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케이블, 미·중간 네트워크 인프라의 지정학 경쟁

해저 케이블, 국가적 생존 사안

2021-06-30     샤를 페라쟁 외

자유지상주의자들이 꿈꾸던, 사기업이 인터넷을 점령하는 세상은 점차 멀어지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앞에서 오랫동안 무력했던 정부가 마침내 디지털 무대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이다. 19세기 이후 통신망이 그러했듯, 21세기에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물리적 구조가 권력과 직결되면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나치 독일군이 ‘마르타(Martha)’라고 불렀던 그곳에는, 적갈색의 커버가 회색 콘크리트 건물을 덮고 있다. 마르세유 항구를 따라 펼쳐진 에스타크 방향의 도로 옆에, 나치의 해저 기지였던 부지가 70년 넘게 방치돼 있었다. 이 미완성 상태의 벙커는 용기병 작전(Operation Dragon)에서 연합군이 영창으로 사용한 이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곳이다. 최근 독일 포로들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벽화를 보러 일부 전문가들이 방문했을 뿐이었다. 그런 곳이 지금은 통제구역이 됐다. 2020년에 인터시온(Interxion)사의 거대한 데이터센터 중 하나인 MRS3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민감한 클라우드 플랫폼이라 엄격한 기밀조항이 적용됩니다.” 파브리스 코키오 대표가 입구를 막았다. 민간부지인데도 보안은 군부대 수준이었다. 마르세유로 들어오는 해저 광케이블 14개 중 일부가 이곳에 있다. 전 세계에서 오는 데이터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변호사 사무소, 지역 식수 공급업체, 통신업체 등 고객들의 정보센터에 저장 및 공유된다. 최근 프랑스 정부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했다. 

“유럽 국가들이 인터넷 네트워크 인프라 관련 민간 주체들에 관심을 드러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2000년대부터 조용히 관심을 보였죠.” 코키오는 이렇게 설명했다. 오늘날 대륙들 간 전자통신의 99%는 해저 케이블을 통해 이뤄진다. 즉, 해저 케이블 관련 정보의 확보와 선점은 정부의 중대과제가 된 것이다. 크루즈 터미널 주변의 거대하고 멋진 건물들을 보면, 우리가 지금 첩보활동의 본거지에 와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어렵다. 

 

‘테러 방지’ 명목으로 정당화된 해킹

내부 고발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슈피겔>에 제공한 문서에 의하면, 미 국가안보국(NSA)은 2013년 2월에 ‘Sea-Me-We 4’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사이트에 컴퓨터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Sea-Me-We 4는 마르세유에서 북아프리카, 중동지역,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통신 및 인터넷 케이블이다.(1) NSA는 심지어 마르세유를 주요 해킹 지점 중 하나로 이용했다.

“초반에는 해저 케이블에서 정보를 가로채는 것이 ‘테러 방지’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됐습니다.” 파리정치대학의 사회학자인 도미니크 부이에가 설명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용의자를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다량의 정보를 확보할 필요성”이 대두됐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 뒤 미 정부는 기밀정보 동맹체인 ‘Five Eyes’의 수장이 됐다. ‘Five Eyes’는 회원국 간의 협력하에 케이블로 전달되는 정보를 세계 주요 항구에서 취합·공유한다. 한 마디로 ‘케이블 해킹’인 것이다.

“현재 미국은 모든 케이블에서 정보를 가로채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시스코 라우터를 시험해본 결과, 일부 데이터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미국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프랑스 통신업체의 고위 책임자가 말했다. 대량의 정보를 빼가는 미국은, 정부와 대사관 등 정확한 목표를 설정해 정치·경제 정보만 골라서 빼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동차와 농산물 가공업 분야 주요 주체들의 회의가 열렸던 온두라스 휴양지의 케이블이 해킹되는 사건이 있었다. 전 세계의 핵 과학자를 교육하는 트리에스테의 국제물리이론센터(ICTP)도 이와 같은 피해를 입었다.(2)

영국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12년에는 이동통신 감시 업무를 수행하는 영국의 정부기관 정부통신본부(GCHQ)가 유럽 행정부에 주로 서비스를 공급하는 벨기에의 통신업체 벨가콤의 전산망에 잠입하기 위해 케이블을 해킹해, 벨가콤 직원들의 쿠키를 빼낸 사실이 드러났다.(3) 2014년 프랑스 국민들은 영국정보기관이 2011년부터 오랑주(Orange)의 고객 정보에 접근해 왔음을 알게 됐다. “당시 영국의 정보기관은 일리아드(Illiad) 그룹이 모사드(Mossad)와 협정을 체결했는지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GCHQ는 오랑주를 통해 케이블의 정보 이동량 변화를 측정함으로써 프랑스와 이스라엘이 통상 협정, 협업, 작전 등 함께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아주 일반적인 일이 돼버렸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내부인이 말했다.

스노든의 폭로 이후 유럽 국가들은 분노했다. 그중 프랑스의 분노는 특히 컸다. 프랑스는 NSA와의 협력하에 2008년부터 해저 케이블의 국제 커뮤니케이션 도청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4) 스노든의 최신 보고서에 의하면, 2009년 대외안보총국(DGSE)은 “민간 공급업체의 암호화 시스템을 파괴하는 대규모 해킹”을 진행하면서 GCHQ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했다. 오랑주의 협조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개의 케이블이 도청됐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요즘 이동통신 기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국가가 있나요?” 프랑스관리직총동맹(CFE-CGC)의 대표인 세바스티앙 크로지에가 물었다. “이동통신업체는 국가 권력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명확한 법적 틀도 제재도 없다. “해저 케이블은 국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기 때문에 정부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DGSE가 케이블에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참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2015년 정보관련법도 전혀 바뀌지 않았고요.” 국가안보감청통제위원회(CNCIS)의 전 대표 장마리 들라뤼가 말했다. 이는 프랑스만의 일이 아니다. “스노든 게이트 이후 OECD 국가들이 통과시킨 정보법은 오히려 데이터 해킹을 쉽게 만들었습니다.” 크로지에는 말했다. 

커뮤니케이션, 금융 거래, 저장된 데이터에 대한 접근(클라우드)은 모두 해저 케이블을 통해 이뤄진다. 오늘날 국가의 정보관련 능력은, 곧 지정학적 영향력인 셈이다. 중국도 이미 이 사실을 파악했다. 미 의회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은 2010년 4월 8일에 18분 동안 미 상원, 국방부, 상무부, NASA의 송수신 이메일을 중국 서버로 빼돌렸다. 2019년 6월에는 부이그 텔레콤과 SFR의 유럽 트래픽 상당 부분이 2시간 동안 중국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을 오라클 기업의 엔지니어가 발견해 큰 파문이 일었다.

중국은 공기업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강요한다. 사이버 공간의 물리적 계층(Physical layer, 데이터를 다른 시스템으로 전송하는 물리적인 매체)을 제어하라고 재촉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차이나 모바일, 차이나 텔레콤, 차이나 유니콤을 내세워 아시아 컨소시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로 향하는 트래픽이 급증하면서 중국, 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은 케이블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됐습니다. 2010년 이후 이들이 평균적으로 케이블에 투자하는 비중은 9%입니다. 1987년과 2010년 사이에는 1%에 불과했습니다.” 해저 케이블 거버넌스의 전문가인 정치학 박사 펠릭스 블랑이 설명했다. 아시아 지역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넘어서서, 중국은 니카라과 운하 등 전략적 요충지의 프로젝트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에는 인터넷 케이블뿐만 아니라, 마르세유를 거점으로 아시아와 유럽 대륙을 연결하는 최초의 광케이블을 구축하는 일도 포함돼 있다. 일명 PEACE(Pakistan & East Africa Connecting Europe) 케이블이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중국 기업은 전 세계 케이블 건설 프로젝트의 20%에 참여했고, 이 중 절반 이상은 남중국해 바깥의 개발도상국 주변에서 이뤄졌다.(5)

 

미중 전쟁, 무역에서 케이블로

당연히 미국은 이런 상황이 불편하다. “2013년 미국은 중국 기업 화웨이마린이 참여한다는 이유로, 뉴욕과 런던을 연결하는 대서양 횡단 케이블 건설 프로젝트를 반려했습니다.” 블랑이 지적했다. 2020년에는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가 구글과 페이스북을 통해, 당시 추진 중이던 해저 광케이블 프로젝트의 노선을 변경해 홍콩을 기점에서 제외할 것을 권고했고, 구글과 페이스북은 이를 받아들였다. 미 정부는 컨소시엄의 세 번째 참여사인 홍콩 기업 ‘퍼시픽 라이트 데이터 커뮤니케이션(Pacific Light Data Communication)’이 중국 정보부와 내통한 것이 그 이유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크로지에는 “이 작전의 주요 목적은 홍콩의 경제적 입지를 약화시킴으로써 홍콩이 중국과 가까워지고 영국을 밀어내는 상황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PEACE 케이블에 관해 미국은 프랑스를 직접적으로 압박했다. 2020년 10월에 피터 버코위츠 미 국무부 정책기획관은 프랑스 대통령의 자문관과 외교부 및 국방부 대표를 만나, 전 세계 곳곳에 케이블을 설치하려는 중국의 야심과 이에 따른 첩보 위험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건넸다. “압박을 하는 건 당연합니다.” 컨설팅 기업인 유라시아 그룹 소속의 폴 트리올로는 말했다. “클라우드는 미국 것입니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은 유럽의 경쟁자인 아웃스케일이나 OVH를 크게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알리바바나 텐센트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미국은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면서 점점 더 케이블 분야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리옹 장물랭 3대학의 법학 및 정치학 박사인 카미유 모렐이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아주 최근 들어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2018년에 호주를 압박해 화웨이 파이낸스의 시드니와 살로몬 제도 간 케이블 설치 프로젝트를 무산시키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런 간섭은 마이클 폼페이오 전 미 국무부 장관이 추진한 ‘청정 네트워크(Clean Network)’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중국의 이동통신업체(차이나 텔레콤)와 일부 앱(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목한 틱톡)의 미국 내 사용을 금지하고 중국에 저장된 데이터양을 줄이고 중국 업체들을 배제해 케이블망을 ‘깨끗하게’ 유지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처음부터 미국의 소유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중국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미국의 입장에 지나치게 동조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분야 부처 간 관리부 소속 연구원인 오펠리 코엘료가 말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중국 감시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뉴질랜드 보안정보국은 NSA를 대리해 오클랜드에 위치한 중국 영사관을 지나는 케이블 망을 해킹했다.(6) 사실 인터넷 인프라는 중국의 생존수단이다. 전 세계 20%에 달하는 인구를 전 세계 10%만의 농지로 먹여 살려야 하는 중국은 “원자재와 식자재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중국 영토 바깥에서까지 기술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투자하고 있다.”

워싱턴 대학교 정치학과의 연구원인 스타티아 리가 설명했다. 예를 들어 차이나 유니콤은 조업 구역에 대한 접근권을 받는 대가로 카메룬과 브라질 간의 케이블 연결 사업에 투자했다.(7) “중국 케이블 전략의 초기목적은 내수 충족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의 디지털 경제는 프랑스, 아프리카, 아시아 등 해외로까지 점점 더 확대됐습니다. 이른바 ‘디지털 실크로드’입니다.” 오랑주의 국제 네트워크 부대표인 장뤽 뷔맹이 말했다. 그에 의하면, 최근 홍콩에서 일본, 싱가포르, 필리핀을 연결하는 3개 케이블 설치 프로젝트에 구글이 부분 투자한 사실이 밝혀지자 중국 정부가 이를 취소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다른 국가들도 미국과 거리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여기엔 쿠바도 포함되는데, 미국은 이에 대한 반발로 플로리다를 지나는 케이블이 쿠바로 연결되는 것을 금지했다(현재 미국과 남미를 연결하는 광케이블 대부분이 플로리다를 지난다). 스노든의 폭로가 있고 몇 개월 뒤, 지우마 호세프 정부는 미국을 고립시키고 브라질의 디지털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브라질과 포르투갈을 연결하는 엘라링크(EllaLink)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러시아도 같은 야심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데이터 센터의 이전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9년 말까지 러시아 데이터의 60%가 해외에 저장됐습니다.” 프랑스 국제관계 연구소의 러시아 인터넷 전문 연구원인 쥘리앵 노세티가 설명했다. 

 

매년, 100건 안팎의 케이블이 절단된다

2011년 ‘아랍의 봄’ 시기에 정부가 시리아와 이집트 국민을 고립시키기 위해 고의로 케이블을 잘랐던 것처럼 광섬유 이동통신 인프라는 감시의 도구, 억압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제적 영향력의 척도이기도 하다.(8) 이런 양면적인 성질 때문에 이동통신 인프라는 오늘날 중요한 지정학적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19세기에는 전신 케이블이 그런 대접을 받았다. 1852년 최초의 전신 케이블이 파리, 런던, 뉴욕의 주식시장을 연결했다. 그로부터 몇십 년 뒤에는 ‘이스턴 텔레그래프 컴퍼니(Eastern Telegraph Company)’가 영국에서부터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영국 식민지들, 남미, 호주, 미국의 서부 해안을 연결하는 케이블을 다수 설치했다. 1892년 이후 전 세계 케이블의 2/3은 영국의 소유다. “오늘날 해저 인터넷 케이블의 노선은 과거 대영제국의 것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인터넷 거버넌스 전문가이자 전 외교관인 조반 쿠르발리자가 말했다. 

마르세유와 알제 간에 케이블이 연결됐던 1870년부터 프랑스와 영국에 “케이블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가 됐다. 강대국 간 그리고 본국과 식민지 간의 해상 무역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전쟁이 나도 이런 무역 활동을 유지하고 식민지를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역사학자 다니엘 헤드릭은 이렇게 썼다.(9) 당시 영국 정부는 감시가 쉽도록 해외의 해저 케이블 부설선을 최대한 영국 해안에 가까운 곳에 정박하게 했다.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전쟁 기간에는 영국과 같이 해저 케이블 부설선의 수가 많고 강력한 선박을 소유한 국가만이 상대 국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법, 중립국의 권리와 소유물 보존, 평화와 영원한 우정의 약속, 국가 간의 박애와 같은 것들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세기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헤드릭은 덧붙였다. 1889년 쿠바에서 미국과 스페인 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사상 처음으로 케이블이 표적이 됐다. 그 다음부터 영국은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마다 독일의 해저 케이블부터 끊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해저 케이블을 통해 중요한 데이터가 다량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은 큰 우려를 낳고 있다. 2015년 여름에는 러시아의 해양과학연구선 얀타르(Yantar)가 미국 해안 근처의 케이블 노선을 따라간 것을 두고 영국의 싱크탱크 폴리시 익스체인지(Policy Exchange)는 2017년 ‘해저 케이블 : 필수적이고 연약한 대상’이라는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 해군 제독이 주도해 작성한 40여 쪽의 이 보고서는, 러시아가 갈등 상황에서 해저 케이블을 절단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NATO의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그는 2020년 말에 해저 케이블의 감시 및 보호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감시선, 해저 드론, 수중 음파 탐지기 등을 심해에 설치하면서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각국의 국방부는 ‘해저전(seabed warfare)’에 대비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고, ‘2021년 현재의 전략’ 보고서가 분석했다. 얀타르는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 미국과 중국의 해저 드론은 무슨 일을 하는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매년 100건 안팎의 케이블 절단 사건들 중 고의적인 경우는 소수이며, 확실히 대다수는 연안어선으로 인한 경우입니다.” 카미유 모렐이 답했다. “케이블은 외교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지만 아직 군사적 행동으로 이어질 정도는 아닙니다. 일이 너무 커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일부러 케이블을 파손하는 행위는 일종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케이블 문제의 반복은 이미 역사가 길다. 1930년대에 라디오가 개발되면서 케이블은 뒷전으로 밀렸지만 그렇다고 아예 사라지지는 않았다. 헤르츠파에 비해 도감청이 상대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위성이 발명된 후에도 케이블은 냉전 시기의 첩보활동에 이용됐다.(10) 1980년대 말에 광섬유가 등장했고, 광섬유의 무한한 능력은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인터넷과 이동통신의 광대역 시대를 열었다. “광섬유가 개발되고 나서 약 10년 동안은 국영업체로 구성된 컨소시엄과 공기업이 케이블 산업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뉴욕대학교 교수이자 『해저 네트워크(The Undersea Network)』(Duke University Press, 2015)의 저자인 니콜 스타로시엘스키는 설명했다. “그러나 1996년 미국에서 이동통신법이 제정된 이후 많은 국가들이 공정 경쟁의 원칙을 도입하면서 민간 업체들의 비중이 증가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10년 만에 케이블 산업 내 국영업체의 자본 비율은 크게 줄어 총투자비의 1%도 되지 않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과거에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10여 개의 업체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시장을 좌지우지했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단독운영이 가능한 미국 투자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또한 지금은 중국이 아시아 시장만 장악하고 있지만 3년만 지나면 서구 해저 케이블의 대부분을 관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11) 구글은 현재 5개 케이블을 소유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설치된 케이블의 이름은 뒤낭(Dunant)이다. 20년 전에 포설된 광케이블보다 약 200배 더 강력한 뒤낭 케이블은 미국 동부의 버지니아 비치와 프랑스 방데주의 생일레르드리에즈를 연결한다. “초반에는 이동통신업체들로부터 대역폭을 빌려 쓰는 데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트래픽이 급증하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리가 단독 케이블을 구축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구글에서 해저 케이블 구축 계약의 협상을 담당했던 제인 스토웰이 말했다.

 

하청업체가 돼버린 이동통신 기업들

유튜브, 넷플릭스, 트위치 등 영상문화가 확산되고 데이터 저장이 일반화되면서 데이터 소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1년의 수치는 2005년에 비해 무려 130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12) “트래픽을 주로 만들어내는 것은 GAFAM(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특히 유럽에서 이 기업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GAFAM은 이미 전 세계 인터넷 대역폭의 절반을 사용하고 있고, 2027년에는 이 비중이 80%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에 따라 기업이 스스로 데이터의 흐름을 통제하기를 원하게 됐습니다.” 『실리콘 국가들(Silicon States)』(Counterpoint, 2008)의 저자인 루시 그린이 말했다.

이동통신 기업들은 격분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들의 고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내에 케이블이 설치된 해안구역을 관리하고, 성가신 서류들을 처리하고, 최종 사용자들을 상대하는 일이 전부입니다. 하청업체가 돼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그들의 소유가 아닌 인프라에 점차 의존하게 됐습니다.” 기자이자 『튜브: 인터넷 중심부로의 여행(Tubes : A Journey to the Center of the Internet)』(Ecco, 2013)의 저자인 앤드류 블럼이 분석했다. 게다가 데이터가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서버에 저장되면서 기업들은 케이블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 

“오늘날 케이블 산업을 견인하는 것은 클라우드 경제입니다. 비용과 효율성을 이유로 유럽의 대기업들은 아마존 웹 서비스와 같은 기업에 데이터를 위탁해 관리합니다.” 부이에가 말했다. 유럽의 데이터는 아마존(시장 점유율 31%), 마이크로소프트(20%), 구글(7%) 등 미국 클라우드 대기업에 주로 저장돼 있다. 따라서 2018년 5월 트럼프 행정부의 클라우드법(Cloud Act) 이후 미국 기업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더 높아졌다. 클라우드법에 따라 이제 미국 IT 기업의 데이터는 어느 영토의 서버에 저장됐는지와 무관하게, 미 법원에서 허용하면 열람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EU 내부의 강력한 로비 시스템 덕분에 GAFAM은 민감한 데이터 관리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를 손쉽게 취득하고 있다.(13) 아무런 의심 없이 미국의 케이블에 의존하는 기업과 정부도 있다. “경쟁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펠리 코엘료가 말했다. “‘헬스 데이터 허브(Health Data Herb)’가 일례입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아주르가 관리하면서 2019년부터 연구 목적으로 프랑스 병원의 의료 기록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데이터를 저장 및 관리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아주르의 방식과 미국의 법규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 업체들만 원칙을 지키는 자유경쟁 상황에서는 아마존이나 구글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운영부터 데이터 전송까지 모든 면에서 미국이 우월하기 때문입니다.” 부이에가 말했다.

 

 

‘평등’을 명분으로 이뤄지는 불평등

EU 내에서는 인터넷 중립에 관한 법리에 따라, 이론적으로는 자유경쟁이 보장된다. 유럽업체들은 자사 네트워크로 전송되는 모든 콘텐츠가 품질 저하 없이 모든 고객에게 전달되게 해야 한다. 그러나 GAFAM은 케이블 용량을 늘려 필요한 콘텐츠를 복사하기만 하면 된다. “그들은 서비스 제공을 위해 유럽에 들어올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각종 규제와 납세의 의무에서도 면제됩니다.” 오랑주의 크로지에는 덧붙였다. “불합리한 규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대기업을 규제해 중소기업의 성장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평등’이라는 명분으로 모든 기업에 동일한 규제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죠!” 그의 동료 뷔맹이 분노하며 말했다. 

기술적, 경제적, 법적 의존에서 벗어나고는 싶지만 아마존이나 구글과 정면 대결을 할 능력이 없는 유럽 국가들은, 독립은 못해도 케이블 절단과 서비스 해지에 대응할 수는 있도록 케이블과 용역업체(미국 또는 중국)의 수를 늘리고 있다. 그러나 빈곤하고 인터넷 연결도 어려운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에서는 이마저도 사치다. 구글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6,600km의 케이블 에퀴아노(Equiano)를 구축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투아프리카(2Africa)라는 작은 컨소시엄을 이끌면서 아프리카 대륙을 둘러싸는 3만 7,000km의 해저 케이블을 2023년까지 구축할 계획이다. “의존도는 점점 더 높아질 것입니다. 이 기업들은 무료 인터넷을 제공하면서 그 대가로 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쿠르발리자는 말했다. 

구글과 오랑주가 합작해 개발한 스마트폰은 이미 해당 시장을 장악한 상태다. 한 마디로, 교묘하게 타기팅된 광고들로 가득한 안드로이드 앱이 깔린 구글 휴대전화가 구글 케이블을 통해 연결되는 것이다. 펠릭스 르블랑은 디지털 종속이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측했다. “페이스북은 콩고민주공화국에 케이블을 연결해 주면서, 콩고의 의료 기관에 소셜 네트워크, 위키피디아, 그리고 일부 현지 서비스에 대한 제한적인 접근권을 제공해줄 것입니다. 그러면 페이스북이 개발한 AI를 통해 최신 의료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겠지요. 교육 분야에 관해서도 이와 같은 과정을 밟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EU는 또 한 번 기회를 놓쳤다

디지털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에 대항하기에 유럽의 자유시장 논리는 너무나 무력하다. 세계 2위의 데이터 센터 공급업체인 유럽의 인터시온은 2020년 미국 기업 ‘디지털 리얼티(Digital Realty)’에 인수됐다. 케이블 포설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 중국의 화웨이 마린은 영국기업 글로벌 마린과 합작회사를 설립할 때 자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했다. “2000년대 말 이후 영국에는 전략적 분야에 대한 해외기업의 투자를 막는 절차가 전혀 없습니다. 중국은 몇 년에 걸쳐 경쟁력을 쌓은 후, 결국 영국을 밀어냈습니다.” 

기자이자 『비밀스러운 대화, 스파이의 세계』 (Fayard-France Culture, 2020)의 공동 저자인 피에르 가스티노의 분석이다. 프랑스의 ASN(Alcatel Submarine Network)은 시장 점유율 47%를 자랑하는 세계 1위의 해저 케이블 제작업체다. GAFAM의 주요 거래처이던 ASN은 2015년 핀란드 기업 노키아에 인수됐고, 노키아는 미국 자본이 탐내고 있다. 이는 프랑스가 “디지털 산업을 유지할 야심도 수단도 없다는 증거”라며 익명을 요청한 한 노조원이 한탄했다. ‘디지털 종속’의 위협을 받게 된 프랑스는 ‘중대한 실수’를 인정했다.(14) 국내 주요 기업들을 해외 자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2005년 제정되고 2014년 아르노 몽테부르그에 의해 강화된, 전략적 투자에 관한 법령도 소용없었다.

비교를 위해 다른 예를 들어 보자. 2003년 미국의 케이블 업체인 ‘글로벌 크로싱(Global Crossing)’에 해외 자금이 유입될 조짐이 보이자, ‘팀 텔레콤(Team Telecom)’이라 불리는 FBI의 특별변호사팀이 직접 개입해 홍콩 기업의 글로벌 크로싱 인수를 막았다. 결국 ‘싱가포르 테크놀로지 텔레미디어(Singapore Technology Telemedia)’에 인수되기는 했지만, 미국 시민권자를 주요 보직에 앉히고, 케이블을 거치는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을 제공하고, 당국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도록 미국 영토에 운영 센터를 설립하는 조건을 보장받았다. 이런 합의는 이동통신 인프라의 국제적 관리에 있어서 일종의 불문율이다. 중국 역시 국내 기업을 해외로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2019년 해외 기업에 매각됐던 화웨이마린은 중국 기업 헝통(Hengtong)에 다시 인수됐는데, 헝통은 세계 1위의 지상 및 해저 광케이블 제작 업체이자 중국 정부와 아주 밀접한 기업이다. “케이블은 분산된 영토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며, 장기적으로 정치적 및 경제적 갈등을 일으킵니다. 오늘날 케이블 분야의 두 축은 미국과 중국입니다.” 오하이오 대학교의 지리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J. 말렉키가 강조했다. 

EU는 이번에도 기회를 놓쳤다. 

 

 

글·샤를 페라쟁 Charles Perragin
기욤 르누아르 Guillaume Renouard

독립 저널리스트, 상귤리에 콜렉티브(Collectif Singulier, 독립 저널리스트 공동체) 회원.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Jacob Appelbaum 외, ‘Documents reveal top NSA hacking unit’, <슈피겔>, Hambourg, 2013년 12월 29일.
(2) Jacques Follorou & Martin Untersinger, ‘Révélations sur les écoutes sous-marines de la NSA NSA의 해저 케이블 도청에 관한 폭로’, <르몽드>, 2014년 5월 8일.
(3) Ryan Gallagher, ‘The inside story of how British spies hacked Belgium largest TelCo’, <The Intercept>, 2014년 12월 13일, https://theintercept.com
(4) 국방군대위원회(Commission de la défense nationale et des forces armées)의 DGSE 감사 보고서, 국회, Paris, 2013년 2월 20일.
(5) ‘Submarine Telecoms Industry Report’, n° 5, Submarine Telecoms Forum, Sterling (Virginie), 2016년 10월.
(6) Ryan Gallagher & Nicky Hager, ‘New Zealand plotted hack on China with NSA’, <The Intercept>, 2015년 4월 18일.
(7) ‘Mers et océans : quelle stratégie pour la France ? 바다와 대양 : 프랑스의 전략은?’, MM. Jean-Luc Mélenchon & Joachim Son-Forget의 정보 보고서 n° 2042, 국회, 2019년 6월 19일.
(8) Dominique Boullier, ‘Internet est maritime : les enjeux des câbles sous-marins 인터넷은 바다로 연결된다 : 해저 케이블의 문제’, <Revue internationale et stratégique>, vol. 3, n° 95, Paris, 2014년.
(9) Daniel Headrick, ‘Le rôle stratégique des câbles sous-marins intercontinentaux, 1854-1945 1854~1945 대륙 간 해저 케이블의 전략적 역할’, Pascal Griset (지도), ‘Les Ingénieurs des télécommunications dans la France contemporaine 현대 프랑스의 이동통신 엔지니어들’, 프랑스 경제금융 역사 위원회 (Comité pour l’histoire économique et financière de la France – IGPDE), Vincennes, 2013년.
(10) Matt Blitz, ‘How secret underwater wiretapping helped end the Cold War’, <Popular Mechanics>, New York, 2017년 3월 30일.
(11) ‘Le devoir de souveraineté numérique 디지털 주권의 의무’, MM. Franck Montaugé & Gérard Longuet의 보고서 n° 7, 상원, Paris, 2019년 10월 1일.
(12) Félix Blanc, ‘Géopolitique des câbles : une vision sous-marine de l’Internet 케이블의 지정학 : 인터넷의 해저 연결’, Les Carnets du CAPS, n° 26, Paris, 2018년.
(13) Adam Satariano & Matina Stevis-Gridneff, ‘Big Tech turns its lobbyists loose on Europe, alarming regulators’, <뉴욕타임스>, 2020년 12월 14일.
(14) ‘Mers et océans : quelle stratégie pour la France ? 바다와 대양 : 프랑스의 전략은?’, op. 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