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GiFi), 저가 상품의 대성공

백만장자가 된 노점상의 끝없는 야망

2021-05-31     필리프 바케 | 저널리스트, 다큐멘터리 감독

할인용품점 지피(GiFi)는 프랑스 내 매장이 500개에 달한다. 프랑스 내 모든 도시의 출입구에서 지피 매장을 만날 수 있다. 아시아산 저가 상품을 파는 지피는 도시 외곽의 저렴한 상업지역을 활용하고, 수입품에 대한 사회적·환경적 기준의 부재를 틈타 급성장했다.

 

“나는 내 회사를 좋아해요. 나는 내 회사를 받아들이죠. 난 그렇게 살아요. 그게 내 인생이죠.”

집시음악가 마놀로 히메네즈가 플라멩코 선율의 노래를 부르면서 빌뇌브쉬르로트(Villeneuve-sur-Lot)에 있는 지피 본사 안으로 들어가고, 직원들이 춤을 추며 그 뒤를 따른다. 언뜻 노조 활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직원들이 입은 티셔츠에는 현수막과 마찬가지로 “나는 내 회사를 좋아한다”라고 적혀있다. 두 젊은 여성이 필리프 지네스테 회장의 책상 위로 올라가 맨발로 춤을 추고, 지네스테 회장은 깜짝 놀란 척 한다. 두 여성은 지네스테 회장과 포옹을 하고, 춤을 추는 곳으로 그를 이끈다.

2014년에 나온 이 뮤직비디오는 기업가인 소피 드 망통이 이끄는 ‘에틱(ETHIC, Entreprises de Taille Humaine, Indépendantes et de Croissance: 인간적인 규모의 독립적이며 성장세인 기업-역주)’이라는 기업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그녀는 매년 ‘기업 축제(La Fête de l’entreprise: 리옹 지역의 주요 기업가들이 만나는 축제로 올해 16회차를 맞았음-역주)’를 열고 있다. 지피 그룹의 창업자이자 CEO인 지네스테 회장은 저서 『인생은 기발한 생각이다(La vie est une idée de génie)』에서 자사 직원들을 선교사에 비유하며, “몸과 마음을 회사에 바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일과 자아가 분리될 수 있나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1)

각종 미디어에서는 서민층 출신으로 ‘저가 상품의 백만장자’가 된 이 자수성가 기업가의 성공을 찬양했다.(2) 로트에가론느(Lot-et-Garonne)의 마필 매매상 가정에서 태어난 지네스테 회장은 1970년대에는 나이트클럽에서 일했고, 그 후 일렉트로룩스에서 진공청소기를 팔았다. 이후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저가 의류를 사다가 시장에서 팔았고, 이후 할인매장을 열었다. 실내장식, 여가, 정원 분야의 할인상품, 저가상품에 특화된 지피는 여전히 ‘대가족’을 표방하지만, 사실 지네스테 회장은 프랑스 부자 명단에서 29위에 올라 있다.(3) 

 

빌뇌브쉬르로트 도심에 있다는 자부심

지네스테 회장은 기자들을 ‘빌뇌브쉬르로트’로 부르기를 좋아했다. 모두들 주차장에 있는 종려나무 아래에 후면주차를 하라는 지시사항을 지켰다. 대부분의 간부들 자동차에는 ‘지피’라는 로고가 붙어있었고, 이 차들은 입구 오른쪽에 주차돼 있었다. 왼쪽에 있는 세 개의 자리는 지피 회장의 모노스페이스형 메르세데스-벤츠 V클래스와 부인의 람보르기니, 아들의 포르쉐 911 전용공간이다(이 차 3대의 가격을 합하면 약 40만 유로다). 

계단 양 옆에는 거대한 중국풍 사자 석상이 있었고, 위쪽에는 지피 로고가 있었다. ‘섭리의 눈’(삼각형으로 둘러싸여 종종 후광이 감싸고 있는 눈 모양 기호-역주)을 상징하는 삼각형에, 회장의 이름을 따서 지네스테를 뜻하는 ‘GI’와 필리프를 뜻하는 ‘FI’ 글자가 있는 로고였다. 입구 쪽 홀은 중국 음식점과 비슷한 분위기의 장식으로 뒤덮여 있었다. 거울과 광택이 나는 강렬한 붉은색 벽과 신 조각상은 지피 그룹의 부를 가능케 한 제품 대부분이 아시아산임을 환기시켰다. 지네스테 회장은 프랑스 내 자사의 성공담과 함께, 초창기 시절 이야기를 떠올렸다.

“1981년에 첫 번째 가게를 빌뇌브쉬르로트 도심에 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땅값이 너무 비쌌어요. 그래서 미친 척 도시 출구 쪽에 있는 창고를 임대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죠.” 넓은 주차장, 파격적인 할인, 자극적인 광고, 일요일 영업을 내걸고 “지피, 진정한 할인매장”이 시작됐다. 지네스테 회장은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축제 같은 분위기여서 사람들이 많이 몰렸고, 경찰들이 교통정리를 해줘야 했습니다. 아내, 아들, 저, 이렇게 셋이서 시작했습니다. 저는 매장 입구에서 어른 손님에게는 바구니를 나눠주고, 아이들에게는 사탕을 나눠줬습니다. 미래 고객인 아이들에게 신경을 썼죠.”

지네스테 회장은 300㎡ 규모의 1호점이 성공하자, 아장(Agen) 근처에 600㎡ 규모의 2호점을, 사를라(Sarlat)에 1,200㎡ 규모의 3호점을 열었다. 그리고 이후 보르도 지역 내 도시 외곽에 4호점을 열었다. 매장 운영은 친지들에게 맡겼다. 매장 수익은 곧바로 재투자함으로써, 새로운 매장 개점에 사용했다. 동시에 지피는 다양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지네스테 회장은 20호점을 오픈할 때까지 물류와 구매를 직접 담당했다. 그렇게 초저가 상품을 찾아다니면서 프랑스가 탈산업화 과정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관련 규제 때문에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이후 프랑스 북부 오베르빌리에의 도매상들로부터 대부분의 상품을 구매했는데, 이들에게 아시아에서 생산된 상품을 점점 더 많이 추천받게 됐다. 1988년, 지네스테 회장은 홍콩에 가서 공급자와 직접 협상하기로 결심했다. “프랑스에 있는 수입업자들로부터 상품을 소량 구매한 후 시장에서 계속 테스트했습니다. 그 상품들이 성공하면, 그 다음에는 중개상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시아에서의 안정적인 구매를 위해, 구매업자들로 이뤄진 구매팀을 만들어서 가격을 최저가로 협상하도록 했다. 

1993년에 GPG(Groupe Philippe Ginestet) 유한책임회사는 창업자인 지네스테 회장이 경영하고, 그의 가족이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지주회사가 됐다. 행정 부서와 첫번째 물류창고, 구매센터는 빌뇌브쉬르로트에 남았다. 일가친지들만으로는 매장을 모두 관리할 수 없어서 대부분 내부에서 관리직원을 채용했다. 매년 그룹 내 인사부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 기업 성과에 도움이 될” 준비가 돼 있는, 승진 대상 평사원급 직원을 발표한다.  

이 관리직원들은 매출액에 비례한 인센티브를 받기 때문에 임금노동자가 아니다. 관리직원들은 적정 소득을 보장받기 위해서 매장 내 직원 수를 제한하고, 자신의 매장에 엄청난 시간을 할애한다. 이들은 일요일에도 일했고, 덕분에 지피는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시스템 덕분에 GPG는 위험 부담은 줄이면서 통제하에 경영을 계속할 수 있었다. 각 지점은 GPG에 속해 있고, 지네스테 회장은 매장을 관리하는 그룹 내 자회사의 대부분을 경영하고 있다. 매년 관리직원들은 개별적으로 결산 내용과 함께 개인별 사진 앨범을 받는다. 관리직원으로 일했던 한 남성은 “목표를 채우지 못할 경우, 즉석에서 해고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귀띔했다. 

 

수만명의 아시아 노동자, “100% 프랑스 기업”

홍콩 사무소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지피 아시아 사무소가 됐다. 홍콩 구매센터는 동남아시아와 파키스탄, 인도, 베트남 공급자를 만났고, 상품 전시회에서 장난감, 가정용 린넨용품, 정원용품 판매자들을 경쟁에 붙였다. 지네스테 회장은 그룹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지피의 기존 틀에 만족하지 않았다. 2008년, GPG는 천연제품을 전문으로 하는 메세게 연구소(Laboratoires Mességué)를 인수했다. 2014년, 몰타 섬 주재 자회사 한 곳은 온라인 게임 회사인 마켓럭(Marketluck)의 최대주주가 됐다. 이 자회사의 본래 역할은 CEO가 구입한 요트 2대를 관리하는 것이었다.(4)

2016년, 지피는 벨기에 유통업체인 트래픽(Trafic)에 자본금을 투자했다. 2017년, GPG는 경영난을 겪고 있던 유통업체 타티(Tati)의 인수자로 선정됐다. 2018년, GPG의 자회사인 카지메지(Casimegi, 이후 스텔시아 카지노로 바뀜)는 프랑스 남서부의 미미장에 카지노를 건설한 후, 므제브와 그랑빌 소재 카지노, 그리고 프랑스 남부의 4개 카지노를 인수했다. GPG는 신발 판매업체인 베송 쇼쉬르(Besson Chaussures)의 자본에도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GPG는 부동산에도 계속 투자해, 프랑스 최대면적을 임대하는 기업들 중 한 곳이 됐다(상점, 창고, 사무실 임대 면적이 총 120만 ㎡에 달함). 

GPG는 상업시설을 만들고, 그 중 일부 구역을 주저 없이 경쟁사에 임대하기도 한다. 일례로 네덜란드 할인매장 체인인 액션(Action)에 매장을 임대했다. 2021년 기준 GPG에는 6,000명의 평사원들이 있고, 프랑스 내 매장은 513개이며, 프랑스 해외 영토와 스페인, 스위스, 아프리카(코트디부아르, 모리셔스섬, 알제리) 지역에서의 사업권도 40여개 가지고 있다. 지네스테 회장은 그룹의 자회사와 출자를 통해서 2027년까지 매장 1,000개와 평사원 1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연 노점상에서 출발했던 GPG를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상업제국으로 만들어준 제품들은 무엇이었을까? 봉쇄조치가 내려진 이번 일요일 아침, 빌뇌브쉬르로트에 있는 지피 매장은 선반 담당 1명과 계산대 담당 1명, 총 2명으로 운영됐다. 생필품을 취급하지 않는 상점은 문을 닫아야 해서 장난감, 뷰티 제품, 정원용 비품 코너는 테이프로 막혀 있었다. 이어폰, 미니 스피커, 커튼, 침대 시트, 주전자, 가전제품 등 많은 상품들에 ‘아주 착한’ 가격이 매겨져 품목별로 선반에 정리돼 있었다. 판매 중인 ‘필수품’ 중에는 소시지 슬라이서, 체리 씨 제거기, 물에 뜨는 수영장용 잔 등이 있었고, 가격은 8.5유로였다. 지네스테 회장은 자신이 쓴 책에서 “고객은 예상 밖의 물건을 샀을 때 가장 기뻐한다”라고 말했다.(5) 

GPG의 공식문서에 의하면, 현재 지피의 제품 가운데 절반은 유럽에서 구입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피 매장 선반 위 제품들은 주로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산 제품들이었다. 하지만 지네스테 회장 자신은 “지피는 100% 프랑스 기업”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자신의 부가 아시아인 수만 명의 노동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잊은 듯 했다. 지네스테 회장은 자신의 책에서 “나는 직원들의 행복을 원할 뿐”이라고 했으나, 자사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만든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피의 민낯에 대해 말하겠다고 하며, 익명을 보장해달라고 했다. 과거 지피의 사원이었던 한 여성은 1990년대 말 창고에 있던 도자기 제품에 대해 말했다. 그 도자기는 어린 아이들 손으로만 내부에 유약을 칠할 수 있었다. 지네스테 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저는 항상 아동들의 노동을 걱정했습니다. 20년 전에는 신경을 많이 써야 했어요. 민간사정기관과 함께 일을 했는데, 공장의 노사관계 품질을 검사했습니다. 현재는 아동이 일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검사는 좀 더 무작위로 합니다.” 사정기관의 보고서나 계약서, 연락처 등을 얻을 수 있냐고 묻자, 인터뷰에 동석했던 GPG의 디디에 피틀레 대변인은 “우리는 그런 종류의 정보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기밀이니까요”라고 답했다. 

2017년 법에 의하면, 모회사와 위탁기업은 인권보호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종업원 5,000명 이상 기업들에만 적용된다. 지피의 발표에 의하면 지피의 사원(평사원급)은 6,000명이지만, 직접 임금을 받는 직원은 2,700명에 불과하다. 인권보호 관련 의무조항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지피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RSE) 부서가 확실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부서 책임자는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사임해야 했다. 해당 책임자에게 연락했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자랑스럽게 우리의 색깔을 입자”

“문화가 없는 기업은 줄무늬 없는 얼룩말과 같다.” 관리직원 세미나가 열리는 르스텔시아 성 (생실베스트르쉬르로트 Saint-Sylvestre-sur-Lot 소재 GPG 사유지) 입구에 걸린 현수막 문구다. 지피는 프랑스 최초로 ‘문화총괄직’을 만든 기업이다. 지네스테 회장 부인인 브리지트 지네스테가 문화총괄직을 맡고 있다. 사원들은 이 ‘문화’를 통해 지피에 참여하고, 지피가 ‘되고’, 지피를 위해 살게 된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유리한 조건의 임대-판매 시스템 때문에 익명성과 사생활을 희생하기로 하고, 자가용에 회사 로고를 붙이고 다닌다. “자랑스럽게 우리의 색깔을 입자”는 사원들이 숙지해야 하는 지시사항 9가지 중 하나다. 

지피 문화는 GPG 소유 므제브 별장에서 열리는 스키 여행 및 축제 분위기의 세미나에서도 볼 수 있다. 이 행사는 창업자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다. 2008년, 지네스테 회장은 대형 여객선에서 열린 아들의 결혼식에 900여 명의 사원들을 초대했고, 사비로 스톡옥션 600만 주를 부여했다. 그렇다면 노조에 관한 지피의 ‘문화’는 어떨까? 지네스테 회장은 강조했다. “직원들에게는 제가 바로 노조였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원할 때면 제 사무실에서 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현재는 문화총괄자입니다. 문화총괄실은 제 사무실 옆에 있고, 사원들은 문제가 있으면 그곳에서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예전에 진공청소기를 팔 때, 저는 낭테르에서 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르스텔시아 성은 지네스테 회장의 바람에 따라 핑크빛으로 칠했지만, 직원들의 삶은 핑크빛과 거리가 멀다. 특히 책임자급 여성들은 일로 인한 피로를 호소하곤 했다. 프랑스민주노동연맹(CFDT)의 파브리스 브룅 대표는 빌뇌브쉬르로트 쓰레기 처리장 맞은편에 있는 지역 노조 사무실에서 이같은 사실을 털어 놓았다. “우리 노조 사무실은 회사와 조금 떨어져 있죠.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면 곤란하니까요.” 브룅 대표는 직원들의 번아웃 증후군에 대해 말했다. “직원들은 심리적 압박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회사의 모든 요구에 맞춰야 하니까요.” 드문 경우지만, 2004년 2월에는 일드프랑스 지역 10여 개 매장에서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이 있었다. 

2009~2015년 관리 위임 시스템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 실업대책단체행동(AC!)은 “지피에서 공짜로 일하라고요? 사양할게요”라는 포럼을 개최했다. 현재는 온라인에서 사라졌지만, 150쪽 분량의 보고서에 나오는 일들을 읽어보면 공식 뮤직비디오 내용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보고서에는 주당 80시간 일하고 1,500유로의 월급을 받은 관리직원, 가족을 볼 틈도 없이 일하는 부부, 일요일 근무, 임금노동자와 관리직원들 간의 불화, 우울함, 괴롭힘, 모욕 등이 담겨 있다. 2019년 9월, 카르카손 매장의 임금노동자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해고당한 관리직원 부부를 지지하는 파업을 하기도 했다. 

유통업체 타티를 인수한 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타티 직원들과 마찰도 있었다. 프랑스 노동총연맹(CGT)의 엘로디 페리에 연맹 총무는 지네스테 회장에 대해 말했다. “타티의 구원자? 파괴자에 가깝죠!” 2017년 보비니(Bobigny) 상사법원이 타티 매장 및 상호를 보호하기 위해 지피를 인수자로 선정했을 때, 그 조항 가운데에는 10년 간 해고금지 조항이 있었다. “이 조항이 무효가 된 바로 그 날, 지피는 13개 매장을 폐쇄하고 189명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매장 30여 개가 다른 업체에 매각됐고요. 가장 매출이 높은 매장 50여 개는 지피에 흡수됐죠. 그렇게 지피는 도심에 매장을 열었습니다.” 페리에 총무가 덧붙였다.

“저는 주문 받은 제품의 준비업무를 맡고 있고, 13년차입니다. 시급 11유로, 최저임금보다 75상팀을 더 받습니다. 저만 이런 게 아닙니다.”  플로리앙 미냐드는 ‘나는 내 회사를 좋아해요’ 뮤직비디오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직업선거(élections professionnelles: 기업 내에서 임금노동자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로, 이를 통해 11인 이상 기업에서는 임금노동자의 대표자를 정하고, 50인 이상 기업에서는 기업위원회를 만든다-역주) 이후 지피 빌뇌브쉬르로트에 만들어진 연대노조연합 지부에 2년 전에 가입했다. 

 

“불만이 있으면 나가면 된다”

“우리는 이제 자리를 잡고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페리에 총무는 저임금, 매년 줄어드는 성과급, 설명 한 마디 없이 사라진 이익 배당금 등 노동조건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회사는 일자리를 가지고 계속 위협했습니다. 회의 중에 우리가 보너스에 대해 언급했더니, 티에리 부카리 부사장은 불만이 있으면 나가면 된다고 했습니다”라며 어이없어 했다.

지네스테 회장은 GPG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계속 빌뇌브쉬르로트에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현재 빌뇌브쉬르로트에서 핵심 고용자다. 기업공개(IPO)를 하면서 지피는 1996년부터 2010년까지 특정 지역에 편중된 사무실과 창고를 이전하라는 투자자들의 요구에 대항해왔다. 현재 시설을 이전하는 게 가능할까? “글쎄요. 내일이면 저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한편, 지네스테 회장이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현 상황에서 경영권 승계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그의 아들인 알렉상드르가 경영권을 이어받겠죠. 그런데 그도 아버지처럼 빌뇌브쉬르로트에 머물기를 원할까요?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미냐드는 걱정했다. 

빌뇌브쉬르로트의 도시계획을 보면 지네스테 왕국의 성공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여지없이 알 수 있다. 과거에 빌뇌브쉬르로트는 예쁜 성곽도시로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로트 언덕 중앙, 반듯한 평지 위에 세워진 돌로 만든 도시였다. 하지만 좁은 길에 들보가 드러난 2층짜리 건물로 이뤄진 빌뇌브쉬르로트 도심은 현재 죽어가고 있다. “외곽에 대형 상점이 2개나 있기 때문에 공동화가 심해졌다.” 야당 시의원이자 변호사인 토마스 부이그는 이같은 점을 강조했다. “빌뇌브쉬르로트가 속한, 인구 5만명의 그랑 빌뇌부아(Grand Villeneuvois) 광역도시권(Communauté d'Agglomération)의 외곽지역 상업시설 밀도를 보면 프랑스 국내 평균의 2배다.” 대형 슈퍼마켓과 패스트푸드 체인점 사이 2개 상업지구에 엄청난 규모의 지피 매장 2개가 있다. 새로 취임한 기욤 르페르 시장(공화당 소속)은 예전에 GPG 간부로 일했다. 지네스테 회장은 도심에 진출할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2020년 6월 자신의 회사에서 일했던 르페르 시장이 당선되자 지역 신문에 이렇게 밝혔다. “나는 르페르 시장이 몇 가지 사항을 이해할 수 있게 돕겠습니다.”(6)

지네스테 회장은 생실베스트르쉬르로트에 있는 르스텔시아 성에 원대한 꿈을 품고 행정당국의 허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카트 국제경기장, 두바이처럼 미래의 사옥 주변에 종려나무 숲과 오렌지밭, 2개의 인공호수를 세울 계획이다. 카지노도 건설계획에 들어있다. 로트 둑 위 10여 헥타르 부지는 보트 정박용이다. 백만장자가 된 노점상의 야망은 끝이 없다. 

 

 

글·필리프 바케 Philippe Baqué
저널리스트, 다큐멘터리 감독. 주요 작품으로 <Le Beurre et l'argent du beurre 일석이조>(Alidou Badini와 공동연출, 2007)가 있고, 저서로 『Un Nouvel Or noir, pillage des œuvres d'art en Afrique 새로운 검은 금, 아프리카 예술품 약탈』(1999)이 있다.

번역·이연주
번역위원


(1) Philippe Ginestet, 『La vie est une idée de génie La force d’aimer 인생은 기발한 생각이다. 사랑의 힘』, Eyrolles, Paris, 2021.
(2) ‘GiFi, le millionnaire des prix cassés 지피, 저가 상품의 백만장자’, Sept à Huit, <TF1>, 2016년 11월 27일 방송.
(3) ‘Milliardaires 2021: Philippe Ginestet 2021년 백만장자: 필리프 지네스테’, <Forbes France>, Paris, 2021년 4월 6일, www.forbes.fr
(4) Yann Philippin, ‘Le catalogue de l’optimisation fiscale à Malte 몰타 섬에서의 조세 최적화 카탈로그’, <Mediapart>, 2017년 5월 24일, www.mediapart.fr
(5) Philippe Ginestet, 『La vie est une idée de génie La force d’aimer 인생은 기발한 생각이다. 사랑의 힘』, 상동.
(6) Baptiste Gay, ‘Villeneuve-sur-Lot. Philippe Ginestet : “J’adore Guillaume(Lepers)!” 빌뇌브쉬르로트. 필리프 지네스테: “기욤(르페르)을 사랑합니다!”’, <La Dépêche>, Toulouse, 2020년 6월 11일.

 

 

모스크바의 영세상점, ‘키오스크’는 어디로?

 

러시아에 시장경제가 갑작스럽게 출연하자 상업풍속도도 빠르게 변했다. 모스크바 거리의 키오스크(Kiosque)는 번성하기도 전에 자취를 감췄다. 러시아에서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10여 년 동안 소형 상점들이 증가했다. 법적 규제가 미비하고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자 많은 이들이 생계를 위해 소규모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구소련 시절 모스크바는 상업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가 아닌 탓에, 대형 슈퍼마켓 대신 이러한 간이매점들이 거리를 채웠다.

어떤 상인들은 지붕이 있는 아케이드형 시장에 자리를 잡았고, 또 다른 상인들은 큰 간선도로가 지나는 교차로나 지하철 역 주변에 전면이 유리로 된 키오스크를 열었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상점들 덕분에 모스크바 시민들은 출퇴근길에 가볍게 식사를 하거나 각종 생필품을 살 수 있었다. 과일과 채소, 샤와르마(Shawarma, 러시아식 케밥), 피로스키(Pirojki, 고기가 들어간 러시아식 작은 파이), 의류, 담배, 맥주, 신문, 휴대폰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었다.

2000년대 초, 유리 루시코프 전 모스크바 시장이 키오스크 철거를 계획하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무질서하게 들어선 불법 키오스크들이 도시 미관을 해치고 교통을 불편하게 만든다”라는 주장이었다. 한편 모스크바 시당국은 대로변을 따라, 특히 외곽 고속도로 양편으로 대규모 쇼핑센터와 슈퍼마켓 개점을 장려했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현상이었다. 구소련 시절 국영 슈퍼마켓을 의미하는 ‘우니베르삼’은 대기업이 인수하거나 ‘프랜차이즈화’됐다. 대개 서유럽 국가에 비해 영업시간이 길고, 24시간 영업하는 점포들도 수두룩했다.

2010년 모스크바 시장에 취임한 세르게이 소뱌닌(2013년과  2018년에도 선출된, 3선 시장)은 키오스크를 운영하는 상인들에게 철퇴를 가했다. 2016년 2월 8일 심야에, 모스크바 시는 도시 내 수많은 지하도와 지하철역 주변에 설치된 100여 개의 키오스크들을 중장비를 동원해 강제철거했다(철거 반대자들은 강제철거가 이 날 밤을, 포클레인 삽의 이미지를 빌려 ‘긴 삽들의 밤’이라고 부른다). 이 철거계획은 모스크바를 ‘글로벌’(1) 도시로 만들려는 정책의 일환이었다. 시장의 표현을 빌리면, ‘개화(문명화)된 소형점포망’을 확산시켜 1㎠ 간격으로 모스크바 시의 상권을 감독하고, 프랜차이즈화하고, 수익을 높여 세금을 거둬들이겠다는 속셈이었다.

모스크바 시당국은 간이점포들을 철거한 자리에 시청 건설위원회의 인증 마크가 찍힌 새로운 점포들을 세웠다. 경매방식으로 점포를 임대하는 사업은 모스크바 시에 수익성을 보장했다. 이런 방식은 곧 ‘빈익빈 부익부’, 즉 재력 있는 사업가들에게 집단으로 상점의 임차권을 취득하는 길을 터줬다. 모스크바 시는 총 1만 4,000개 키오스크들 가운데, 무인상점을 포함해 9,900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없애고자 했다. 러시아의 도시계획전문가 표트르 이바노프는 “우리는 모스크바를 아름답게 만들기는커녕, 불모지로 만들어버렸다”(2)라고 통탄했다.  

 

 

글·블라디미르 파블로츠키 Vladimir Pawlotsky
프랑스지정학연구소(파리8대학) 지리학 박사과정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Vladimir Pawlotsky, ‘Moscou se rêve en ville globale 글로벌 도시’ 신화에 감춰진 모스크바의 민낯’,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0년 11월호.
(2) <The Village>, 모스크바, 2016년 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