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에 휘둘리는 브라질 민주주의

점진적인 권력 장악

2021-05-31     안 비냐 l 저널리스트(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군부는 정부 요직에 대거 입성했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과 군 수뇌부간 불협화음이 들리자 브라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위 장성들이 과연 직접 바다에 띄워 키를 잡고 있는 선박에서 굳이 내려오려 할까?

 

지난 3월 30일, 브라질의 육·해·공 3군 총장이 공동 사퇴를 발표했다. 그간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탄압을 받았던 언론은, “군부가 드디어 대통령의 손을 놓았다”라며 기뻐했다. 3월 31일 일간지 <폴랴 데 상파울루(Folha de So Pãulo)>의 1면 기사 제목은 ‘군의 임무 완수’였다. 경쟁지 <에스타두 상파울루(Estado de Sao Pãulo)>도 군 수뇌부가 드디어 보우소나루의 독재에 가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분석했다.(1) 

 

“군부는 민주주의의 수호자”

일주일 전, 보우소나루는 “국민은 군의 수호아래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라고 역설했었다. 사실 그는 이 말 속에, 군의 힘으로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규제조치를 시행하는 주지사들을 압박할 수 있다는 의도를 숨기고 있다. 그러나 언론은 3군 수뇌부 사퇴에 대해, ‘군부가 더 이상 대통령에게 독점적 권력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 ‘군이 보우소나루에게 등을 돌린 것’이라고 판단했다. 경제 일간지 <발로르(Valor)>도 “이제 군이 정치에 개입할 우려가 사라졌다”라고 결론을 내렸다.(2)

그러나 언론의 이런 판단은, 크나큰 착각이다. 사실은 전혀 다르다. 함부르크 헬무트 슈미트 대학의 크리스토프 하리그 연구원은 “군부는 언론에 군의 ‘정치화’를 막겠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행태를 보면 신뢰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사실 군부는 언론플레이를 하는 중이다. ‘보우소나루의 광란을 막을 수 있는, 민주주의 수호자는 군 밖에 없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말이다. 프랑스 역사학자 모 쉬리오는 “브라질 대통령과 군 사이에 갈등이 있지만 군은 이미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정계로 진출한 고위 장성들이 지금처럼 많았던 적도 없다. 이미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는 군이 그 자리를 내줄 리가 만무하다”라고 분석했다. 

언론이 말하는 ‘분열’은 소소한 집안싸움에 불과한 듯하다. 그리고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이 정도 잡음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3군 총장 사퇴 3주 후 바로 ‘온순하지 못한’ 주지사들을 길들일 ‘자신의’ 군대를 다시 영입하겠다고 밝혔다.(3) 브라질 군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년 이상 이어진 군사독재정권의 시발점이 된 1964년 군사 쿠데타의 기념일인 3월 31일마다 국방부 장관은 전국의 군대에 성명서를 보내어 이 사실을 천명한다. 올해도 신임 국방부 장관이 “57년 전, 군이 국가의 평화를 지키는데 기여한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민주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라고 선언했다. 그 당시 군에게 있어 나라를 위협하는 적은 공산주의자였다. 오늘날 군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부정부패’를 타파하고 ‘가치의 붕괴’를 막는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군의 지지가 보우소나루의 집권에 유일한 힘이 된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4) 2018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 의하면, 가장 유력한 후보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가 낙선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군의 강경한 반대였다. 2018년 4월 4일 대법원이 룰라 전 대통령의 부패혐의에 대한 형량선고를 하기 전날, 당시 군 참모총장이었던 이두아르도 빌라스 보아스 장군은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룰라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한다면, 군사행동을 단행하겠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트윗은 군 참모 전체의 동의 하에 작성한 것으로, 개인적인 돌발 행동이 아니었다.

보우소나루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2019년 빌라스 보아스 장군을 ‘선거전의 최고 공신’이라고 치켜세웠다.(5) 빌라스 보아스 장군 트위터 계정을 팔로잉하는 현역 군인 115명이 2018년 4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정치 편향적인 트윗을 3,427개나 올렸고 이들의 팔로워는 67만 명에 달했다.(6) 군의 지침은 보우소나루 지지 캠페인을 비롯한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위반 시 처벌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권력과 부, 모든 것을 원하는 군인들

결국 보우소나루가 대선에서 승리하자, 군부는 군사독재정권 시절보다 더 적극적으로 관직을 장악했다. 회계감사원(TCU)에 의하면, 2020년 7월 민간인을 고용해야 하는 개방형 공직을 무려 군출신 6,157명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그 중 절반이 현역군인이었다. 2016년 지우마 호세프 정부 당시만 해도 이 수는 2,957명이었다(4년 동안 공무원의 수가 늘어난 것도 아니다). 2003~2010년 노동자당 소속 룰라 전 대통령의 집권시기에도 군의 권력은 막강했다. 룰라는 군부와 대립을 피하고자 자신이 임명했던 첫 국방부 장관을 해임했고, 군이 토착민 토지 구획 등 정부 정책에 관련해 비난해도 처벌하지 않았다. 이후 2011~2016년 대통령을 역임했던 호세프는 2014년 월드컵 축구대회와 2016년 하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보안이라는 명목 하에 군의 손에 리우 데 자네이루 빈민촌 치안문제를 맡겼다.(7)

이렇게 지속돼온 군의 권력은 점점 막강해졌다. 장관 23명 중 7명이 군 장성이며 이들은 국영기업 46개 중 16개 운영에도 참여했다. 이 중에는 브라질의 대표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도 포함돼 있다. 리우 데 자네이루 프루미넨스 연방대학의 국제관계학부 마르시알 수아레즈 교수는 “브라질이 ‘군사 정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베네수엘라보다 관직에 있는 군인들 수가 더 많다. 이렇게 많은 군 장성들이 고위 관직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리우 데 자네이루 연방대학의 국방 연구원 아드리아나 아파레시다 마르크는 “아이티에서 유엔 평화유지군 임무를 수행했던 브라질 군도 고국으로 돌아와 공직을 차지했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브라질 정부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예비역 장군 9명은 2004~2017년 아이티에 주둔하면서 유엔 평화유지군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평화유지군 목표 중 하나가 군인이 자국의 정치에 관여하지 않도록 해외로 파견시켜 군의 정치화를 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엔은 파견 군인에게 군사적 활동 외에 정치적 업무도 맡김으로써, 의도하지 않게 군인들이 정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터 줬다.

아이티 비정부 기구 등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군은 유엔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자평하며 귀환했고, 마침 당시 소속 정당이 없어 정부를 구성하기에는 인재가 부족했던 보우소나루는 이들을 영입했다.(8) 브라질 군대와 국가 위기를 연구하는 사오 카를로스 연방대학의 사회과학부 로베르토 마르틴 필로 교수는 군 장성들이 이렇게 차출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군이 전략적으로 전문능력을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9) 군 장성들은 주로 게툴리오 바르가스와 돔 카브랄 경영전문 학교에서 행정, 홍보, 경영학과 학위를 받아 전문성을 키워 정부 관료직에 진출할 채비를 갖춘다.

2014년부터 지방 선거와 연방정부 선거전에 나서는 군인의 수가 부쩍 증가했다. 이 현상에 대해 알레시오 리베이로 소우토 장군은 “군인은 능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청렴하기 때문에 군이 국정 지휘를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부정부패의 온상이 돼버린 정계와 건설업체간 불법 거래가 군사독재정권 시절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잊어버린 듯하다. 군인들은 권력은 물론 부도 탐하고 있다. 신세대 군 장교들은 엘리트라는 사회적 인식에 비해, 처우와 급여가 형편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실속을 챙기려 한다. 이들은 이전 세대들과 달리 자유주의 경제관을 갖고 있다.(10) 보우소나루 정부의 군은 급진적 자유주의를 주창하는 파울로 게데스 재무부 장관과 관계가 매우 돈독하다. 리우 데 자네이루 연방대학 경제학부 에두아르도 코스타 핀토 교수에 의하면, 이들은 전기회사 엘렉트로브라스등 국영기업과 교통 인프라의 민영화를 추진했고 페트로브라스 정유 공장과 석유 자원의 매각에도 적극 찬성하고 있다. 

 

240명이 죽었는데, “소규모 시위에 불과”

하지만 군부가 국정운영에 나선 지 2년 반, 결과는 실망스럽다. 예비역 장군인 아미우통 모랑 부통령이 진두지휘했던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 정책은 아무런 성과가 없어서 국제 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현역 장군 에두아르도 파수엘로가 보건 장관으로 임명된 후 10개월 이상 코로나19 방역을 주관했으나, 사망자 수가 수십만 명에 달했다. 국민들이 교회만큼 강력하게 지지했던, 군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2021년 18%나 하락했다.(11)

마르틴 필로 교수는 3군 총장의 사퇴에 대해, “보우소나루 정부에서 상황에 따라 발을 뺄 수 있는 퇴로를 만든 것뿐이며, 이 사퇴로 인해 현 정부 내 군의 입지가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패혐의로 구속됐던 룰라 전 대통령이 최근 실형 무효 선고를 받고 정계로 복귀했고,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했다. 그러자, 군은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군의 이념에 동조하는 중도 우파 후보를 대선에 내세워 좌파의 집권을 막으려는 것이다. 

쉬리오는 “군부 없는 브라질 정부는 불가능하다”라고 단정했다. 군인 수천 명이 정부 각처 직위에서 물러나, 현재의 10%에 불과한 급여를 받게 되는 것을 수용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모랑 부통령을 비롯한 일부 군 장성들은 이미 상원의원직을 차지하기 위해 꼼수를 쓰기 시작했다. 지난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 이후,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군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나라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과격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의 민주주의가 미국에 비해 훨씬 취약하고 보우소나루가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군이 무모하게 헌법에 반하는 대통령을 따를 리는 없다. 

그런데 군인뿐만 아니라 70만 경찰(예비역 25만 명 이상)도 점차 정치화되면서 보우소나루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나타난 경찰들의 언행에 관한 최근 조사에 의하면, 군사경찰 간부 35%와 병사 41%가 보우소나루를 지지하는 웹사이트에 가입해 활동 중이다. 수사관과 연방 경찰관의 경우, 이 비율은 각각 12%, 13%다. 보우소나루가 종종 저격하는 대법원과 의회에 대한 공격적인 댓글들은 이들의 과격화 징조를 보여준다. 

상파울루 군사경찰 예비군 대령 아딜손 파에스 데 소우자는 “2020년 2월, 경찰이 세아라 주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에 불복하는 주지사에게 퇴거를 요구하며 일으킨 폭동을 봐도 알 수 있듯, 경찰은 불법적으로 보우소나우 지지활동을 벌일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12) 세아라 주 수도 포르탈레자에서 경찰 폭동으로 인한 사망자가 240명이나 발생했다. 그럼에도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소규모 시위에 불과했다”라며 수습을 위한 군부대 지원도 제한했다. 이렇게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폭동을 좌시하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나쁜 전례를 남길 것이라는 우려가 깊다. 

 

 

글·안 비냐 Anne Vigna
독립 저널리스트.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라디오 프랑스>의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아르트>에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1) ‘Entre golpista e velhacos 최우선과 목표 사이’, <Estado de São Paulo>, 2021년 3월 31일.
(2) Andrea Jubé, Fabio Murakawa Matheus Schush, ‘Cresce temor de politização des Forças Armadas 군의 정치화 위험’, <Valor Economico>, São Paulo, 2021년 3월 31일.  
(3) <채널 A 크리티카> 인터뷰, Manaus, 2021년 4월 23일. 
(4) Renaud Lambert, ‘Le Brésil est-il fascite? 브라질 사람들은 모두 파시스트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11월호. 
(5) 페르난두 아베제두 데 실바 장군의 국방부 장관 임명식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연설, 2019년 1월 2일. 
(6) Marcelo Godoy, ‘Soldados influenciadores : os guerreiros digitais do bolsonarismo e os tuítes de Villas Bôas’, Joao Roberto Martins Filho(주 저자), Os militares e a crise brasiliera, Alameda, São Paulo, 2021년. 
(7) Anne Vigna, ‘Pacification musclée 강압적인 ‘평화 회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1월호. 
(8) Celso Castro, Adriana Marques, 『Massão Haiti: a vosão dos force commanders』, FGV, Rio de Janiero, 2019년. 
(9) João Roberto Martins Filho(주 저자), ‘Os militares e a crise brasiliera’, op.cit. 
(10) Raúl Ziberchi, ‘Que veulent les militaires brésiliens 브라질 군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2월호. 
(11) Exame/IDEA 여론조사, 2021년 4월 10일 
(12) ‘Politica e fé entre os policiais militares, civis e federais do Brasil’, Forum da Seguraça Publica, São Paulo,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