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공장’으로 전락한 폭발 직전의 프랑스 사법부

서류더미 불안증 증후군

2021-05-31     장미셸 뒤메 l 기자

에릭 뒤퐁모레티 프랑스 법무장관은 형사 변호사 시절의 견해를 반영한 잡다한 개혁안으로 사법인력과 갈등을 겪고 있다. 프랑스는 여전히 사법부에 극히 적은 예산만 할애하고 있다. 고질적인 인력부족으로 혹사당하는 판사, 검사, 서기, 행정직원은 정부가 포괄적인 비전 없이 남발하는 개혁을 더 이상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민사 1심 법원(TJ, tribunal judiciaire)(1)은 소송 포화상태다. 이 소송 중 일부는 법원의 포화상태를 고발하는 소송이다. 3월 말, 프랑스변호사노동조합(SAF) 소속 변호사들은 보르도에서 소송지연 피해자들을 대표해 20여 건의 피해보상 소송을 진행했다. 해고의 부당함을 인정받는 데 5년, 고용주의 거짓말을 입증하는 데 4년 반이 걸렸다. “소송하는 동안 삶이 멈춘다. 고통 속에서 정의실현과 정당한 배상금을 기다려야 한다.” 한 변호인이 역설했다.(2)

소송 처리기간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이는 유럽인권조약의 요구 사항이자, 여론조사에서 소송당사자들이 최우선으로 꼽는 사항이다. 소송 처리 건수를 보면, 법원은 ‘판결을 찍어내는 공장’이다. 2019년, (개인 또는 법인 간 분쟁을 해결하는) 민사법원과 상사(商事) 법원은 약 225만 건의 판결을 내렸다.(3) (위법행위를 처벌하는) 형사법원의 경우 400만 건이 넘는 신규 사건을 취급했다. 이 중 검사가 ‘기소 가능’으로 분류한 사건은 130만 건이다. 매년 평균 이 정도 분량의 소송이 사법기관을 거친다. 이런 적시생산 방식(Just-in-time)은, 추가 재고를 막을 수는 있어도 이미 쌓인 재고를 ‘처리’할 수는 없다.

 

“법원이 기계화되고 있다”

법원장들은 소송의 ‘유량(Flow)’과 ‘저량(Stock)’에 대한 강박관념에 빠졌다. 2020년, 뜻밖의 두 사태가 문제를 악화시켰다. 연금개혁에 반발한 변호사들이, 그해 1월부터 지속적인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코로나19 발발로 법원은 (필수 소송을 제외하고) 2개월간 문을 닫았다. 파리에서는 노사갈등, 은행거래, 공동소유권, 건축 등과 관련된 소송기간이 30개월로 훌쩍 늘어났다. 리옹법원(TJ)에서는 일부 분야의 소송기간이 2배로 연장됐다. 미카엘 야나스 리옹법원장은 이 상황을 ‘모래 폭풍”으로 요약했다. 이 모래 폭풍은 사법인력에 영향을 미쳤다. “직원들은 지쳤다”,

“직원들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법관, 서기, 행정직원 모두 그들을 혹사시키는 업무량을 지적했다. ‘희생’으로 표현하든, ‘업무과다’로 표현하든, 그들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나약함을 용인하지 않는 직업 문화 속에서 사법관들은 폭발 직전이다. 직원들은 열정, 사명감, 목숨을 바쳐서라도 해내야한다는 억척스러움으로 버티고 있다.” 판사들이 소속된 사법관노동조합(SM)이 2019년 실시한 조사에서 경고한 내용이다.(4)

그렇지 않아도 지쳐있는 사법관들은 판결에 따른 정치계와 언론의 끊임없는 비판도 감수해야 한다. 특히 반향이 컸던 판결을 예로 들어보자. 올해 3월, 부정부패와 알선수뢰 혐의로 기소된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4월, 파기원(Cour de cassation, 한국 헌법재판소에 해당-역주)은 사라 알리미 살해범에게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며 이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열띤 법의학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파기원의 판결에 유감을 표시했다. 

일례로, 프랑스 북부 엔주(州) 수아송의 소규모 법원의 업무량을 보자. 1930년대에 지어진 법원 건물에서는 기둥이 즐비한 궁전의 상징적인 위엄도, 신축 법조타운의 차가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포르트 드 클리시에 새로 지은 파리법원은 ‘하이테크 판결 제조 공장’같다. 수아송법원 소속 판사 8명, 검사 3명(2019년 말 검사실은 4개월 동안 공석이었다)의 사무실 캐비닛 안과 책상 위에는 서류와 소송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수아송 법원은 디지털화를 추진 중이지만, 그 속도는 한숨을 자아내고 복사기를 대체하기에는 요원하다.

이곳 법원의 소년부 판사 한 명이 위험한 상황에 처한 미성년자 800명의 사건을 담당하고 매년 1,000건이 넘는 판결을 내린다. 형 집행 판사 한 명의 경우 보호 관찰자 800명, 수형자 80명을 담당하며 연간 1,400건의 명령 또는 판결을 내린다. 후견 소송 담당 판사 2명은 2,000여 명의 후견인을 감독하면서 수백 건의 급여 압류, 임대료 미지급, 파산신청도 담당해야 한다. 언론의 주목을 받는 소송은 대부분 형사소송이다. 이자벨 쇠랭 수아송법원장은 “수아송 법원은 이런 소송들과는 거리가 먼, 가난한 이들의 법원”이라며 “국민 가까이 존재해야 하는 이 법원이 기계화되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수아송 법원은 여성 사법관(2020년 전체 사법관 68%가 여성)과 졸업 후 첫 부임한 젊은 사법관(대개 30세 이하)이 이끌어가고 있다. 법원 복도에 걸린 사법관 모집 포스터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정의 구현의 자부심! 사법관에 지원하자.” 물론 여기에 “주말은 포기해야 한다”라는 문구를 추가해야 했다. 수아송 법원을 좀 더 둘러보자. 가사부 판사의 경우 이혼, 양육권, 양육비 등과 관련된 소송 700건을 담당한다. 소송 당사자들은 소송기간이 너무 길다고 불만이 많다. 한 서기는 전날에만 소송지연 불만 전화 6건, 이메일 30여 건을 받았는데, 모두 답변을 해줘야 했다. 추가 업무는 계속 발생하는데, 이를 처리할 서기는 부족하다! 현재 수아송 법원 서기 16명 중 2명이 공석이다. 행정직의 경우 공석률이 17%에 달한다. 형 집행이 3년까지 지연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 

크리스텔 세르니크 서기과장은 법원의 문제점으로 노트북 부족(1차 봉쇄기간 원격접속 문제도 함께 드러났다), 전산화 지연, 개혁 반영 부족 등을 꼽았다. 소법원과 지방법원을 합병하면서 모두 이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르니크 서기과장은 서기과의 고충을 언급했다. “지쳐서 우는 서기들을 달래고 인솔해야 한다. 우리는 규율을 준수하며, 감내할 뿐이다.” 미셸 마제 렌법원 서기과장도 “쉴 틈이 없다”라고 하소연했다. 렌법원의 후견부는 2년 전부터 부서 차석이 공석이다. 전국적으로 7%에 달하는 공석에 병가, 출산휴가까지 겹친다. 종종 조건이 나은 다른 부처로 옮기는 직원들도 있다. 그 결과, 여러 업무를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급여 압류부는 부족한 인력을 일시적으로 대체하기 위해 민사소송 서기과나, 가사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서커스가 일상이 돼버렸다!”

 

재판 시간이 부족하다

인력부족은 체감기준을 넘었다. 유럽연합(EU)정상회의가 설립한 유럽사법효율성위원회(CEPEJ)에 의하면 2018년 프랑스가 사법부에 할애한 예산은 국민 1인당 평균 69.5유로다. 스페인 92유로, 네덜란드 120유로, 오스트리아 125유로, 독일 131유로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5) 국부(國富)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프랑스는 국내총생산(GDP)의 0.2%, 독일은 0.32%, 스페인은 0.36%를 할애한 셈이다. 사법부 편성법(LPJ) 채택으로 2018~2020년 사법 예산이 24% 증가하긴 했다. 하지만 이는 상승추세인 형무행정 예산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2010~2019년 동안  지속적으로 늘어난 형무행정 예산이 총 25% 증가할 때, 법원 예산은 11%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CEPEJ는 인구 10만 명당 직업 판사 수를 프랑스 11명, 독일 24명으로 집계했다. ‘판사를 제외한’ 법원 직원(서기, 행정 보조 등)의 경우 프랑스 34명, 벨기에 43명, 독일 65명이다. 검사의 경우 프랑스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유럽에서 가장 적고(인구 10만 명당 프랑스 3명, 독일과 벨기에는 7명) 업무량은 최고 수준이다. 7만 프랑스 변호사를 대표하는 국립변호사회(CNB) 제롬 가보당 회장은 “사법관들은 재판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 이들은 이런 상황을 사법관이라는 직책의 격하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마르세유 변호사회장을 역임한 가보당은 “판사들은 이제 판결에 치중한다”, “재판이 사라지는 추세다”라고 지적했다. 단독판사 재판이 점차 일반화됐다. “판사들은 합의제를 포기했다. 더 이상 평결을 내리지 않는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원고와 피고 측 합의를 거쳐) 구두변론을 생략한 재판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도 같은 맥락이다.  

시간 부족은 ‘서류 더미 불안증’을 낳았다. 현재 프랑스 남부의 법원에 소속된 15년 경력의 한 소년부 판사는 “소송 유량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유량을 따라가지 못하면 끝장이다”라고 증언했다. 매일 재판에 참석하고 아침에만 5건을 처리하는(“모두 중대하고 시급한 사건들이다”) 이 판사는  “유량은 끊임없이 유지된다”라고 덧붙였다. 민사소송을 담당하는 동료 판사 한 명도 “재판 중에도 한쪽 눈은 손목시계에 고정돼 있다”라며 시간 강박증을 호소했다. 그는 “재판 하나가 지체되면, 모든 재판이 연쇄적으로 밀린다. 빚이 점점 쌓이면 파산하고 마는 것과 같다”라고 덧붙였다. 

중죄와 경범죄를 취급하는 형사법원의 경우 몇 년 전 ‘실시간(소송)처리(TTT)’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경찰 또는 군사경찰대 수사관이 제출한 사건을 사법관이 상시 전화로 실시간 지휘한다. 투르 형사법원은 2020년 6월부터 최신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도입해 이 제도를 한층 더 효율적으로 운영 중이다. 평균 통화 대기 시간은 5분이다. 매일 80건의 통화를 처리할 수 있다. 

어느 화창한 봄날, 한 젊은 대체근무자가 헤드셋을 착용하고 계속 전화를 받고 있다. 정면에는 2개(화상통화용까지 3개)의 화면이 떠 있다. 통화 대기 중인 경찰서 또는 군인경찰대가 화면에 차례로 뜬다. 모든 통화는 색상 코드로 우선순위가 매겨진다. 통화를 연결한다. 절도, 가정폭력, 향정신성 약물 복용 후 운전 사례 등이 쏟아진다. 통화는 끊임없이 밀려든다. 당일 유치된 피의자 현황을 매번(동시에 15건 정도) 화이트보드에 기록한다. 이후 상주 검사가 (1만 개가 넘는 법규 중에서) 어느 법규 위반에 해당하는지 판별한다. 그리고 즉석에서 사건을 지휘 한다. 사건 종결, 기소 유예(사회봉사, 피해 배상 등), 즉결 심판, 정식 재판 회부 등 광범위한 가능성을 고려하면, 검사는 거의 판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검사는 신분의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위계질서 상 법무부에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과정이 신속할수록 판결을 더 쉽게 납득시킬 수 있다.” 그레구아르 뒤랭 투르법원 검사장이 설명했다. 2019년 새로운 법원장, 서기과장과 함께 부임한 그는 투르 법원의 “실적 향상”, “공무원 근무 조건” 개선, “비생산적인 시간” 추적을 위해 검사실 운영방식을 개편했다. 뒤랭 검사장은 외부 자금(단체, 도청)을 조달하기 위해 ‘부서 간 협업을 통한 사업 추진팀’ 운영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현재 법원의 관리망 밖에 있는 미성년 및 성년 초반의 10여 명을 담당할 ‘슈퍼 사회복지사’ 사업 자금을 마련 중이다. 뒤랭 검사장은 진행 중인 소송 통계도 매주 확인한다. 2년 사이에 검찰 송치는 3배, 즉결 심판은 2.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유죄인정(CRPC; 사전에 유죄를 인정한 후 검찰에 출두하면 검사가 고지된 범죄사실에 대해 형을 제안하고 재판을 진행하지 않는)’은 9배 증가했다. 이 모두가 ‘더 많은 판결’을 위한 것이다. 유죄인정은 판사가 단독으로 한나절 안에 승인할 수 있다.

 

리옹 법원장, “법원이 사회적 갈등완화 임무에서 멀어져”

더 빠르게, ‘더 많이 판결하기’에는 격렬한 논평이 항상 뒤따랐다. 로이크 카디에 소르본 법대 교수는 2010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형사소송 과정에서는 너무 많은 업무가 발생한다. 형사적 대응률에 대한 숭배는 형사적 대응의 질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형사적 대응의 질을 가늠하는 척도는 감옥에 보내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 수감자들의 사회복귀다.”(6) 사법관 노동조합은 “대량 판결”을 격렬히 비판한다. 즉결 심판은 대량 판결의 전형적인 예다.

발두아즈주(州)는 청년들이 참여하는 취업지원 연수회를 진행했다. 이 연수회는 지난 1월 파리에서 개최된 한 재판장을 참관했다. “흑인을 재판하는 백인의 법원.” 법원, 검사, 피고석의 구성을 분석한 한 참가자가 변호인석과 법 집행기관 측의 인종 다양성을 지적했다. 재판장에서는 배우자에 대한 폭력과 휴대전화 절도 건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한 흑인 변호사는 의뢰인의 무죄석방을 얻어냈다. “가난한 사람들을 재판하는 부자들의 법원.” 재판장을 참관한 다른 청년 한 명이 덧붙였다. 

2018년, 입학시험 다양화로 국립 사법관학교(ENM)는 좀 더 다양한 사회 계층에 개방됐지만 현직 사법관(전체 약 8,500명) 100명 중 최상위 사회 집단 출신(기업가, 고위 간부, 자유직, 높은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직업군의 자녀)이 63명에 달한다. 반면 서민 노동자 계층 출신은 12명에 불과하다.(7) “동료 사법관 전부가 이 사회적 지배관계를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 앞서 언급한 남부지역 법원 소년부 판사가 평가했다. 

브르타뉴의 한 판사는 “형사법원의 즉결 심판과 민사법원의 가사 재판으로 매상 올리기에 급급하다”라며, “보여주기 식이다. 법원장의 경력을 위해 아무 문제가 없는 척한다.” 야나스 리옹법원장은 “오늘날 사법 활동의 핵심은 유량과 예산 관리”라고 지적하며 “사법기관이 가장 중요한 임무인 사회적 갈등 완화에서 멀어지고 있다”라고 유감을 표했다. 사법관 노동조합 동맹인 노동자의 힘(FO)의 베아트리스 브뤼게르 사무총장은 “현재의 사법예산은 내용에 무관심하고 인력관리 방안은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직원들은 완전히 지쳐버렸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은 드물지 않다. 벨기에 프랑스어 사용지역 나무르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마뉘엘라 카델리 판사는 “통계지표가 처방전이 됐다. 판사의 직무는 변질됐다”라고 한탄했다.(8) 더 이상 판사는 변론을 듣지 않고, 판결의 질이나 동기를 따지지 않는다. “질과 동기는 수치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법 서비스 이용자에게는 중요한 요소다.” 

법원이 현 상황에 처하게 된 전환점은, 2006년 발효된 재정법관련기본법(LOLF)에서 찾을 수 있다. 수아송 법원의 세르니크 서기과장은 “25년 전만 해도 이렇게 일하지 않았다. 지금은 숫자에 얽매여 있다. 예전에는 ‘직원’이었지만 지금은 ‘전일제 환산 노동력’이라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쇠랭 수아송 법원장도 법원이 ‘평가’와 ‘실적’을 중시하면서 사용하는 어휘가 변했음을 지적했다. “판사는 쌓인 서류 더미와 양심, 윤리, 양질의 판결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져, 고통 받고 있다”라며 “매일 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송당사자와 판사가 더 멀어진 상황  

카트린 파리넬리 아미앵 항소법원장은 최근 추가된 판사들의 다른 중압감에 대해서 언급했다. 파리넬리 항소법원장은 수 세기 동안 남성들이 맡았던 자리를 이어받은 여성 판사다. 그녀의 사무실 옆 복도에는 전임 남성 항소법원장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그녀는 우선 (아무도 무죄 추정의 원칙을 신경 쓰지 않는) 소셜 네트워크와 현대화의 압력을 토로했다. “우리는 끊임없는 지각 변동을 겪고 있다.” 가장 최근의 변화는 공공데이터 개방이다. 이제 대중이 법원의 모든 결정을 열람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열릴 것이다. 중앙집권화의 압력도 빼놓을 수 없다.

효율성, 경제성을 위한 노력은 소송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소송보다 합의를 장려하는 등 긍정적인 성과도 이끌어냈다. 그러나, 유량관리 논리를 강화해 소송 당사자가 판사와 멀어지는 상황을 초래했다.(9) 2020년, 파기원 노동재판부의 한 판사는 “4년 전부터 민사와 노동법 분야에서 판사에 대한 접근성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10)라고 단언했다. 사회법(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이 이에 해당됨-역주)과 관련된 연간 신규 소송 건수(2020년 12만 2,000건)는 10년 사이 절반으로 급감했다. 최근 도입된 규정으로, 사법기관은 전문 변호사를 고용할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이용할 수 없는 곳이 돼버렸다.  

경영원리에 입각한 진화는 사법기관의 관행을 변화시켰다. 유량과 저량 지표가 압력을 가한다. 각 법원은 마치 기업처럼 서로 경쟁한다. 그르노블과 보르도 정치대학의 두 연구원 바르톨로메오 카펠리나와 세실 비구르는 이로 인해 “유럽의 모든 사법관들이 전환점을 맞았다. 이런 흐름에 대한 저항은 더 이상 ‘사법 생산성 추구를 금기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생산성 지상주의’를 거부할 뿐이다”라고 저술했다.(11)

알자스 지방의 베로니크 크레츠 판사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지금은 경영의 시대다”라고 평가했다. 사법관 노동조합 소속인 크레츠 판사는 242개의 전문법원(사회보장제도 법원, 노동불능 쟁의 법원 등)을 없애고 통합 사회보장제도 법원(pôle social)을 신설한 2019년의 개혁을 내부인의 시선으로 묘사했다. 그녀는 “목적에 대한 담화(좋은 판결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내리는가?)대신 단 하나의 목적(어떻게 하면 더 많은 판결을 내릴 수 있는가?)에 수단이 집중되는”(12) 근본적인 변화를 목격했다. 

이 과정에서 ‘유량 최적화’는 소송들을 다른 법원으로 ‘피신’시켰다(30만 건의 소송이 민사 1심 법원으로 이전). 이 소송들의 이면에는 “사회보장제도에서 소외당한 이들과 장애인들, 경력단절과 불안정 노동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산재연금과 장애수당은 이들에게 목숨과 같다”라고 크레츠 판사가 상기시켰다. “판사가 소송 당사자들을 (유량 관리를 지연시키는) 적으로 여기는 것은, 판사의 본분을 상실하는 것이다.”

사법부는 양쪽에서 공격받고 있다. 한쪽에서는 예산 효율성을, 다른 한쪽에서는 (비용이 부족하더라도) 유럽인권재판소가 주장하는 소송 공평성을 충족시킬 것을 요구한다. 이를 두고 사법고등연구소(IHEJ) 소장을 역임한 사법관 앙투안 가라퐁은 2010년 “사법부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국가 재정을 구상하는 정책과 자신들이 선택한 (판결을 내리고, 보살피고, 교도하는) 직업이 경영방침에 전면 좌우되는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사법부 직원들이 대립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13) 예산 효율성에 관해서는 감사원의 보고서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14) 사법부는 필요한 전체 인력 규모를 규명할 관리수단 구축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이미 착수한 작업들은 진행이 더디다. “재앙을 객관화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노조원들이 설명했다.

 

검찰총장, “각급 법원은 미어터지고 있다”

2020년 7월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에릭 뒤퐁모레티는 부차적인 대책만 내놓고 있다. 정계의 시간은 사법부의 시간과 일치하지 않는다. 서기와 사법관을 양성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그가 고심 끝에 선택한 표현을 빌리면, “흡수가 빠른 당분”, 즉 단기계약직으로 채용한 법률 보조원, 검사 대행, 사법 보좌관이 법원에 ‘공급’됐다. 법무장관은 계류 중인 소송들을 처리하고자 특별 조사위원회에 (더 많은 변호사를 판사로 양성하는 것처럼) “혁신적인, 나아가 파격적인” 방안을 촉구하기도 했다. 뒤퐁모레티 장관은 법무부를 위해 “기록적인 예산”을 확보했다는 자찬도 잊지 않았다(실제로는 이전 예산안의 미집행분을 만회한 것에 불과하다). 

그는 또한 “사법기관의 신뢰성 재건을 위한” 법안을 발표했다. 일반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법부인 형사법원을 중심으로 잡다한 개혁이 뒤섞인 법안이다. 이처럼 뒤퐁모레티 법무장관은 오랜 시간 변호사로 일한 경험에서 얻은 과거의 신념을 저버릴 정도로(형사법원의 배심원단 폐지 일반화처럼)무리한 개혁을 추진 중이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당한 사법부 노조원들은 ‘개혁은 이제 그만!’이라고 일축했다. 노조원들은 자신들과 대화하지 않고 명백한 자가당착에 빠진 법무부를 거부하고 나섰다.(15) 법무부는 “한 행정 부처에 ‘정의(Justice)’라는 명칭을 부여한 것은 세기적 실수다”(16)라는 말만 반복한다. 최근 몇 년간 채택된 사법 관련 법률의 축적 때문에 쇼크 상태가 된 직원이 한두 명이 아니다. 

“지난 20년간 이만큼 많은 개혁을 겪고 이처럼 남발하는 규범을 소화한 부처는 없다.” 프랑수아 몰랭 파기원 검찰총장의 발언이다. 행정부는 더 이상 국회로 넘기는 법안의 영향을 연구하는 수고를 감수하지 않는다. 그 법안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인원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법안의 결과 또한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소도시 샤토티에리의 소법원이 문을 닫자, 수아송 법원은 (판사 한 명이 돌아다니며 주재하는) 순회 재판을 재도입해야 했다. 자가용이 없는 소송당사자는 기차를 타고 파리를 거쳐 3시간을 이동해야 판사가 상주하는 법원에 갈 수 있다. IT 응용 시스템 구상에 서기들을 동참시키지 않은 렌법원에서는 양육비와 관련된 최신 개혁으로 서기들의 업무 시간이 1사건 당 30분 늘어났다. 

결국 녹초가 된 경리부는 더 이상 업무를 감당하지 못했다. 지난 1월, 뒤퐁모레티 법무장관은 최근 채택된 신규 미성년 형사 재판법 발효를 6개월씩이나 연기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법원이 이를 반영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3월에는 형 집행 판사들이 법무장관이 제안한 수형자 관련 규정 수정안(이미 몇 달 전에 한차례 수정)을 거부하며 반발했다. “우리는 준비가 안 된 상태다!”(17) “우리는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전능함에 빠졌다.” 검찰총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치권은 사법부가 직면한 문제에 장기적인 비전 없이 급조된 해결책만 제시한다. 그런데 각급 법원은 미어터지고 있다. 업무를 공유하지 않으면 현 시스템을 지탱할 수 없다.” 프랑스 최고 재판소인 파기원의 샹탈 아랑 원장의 분석이다. 한 전직 법무장관은 “사법계가 너무 쉽게 굴복한다”라고 지적하며, 이렇게 한탄했다. “사법계는 파업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점심시간을 이용한다!” 

 

 

글·장미셸 뒤메 Jean-Michel Dumay
프리랜서 기자. 전 <르몽드> 편집장, ‘루이아셰트(Louis-Hachette)’ 올해의 기자상 수상자. 주요 저서로 『Affaire Josacine. Le poison du doute 조사마이신 항균제 사건. 의심의 독』(2003)이 있다.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2020년 1월 1일부터 같은 도시에 있는 소법원(tribunal d’instance)과 지방법원(tribunal de grande instance)은 민사 1심 법원(tribunal judiciaire)으로 통합됐다. 
(2) Olivia Dufour & Michèle Bauer, ‘Justice: “On ne peut plus tolérer les délais de traitement engendrés par le manque de moyens” 재판: “인력부족으로 인한 소송지연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 Actu Juridique, 2021년 3월 31일, www.actu-juridique.fr
(3) 성인과 미성년자 보호를 제외한 급여 압류, 지불 명령. 별도의 언급이 없을 경우 이 기사에 나오는 모든 수치는 법무부 또는 해당 법원 자체 통계를 인용했다.
(4) ‘L’envers du décor. Enquête sur la charge de travail dans la magistrature 무대의 이면. 사법관의 업무량 조사’, 사법관노동조합, Paris, 2019년 5월.
(5) ‘Rapport “Systèmes judiciaires européens” – Rapport d’évaluation de la Commission européenne pour l’efficacité de la justice (CEPEJ) – Cycle d’évaluation 2020 (données 2018) 보고서 “유럽의 사법 시스템”-유럽사법효율성위원회(CEPEJ) 평가 보고서-2020년도 평가(2018년도 자료)’, 유럽연합 정상회의, Strasbourg, 2020.
(6) Loïc Cadiet, ‘La justice face aux défis du nombre et de la complexité 숫자와 복합성의 도전에 직면한 법무부’, <Les Cahiers de la justice>, 2010/1, Dalloz, Paris, 2010년 1월.
(7) Yoann Demoli & Laurent Willemez (지도교수), ‘L’âme du corps. La magistrature dans les années 2010 : morphologie, mobilité et conditions de travail 육체의 영혼. 2010년대 사법관: 형태학, 이동성, 근무 환경’, 공공법인 법과 정의 추구, Paris, 2019년 10월.
(8) Manuela Cadelli, 『Radicaliser la Justice. Projet pour la démocratie 사법부의 급진화. 민주주의를 위한 계획』, Samsa Éditions, Bruxelles, 2018.
(9) Sophie Prosper, ‘Réformes de la justice et désengagement de l’État : la mise à distance du juge 사법 개혁과 의무를 저버린 국가: 판사 접근성 감소’, <Délibérée>, n° 9, Paris, 2020년 1월.
(10) Laurence Neuer, ‘Saisir le tribunal est devenu très compliqué pour beaucoup 많은 이들에게 소송은 아주 복잡한 일이 돼 버렸다’, <Le Point>, Paris, 2020년 7월 23일.
(11) Bartolomeo Cappellina & Cécile Vigour, ‘Magistrats : un corps saisi par les sciences sociales 사법관: 사회학에 제소당한 집단’에 실린 ‘Les changements des pratiques et instruments gestionnaires des magistrats. Retours européens et comparés 관행의 변화와 사법관의 경영 수단. 유럽으로의 회귀와 비교’, 공공법인 법과 정의 추구와 국립사법관학교가 주최한 학회 보고서, Paris, 2020년 1월.
(12) Véronique Kretz, ‘Juger ou manager, il faut choisir 판결을 내리던지 밥을 먹던지 선택하라’, <Délibérée>, n° 11, 2020년 11월.
(13) Antoine Garapon, 『La Raison du moindre État. Le néolibéralisme et la justice 최대한 작은 정부의 이유. 신자유주의와 사법부』, Odile Jacob, Paris, 2010.
(14) ‘Approche méthodologique des coûts de la justice. Enquête sur la mesure de l’activité et l’allocation des moyens des juridictions judiciaires 법무부 예산에 대한 방법론적 접근. 법원 활동 측정과 인력 할당에 대한 조사’, 감사원, Paris, 2018년 12월.
(15) 뒤퐁모레티 장관 비서실은 본지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16) Éric Dupond-Moretti (Laurence Monsénégo 공저), 『Le Dictionnaire de ma vie 내 삶의 사전』, Kero, Paris, 2018. 카사마이요르라는 필명을 사용한 사법관 세르주 퓌스테의 발언 인용.
(17) 전국 형집행 판사 연합(ANJAP) 공식 성명, Créteil, 2021년 3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