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를 비추는 빛

2021-04-30     앙토니 뷔를로 | 정치학자

‘우리는 이 세상을 기억할 것이다.’

 

1989년 타계한 소설가 레오나르도 시아시아의 묘비에 적힌, 작가 오귀스트 드 빌리에 드 릴라당의 글이다. 시아시아가 세상을 떠난 지 32년, 오늘날 세상은 그를 기억하는가? 이탈리아에서는 주요 정치기관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시아시아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 방송, 학회 등이 열렸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몇 건의 기사가 난 것이 전부였다.(1)

이런 프랑스의 무관심은, 프랑스와 시아시아의 깊은 인연을 생각하면 당혹스러울 정도다. 모리스 나도를 비롯한 여러 명의 도움으로 시아시아의 작품은 일찌감치 프랑스어로 번역돼 알프스 지역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는 시아시아가 1970년대 말에 정착할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제2의 고향처럼 여겼던 나라였고, 볼테르, 폴 루이 쿠리에, 스탕달 등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들의 조국이기도 했다. 시아시아는 독서를 할 때면 글을 몇 번이나 곱씹어보고 문구를 수집하는 등 문헌학자나 편집자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그는 책을 “행복에 가까운 것”으로, 도서관을 필수자원으로 각각 여겼다. 이런 그에게 문학을 향한 무한한 사랑은 실존적 선택이었다. 그리고 시아시아를 본격적인 문학의 길로 이끈 사람들이 바로 이 프랑스 작가들이었다.

시아시아가 짧은 글을 즐겨 쓰게 된 데도 그들의 영향이 컸다. 프랑스어로 번역된 시아시아의 작품들을 모아 놓은 작품 모음집은 두꺼운 책으로 3권이나 되지만, 목차는 단편 소설, 짧은 수필, 뉴스 기사, 짧은 이야기, 시평, 논문 등 수많은 짧은 글들로 채워져 있다.(2) 시아시아의 글은 간결하고 소박하다. 시아시아는 소설에서 범죄물을 다뤘고, 시평에서는 세세하고 잡다한 것들을 꼼꼼히 짚어냈으며, 수필에서는 촌철살인의 문구를 선보였다.

또한 이 프랑스 ‘스승들’의 영향으로, 시아시아는 고향인 시칠리아(그리고 더 넓게는 “진실 없는 나라” 이탈리아)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합리주의적 전통에 매료됐다. 시아시아의 작품 속 주인공 중에는 계몽주의자가 많다. 교회의 박해에 시달리는 이단자들, 앙시앙 레짐의 처단 대상인 계몽주의자들과 자코뱅파의 혁명가들, “무법천지”에서 원칙을 지키려 애쓰는 경찰관 등이다. 또한 시아시아의 작품에는 이성을 위한 투쟁,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 등이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풀어야 할 뒤엉킨 실타래와 각종 음모가 언제나 등장하고, 고문서를 파헤치거나 미세한 신호를 해석해야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시아시아가 이탈리아의 범죄 소설 및 영화를 일컫는 지알로(Giallo) 형식을 즐겨 썼던 것도 그것이 현실, 그 가운데서도 해독이 필요한 복잡한 현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아시아는 그의 친구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반딧불이의 소멸”이라고 했던 삶의 어두운 이면을 잘 알고 있었다.(3)

 

패배하는 진실, 숙청되는 주인공

시아시아의 작품 속 주인공은 대개 패배했고, 조용히 숙청되기도 했다. 수사를 해도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았고, 결국 거짓이 승리했다. 시아시아는 “이성이 계속 패배한 이야기, 그 패배로 모든 것을,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시아시아의 글에는 비관주의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쓴 일기 모음집의 제목을『 Nero su nero 검정 위의 검정(검은 현실 위에 써 내려간 검은 글)』이라고 지었고, 말년작 중 하나인『 A futura memoria 기억의 미래에서』의 부제는 ‘se la memoria ha un futuro 기억에 미래가 있다면’ 이다.

중요한 것은, 시아시아도 나름의 투쟁을 했다는 사실이다. 칼라스 사건을 소재로 책을 낸 볼테르와 풍자 글을 출간한 폴 루이 쿠리에 그리고 여타 작가들처럼, 시아시아도 현실참여의 문화에 동참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현실 참여를 이론화하지 않았지만, 시아시아는 원래 논쟁을 즐겼으며, 사실상 그의 모든 책들이 정치적 활동의 일환이었다. 파시즘과 파시즘의 발생 동기를 분석한『 Favole della dittatura 독재의 전설』(1950) 이후 시아시아는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했으며 교사로 일하기도 했던 시칠리아의 후진적이고 비참한 실상을 폭로하는『 Le parrocchie di Regalpetra 레갈페트라 행정구역』(1956)을 출간했다. 

뒤이어 수사물『 Il giorno della civetta 올빼미의 하루』(1960)에서는 시칠리아를 향한 낭만적이고 민속적인 시선을 처음으로 걷어내고 마피아의 영향력을 냉철하게 그렸으며, 현지 귀족들의 보수주의와 위선에 관한 소설『 Il consiglio d'Egitto 이집트 평의회』(1963)는 평단으로부터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표범』에 대한 대답 같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상당한 분량의 소설집『 Gli zii di Sicilia 시칠리아의 숙부들』(1958~1960)에서는 계속 태도를 바꾸는 기득권층을 비판하고 권력자의 선전이 소시민들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묘사했다.

시아시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교회를 겨냥해, 과거 그들의 불관용 행태를 비판한 소설『 Morte dell'Inquisitore 조사관의 죽음』(1964)을 출간하는가 하면, 작품『 Todo modo 모든 방법』(1974)과『 Dalle parti degli infedeli 이교도의 옆에서』(1979)를 통해 기독교민주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을 비판했다. ‘역사적 합의’의 이면을 고발한 범죄 소설『 ll contesto 컨텍스트』(1971)에서는 ‘납탄 시대’(1960~1980년대 이탈리아의 사회적·정치적 혼란기)에 일어난 각종 조작과 야합의 모습을 그렸다.(4) 이 소설에서는 한 장관이 “30년 전부터 이 나라를 형편없이 통치해온 우리 당은, 국제혁명당과 협력하면 나라를 더 형편없이 통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고 뻔뻔하게 말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I Pugnalatori 살인자』(1976)에서는 팔레르모 역사의 일화를 들어 긴장전략(Strategy of tension)의 논리를 설명했다. 천재 물리학자의 1938년 실종사건을 다룬『 La scomparsa di Majorana 마요라나의 실종』(1975)은 핵폭탄의 존재와 의식 없는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위험한 지를 지적했다. 

글을 통해 현실에 참여하던 시아시아는 결국 정계에 입문했다. 1975년 시아시아는 이탈리아공산당(PCI)에 입당해 팔레르모 시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시아시아는 계속 독자노선을 걸으면서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고,『 ll contesto 컨텍스트』에 담긴 사상을 고수했다. 그래도 시아시아는 “다른 정당들에 비해서는 PCI에 가장 가깝다”고 느꼈다. 시아시아는 당선된 지 1년 반만인 1977년에 조용히 의원직에서 사퇴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끝없이 이어지는 각종 회의에 질렸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소수파인 공산당이 다수파인 기독교민주당과 가까워지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서였다. 이듬해 시아시아는『 Candido, ovvero Un sogno fatto in Sicilia 순진한 사람 또는 시칠리아의 꿈』에서 시칠리아 출신의 순진한 인물이 정계에 입문한 후 느낀 좌절감과 실망감을 가볍고 냉소적으로 표현했다. 아무래도 시아시아는 정치 체질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러나 1979년에 시아시아는 문제적 인물 마르코 파넬라가 만든 소규모 급진주의 정당에 입당했다. 이탈리아 하원의원과 유럽의회 의원으로 동시에 당선된 시아시아는 로마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의회 연설은 10여 번에 그쳤지만, ‘알도 모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조사위원회의 업무에는 열정적으로 임했다. 당시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아시아는 1978년 이탈리아의 테러 집단 ‘붉은 여단’이 기독교민주당의 당수 알도 모로를 납치하고 암살한 사건에 큰 관심을 가졌다.『 L'affaire Moro 모로 사건』이라는 책까지 쓰면서, 본래 자신의 글쓰기 방식대로 시아시아는 모로의 편지, 붉은 여단의 메시지, 언론 기사, 당국의 발표문 등 사건과 관련된 글들을 꼼꼼하게 참조했다.

 

기억에 미래가 있다면

시아시아가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두가 잊으려 했던 사건을 재조명하고, 당시 책임자들의 협상 능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독교민주당의 동료들, 교회, 그리고 이탈리아 정계가 모로를 외면했고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시아시아는 이 사건에 대해 요란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만 한 비평가가 썼듯 “날카로운 질문을 여러 개 던졌다.”(5)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시아시아는 이 사건에 점점 더 몰입했다. 시아시아는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결국 사건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데는 실패했다. 이에 대한 실망감에 시아시아는 독설을 가득 담은 ‘소수파의 반대 의견서(Minority report)’를 작성해 제출했다. 

의회를 떠난 뒤에도 시아시아는 공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시아시아는 글의 소재로 즐겨 사용하던 마피아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제시했다.『 올빼미의 하루』를 발표한 이후 시아시아는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는 사회’의 이면을 계속해서 고발했다. 시아시아는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 농촌사회에서 도시사회로 탈바꿈하고 급기야는 ‘다국적 범죄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뒤쫓았다. 또한 자신이 관료주의와 공권력과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도 감추지도 않았다. 그는 사회의 발전을 원하지만,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팔레르모에서 법원의 횡포와 각종 소송이 넘쳐나던 1980년대에는 기자 엔조 토르토라를 변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기자는 마피아와 결탁해 1987년 “마피아 반대파는 권력의 노리개”라고 비판한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고발당한 적이 있었다. 시아시아가 쓴 기사는 ‘마피아 반대 전문가들’이라는 애매한 제목을 달고 발표되면서 세간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기사의 해석에 오류가 있었다. 시아시아는 마피아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피아 반대 운동’이라는 미명하에 용인되던 각종 예외적인 상황과 법의 왜곡에 우려를 표한 것이었다. 시아시아는 규칙, 법, 헌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시아시아가 기사에서 비판했던 판사 파올로 보르셀리노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고, 후에는 시아시아와 친분을 맺었다.

즉 시아시아는 ‘마피아 전문가’의 역할에 머물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시칠리아의 현실적 한계를 그대로 수용하지도 않았다. 시아시아가 오랫동안 관찰하고 이야기했던 시칠리아와 마피아는 사실 그에게 있어서 다른 것을 의미했다. 시아시아는 시칠리아라는 소우주를 통해 이탈리아 전체의 상황과 악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시아시아는 “이탈리아 정치의 모든 나쁜 것들을 시칠리아라는 작은 섬에서 실험함으로써 그것들이 정말로 나쁜지를 확인하고, 또 그 결과가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지 본다”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마피아는 “착취, 권력의 남용, 이 세상의 폭력을 대변하는 은유적인 대상”이었다.

자신의 작은 조국 시칠리아, 그리고 그곳의 역사와 비극에 고집스럽게 천착하면서 시아시아는 더 멀리, 더 높이 바라봤다. 시아시아는 “파시즘이 회귀할 가능성”, “오래된 위선적인 언어”를 가진 교회,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복잡한 권력 관계, “과거에도 현재에도 변함없이 멍청하고 바보 같은 국민들”, 그리고 길 잃은 이성을 이야기했다. 시아시아의 모든 주제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다. 만일 ‘기억에 미래가 있다면’, 우리는 레오나르도 시아시아를 더 오래 기억해야 한다. 

 

 

글·앙토니 뷔를로 Antony Burlaud
정치학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친구들(Les Amis du Monde Diplomatique) 협회장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번역위원


(1) Leonardo Sciascia의 미발표 작품집 두 권 『Stendhal forever 스탕달이여 영원하라』, Écrits, 1970~1989, Institut culturel italien, coll. <Cahiers de l’hôtel de Galliffet> Paris, 2020/ 『Portrait sur mesure 맞춤 초상화』, Nous, Paris, 2021/ 재출판작『Le Chevalier et la mort 기사와 죽음』, Sillage, Paris, 2021
(2) Leonardo Sciascia, 『Œuvres complètes 전집』, 총 3권, Fayard, Paris, 1999, 2000, 2002.
(3) Pier Paolo Pasolini, 『Écrits corsaires 해적에 관한 글』, Flammarion, Paris, 1979.
(4) 기독교민주당과 이탈리아공산당 간의 타협
(5) James Dauphiné, Leonardo Sciascia, 『qui êtes-vous? 당신은 누구십니까?』, La Manufacture, Lyon,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