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위장한 투기, ‘자본파업’을 멈춰라

2011-09-08     조계완

1937년 제너럴모터스(GM)는 뉴저지주 린든에 새 공장을 열었다. 이 공장은, 여기서 생산한 고급차 캐딜락처럼 수십 년 동안 번영을 구가했다. 높은 임금, 잘된 사내복지, 강력한 노동조합을 자랑하는 최고의 공장이었고, 미국의 산업이 교육수준이 낮은 미숙련 노동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일자리였다. 그런데 GM린든은 1980년대 중반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한다. 못 쓰는 기계 취급을 당하며 폐기된 노동자들은 경제적 박탈과 사회적 굴욕이라는 암울한 미래에 직면했다. “(그러나) GM린든의 노동자들은 공장을 흔히 감옥에 비유했다. 은퇴해 복역 기간이 끝나기를 씁쓸하고 처량한 기분으로 손꼽아 기다렸다. 그들은 ‘번영의 죄수들’이었다.”(루스 밀크먼, <공장이여 잘 있거라>)

최후 수단 아닌 선제적 리모델링

한진중공업은 400명의 정리해고 대상자 중 306명이 이미 희망퇴직을 하고 회사를 떠났음에도 나머지 94명의 정리해고를 끝까지 고집하고 있다. 순환휴직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해 모든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노동조합의 결단도 한사코 거절했다. 한진중공업뿐 아니라 한국통신 계약직, KTX 여승무원, 이랜드, 기륭전자 등 2000년대 이후 벌어진 장기투쟁 사업장 이슈는 모두 정리해고다. 정리해고 통보 뒤에, GM린든 노동자들처럼 “(그래, 지긋지긋한) 공장이여, 잘 있거라”며 떠나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모두 ‘한 짝의 장갑’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한국 노동시장에는 정리해고가 만연해 있다. 임시·기간제 근로, 즉 80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은 정해진 고용계약 기간이 도래하면 즉각 정리해고된다. 말만 고용계약 ‘해지’일 뿐 사실상 정리해고나 다를 바 없다.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대통령은 “3명이 정리해고 고통을 감내해주면 살아남은 7명이 공장을 일으켜 몇 년 뒤 10명 모두 같이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본은 경기확장기에도 전략적으로 상시적인 고용조정(정리해고)에 나서고 있다. 비용절감을 위한 고용 조정 성과를 시장에 보여줌으로써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 ‘혁신(?) 능력’이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이를 통해 주주들의 투자를 끌어들이고 더 많은 은행 대출을 받으려 한다. 대규모 정리해고를 통해 사람을 자르면 단기적으로 기업의 주가도 오른다. 2001년 2월 영국의 철강업체 코러스가 전체 노동력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6천 명을 감축하자 이 기업의 주가는 즉시 9%나 치솟았다. 한진중공업 주가 역시 지난해 11월 4만9천 원 고점에서 계속 떨어져, 12월 7일 3만3천 원대까지 떨어진 뒤, 12월 15일 정리해고 공식 발표 전후로 계속 올라 4만 원대까지 턱걸이했다.

사실상 우리나라 기업에서 정리해고는 ‘최후의 수단’이 아니다. 수익성이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기업뿐만 아니라 건강한 기업들까지 공장 폐쇄 운운하며 정리해고를 요구한다. 노동자를 내쫓아 수익성을 회복하겠다는 ‘경쟁적 긴축’에 매달리면서 인건비 따먹기 경쟁을 하는 셈이다. 한진중공업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조선사업 부문의 남자 정규직은 1512명(평균 근속연수 16.8년)이다. 현재 비정규직은 거의 없다. 정리해고된 일자리는 나중에 저임금 도급·하청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런데 한진중공업이 주주총회에서 이사 9명에게 승인한 보수는 연간 총 20억 원이다. (물론 올해 1분기 파업에 따른 무임금이 영향을 미쳤으나) 조선 부문 1인당 평균 분기급여액은 664만9천 원이다. 연간으로 치면 1인당 2659만 원이고, 남아 있는 정리해고 대상자 97명이면 연간 총 25억 원이다. 이사 9명의 보수로 97명의 인건비를 상당 부분 지급할 수 있는 셈이다. 한진중공업의 올해 1분기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4.3%에 불과하다.

한진중공업의 지분 5% 이상 주주는 피델리티 펀드와 국민연금공단이다. 경제의 금융화 속에서 금융자산 운용 매니저들의 포트폴리오 실적이 매달 평가되고, 펀드매니저들은 투자 기업에 단기 주가 부양을 요구한다. 당장 문 닫을 지경이 아닌데도 기업마다 투자자들의 압력으로 주가 상승이나 인수·합병을 위한 다운사이징에 나서면서 정리해고가 횡행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풍경이다. 85호 크레인의 농성도, ‘희망버스’도 바로 이런 우리 시대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벽화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자본의 감옥에 갇힌 죄수들인가?

주식이나 채권은 한 번 발행되고 나면 실물에 미치는 영향력이 끝나고 만다. 처음 발행될 때는 기업의 자금 조달에 투입돼 생산활동에 기여하지만, 이후 벌어지는 주식·채권의 반복 매매는 투기적 목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물론 투기적 거래에 따른 나중의 주가 상승 기대가 처음 발행할 당시 주식·채권 투자를 북돋우겠지만. 도대체 기업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법적 인격(법인)을 부여한 것에 불과한데도 오히려 기업의 가치(주가)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을 괴롭히는 격이다. 

정리해고는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쉽게 구조조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해고가 횡행하다 보니 정리해고를 컨설팅해주는 중간 착취자들도 거대한 규모로 형성된다. 노동자를 해고해 주가를 높이고, 정리해고된 자리는 나중에 하청·용역으로 채워지기 일쑤다.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겉으로 측정되지 않는 노동투입’(노동강도)은 더욱 높아진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받던 임금 중 일부는 컨설팅 회사와 하청·용역 업체 관리자들의 소득으로 흘러 들어가고, 그 나머지는 원청업체가 이윤으로 수취한다.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오너 평균지분율은 대략 20% 수준이다. 이런 지분으로 자본은 경영권, 나아가 경영권에 의한 인사·해고권을 행사한다. 한진중공업의 분기보고서를 보면, 최대주주는 지주회사인 한진중공업홀딩스이고 조남호 회장의 개인 지분은 0.59%에 불과하다. 물론 조 회장이 한진중공업홀딩스의 최대주주(지분 46.5%)로서 지주회사를 통해 경영권을 행사하지만, 순수 지분 0.59%만으로 노동자 400명과 그 가족들의 삶을 파탄에 빠뜨리고 있다.

주가보다 못한 노동자의 생명줄

자본주의는 생산·교환 체제지만, 자본과 노동이 맺는 ‘(사회적) 관계’라는 측면에서 자본주의는 ‘고용체제’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장에서 고용은 기업의 ‘파생수요’일 뿐이다. 즉, 기업은 고용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윤을 얻기 위해 투자하고 상품 생산을 위해 노동자를 고용한다. 또한 이 기업에 자본재와 원재료를 공급하는 업체에 고용이 발생하고, 나아가 고용된 노동자들이 상품을 소비하면서 소비재 공급 기업들에도 고용이 발생하는 체제다. 결국 총고용수준은 오직 사용자와 투자자의 결정에 달려 있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둘러싼 싸움에서 늘 열악한 지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정리해고에 끝까지 반대하면 회사는 공장 문 닫아버리고 아웃소싱으로 돌린 후 해외로 나가버릴 텐데. 그걸로 끝이야.” 현장 노동자들의 자조 섞인 한숨이 공장 안팎에 팽배해 있다. 노동은 무거운 존재다. 해고된 뒤, 다른 지역에 좋은 일자리가 있다 해도 쉽사리 이동하기 어렵다. 집, 가족, 학교, 이웃공동체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본은 공장과 기계를 다 팔아치우고 돈만 싸들고 가방 챙겨 떠나면 그만이다. 진보좌파 경제학자 새뮤얼 볼스에 따르면, 기업의 소유자가 경영자와 감독자를 통해 행사하는 권력은 ‘생산·투자에 대한 지휘’다. “자본의 권력은 무언가를 행하는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행하지 않는 것으로부터도 나온다.” 즉 투자를 중단·철수시키는 이른바 ‘자본파업’을 통해 국가의 경제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자본의 먹튀, 국가의 고비용 뒷감당

자본주의 국가는 민간 기업에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고 연구·개발 비용을 국가 재정에서 보전해준다. 각종 공장부지와 철도 등 상품의 생산·판매 인프라를 구축해 기업에 값싸게 공급해준다. 정치경제학적으로 보면 ‘국가독점자본주의’이지만, 중도우파적 시각에서 보면 국민경제에서 ‘일자리를 책임지는’ 기업의 역할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자본은 사무실의 소모품처럼 노동자들을 쓰다 버리면서 비용을 줄인다. 물론 정리해고는 국가가 기업에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제도다. 다만, 인류가 발명해낸 가장 훌륭한 상품이라는 ‘보험’(실업급여)을 이용해 해고 노동자의 생존을 최소한으로 보호할 뿐이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도입된 정리해고는 그런 법적 뒷받침이었다. 수잔 브뤼노프는 <국가와 자본>에서 “국가는 자본을 위해 노동력을 관리해준다. 즉, 자본가들이 직접 보상하지 않는 노동력 가치의 일부에 책임을 진다. 자본을 위해 국가가 수행하는 보완적인 공적 제도 중 하나가 사회보험이다. 실업급여 등은 이데올로기나 폭력을 주된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도 자본주의적 착취가 기능하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자본이 마음껏 해고한 노동자들을 국가가 뒤에서 ‘비자본주의적인 제도’(실업급여)를 통해 책임지는 격이다.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책상에는 오직 실업률 수치만 있을 뿐 해고율 자료는 집계조차 하지 않는다. 실업률 수치는 해고된 것인지 자발적 실업인지를 구분해주지 않는다. 경제원론 어디에도 고용과 실업만 다룰 뿐 고용 해지나 해고를 따로 말하는 장은 없다. 이처럼 자본주의 경제 교과서는 고용 해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만 노동조합이 집단적 힘을 앞세워 해고를 막고 있을 뿐이라고 본다. “일자리 시장은 경탄과 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페트리접시(세균배양용 접시)와 비슷하다. 신규 기업들이 성장하고 기존 기업들이 사라짐에 따라, 시장 안에서 일자리가 끊임없이 탄생하고 파괴된다. 2007년 미국에서 매달 200만 명 정도가 해고나 일시해고를 당했고, 추가로 3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일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매달 새로 고용된 5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그 일자리 상실을 메우고 순고용을 증가시켰다.”(그레그 입, <달콤한 경제학>) 시장의 힘과 역동성에 맡겨놓으면 고용 문제도 쉽게 해결된다는 믿음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그레그 입 같은 시장주의 논객들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공장문 앞에서 멈춘다”고 했던가? 캐나다의 자동차노조 소속 경제학자 짐 스탠포드는 “자본이 휘두르는 가장 효과적인 지휘 채찍은 해고 위협이다. 해고는 노동자 한 사람을 내보내는 것뿐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을 자극하고 기강을 세우는 행위이기도 하다. 해고 위협이 효과적이려면 해고에 대한 법적 권리와 노동계약상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해고 조항과 비정규직 고용 형태는 정확하게 이 권리를 보여준다.

자영업자도 지역경제도 함께 해고

주류 시장주의자들이 ‘고용시장의 일자리 파괴와 창출’이라는 역동성을 주창하지만, 정리해고 노동자들은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면서 사회침전계층(Underclass)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특히 장기 고용된 노동자일수록 해고 이후 일자리 찾기가 힘들고, 새 직장을 잡아도 전보다 훨씬 못한 일자리이기 일쑤다. 대규모 해고가 일어난 곳에서는 지역 경제도 고통을 겪는다. 노동자들의 소득 상실로 소비가 줄어들면서 여러 자영업자가 함께 사실상 정리해고되는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정리해고를 겪고 나면 희생자들뿐 아니라 살아남은 노동자들 사이에도 불안이 팽배해지고 동료 간에 신뢰가 깨진다. 쫓겨난 동료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즉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빠져 인간관계가 나빠진다. 자연히 조직 응집력이 떨어지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폐해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전후 경제 기적을 이끈 3종 신기(神器) 중 하나가 ‘평생고용’이다. 조승수 의원 등 야당 국회의원 몇몇이 올 정기국회에 정리해고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과연 정부는 ‘계속 고용’을 책임지는 ‘최후의 모범적 사용자’로서 법안 개정에 함께 나서줄 수 있을까?

글•조계완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고려대 경제학과 박사과정(노동경제학) 수료.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