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마피아의 존재 이유

2021-05-31     조반니 예라르디 l 전 페틸리아 폴리캬스트로 시장

지난 1월 13일 이탈리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인 칼라브리아의 주도 카탄자로의 라메치아 테르메 지역의 벙커 형태의 법정에서 열린 ‘세기의 재판(Maxiprocesso, 막시 재판이라고도 함, 수많은 피고인들에 대해 장기간 진행한다는 뜻-역주)’은 마피아와 은드랑게타(칼라브리아를 거점으로 활동), 코사 노스트라(시칠리아), 카모라(나폴리), 사크라 코로나 우니타(풀리아) 같은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에 대해 고찰할 기회를 준다.

 

피고인 250명, 혐의 438건, 변호사 600명, 손해배상 청구인이 30명. 이 엄청난 규모의 재판에, 세계 각국의 기자들은 3,300m² 면적의 콜센터를 개조한, 경비가 삼엄한 임시 법정에서 앞다퉈 취재 경쟁에 나섰다. 바로 이 기념비적인 장소에서 니콜라 그라테리 검사가 정치계, 지역 엘리트집단과의 중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프리메이슨, 비즈니스업계와 은드랑게타의 유착관계를 밝히게 된다. 범죄단체 가입·활동, 살인, 갈취, 고리대금, 돈세탁, 공용재산 전용 등 혐의는 넘친다.

 

살해위협 끝에 열린, 의문투성이 재판

수사가 진행된 4년 동안 담당 검사는 계속 살해위협을 받았고, 결국 그에 대한 신변보호조치가 강화됐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열린 이 재판의 명칭은 ‘리나시타-스코트(Rinascita-Scott)’다. 이 명칭은 칼라브리아(이탈리아 반도의 장화 모양 코 부분)가 마피아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재탄생, 부활을 의미하는 ‘리나시타’와, 그라테리 검사가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과 은드랑게타와의 관계를 밝히는 데 도움을 준 FBI 요원, 시븐 윌리엄 스코트(2015년 사망)를 기리며 ‘스코트’라고 명명했다.

첫 공판일인 1월 13일, 이른 아침 법정에 나온 검사는 카메라 앞에서,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할 필요성(공소시효 만료를 피하기 위해)을 강조했다. 또한 대중에게 사법당국과 경찰조직을 “신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떠오르는 기억이 많다.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사건들, 통계들, 의회 보고서(마피아 관련 최초 보고서는 1876년에 나왔다), 수많은 관련 인물들, 영웅들, 범죄자들, 재판관들, 1962년 의회에 설립된 반마피아위원회, 파비아대학교, 로마대학교 등지에서 열리는 셀 수 없이 많은 반-마피아 운동 관련 강좌들... 또 다른 ‘세기의 재판’, 1986~1987년 팔레르모에서 열렸던 ‘코사 노스트라 재판’도 생각난다. 이탈리아 정부의 마피아 단죄 의지가 엿보인 최초의 막시 재판은 강력한 처벌로 귀결됐다(총 2,265년 선고). 마지막으로, 재판에 불만을 품은 코사 노스트라의 보복 행위로 인한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오른다. 1992년 5월 23일 도로에 설치된 폭탄 500kg이 터지면서 팔코네 부부와 경호원 세 명이 피살됐다. 이 폭탄 테러로 시칠리아 도로의 일부 구간이 갈갈이 찢겼고, 이는 이탈리아 역사의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엄청난 사건’ 이후 이탈리아 정부는 대 마피아 전쟁을 보다 더 강력하게 시행하게 됐다. 

살바토레 ‘토토’ 리이나의 뒤를 이어 코사 노스트라의 새로운 ‘보스’로 등극한 베르나르도 프로벤자노는 무지막지한 폭력 대신 신중한 물밑 전략을 채택했다. 프로벤자노 체제 하에서(1995~2006년) 코사 노스트라는 음지에서, 조용히 활동했다. 엄청난 규모의 마피아 재판을 통해 이탈리아 정부가 힘을 과시하고 마피아에 대한 강력한 단속의지를 내비친다고 해도, 아직 의문은 남는다. 이 재판이 언제, 어떻게 끝날 것인가(팔레르모 재판은 약 5년 걸렸다)? 최종선고를 받을 피고인의 숫자와 형량은? 경제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피아란 무엇인가? 

 

마피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시칠리아 민속학 전문가인 주세페 피트레는 “마피아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1)라고 말한다. 피트레는 특정한 인생관, 행동규범, 법과 국가의 테두리를 벗어난 심판 방식과 같은 ‘마피아적 감수성’을 상기시킨다. 1960년, 레오나르도 샤샤는 자신의 소설, 『올빼미의 날』(2)에서 코사 노스트라를 ‘부르주아 계층의 이익을 관리하는 시스템’이라고 정의했다. “마피아는 국가가 없이는 생겨날 수도, 성장할 수도 없는, 국가 내부에서 생겨나고 확장하는 시스템이다. 결론적으로 마피아라는 조직은 ‘기생(寄生) 부르주아’에 불과하다. 스스로는 그 무엇도 하지 못하고 부르주아에 기생해 착취하는 세력”이라고 ‘마피아의 성향’을 규정했다.   

마을의 벽들에 흔한 낙서, ‘마피아는 나쁜 산!(La Mafia est une montagne de merde!)’은 합법적인 비난의 표현이다. 그러나 마피아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고 마피아에 대항하려면, 비난만으로는 부족하다. 마피아가 ‘산’이라는 것은, ‘담배, 위조품, 마약, 무기, 돈 등으로 쌓아올린 산’이라는 의미다. 특히 폭력과 부정부패를 이용해서 말이다. 능력이 뛰어난 ‘기업형 마피아’(3)는 예전부터 발전해왔는데, 운영, 조직, 축적에 능하며 구성원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보스(리더), 관리자, 행동대원, 준구성원, 친족, 공급자, 고객(의뢰인), 소비자 등이 그것이다. 

마피아는 그들만의 법을 만들어 강제하고 중재하며 협상에 관여하고 중개에 나선다. 국가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생겨나서 번영하는 두 번째 국가처럼 말이다. 따라서 ‘마피아의 존재 이유’를 이해해야만 한다.(4) 때로는 지나친 자화자찬처럼 들리는 이 말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범죄조직에 대응하려면 이 조직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 가치, 상징적 세계, 법질서, 즉 그들의 문화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은 통일 이탈리아의 건국과 함께 시작됐다. 1861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탄생하면서 매우 민감한 사안인 ‘남부 문제’가 대두됐다. 낙후된 남부지역이 통일 이탈리아 내에서 다른 지역보다 뒤처지게 된 것이다. 마치 두 개의 조직체가 각자의 속도로 진화하는 것 마냥, 통일국가 수립 초기부터 남북부간 경제적 격차로 인한 균열은 신생국가의 경제, 정치, 시민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커다란 모순, 대립으로 자리 잡았다. 북부지역 왕국들은 이웃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경제를 발전시켰고, 북부의 부르주아지들이 패권을 잡았다.

경제와 사회기반시설이 열악한 남이탈리아에서 ‘지주’, 지배계층은 반란과 농민폭동으로 자신들의 권력이 위협당할까 우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토지와 지배권 유지를 위해 자연스럽게 여러 무장 결사단체의 연합체인 마피아와 손을 잡았다. 게다가 마피아는 이미 ‘이탈리아의 국부’, 주세페 가리발디 장군마저 격파한 상태였다. 가리발디 장군은 농민들에게 토지분배를 약속했는데, 마피아는 대지주의 행동대장으로 활약하며 토지개혁을 무산시켰다.

통일 당시 남부에서는 대지주와 마피아, 자영농과 소작민이 대립하고 있었다. 새로운 통일국가는 세금과 병역 부과를 통해 국민의 원성을 샀고, 빈농 가정의 경작에 필요한 일손을 빼앗았다. 이탈리아 정부는 남부지역 문화와 동떨어진 헌병대를 파견해 중앙권력에 반대하는 남부 주민들을 설득하려했다. 이 모든 것이 마피아 세력을 강화하고 일부 주민들에게 마피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됐다. 신입 마피아 조직원의 통과의례인 입단식을 보면 용기, 실력, 명예 등을 강조하는, 마피아의 이상적 신념이 엿보인다.(5) 마피아는 남부 이탈리아의 아주 오래된, 정신을 강조하는 전통에 기반한 가치들을 그들의 현실과 목적에 맞춰 왜곡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지역에 자리잡은 은드랑게타는 수많은 문화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수십 년간 계속 변화를 겪었다. 아스프로몬테 산지의 미로 같은 밀림의 보호를 받으며 1980년대까지 갈취와 납치를 일삼던 마피아는, 마약을 취급하면서 국제적인 불법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규율과 가치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마피아에는 보수성과 현대성, 전통과 혁신, 초기 의식과 기업문화가 공존한다. 마피아 입단식은 예전과 같지만(입단식 장소 정화, 밀교 방식, 피를 통한 서약), 조직원들은 ‘최신식’이다. 이들은 인터넷 등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돈을 세탁한다.(6)

마피아 문화에서 교도소는 핵심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역할을 한다. 고난의 장소인 동시에 ‘주먹, 칼, 각목’ 사용법을 배우고 서열을 정하는 장소다. ‘은드랑게타(Ndrangheta)’라는 명칭은 ‘좋은 사람’을 뜻하는 그리스어(Aner agathos)에서 따왔다. 마피아는 스스로를 ‘Ndrine(파벌, 가족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의 영토를 연결하는 ‘완전한 사람들’의 결사로 여겼다. 

그러나 조직이름에서조차 남성우월주의가 묻어나는 은드랑게타는 가족, 파벌, ‘Ndrina(은드랑게타의 단위조직인 ‘패밀리’를 지칭하는 단수 명사. 복수가 ‘Ndrine-역주)를 결집하는 어머니라는 상징적 인물이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모순을 보인다. 파벌의 우두머리는 ‘일 맘마 산티시마(il mamma santissima: 가장 성스러운 어머니에, 남성형 정관사 il을 붙였다-역주)’라고 불리며 조직을 결속한다. 코사 노스트라나 카모라와는 달리 은드랑게타에서는 ‘사법당국에 협조하는’ 변절자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남부사람들이 줄지어 고향을 떠나면서(칼라브리아가 특히 심하다) 도시와 마을에서 남성 대부분이 빠져나갔다. 따라서, 아버지들과 국가가 부재한 가운데 여성들에게 사회적 조직력이 생겼다. 은드랑게타가 공고히 뿌리내린 이유, 하부조직들이 복잡하게 얽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안의 마피아부터 척결해야”

이런 현실을 이해하려면, 우선 마피아에 대한 단순하고 정형화된 이미지들을 버려야 한다. 가령, 마피아는 범죄조직이므로 경찰력과 사법당국만이 잡을 수 있다거나, 마피아는 인간의 ‘선한 본성’과는 동떨어진 현상이라거나, 마피아는 질병, 즉 숙명이므로 우리가 대적할 수 없다는 생각들이 그것이다.(7) 우리가 마피아를 격퇴할 수 있을까? 

팔코네 판사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마피아는 인간적인 현상이다. 인간에 관련된 모든 현상과 마찬가지로 마피아에도 시작이 있고 변화가 있으므로, 결국 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끝은 언제, 어떻게 올까? 대규모 검거와 재판만으로 마피아를 끝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물론, 그것도 필요한 일이고 효과가 있겠지만 말이다. 팔코네 판사는 “효과적으로 마피아를 척결하려면 그들을 괴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마피아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반(反) 마피아 투쟁은 특히 마피아의 세력확장을 막는 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교육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학교가 ‘저항 세력’을 조직하는 데 이상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라테리 검사는 무엇보다도 마피아가 되지 않겠다는, 그리고 마피아적 ‘가치’를 절대 부정하는 ‘동기’를 심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2년 마피아에 의해 살해된 시칠리아의 파올로 보르셀리노 판사는 “청년들이 마피아적 가치를 부정하게 되면 절대 권력을 가진 비밀스러운 마피아 세력이 악몽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려면 강력하고 완전무결한 국가, 국민과 가깝고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가 돼야 한다. 마피아는 수감됐거나 어려움에 처한 조직원의 가족들을 돕고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실업률이 20.1%에 이르는 칼라브리아에서(이탈리아 실업률은 9.2%) 국가의 역할은 막중하다.(8) “어떻게 해야 마피아를 없앨 수 있을까요?” 칼라브리아 출신 작가, 사베리오 스트라티는 한 학생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해요. 내 안의 마피아를요. 우리, 남부 주민들은 일상적으로 마피아적 사고를 합니다. 모두들 자신과 가족만 생각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아직 줄서서 기다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이런 기본적인 시민정신도 부족하다는 거죠. 우리가 줄을 서지 못하는 한, 마피아는 번영을 누릴 겁니다.”(9) 

 

 

글·조반니 예라르디 Giovanni Ierardi
라파엘레 롬바르디 사트리아니 민속·사회연구소 알토 크로토네제(Alto Crotonese)부문 의장(칼라브리아 소재), 전 페틸리아 폴리캬스트로 시장(칼라브리아)

번역·조승아
번역위원


(1) Giuseppe Pitrè, 『La Mafia e l’Omertà 마피아와 오메르타(침묵의 규율)』, Edizioni Brancato, Catania, 2007.
(2) Leonardo Sciascia, 『Le Jour de la chouette 올빼미의 날』, Flammarion, coll. <GF>, Paris, 2015.
(3) Pino Arlacchi, 『La Mafia imprenditrice. L’etica mafiosa e lo spirito del capitalismo 기업형 마피아, 마피아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Il Mulino contemporanea, Bologna, 1983.
(4) Collectif, <Le Ragioni della Mafia. Studi e ricerche di ‘Quaderni calabresi’(The Reasons of the Mafia. Studies and researches of ‘Calabrian notebooks’)>, Jaca Book, Milano, 1983.
(5) (입단식에 관해 참조) Enzo Ciconte, 『Storia criminale. La resistibile ascesa di Mafia, ‘Ndrangheta e Camorra dall’Ottocento ai giorni nostri(Crime story. The resistant rise of the Mafia, 'Ndrangheta and Camorra from 19th century to the present)』, Rubbettino, Soveria Mannelli (Catanzaro), 2008.
(6) Nicola Gratteri & Antonio Nicaso, 『Fratelli di sangue. La ‘Ndrangheta tra arretratezza e modernità : da Mafia agro-pastorale a holding del crimine(Blood Brothers. The 'Ndrangheta between backwardness and modernity: from agro-pastoral Mafia to criminal holding company)』, Luigi Pellegrini Editore, Cosenza, 2006.
(7) Luigi M. Lombardi Satriani, ‘Il trionfo della mortificazione’, et Francesco Tassone, ‘Le letture separatee’, dans『Le letture della Mafia』, Qualecultura - Jaca Book, Vibo Valentia - Milan, 1989
(8) 이탈리아 국립통계청(ISTAT), Rome, 2020.
(9) Collectif, <Strati a Petilia(Strati in Petilia)>, Stampa Due L, Mesoraca,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