도의 허용 범위 이상으로 기계를 판다. 한 농부가 털어놓았다. “은행원들은, 내게 공장을 계속 운영하며 공과금과 세금을 절약하라면 투자를 해야 한다고 했다.” 

투자 금액은 운영비용으로 회계 처리되므로, 수입과 지출 내역을 줄일 수 있고 결국 과세 금액도 줄어든다. 당제의 설명에 의하면, 문제는 “당신의 재정상태에 빨간불이 켜지고 은행 수수료만 쌓인다는 사실이다. 결국, 당신은 은행을 위해 일하는 꼴이 된다.”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기 브르타뉴에서는 낙농업자들이 은행과 납품업체에 진 부채가 농장 운영자산의 70%에 달한다. 이런 비율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를 뜻한다. 위기가 닥치면 즉히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또 다른 농민 로낭 마헤는, 낙농업자들의 불안정을 부추기는 근본적인 원인을 우유 가격에서 찾았다. “지난 30년 동안 우유 가격이 조금도 오르지 않고 오히려 하락했다. 사료, 설비, 공과금, 사회보장제도 납입금, 장비 업그레이드 등 모든 비용이 올랐는데 말이다.” 그 결과 농민 4명 중 1명은 빈곤 한계선 이하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수입은 대개 실업급여(RSA)보다 낮다. 농민들은 빈곤에 가장 취약한 직업군이다. 2017년, 전체 농민 가운데 20%가 소득이 전혀 없거나, 자신의 농업활동이 적자라고 신고했다.(2)

마헤의 사장은 에마뉘엘 베스니에다. 그는 자신의 조부가 설립한 락탈리스 그룹을 맡고 있다. 2020년 6월, 생프롱에 위치한 락탈리스 그룹의 가장 작은 우유 공장이자, “전통적인 제조법에 따라 수공업 방식으로” ‘브리 드 모(Brie de Meaux)’와 ‘브리 드 믈룅(Brie de Melun)’ 치즈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베스니에는 “락탈리스가 2019년에 매출액 200억 유로를 달성했으며 그룹의 목표를 1년 앞당겨 이뤘다”고 발표했다. 이 ‘역사적인’ 한 해 동안 락탈리스는 가장 큰 성장을 이뤄냈고, 기업 9곳을 인수했다. 베스니에의 재산 역시 늘어나 <챌린지(Challenges)>에서 선정한 프랑스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 9위에 선정되기도 했다(현재는 11위). 베스니에는 한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낙농업계의 어려움에 맞서기 위해” 우유 가격을 또 다시 인하하겠다는 발표도 했다.(3) “업계에서 가격 인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마진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가격을 낮춘다. 락탈리스, 소디알(프랑스 1위 낙농 협동조합)(4) 그리고 다른 기업들은 모두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 르비항은 설명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공동농업정책(PAC)의 일환으로 1984년부터 우유 생산 쿼터제가 시행됐고, 그에 따라 우유 가격이 결정됐었다. 각각의 낙농업자에 생산 쿼터를 지정하는 (과잉생산 시 재정적 페널티가 부과됨) 이 유럽 시스템 덕분에 낙농업자들은 생산량을 조절하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식량 자급자족을 목표로 했던 생산제일주의 정책에서 비롯된 과잉생산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2015년, EU는 이 규제가 농업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비용을 고려해 쿼터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하고 당국의 개입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농민들은 새로운 상황을 맞이했다. 시장은 더는 보호받지 못했고, 점점 숫자가 줄어드는 유제품 업체의 결정에 가격이 불안정하게 좌우됐다. 세계 상위 20개 유제품 기업들 중 5개가 프랑스 기업으로(락탈리스, 다논, 사벤시아, 벨, 소디알), 프랑스는 가장 많은 기업을 순위에 올렸다. 프랑스에서 농산물 가공업 가운데 낙농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매해 유제품 시장의 규모가 290억 유로에 달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들 대기업은 8만 명의 생산자들에게 자사의 규칙을 강요한다. 대기업들이 낙농업자가 생산한 우유의 대부분을 사가기 때문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것처럼,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있는 이들에게 지역 구매자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미셸 코를레이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소디알에 납품하고 내 이웃은 락탈리스에 납품한다. 하지만 같은 트럭이 와서 우리 우유를 가져가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나눈다. 나는 그게 정말 웃기다. 그건 경쟁이 아니다. 가격도 그렇다. 그들은 소수점 아래까지 똑같은 가격을 매긴다.” 하지만 업체를 바꾸는 것은 위험하다. “그랬다가는 아무도 당신에게서 대놓고 우유를 사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기업들은 생산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가격을 올리는 경쟁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가레크와 마헤는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락탈리스’와 일하고, 코를레이와 에리크 제고도 부친을 따라 ‘소디알’과 일하는 것이다. “농장을 인수하면 그 농장의 쿼터와 거래 기업까지 함께 인수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마헤가 설명했다.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상황이 그나마 나은 코를레이의 설명에 의하면, 우유 생산 쿼터 폐지가 발표됐을 때, 사람들은 젖소 사육 농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기회다. 세계적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니, 세계 시장이 바로 당신의 발밑에 와있다!” 그 소식에, 많은 농민들이 같은 로드맵을 따랐다. 우유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생산량을 늘리고 장비를 더 들인 것이다. 마헤와 그의 배우자 실비 역시 다른 많은 농민들처럼 농장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쿼터 폐지는 이렇듯 우유 생산량의 폭발적인 증가를 야기했고, 생산량 증가는 다시 세계 우유의 수요 변동을 동반하며 가격 급락을 불러왔다. 

바로 그 시기에 동일 기업에 납품을 하는 젖소 사육자들이 모인 생산자 단체(OP)들이 생겨났다. 단체는 농민들을 위해 계약사항을 협의하는 일을 맡고 있다. 락탈리스와 협의를 하는 20개의 OP 중 한 단체의 책임자인 르비항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국적 기업과 협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두 달에 한 번씩, 그는 두 명의 동료와 함께 150마리의 젖소를 키우는 가족 농장을 떠나 협상에 능통한 락탈리스의 ‘높은 책임자’와 협상을 하러 간다. 

“협상은 중대한 업무다. 협상을 결렬시킬 수 있는 사항들, 넘지 말아야 할 선들, 비열한 속임수들을 잘 파악해야 한다. 우리 중에 몇 명은 파리에 가서 협상교육을 받기도 했다. 10년 동안 우리는 많이 배웠고, 부분적으로는 진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유 가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르비항의 설명에 의하면, 젖소 사육자들의 투쟁 목표는 “우유 가격에 생산비용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농장 운영비용이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은 생산량 증가나 자동화를 통해서 일부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자동화 설비와 기술로 1인 생산량이 늘었지만, 1일은 24시간뿐이다. 가격을 따라잡기 위한 체력적·정신적 소모도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유 공장은 우유 부족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산을 멈춘다면…” 

 

그러나 우유 부족 문제는, 점점 줄고 있는 젖소 농가에 생산량을 늘리게 하면 해결된다. 락탈리스의 우유 공급 팀장이자, 생산자들과의 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파비앵 슈아조는 우리에게 이런 표현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생산을 중단하는 농가에 대해서는 꾸준한 재정비를 통해 락탈리스에 필요한 공급량을 맞출 수 있게 생산량을 추가 제안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는 생산자들의 발전 계획을 함께 세운다. 우리는 생산자들 편이다.” 하지만 가레크는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 “그들은 절대 가격을 인상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저 호의로, 또는 입막음을 하려고 추가 수량을 줄 때도 있다. 그리고 매해 우리는 똑같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양을 생산해야 한다. 부대비용이 오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늘 추가 주문 수량이 필요하고, 락탈리스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불평을 그만둬라, 불가능은 없다”

가레크는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있어서는 노조보다 OP가 낫다고 지적했다. “나는 그렇게 많이 참여하지는 않는다. 밉보일 수도 있고 페널티를 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르비항은 “협상을 하게 되면 시위가 사라진다. OP들이 생긴 이후 시위가 많이 줄었다”고 말한다. “한 번은 이 OP 손을 들어 주고, 한 번은 저 OP 손을 들어 주는” 식으로 OP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하는” 락탈리스는 이런 상황에 만족한다.

농민들이 우유 가격 인상으로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것은, 어쩌면 전국 농민조합 연맹(FNSEA) 회원 대다수가 이에 대해 침묵하기 때문이 아닐까. FNSEA 임원이자 물랭드 크롤레 농장 경영주인 브뤼노 칼은 말했다.  “나는 우유 1,000리터 당 400유로라는 환상을 이제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계 경제 안에 살고 있고, 시장의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칼의 입장에서 “또 다른 문제는, 모든 농민이 사업가 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목표를 조금 높이고, 회계사나 은행가의 조언도 듣고 불평을 그만둬야 한다. 그런데 내 회계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회계사가 1년 결산 내용을 설명할 때 농민들은 졸거나, 들을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는 발전이 없다. ‘어떻게 하면 사업을 다각화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해보기도 해야 한다. 그저 남을 따라가기보다는 직접 나서서 행동해야 한다. 우리 직업에서는 나 스스로 결정권자가 돼야 한다. 굳건한 마음을 가지면 불가능은 없다!”

2020년 9월 중순, 부인 그리고 세 자녀와 함께 일드레에서 휴가를 즐기던 베스니에가 생일날 “프랑스식 가족 자본주의의 거의 완벽한 성공 사례”인 락탈리스의 성공을 만끽하고 있을 때,(5) 낡은 거실 테이블에 앉아 창문 너머로 젖소들을 바라보던 가레크는 우리에게 “가정을 꾸리고 싶다. 더 늦어지면 힘들 것 같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43세로, 미혼이다. 하지만 가정을 꾸리려면 가족과 보낼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직원을 채용하거나, 로봇을 한 대 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한 비용을 감당하려면,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 

결론은, 지옥 같은 시간과의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마엘 마리에트 Maëlle Mariette
탐사보도 기자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번역위원


(1) 저장할 수 있게 변형한 옥수수를 베어서, 저장탑이나 깊은 구덩이에 넣고 젖산을 발효시켜 만든 사료.(-역주)
(2) ‘Les revenus d’activité des non-salariés en 2017, 2017년 비급여 생활자의 경제활동 수입’, <Insee Première>, 1781호, 프랑스통계청(Insee), Paris, 2019년 11월 7일.
(3) Marie-Josée Cougard, ‘Le géant du lait Lactalis touche la barre des 20 milliards d’euros 거대 유제품 기업 락탈리스, 200억 유로 매출 달성’, <레제코(Les Échos)>, Paris, 2020년 6월 4일.
(4) Patrick Herman, ‘Pratiques criminelles dans l’agroalimentaire 농산물 가공 산업의 범죄행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9월호. 
(5) Charles Jaigu, ‘Le triomphe modeste d’Emmanuel Besnier 에마뉘엘 베스니에의 조촐한 승리’, <르피가로 매거진>, Paris, 2020년 7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