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타적 맞춤법, 양성중립적인가?

2021-04-30     알랭 가리구 | 파리-낭테르 대학 정치학과 명예교수

대부분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양성평등’에 대해 반박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원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당연한 원칙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아 여전히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혁신을 막는 ‘꼰대’들, 과거의 생활습관과 언어에서 벗어나지 못해 양성평등은 번번이 좌초된다. 남성중심적 맞춤법을 사용하는 프랑스어에서 양성중립적인 ‘포괄적 맞춤법’을 사용해 양성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자 어김없이 논쟁에 불이 붙었다.

사실 언어학자, 인류학자 등 전문가들이 이미 증명했듯, 언어는 성 편향적이다. 어느 시대의 의미, 비전, 양식은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언어를 바꾸려는 시도를 감행한 혁신가들이 없었던 것은, 이 시도의 어려움을 알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혁신은 대개 참패하거나, 참혹한 대가를 치르거나, 분쟁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화를 일으키려는 의지를 접어서는 안 된다. 단순히 양성평등의 원칙에 대한 탁상토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포괄적 맞춤법을 통해 양성평등을 실현하겠다는 막연한 의지만 있을 뿐, 포괄적 글쓰기의 이점이나 통사론적 한계를 열거하는 반대론자에 맞서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양성평등 원칙이나 권리에 대한 난상토론에서 벗어나, 포괄적 맞춤법의 구체적인 사용에 관해 평가해야 한다.

포괄적 맞춤법은 쓰기에 적용하는 것이다. 적은 대로 발음이 불가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구어와 문어의 불일치를 해소하려 한다. 한편, 포괄적 맞춤법은 글쓰기를 어렵게 만들어 문화적·사회적 소외계층을 더욱 소외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포괄적 맞춤법 주창자들은 이들도 쉽게 포괄적 맞춤법에 적응할 수 있다고 단정한다. 반대자들의 우려는 실상 배려가 아니라 오만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교육 경험이 없을 경우에는 포괄적 맞춤범에 대해 막연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연령, 교육수준, 사회계층별로 포괄적 맞춤법의 실용성에 대해 파악해 본 적이 있던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공문과 소책자에서 포괄적 맞춤법을 사용하는 것은 쉽다. 그래서 대학에서 먼저 이 표기법을 사용했지만 곧 공공행정 문서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행정 문서에 이 표기법을 의무적으로 사용할 것을 지시한 경우도 있었다.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또 정부에 이 표기법 사용 중단을 요청하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다. 바로 사회적 평등과 국가 단일성을 위해서다. 우편물, 공고문 또는 전단에서 ‘국민 여러분(tout.te.s)’, 또는 ‘시민 여러분(cityen.ne.s)’ 글자 사이에 점을 찍는 일은 쉽고 간단하다. 관공서의 신념은 정치적 기회주의가 작동해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관공서 내에서만 그치지 않고, 포괄적 맞춤법 사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포괄적 맞춤법의 취지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익명을 보장할 수 없는 포괄적 맞춤법 

대학은 포괄적 맞춤법 사용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그럼에도 대학에서는 여기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다. 찬성·반대 의견만 물을 게 아니라, 이 맞춤법을 얼마나 잘 사용하는지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 현재 포괄적 맞춤법에 관한 논란에서 이 맞춤법을 가장 빈번히 사용하는 학생과 초·중·고 교사의 의견은 듣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과학 전문가들은 이 집단의 고충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 어떤 학생들은 시험지에 ‘교수의 마음에 들려고’ 포괄적 맞춤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포괄적 맞춤법을 어디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행정 문서에 포괄적 맞춤법을 사용하는 것과, 시험 등 특정 상황에서 사용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포괄적 맞춤법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학생들의 점수가 포괄적 맞춤법 사용 여부에 따라 영향을 받은 대학이 있다고 언급했으나, 이런 주장에 대한 확실한 증거도 없고 학교명도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포괄적 맞춤법이 아니더라도, 대학 교수들은 사상적 이유를 들먹이며 권력을 남용했다. 그러나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눈을 감았고, 어떤 논의도 없었다. 이제는 항상 경계심을 갖춰야 한다. 특히 어떤 특정 상황에서는 말이다. 

대학은 학위를 발급한다. 그래서 시험도 치르는 것이다. 대학은 이런 특수한 평가 기능을 하기 때문에 정부는 편파적 연고주의, 특혜, 독단에 빠지지 않도록 정의수호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과연 포괄적 맞춤법은 중립적인가? 시험 답안지에 포괄적 맞춤법을 사용하면 익명을 보장할 수 없다. 채점자는 신념을 위해서든, 점수를 위해서든 포괄적 맞춤법을 사용한 지원자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느끼는 학생들은 학교나 법원에 시정을 요구할 것이다. 여하튼, 우리 모두는 심각한 편견에 빠져 있다. 

 

 

글·알랭 가리구 Alain Garrigou
파리-낭테르 대학 정치학과 명예교수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참고기사>
1. Xavier Monthéard, ‘Point médian et cause des femmes 가운뎃점과 여성들의 동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2월.
2. Michel Bozon ‘Transformations de la sexualité, permanence du sexisme 섹슈얼리티의 변형과 영속되는 성차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 판, 2018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