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디지털 세상은 가능하다?

IT 기업들의 사생활 보호책은 허구

2021-06-30     에브게니 모로조프 | 언론인

사생활 보호론자들이 2021년 초부터 연승가도를 달리고 있다. 첫 번째 당사자는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으로, 알파벳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구글 검색 엔진을 통해 사이트를 방문한 기록을 더 이상 추적하지 않겠다고 지난 3월 발표했다. 이런 결정은 제3자 쿠키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구글의 포괄적 캠페인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쿠키는 구글의 오래된 기술이자 논란 또한 많았던 기술로, 오늘날의 데이터 공유 관습을 만들어낸 원인으로 비난받고 있다.

쿠키를 이용해 인터넷 이용자들을 추적하는 대신, 알파벳은 유사한 행동을 보이는 이용자들을 한 집단(코호트)으로 묶어 자동분류할 예정이다(머신 러닝, Machine learning). 그리고 광고주는 개인이 아닌 이 코호트를 대상으로 광고 타기팅을 수행하게 된다. 물론 알파벳은 이용자들을 적절한 코호트에 배정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지만, 광고주가 이용자의 브라우징까지 알 필요는 없어진다. 

IT업계 전반도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4월 말에 애플은 운영 체제를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해 페이스북처럼 외부 앱 개발자들이 이용자들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제 명백하게 동의한 이용자들에 한해서만 개인정보 수집이 허용된다. 페이스북은 본래 이런 변경안에 반대했지만, 그 후로는 태도를 바꿔 “최소한의 개인 정보량”에 기반해 “사생활 보호를 강화”하는 광고기술까지 개발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대중이 IT업계에 대해 경계심을 풀고 호감을 가진다면, 열혈 사생활 보호론자들의 입장에서는 결국 상처뿐인 승리, ‘파이루스의 승리’가 아닐까? 그들은 기술 산업의 정치적 권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대기업들의 개인정보 보호 관련법 위반 사례만 끊임없이 지적하고 비판한다. 이들의 전략은 대기업들이 계속 법을 위반할 것이라는 예상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알파벳, 그리고 곧 페이스북까지 머신 러닝을 서둘러 도입해 사생활을 보호하고 개인화된 광고를 제공하려 노력하는 현 상황에서 이런 전략이 얼마나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다른 ‘IT’ 분야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사생활 보호론자들이 다음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것은 ‘가짜뉴스’와 관련된 대중의 불안 증가와 디지털 중독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디지털 플랫폼의 ‘솔루셔니즘(S olutionnisme)’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바로 최신 기술을 사용해 이용자들에게 개인화되고 확실하고 잘 관리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애플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한발 앞서나가서, 이용자들에게 디지털 생산성과 웰빙을 측정하기 위한 각종 도구를 이미 제안하고 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인간적 기술’을 위한 움직임은 파이루스의 승리를 거둔 이후 거의 고사상태다. IT 대기업들이 인간적이면서도 수익성이 있는 수단을 찾지 못하리라 생각하는가?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기술이 사생활을 침해하고 인간성을 악화시킨다고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을수록, IT 대기업들은 사생활 보호론자들이 주장하는 소중한 가치를 잘 지키겠다고 공표함으로써 오히려 대중에게 정당성을 인정받게 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IT 대기업들에 맞서 훨씬 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비판 근거를 마련해야 하고, 솔루셔니즘에 기반한 그들의 논리가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IT 산업이 내세우는 혁신에 현혹되지 않아야 하며, 현재 시스템 안에서 ‘누가’ ‘어떤 조건으로’ 혁신을 할 권리가 있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IT업계 경영진들이 찬양하는 창의적 파괴(Creative disruption)도 결국에는 이용자, 플랫폼, 광고주, 앱 개발자 등 어차피 기존과 동일한 요소로 구성돼있을 뿐이다.

기술의 제도적 상상력은 디지털 인프라를 사회적으로 유익한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주체의 등장을 막는다. 페이스북보다 3년 앞서 설립된 위키피디아를 제외하면 도서관, 미술관, 우체국과 같이 커뮤니케이션과 교육에 관한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다채롭고 혁신적인 디지털 기관은 현재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어떤 다른 유형의 기관이 나올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 주제에 관해 연구를 시행하는 대신 모든 과정을 IT 대기업들에 떠맡겨버렸다. 또한 대규모의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신규 인프라를 구축하는 대신 IT 대기업들이 관리하는 (대부분 유로인) 기존 인프라에 만족하고 있다. 당연히 주요 주체들은 모든 새로운 디지털 기관이 스타트업의 형태, 최소한 기존 플랫폼과 기존 운영 체제에 통합될 수 있는 앱의 형태로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결국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은 외적으로는 혁신을 표방하지만 사실은 혁신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셈이다. 대형 매체들이 정해 놓은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기관과 단체를 배척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아름다운 박물관 앱’, ‘아름다운 도서관 앱’은 만들 수 있지만, 박물관, 도서관 같은 가치를 창조할 수는 없다. 결국 이런 일들 역시, 스타트업의 형태가 될 것이다. IT 대기업들이 최근 다시 운운하기 시작한 ‘사생활 보호’는 미끼에 불과하다. 그들은 정치적 권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나아가 우리의 제도적 상상력까지 지배하려 한다. 민주주의의 가장 심각한 위협요소다.

어떻게 이 위협요소를 타파할 수 있을까? 솔루셔니즘에 의존해 안주하지 말고, 그들의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글·에브게니 모로조프 Evgeny Morozov
<The Syllabus> 포털 설립자이자 발행인. 『Pour tout résoudre cliquez ici: L’aberration du solutionnisme technologique 이곳을 클릭해서 모든 것을 해결하세요, 기술 해결주의라는 착각』(FYP Éditions, Limoges, 2014)의 저자.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참고할 기사들
- 피에르 랭베르, ‘개인정보, 이제는 정치적 사안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6년 9월호
- 에릭 클라이넨버그, ‘공공의 공간을 무너뜨리는 페이스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9년 11월호.한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조사, Paris, 2019년 7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