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미국의 감시에서 벗어나다

가증스럽고 성가신 이웃과의 결별

2021-05-31     루이스 알베르토 레이가다 | 기자

도처에 멕시코의 자주권에 대한 위협이 존재한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부패가, 영토적 측면에서는 마약 카르텔이, 경제적 측면에서는 자유무역이 멕시코를 위협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멕시코 주권을 갉아먹는 존재는 ‘가증스러운 이웃’ 미국이다. 이 지정학적 측면에서만큼은 자주권을 행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신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방향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2020년 12월 15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몇 주 전 백악관으로 입성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축하서신을 보냈다. 관례적인 문구 속에, 단순한 외교 메시지라고 볼 수 없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멕시코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멕시코 헌법에 명시된 외교정책 원칙, 특히 개입주의 금지와 민족 자주권의 원칙을 지속해서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자국의 안전과 번영이 “멕시코 상황과 직결돼 있음”을 확신했던 미국 국무부는 멕시코 주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래전부터 멕시코에 대한 감시·감독을 “절대적 우선순위”로 여겨왔다.(1) 

 

‘마약과의 전쟁’으로 시작된 미국과의 협력

그리고 경악스러운 스캔들이 터졌다. 2019년 일명 ‘엘 차포’,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의 재판을 통해, 무기 불법거래를 퇴치하려는 미국 주류·담배·화기 단속국(ATF)이 ‘어쩌다 보니’ 시날로아 카르텔에 기관총을 공급하는 처지가 돼버린 과정이 드러났다.(2) 미국 주류·담배·화기 단속국(ATF)은 ‘무기밀매상’ 프로젝트와 ‘분노의 질주’ 작전(3)을 펼쳤다. ATF는 작전에 따라 마약 밀매상과 연결된 무기 밀수업자가 미국에서 무기를 손에 넣은 후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갈 수 있게끔 허가했는데, 이는 그들의 흔적을 쫓으려는 목적이었다. 2006년부터 5년 동안 ATF의 암묵적 동의하에 반자동 소총부터 유탄 발사기에 이르기까지 2,500개 무기가 카르텔 조직원 손에 넘어갔다. 이 작전의 결과가 얼마나 참담할지 우려하지 않았던 ATF는 이 비밀 작전 덕분에 국경을 통과한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AK47)에 미국 국경수비대원이 사망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이 모든 일은 멕시코 지도자들의 뒷받침 없이 일어날 수 없었다. 2002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미국 본토 북부를 담당하는 군사령부(미 북부 사령부)를 창설했을 때,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은 이를 묵묵히 지켜만 보면서 미 북부 안전지대가 설립됐다는 사실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된 지 11년 후인 2005년, 북미 안보번영 동반관계(SPP) 때문에 미국과 멕시코의 안보정책은 서로 뒤얽히게 된다. 2007년, 당시 멕시코 대통령이었던 펠리페 칼세론은 마약과의 전쟁을 위해 ‘엉클 샘(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멕시코와 미국 간 협력의 핵심 요소인 ‘메리다 협약(Merida Initiative)’이 탄생했다.

협약에 의하면, 멕시코는 “자국의 공공안전기관과 사법체계, 법치주의를 강화하고 폭력을 방지하며 국경 안전을 수호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미국 국제개발처(USAID)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동시에 “미국의 자국 내 무기 및 마약 밀매, 자금 세탁 척결에 협조”하는 것이 이 협약의 목적이다.(4) 그러나 실상을 보면, 메리다 협약의 핵심은 다름 아닌 ‘돈’이다. 멕시코 군대의 미국 무기(장갑차, 해양 순찰 비행기, 전투 헬기 등) 구입비 5억 달러, 멕시코와 미국 국경의 리오 브라보 강 남부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투자금 30억 달러가 그것이다. 

펠리페 칼데론 전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의 첩보활동에 대한 협력에도 적극적이었다. 칼데론 정부는 ‘멕시코 기술 감시 시스템’ 설치를 허가했다. 이 시스템은 미국이 멕시코 내 모든 통신 시스템(전화와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를 획득·분석해, 위치탐지까지 할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다. 2010년 11월 신문·잡지의 조사에 의하면, 9개 미국 정보기관이 미국 대사관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고층건물에 지부를 두고 있다.(5) 그 중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국방정보국(DIA), 국가정찰국(NRO), 국가안보국(NSA)이 있다. 

 

도청당하는 멕시코 대통령 

이것으로도 부족했는지, 미국은 이웃 국가와의 협약이 허용하는 선을 넘은 첩보 활동을 벌였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이 공동으로 지휘한 정보 분류 프로그램인 특별수집서비스(SCS)의 불법 기지국을 폭로했다. 이 기지국은 멕시코 수도에서 활동 중이었다. 기지국 직원들은 고위 공무원의 대화, 때로는 대통령 통화까지 감청하며 정치·경제 정보를 수집했다.(6)

확고한 민족주의자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이런 간섭을 허용할 리 없었다. 2018년 7월 1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오브라도르는 그로부터 며칠 후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국무부 장관인 마이크 폼페이오 방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총액 12억 달러에 이르는 군 헬기 8대 구입 계약을 취소할 의사를 밝혔다. 그 다음 달에는 오브라도르 정부의 차기 공공치안부 장관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과 군사분야에서 협력하는 것은 안보문제에 있어 최선의 방안이 아니다.” 이어서 작은 폭탄을 터뜨렸다. “우리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협력 협정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7)

2018년 12월 초 취임한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 기관과 엮이지 않도록 전략을 세우는 데 적극적으로 힘썼다. 경찰 팀을 재정비하고 카르텔을 대상으로 싸우는 국경 전투를 그만둔 지 몇 달 후, 그는 2019년 5월 7일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 “우리는 더 이상 ‘메리다 협약’을 원치 않는다.” 멕시코는 경제 개발 프로젝트, 특히 도널드 트럼프가 걱정하는 이민을 막기 위해 멕시코의 남동부나 중앙아메리카에 미국이 지원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새로운 안보정책이 그 진가를 발휘하는 데까지는 어려움이 따랐다. 젊은 국가 경비대는 높은 살인율을 저지하지도, 조직범죄를 약화시키지도 못했다. 멕시코 군경은 여러 차례 실패했다. 14명의 경찰이 매복 장소에서 죽기도 하고, 수도 한복판에서 멕시코 경찰청장이 무장한 괴한에게 살해당할 뻔하기도 했다. 2019년 11월, 미국과 멕시코 국적을 모두 가진 미국인 일가족이 멕시코 소노라주 동북 지역(미국 애리조나주 국경 지대)에서 마약 조직원 카르텔의 총격으로 숨지는 일이 발생하자 외교 마찰이 일었다. 미국 시민은 충격에 빠졌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사설을 통해 미국 정부가 “파산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국가의 수반과 타협한다”라고 비아냥거렸다. “만약 멕시코가 자국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미국이 더 나서야 한다. (…) 군사작전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8)

미국 정부가 멕시코 카르텔을 ‘외국 테러조직 리스트’에 포함하겠다고 위협하자,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교부 장관은, “멕시코는 자주권을 침해하는 아주 작은 행동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했다.(2019년 11월 27일, 트위터) 리스트에 오르면 미국이 개입하기에 좋은 법적 근거가 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멕시코는 예측불가하고 강력한 무역 파트너인 미국을 상대로 선을 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러던 가운데 2020년 10월 말, 멕시코 전 국방장관인 살바도르 시엔푸에고스가 가족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다가 마약범죄 연루 혐의로 체포됐다. 그러자 멕시코 정부는 사전에 미국 측으로부터 이 사실을 전달받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를 표했다.

 

“이제, 미국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멕시코와의 협력관계를 존중해야 한다”라고 압박하며 선례를 만들고자 했다. 그는 마약범죄 연루 혐의로 미 마약단속국(DEA)에 의해 체포된 살바도르 시엔푸에고스 전 국방장관의 석방을 요구했다. 멕시코 내에서 미국 마약 요원들이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자 미국 법원은 “민감하고 중요한 외교정책 문제가 있으므로, 살바도르 전 장관을 기소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9) 처음 있는 일이었다. 멕시코 외교부가 작성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공동성명에서는 미국의 이번 결정이 “두 국가가 함께 일하고 서로의 주권을 존중할 때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내용이 담겼다.(10) 시엔푸에고스 전 국방부 장관은 자국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멕시코로 재송환됐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8년 동안 조사한 결과물과 그 증거들을 공유했다.

그러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정부 측에서는 “이제는 예전과 다르다”, “신뢰가 무너졌다”라고 측근들에게 귀띔했다.(11) 멕시코 정부는 미국의 안보 및 첩보 요원의 활동을 제한하는 데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2020년 12월 15일, 국가안보법을 개혁해 10일 만에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새로운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어떤 제한도 없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일에 익숙했던 미 마약단속국(DEA), 미 연방수사국(FBI), 미 중앙정보국(CIA), 미 이민세관 단속국(ICE)은 이제 수집한 모든 정보를 멕시코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2021년 1월 14일, 멕시코 검찰은 시엔푸에고스 전 장관에 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혐의를 입증할 수 없으니 기소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기자회견에서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미 마약단속국(DEA)이 혐의를 조작했다”고까지 표현했다. “우리는 멕시코 정부 기관이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그래서 수사자료 전체를 공개하기로 했다.”(12) 

같은 날, 대통령은 미국 측에서 넘겨받은 750쪽 분량의 관련 수사자료 전체를 트위터에 공개했다. 사법 당국에 대한 모욕이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정부의 야당 인사들(이전에 미국에 문을 열어준 보수진영)은 대통령의 이런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 온갖 이론을 내세웠다. ‘마약밀매의 도화선이 되고 있는 군 권력에 복종하는 중이다’, ‘다음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민족주의자 감성을 바탕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있다’ 같은 내용이었다. 저널리스트 호르헤 지페다는 “대통령의 이런 반응은 단순한 분노일 수도 있다. 내정 간섭이 지나친 외국 기관의 의심스러운 태도에 분노해, 본때를 보여줘서 개입을 그만두게 하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13)

이제까지 멕시코와 미국의 협력은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안보 측면에서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이제 남은 문제는 멕시코 대통령이 협력 내용의 재검토를 위해 새로운 미국 대통령인 조 바이든을 설득시킬 수 있는지이다. 이민과 안보, 이 두 주제는 조 바이든 대통령 임기 동안 양국이 다시 한번 논의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메리다 협약을 끝내면서 변화를 위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미국 의회는 2021년 메리다 협약에 지원하기 위한 1억 5,000만 달러를 이미 마련해뒀다고 하는데….

 

 

글·루이스 알베르토 레이가다 Luis Alberto Reygada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정민 minuit15@naver.com
번역위원


(1) ‘Integrated Country Strategy – Mexico’, 미 국무성, 2018년 8월 3일, www.state.gov
(2) Keegan Hamilton, ‘Prosecutors don’t want El Chapo’s jury to hear how the US government sent guns to the Sinaloa cartel’, <Vice>, 2018년 12월 10일, www.vice.com
(3) <분노의 질주(Fast and Furious)> 영화 제목에서 착안함. 
(4) 주 멕시코 미국 대사관 웹사이트, https://mx.usembassy.gov
(5) Jorge Carrasco A., J. Jesús Esquivel, ‘El gran espía’, <Proceso>, 2010년 11월 14일. 
(6) Jens Glüsing, Laura Poitras, Marcel Rosenbach, Holger Stark, ‘NSA accessed Mexican president’s email’, <Der Spiegel International>, Hambourg, 2013년 10월 20일.
(7) Diego Oré, ‘Incoming Mexican president to review US security cooperation–aide’, <Reuters>, 2018년 8월 3일.
(8) ‘The cartelization of Mexico’,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19년 11월 6일.
(9) Michael O’Boyle et John Harney, ‘US dropping drug charges against Mexico’s ex-defense chief’, <Bloomberg>, New York, 2020년 11월 17일.
(10) 멕시코 대변인과 미국 대변인의 공동성명, www.gob.mx/fgr, 2020년 11월 17일.
(11) J. Jesús Esquivel, ‘Con Estados Unidos “se perdió la confianza” y “ya nada será igual”’, <Proceso>, 2020년 11월 21일.
(12) ‘Presidente instruye a SRE publicar expediente completo de investigación contra el general Salvador Cienfuegos Zepeda’, 대통령 언론보도, 2021년 1월 15일.
(13) Jorge Zepeda Patterson, ‘Cienfuegos, la otra explicación’, <Milenio>, Mexico, 2021년 1월 19일.

 

 

호전적인 지역 외교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겠다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의 의지는, 2020년 12월 1일 취임식에서 잘 드러났다. 미국이 인정하지 않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초대한 것이다. 이날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와 함께 하는 총개발계획을 발표하며 전략적으로 남미로 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한편, 멕시코는 “개입주의 금지 원칙을 내세웠다고 해서 협력에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곧바로 밝혔다. 멕시코는 베네수엘라 마두라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미주 국가들의 협의체인 ‘리마 그룹’의 압박에 반대했으나, 리마 그룹에서 탈퇴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루과이나 카리브해 국가들과 함께 ‘몬테비데오 메커니즘’과 같은 새로운 협의체를 통해 대화를 우선하기를 원했다. 2019년 8월 13일, 멕시코 국영 방송인 카날 온세(Canal Once)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교부 장관은 “재앙만 초래할” 미국의 대응방식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또한, 로페스 오브라도르 정부는 ‘정치적 망명처 제공’이라는 오랜 전통을 다시 이어가고자 한다. 정부는 에콰도르에서 공격받고 있는 에콰도르 전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의 측근에게도, 베네수엘라 야당 의원에게도 정치적 망명처를 제공했다. 멕시코는 특히 2019년 11월 쿠데타로 사임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미주기구(OAS)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는데, 특히 미주기구 사무총장인 루이스 알마그로가 얼마나 해로운 인물인지 강조했다. 

동시에 2020년 1월 8일부터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국가공동체(CELAC)의 의장국을 맡게 된 멕시코는, 이 공동체의 재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파와 대결 논리를 펼치면서 진보주의 축을 형성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다국적 기구들 내에서 라틴 아메리카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고자 함이다. 정부는 멕시코 외교가 라틴 아메리카 지역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  

 

글·루이스 알베르토 레이가다 Luis Alberto Reygada
번역·이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