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딩 코미디의 신예’ 양리에 대한 마녀사냥

중국 남성 자존심을 건드린 여성 코미디언

2021-05-31     장저린 | 언론인

세계적인 남초 국가 중국(여아 100명 당 남아 수 114명)은 페미니즘을 곱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200명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기껏해야 5% 미만이다. 코미디언의 세계는 여성 배척 현상이 훨씬 더 두드러진다. 코미디언 양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남성들을 저주하며 돈을 뜯어내는 여자.” 

성난 중국 남성 네티즌들이 노트북 제조사 인텔의 공식 웨이보(중국의 SNS) 계정에 몰려가 불매운동을 벌였다. 인텔의 잘못이 있다면, 최근 중국 스탠딩 코미디의 새로운 장을 연 양리를 새로운 광고 모델로 영입한 것이다. 29세 여성 코미디언 양리는 “중국 남성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와 모욕을 주고 남녀대립을 조장하는 개그를 선보였다”는 이유로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2021년 3월 18일 방송된 짧은 광고영상에서 그녀가 거칠게 남성을 모욕하거나 조롱하는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양리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다. “인텔의 취향은 남자를 고르는 내 안목보다 낫지.” 그런데도 이 미국 회사는 남성들의 항의에 굴복하고 하루도 안 돼 문제의 광고영상을 내렸다. 게다가 이 코미디언의 모습이 담긴 홍보 게시물을 전부 수거했다. 

엄청난 광풍을 몰고 온 남성 네티즌의 집단행위 이후 마녀사냥은 더욱 본격화됐다. 6일 후, 양리가 한 생리대 회사의 제품을 팔기 위해 인터넷 쇼핑 생방송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그날 정오부터 남성 네티즌들이 관련 사이트로 몰려가 해당 상품의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남성 군단은 ‘이 극단적 페미니스트’를 방송에서 하차시키라고 거세게 요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양리를 열렬히 지지하는 여성들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양 진영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결국 양리는 방송 출연을 강행했다. 오히려 남성 네티즌의 소란 ‘덕택’에, 평소 수천 명에 불과하던 시청자는 160만 명까지 치솟았다.

어떻게 코미디언 한 명이 이런 소란을 몰고 온 것일까? 수도 베이징과 인접한 허베이성의 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난 양리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후, 본인의 말에 의하면 잠시 두 가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직업경력을 짧게 거쳤다. 그러다 2018년 10월, 마침내 남자들의 직업으로 통하던 코미디언 계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녀는 외모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의 심리를 풍자하거나, 여성이 접하는 성차별·편견·규범 등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주제들을 다루며 반순응주의 기치를 내건 코미디를 선보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고, ‘남성 차별’ 논란을 몰고 왔다. 논란의 원인은 2020년 8월 공연 형식의 코미디였다. 당시 무대에 선 그녀는 “저는 남자들이 참 좋아요. 남자들은 정말 대단하고 더군다나 신비롭기까지 하잖아요. 남자들의 머릿속은 불가사의하죠”라고 말한 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토록 평범한 애들이 어쩌면 그리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는지.” 순간 방청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평범하지만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는”이란 뜻의 짤막한 중국어 문장, ‘Pu Que Sin(푸 취에 신)’이 새로운 인터넷 신조어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많은 중국 여성은 양리의 코미디가 여자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감동을 준다며 그녀에게 ‘천재’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반면 중국 남성은 그녀가 “의도적으로 남성을 비하한다”라며 분개한다. 2020년 12월 양리는 한 TV 방송에서 자신의 코미디에 불쾌한 감정을 토로하는 중국 남성들을 정조준했다. 그녀가 ‘남자의 한계’를 시험한다는 한 남성 코미디언의 쓴소리에 양리는 다음과 같이 냉소적으로 맞받아쳤다. “어머나, 그러니까 남자들에게는 넘지 말아야 할 정신적 한계라는 게 있다는 거예요?” 

이 말은 또다시 새로운 논란을 몰고 왔다. 양리의 발언은 웨이보 검색어 1위에 등극했고, 온갖 인신공격과 악성 댓글이 빗발쳤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이 예능인을 중국의 라디오·영화·텔레비전 관련 부서인 국가광파전영전시총국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양리의 코미디가 “성차별에 젖어 모든 남성을 지속적으로 모독하는 한편, 증오를 조장하고 국민 간 갈등을 부추기며 젠더 적대감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중국식 사회주의 사회가 조화롭게 발전해나가는 데도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1)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작 양리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로 규정되는 데 대해 수없이 불편한 마음을 토로해왔다. 페미니스트란 꼬리표를 달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 젊은 여성이 처음 코미디언 세계에 발을 담갔을 때, 서구를 휩쓴 ‘미투 운동’은 아직 중국에서 낯설기만 했다. 당시 세계 성(性)격차지수 순위에서, 중국은 149개국 가운데 103위를 차지했다. 3년 뒤인 2021년에는 156개국 중 107위로 순위가 밀려났다.(2) 

하지만 이런 후퇴를 애석하게 생각하는 중국인은 드물었다. 중국인들은 오히려 서구를 비판했다. 가령 ‘서구식의 불공정한 잣대’로 평가한 결과라는 한 네티즌의 목소리에 많은 중국인들이 폭발적으로 호응했다. 당시만 해도 바야흐로 남성 중심적인 규범에 거부감을 지닌 새로운 여성 세대의 등장에 주목하는 중국인은 많지 않았다.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을 주요 독자로 하는 중국 일간지 <신징바오>는 중국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주의의 원인을 ‘공적 공간에서 여성의 발언’을 끊임없이 폄훼하는 중국의 ‘전통’에서 찾았다. 그리고 이런 전통이 “일정 주제에 대해 여성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가부장적 사회의 사회문화적 토양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3)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중국 페미니스트의 기수로 통하는 루핀은 2015년 UN여성지위위원회 연례회의에 참석한 뒤 결국 미국에 눌러 앉는 신세가 됐다. 당시 “언제나 중국에서는 페미니스트보다 페미니즘 비판자가 제도적 지원을 더 많이 받는다”라며 자국의 ‘가부장적 정책’을 비판한 것이 원인이었다.(4) 이 발언 이후, 그녀는 막후 실력자로 지목을 받았다. 그리고 중국 내에서 여성활동가 5인이 공안에 체포됐다. 안정을 신앙처럼 추앙하고, 페미니즘을 ‘사회에 유해’한 사상으로 간주하는 중국에서 “반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사실상 ‘천부적인’ 자산을 손에 쥐고 있는 셈”이라고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논평했다.(5)

그러나 양리는 자신의 코미디가 유해하다는 비판을 철저히 거부한다. “저는 진짜 남녀 간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들은 사실상 다룬 적이 없어요.” 양리의 코미디는 그저 남녀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재확인하는 데 그친다. 가령 수많은 중국 여성이 열화와 같은 반응을 보였던 다음과 같은 유머가 대표적이다. “여러분은 회식 자리에서 다른 직원들과 동등하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을 거예요. 하지만 어떤 남자들은 그런 여러분을 들러리 정도로만 취급하려 하죠.” 다소 신중한 이 발언조차 결국 남자들의 레이더망을 피하지 못했다. “예능인으로서 저는 언제나 제 말이 모욕적이지 않은지 끊임없이 저울질하곤 합니다.”

심지어 평소 성차별적인 개그로 좌중을 웃기는 데 익숙한 일부 남성 동료 코미디언들조차 그녀를 손가락질한다. 결국 ‘유머’로 향하는 길은 일방통행에 불과한 것인가. 

 

 

글·장저린 Zhang Zhulin
언론인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양리 고발당하다. 대체 남성 네티즌들은 유머 감각이 있는가?’, <펑파이>(澎湃), 상하이, 2020년 12월 29일(표준 중국어(만다린).
(2) 2006년 세계경제포럼이 만든 지수.
(3) ‘양리 “봉쇄” 조치에 대해 말하다’, <신징바오>(新京报), 베이징, 2020년 12월 29일(표준 중국어(만다린).
(4) ‘중국의 페미니즘’, <뉴욕타임스> 중국어판, 2017년 2월 2일(표준 중국어(만다린).
(5) ‘왜 중국 페미니스트들은 인터넷에서 ‘공격’당하는가’, BBC 중국어 방송, 2021년 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