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감과 유혹 사이에서 방황하는 교사들

위기에 처한 프랑스 교원노조

2021-06-30     안 주르댕 외

프랑스 교원노조는 강성노조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교사의 노조 가입률과 파업 횟수는 전체 활동인구의 평균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 교원노조는 더 이상 조직적이고 결속력이 강한 투쟁의 보루가 아니다. 교원노조의 정치의식 약화는 열악한 노동조건, 사회투쟁의 거듭된 패배, 상부의 압박 등으로 인한 결과다.

 

“우리는 당연히 종교적 중립 문제에 집중한다. 또한, 정치적 중립 문제 역시 간과할 수 없다.” 

2020년 12월, 프랑스 하원에서, 반분리주의(1) 투쟁의 기수이기도 한 장미셸 블랑케 교육부 장관은 “센생드니의 공립초등학교에서 유대인 학생 이탈 현상이 심각하다”라는 지적에 이렇게 답변했다. 하지만 이날 그는 정작 공립학교보다 사립학교에 대한 투자가 더 왕성하다는 현실적 문제에 대해서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교육부의 실책에 대해서도, 교사난으로 인해 이 지역 초등학생의 학업일수가 평균 약 1년 부족한 현상에 대해서도 전혀 지적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엉뚱하게도 교육직 공무원과 그들의 과도한 정치화 현상을 비판했다. 블랑케 장관은 “사상교육을 시키려는 학교에 자녀를 보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투쟁을 포기하는 교사들

이 말만 들으면 마치 프랑스 교육부 장관이 강성 좌파 교원노조에 시달리고 있는 듯하다. 사실 이런 수사법은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 지금도 많은 시민들은 교원노조를, 조직력과 결속력이 강한, 단단한 투쟁의 보루로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교사는 프랑스 전체 활동인구의 4%에 불과하지만, 2015년 파업으로 인한 노동자 총 휴직일수의 23%는 교사가 차지했다. 공무원 총 휴직일수를 기준으로 하면, 이 수치는 71%까지 치솟는다.” 

파리 1대학 사회역사센터 연구원 로랑 프라예르만이 지적했다. 교사는 일견 전투적인 집단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물론, 적극적인 저항에 동참하고 동료들을 투쟁으로 이끄는 교사들도 있다. 그러나, 점점 많은 교사들이 제도권에 순응하는 쪽을 택한다. 나아가, 아예 투쟁을 포기하고 교직을 떠나는 이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이는 무기력증이 팽배한 오늘날 학교 현실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여준다.(2)

 “저는 부모님을 따라 공직자가 되고 싶었어요. 교사인 자신을 세일즈한다거나, 일자리를 구걸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죠.”

노에미 베리에르는 ‘강성 노조 교사’의 이미지에 매우 부합되는 인물이다. 역사지리학 교사인 그녀는 2005년 교사가 된 이후, 파리 수도권 소재 5개 중학교와 2개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수학교사인 배우자를 둔 그녀는, 전형적인 교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부모의 사회적 유산, 동일 직업군인 교사와의 결혼.(3) 프랑스 전국중등교원노조(SNES)의 일원인 베리에르는 지금도 여전히 이 단체의 이사로 참여 중이고, 노조활동 보고회의도 정기적으로 주재하고 있다. 그녀는 일부 동료들의 든든한 지원에도 고립감을 호소한다.

교사 100여 명 규모의 고교에서, 투쟁에 참여하는 이들은 10여 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현실에 눈감고 싶어해요. 정치에도 무관심하고, 공공서비스와 민간기업의 차이점도 이해하지 못하죠.” 그녀가 일하는 소도시 모(Meaux)에서도, 2019년 12월 5일 연금개혁 규탄 시위만큼은 동참자가 많았다. 하지만 평소 피켓 농성이나 총회, 가두행렬에 참여하는 교사는 30여 명에 불과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새학기 등교 소동, 2020년 10월 역사지리학 교사 사뮈엘 파티의 테러 암살 사건 등 각종 이슈 등으로 시위도 늘었다. 베리에르는 시위를 위해 올해 15일의 병가를 냈다. 그녀는 개탄했다.

“동참자는 정말 소수에요. 어느 학교나 비슷합니다.”

 

“얌전히 개집으로 돌아가라!”

소수의 동참자도 과분한 것일까? 용감하게 시위에 나선 이들을 향한 정부의 탄압을 보면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되세브르 지역의 철학 교사 알라댕 레베크는 지난 2020년 겨울 바칼로레아 시험에 수행평가를 도입하려는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고 다른 교사들과 함께 휴업 투쟁을 벌였다. 15%에 속하는 다른 학교들처럼, 되세브르 지역 멜르의 작은 시골 고등학교도 치열한 시위 현장으로 변했다. 일부 채점관들이 파업을 시작한 지 6개월, 연금개혁 반대 시위 후 1개월, 교사들과 학생들은 결집했고, 정부에 복종하기를 거부했다. 사실 교사들이 고집스럽게 불복종하는 사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다. 레베크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상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문제 출제를 거부했다. 그리고 교장이나 장학사에게 책임을 물었다. 대다수는 시험 감독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고등학교의 투쟁 문화는, 최근 2년 사이에 형성된 것이다.”

교사 파업 사태로 교육당국은 행정인력과 퇴직교사를 대체 인력으로 차출했다. 또한 헌병 40여 명이 교육청 보안인력의 지원하에 학교 현장에 투입됐다. “바로 그 순간, 시위 중인 학생들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친구들이 교실에 갇힌 채 시험을 보고 있다는 정보였다. 연락을 받은 학생들은 학교에 갇힌 친구들을 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방화문까지 단단히 벨트에 묶여 있었다.” 당시 학교 진입을 시도했던 레베크는 이같이 회고했다. 두 차례 취소된 시험은 결국 강제로 시행됐다. 무력감의 표시로 시위 학생들은 제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망트라졸리 지역에서 정부 진압을 당한 학생들을 흉내내는” 퍼포먼스였다. 레베크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결국, 학생들의 농성은 강제로 중단됐다.”

 정부의 시위 진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멜르의 사례는 상당히 폭력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레베크와 교사 2인은 ‘직업상 신중할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8개월 간 교사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됐다. “동료와 학부모, 학생들의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소도시에서 그와 같은 조치는 사회적 죽음입니다. 그들의 속셈은 투쟁을 억압하고 노조의 권리 행사를 막으려는 것뿐입니다.” 10월, ‘멜르 3인방’은 또 다른 시위자 1명과 함께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징계위원회와 관련교원단체의 의견과는 반대로, 푸아티에 교육청의 베네딕트 로베르 교육장은 이들에게 견책, 정직 2주, 전근 등의 징계조치를 내렸다.(4) 레베크는 심지어 1단계 강등조치까지 당했다. 게다가 거주지에서 무려 1시간 반이나 떨어진 두 학교에 배정을 받는 수모까지 당했다. “저 같은 사회초년생에게는 교직 생활에 환멸을 느낄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투쟁을 계속할 것인지, 침묵할 것인지 혹은 아예 교사직을 그만둘 것인지 고민 중입니다.”

교원단체 ‘SUD Education’의 공동대표 브렌단 샤반느는 “멜르 사건은 강경진압의 분수령이 됐다”라고 지적했다. 당시 12개 교육청은 파업 교사들을 상대로 법적 절차를 강행했다. 하지만 블랑케 장관의 엄포는 대개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샤반느는 “견책 이상의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정부가 파업권을 문제 삼지 않는 한, ‘직업상 신중할 의무’의 위반사실을 법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1993~2007년 교육장관을 지낸 알랭 모르방도 이 말에 동의한다. “정부의 대처가 강경해진 시점은 블랑케 장관 취임 후가 아니다. 나자트 발로 벨카셈 장관 시절부터다. 2015년 중등교육개혁 때부터 정권은 교사들의 정치성을 짓밟기 시작했다. 당시 마뉘엘 발스 총리는 한층 고삐를 바짝 죄며, 교사들에게 ‘얌전히 개집으로 돌아가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요소들

사실 오랫동안, 정부는 교원노조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노동운동의 격렬함을 누그러뜨리는 완충제 역할을, 교원노조가 맡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사가 최초로 파업에 동참한 것은 1936년 ‘인민전선’ 정권 때였다. “해방 후에야, 공무원의 지위를 근거로 교육시스템 운영에서 차지하는 교사의 역할이 공식화됐다”라고, 역사학자 프라예르만은 설명했다.(5) 협의기구 차원에서도, 제5공화국의 우파정부와 상급행정기관은 1960~1970년 회원수가 50만 명에 달했던 전국교원연맹(FEN)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비록 마찰과 의견 대립도 적지 않았으나, 중도를 지키려 하는 것이나 사회적 일탈을 멸시하는 것 등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프라예르만은 “노조를 보호하면서도, 준법정신이 투철한 교원노조의 국가주의적 문화는 지배계급을 안심시킨다”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정형화된 24시간 파업 문화도 마찬가지다. “주로 국가적 사안을 요구하기 위해 결집하는, 일정을 준수하며 벌이는 정형화된 파업은 교원노조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성향은 개혁을 물리기에 어려운 면이 있다. 사실 교원노조는 다른 산별 노조에 비해 조합원 탈퇴율이 낮은 편이다. 교사가 직업적인 측면에서(전근, 승진, 행정기관을 상대로 한 중재) 교원단체를 더 많이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교원노조의 결속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우선 물리적인 측면을 꼽을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교사라는 직업은 점점 고립되고 있다. 많은 교사가 이미 홀로 교실이나 집에서 대부분의 수업을 진행하는 상황이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교사들끼리 대면 소통이 사라지고 있다. 행정업무의 증가, 모순되거나 무의미한 온갖 요구사항, 상시적인 학생 평가 등은 교사들의 피로와 혼란을 가중시킨다. 평균 연령 43세, 여성이 71%인 교사들은 학부모 역할을 겸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런 만큼, 선뜻 집단행동에 나서기가 어렵다.

‘무력감’도 결속력 약화의 원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사회투쟁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많은 교사들이 무력감에 빠져있다. 파업 행위와 파업에 동참하는 이들은 멸시의 표적이 되곤 한다. 그러니 학교와 미디어의 멸시를 우려한 교사들은 끝내 격식을 갖춘 서한이나 기본적인 성명서 발표, 혹은 ‘기사화를 노린 요식적 시위 ’(파트릭 샹파뉴는 이를 ‘종이 시위’라고 지칭한다)에 만족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심지어 끝까지 저항하기로 결심한 극소수의 교사들도, 월급봉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기도 한다. 

교직세계 내에 존재하는 ‘계급 격차’ 또한, 87만 명의 교사를 하나로 단결시키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교직세계는 젊은 초등학교 교사와 대학교수자격을 갖춘 그랑제콜 입시반 교사로 나뉜다. 공립초등학교 신입교사의 평균 순 월급이 1,681유로인데 비해, 교수자격증을 소지한 상위소득교사 10%의 평균 순 월급은 4,496유로로 약 2.67배에 달한다.(6) 사립 대 공립, 초등교육 대 중등교육, 중학교 대 고등학교, 일반 바칼로레아 대 직업 바칼로레아 사이를 가르는 차이는 결국 교사들의 단합된 투쟁을 방해한다. 현재 바칼로레아 개편을 규탄하는 교사 그룹은 고등학교 교사들이 유일하다. 그런데 이들은 2015년 중등교육개혁 때나, 2013년 초등학교 수업일수 연장개혁 때 초중등 교사들의 투쟁에 힘을 보탠 적이 없다. 더욱이 청소노동자, 행정인력, 보조교사 등 교내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철저히 무관심했다.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의 지위도 각각 다르다. 계약직 교사(2019년 기준 전체 인력의 8.7%)의 경우, 좀처럼 저항에 나서지 못한다. 학교장에게 종속된 ‘불안정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같은 이름을 달고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지만, 그들 각자는 사회화 정도나 교육수준, 직업의식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현재 교직세계에서는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 만큼 노조 활동과 학교 모두에 거리를 두려는 교사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7) 사회학자 베르트랑 제의 말을 잠시 빌리면,(8) 요즘 교사들은 “동료나 학교에 그저 즉각적인 효율성만 기대하는 사회적 불가지론”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노동조건은 중요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새로운 직업 문화는 오랜 세월 교직세계를 지배해온 ‘무사무욕에 대한 관심’과 ‘경제적 이익을 집단적으로 억제하는 현상’(9)을 강화한다. 교사를 성스러운 직업으로 여기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가 하면, ‘열악한’ 학교일수록 때로는 교직을 ‘인도주의적 활동’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대의만 내세울 뿐 실행력은 약한 이 시대에, 공무원의 사회적 지위 보호, 호봉체계 개선, 긴축재정 규탄을 말하는 교사들은 사라지고 있다. 학업실패를 극복하려면, 대량실업과 빈곤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없다. 능력주의를 신성시하고, 사회적 위치 상승에 대한 신화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는 학업 성공의 유일한 책임자를 교사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때로는 교사가 집단행동에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학교 차원의 행동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요가 수업과 ‘탈출 게임’

최근 ‘직업선거’(노동자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역주)에서 전국 단위가 아닌 ‘지역 단위’로 출마한 입후보자들이 늘고 있는 것도 그런 사실을 증명한다. 때로는 노조 이탈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지역’ 후보를 내세우지만, 대개는 각 학교의 고유한 ‘정신’을 드높여 교육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는 마음이 투영된 현상이다. 가령 베리에르가 일하는 고등학교의 경우, ‘건설하자’(Construire)(10)라는 이름으로 출마한 후보가 노동자대표 선거에서 과반 이상을 득표하는 성과를 거뒀다. ‘탈정치성’과 ‘실용주의’를 내세운 후보들은 대개 노동조건과 그 노동조건의 원인이 된 정부정책을 서로 분리해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가령 ‘건설하자’ 후보는, “보다 나은 인적자원 관리를 통해 경쟁력을 상실하는 학교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는, 수개월 전 “내부 감사”를 실시했다. 그런 식으로 교직원과 경영진, 학부모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협력적’ 평가자료는 교직원의 ‘능력’과 ‘인성’을 익명으로 평가하는 바탕이 됐다.(11) 이 평가자료에는 “교육이란 먼저 목표를 설정한 다음, 그 목표를 학생들이 이룰 수 있도록 이끌 가장 최선의 방법을 숙고하는 과정”이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학교마다 요가 수업이나 소프롤로지(Sophrology, 정신 안정 및 근육 이완법-역주) 강의, 탈출 게임, 비폭력 소통을 위한 세미나 등 시대적 흐름에 부합한 ‘재미난 놀이 활동’과 ‘사업’이 꽃을 피우고 있다. 이는 학업 실패를 극복하고 공부의 어려움을 해소할 다양한 대안이다.

클로드 알레그르에서 블랑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현대성’을 자처하는 교육장관들은 하나 같이 학교와 시장을 꾸준히 접목시켜왔다. 2017년 이후로 교육부는 “직업역량을 개발하기 위한 개인적, 집단적 노력”을 교사들에게 주문해왔다. 교사들은 교장과 장학사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교사 면담을 위해 수업계획, 우선교육 지정학교에서의 경험, 교육자나 조정자로서의 역량이 담긴 이력서를 요청받기도 한다. 새로운 평가 기준은 이제 상부를 도울 준비가 된 소수 엘리트층에게 귀족 신분을 부여해준다. 이 교육사업가들은 얼마나 더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가에 따라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식의 평가는 성과에 따른 보상을 원하는 교사들의 욕망, 물욕과 인정욕구를 충족해준다.(12) 경영진이 장려하는 자율성은 교사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한편, 탄탄한 지지층을 확보하게 해주고, 집단행위의 유용성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수세에 몰린 소수의 교원노조와 어느새 점차 세를 확대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전향 교사들 사이에서, 이제 대다수 교사들은 점점 정치와 멀어지고 있다. 20세기 내내 교사는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모습은 찾기 어렵다. 초등교사는 의회 의석을 잃은 지 오래고, 그나마 부르봉 궁전(프랑스 하원-역주)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중고등 교사나 대학교수들뿐이다. 1992년 전국교원연맹(FEN)이 와해됐을 때, 프랑스학부모연맹(FCPE)과 그 비슷한 부류의 단체들은 이미 교사들에게 버림을 받았었고, 대신 민간기업 임원들이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였다.(13) 

국가교육공제조합(MGEN) 회장이자 전국초등교원노조(SNI)의 회장을 지낸 드니 포레스티에가 1972년 설립한 ‘공제조합·협동조합·친목회 네트워크’도 마찬가지였다. 교원 이탈의 원인(혹은 결과)으로 간주되는, 공산당 및 사회당(당시 교직자들 중 당원이 많았다) 조직의 붕괴와 관련 조직망의 와해는 ‘난공불락으로 통하던 교원노조’를 사지로 내몰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교사들의 직업 문화는 약화되고, 사회투쟁의 자원은 낭비되고, 탈정치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팬데믹 정국에서 대대적인 실험에 돌입한 디지털 교육은 그나마 ‘교사 세계’에 얼마 남지 않은 유산들을 파괴하고, 최후의 저항 세력들을 무너뜨릴 것이다.(14) 이미 자유주의 세력도 이런 사실을 간파하고 틈새를 공략하는 작전을 펴고 있다. 바랭 지역의 ‘전진하는 공화국’(LREM) 소속 하원의원 브뤼노 스튀데르는 현재 하원 산하 문화교육위원회의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교사 출신인 그는 현재의 감염병 사태 속에서(현 사태는 교사들이 ‘최전선’에 선 ‘역사적 순간’이다) ‘교사직의 변화를 도모’하고 ‘시련을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블랑케 장관이 ‘대화용 로봇 개발을 위한 공모사업’을 실시하자,(15) 스튀데르 의원은 ‘유연하고, 역동적이며, 기민한 도구 개발’을 적극 권장했다. 그에 의하면, “일부 자동화가 도입되면 맞춤식 교육이 가능해질 것이고, 알고리즘의 힘을 빌려 학생들에게 개인별 맞춤식 교육을 제공한다면 학업 실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이 지극히 보수적인 자신의 진보적 측면에 해당한다”라는 농담을 했다. 평소 ‘게임의 규칙’을 잘 지키기로 유명한 교사들이 현재 노동세계 전반에 나타나는 이런 현상에 반기를 들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교육의 연속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 실시된 현 디지털 수업이, 교사들에게 반가운 존재는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많은 교사들이 교육부의 요청에 따라, 디지털 수업 장비를 갖추고 교육용 정보통신기술을 찬양한 지 몇 해가 지났다. 이제 그들에게 노동의 표준화나 관료화 현상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실종된 교사의 권위

그들에겐 새로운 기술적 변화로 인한 교사의 지위 하락도 별 상관없는 일이다. 교직원 감시 문제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바칼로레아 답안지가 전산화된 오늘날 대체 채점관은 어떤 식으로 파업을 조직해야 할 것인가?

현 시대의 ‘대대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예는 부지기수다. 학생들의 숙제를 돕기 위해 교사들이 만든 핫라인, ‘긴급지원사무소’(BAR)가 우후죽순으로 설치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미 교원 감축으로 인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실시되던 ‘과제 수행’(Devoirs faits) 시스템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임용시험을 통한 교원 일자리 수는 감소 추세인데도, 정작 현장에서는 인력난을 겪기도 한다. 오늘날 교사는 프랑스에서 더 이상 인기 직종이 아니다. 프랑스인의 평균 학력이 높아지면서, 교사의 권위는 예전만 못해졌다. 공직자에 대한 인식도, 사회의 공공정신과 함께 낮아졌다.(16) 그런 가운데, 교사들은 생활방식 및 사회적·정치적 성향 측면에서 민간기업 임원들을 닮아가고 있다. 지난 대선 1차 투표에서, 교사들은 장뤽 멜랑숑(‘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에게는 23%, 브누아 아몽(사회당)에게는 15%의 표를 던졌다. 일반 유권자가 각각 19.5%와 6.3%를 던진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럼에도 교사들이 가장 많은 표를 준 후보는 에마뉘엘 마크롱이었다. 이미 1차 투표 때부터 일찌감치 전체 교사의 38%(일반 유권자는 24%)가 마크롱을 지지했던 것이다.

교사들의 정치적 성향은 학력 수준, 사회적 지위, 임금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전진하는 프랑스’당의 후보를 찍은 교사 중 계약직 교사는 24%인 반면, 초등교사는 33%, 중등교원자격증을 가진 교사는 45%, 대학교수자격증을 가진 교사는 50%에 달했다.(17) 하지만 어쨌거나 대다수의 교사는 대세를 따른 것인지, 신념을 따른 것인지, 이 ‘극중도파’ 후보에게 대대적으로 표를 던졌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신입교사 채용 조건이 점점 석·박사 학위 이상으로 높아지면서, 부르주아 출신 교사 비중이 한층 확대된 경향(18)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지난 4년간 분노와 좌절감에 시달려온 교사들이 또다시 마크롱에게 과거와 똑같은 표를 몰아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럼에도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하다. 이번 직업선거에서 교사들은 분명 자신들의 대표자로 마크롱과 비슷한 제2의 ‘극중도파’ 후보를 충분히 뽑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글·안 주르댕 Anne Jourdain
중등교사 
알랑 포플라르 Allan Popelard
언론인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프랑스 정부는 ‘이슬람 분리주의’를 막기 위한 포괄적 규제가 담긴 ‘공화국 가치 강화법’을 제정했다. 아동교육부터 이민자 심사 규정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종교적 영향을 차단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역주) 
(2) Henri Bajoit, ‘Exit, voice, loyalty… and apathy. Les réactions individuelles au mécontentement 출구, 목소리, 충성심 그리고 무기력. 불만에 대한 개별적 반응들’, <Revue française de sociologie 프랑스 사회학 저널>, 제29권, 제2호, Paris, 1988년 4-6월.
(3) Géraldine Farges, ‘Le statut social des enseignants français. Au prisme du renouvellement générationnel 세대교체의 프리즘을 통해 본 프랑스 교사의 사회적 지위’, <Revue européenne des sciences sociales 유럽 사회과학 저널>, 제49권, 제1호, 제네바-파리, 2011년.
(4) 12월 22일, 푸아티에 행정재판소는 해당 교사의 전근조치를 중지하고 관할 교육청 교육장에게 교사의 복귀를 명령했다.
(5) Laurent Frajermann, ‘Entre collaboration et contrepouvoir: les syndicats enseignants et l'État 협력과 견제 사이: 교원노조와 국가’, <Histoire de l'éducation 교육의 역사>, 제140~141호, 리옹, 2014년.
(6) MENJS-MESRI-DEPP 자료, 2019년~2020년, 프랑스통계청(INSEE), Paris.
(7) Aurélie Llobet, ‘L'engagement des enseignants du secondaire à l'épreuve des générations 세대 시험을 치르는 중고등 교원’, <Politix>, 제96호, Paris, 2011년.
(8) Bertrand Geay, ‘Les néo-enseignants face à l'utilitarisme 공리주의에 직면한 신생 교사들’, <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 사회과학연구지>, 제184호, Paris, 2010년.
(9) 두 표현은 피에르 부르디외에게 빌린 것임.
(10) 현재는 새로운 명칭으로 개칭. 학교 이름과 연관된 명칭이어서 언급하지 않기로 결정.
(11) Clothilde Dozier, Samuel Dumoulin, ‘La “bienveillance”, cache-misère de la sélection sociale à l'école “격려중심 교육”이 만든 과잉친절 학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9년 9월호.
(12) 전국교원 및 학부모 대상 여론조사, 단일노조연합(FSU)을 위해 실시한 입소스(Ipsos)의 여론조사, 2020년 12월.
(13) Allan Popelard, ‘A l'écart des circuits officiels, des parents d'élèves défendent l'école pour tous 열린 공교육에 나선 프랑스 센생드니 학부모’,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3월호·한국어판 4월호.
(14) Clothilde Dozier, ‘Le plaisir d'apprendre 프랑스 원격수업의 침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4월호·한국어판 5월호.
(15) ‘Soft Power’, France Culture, 2020년 11월 8일.
(16) Benoît Floc'h, ‘Etre fonctionnaire, un métier qui n'attire plus la jeunesse 더 이상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 <르몽드>, 2020년 11월 12일.
(17) ‘Le vote des enseignants à l'élection présidentielle de 2017 교사들의 2017년 대선 투표 현황’(PDF), SOS 교육을 위해 IFOP가 실시한 여론조사, Paris, 2017년 4월 24일.
(18) Géraldine Farges, ‘Le statut social des enseignants français’, op. cit.

 

 

학교의 선택, 학교와 비즈니스의 만남

 

“준비물은 미리 챙겨라!”, “일찍 일어나라!”, “뇌 스위치를 켜라!”

‘성공적인 학교생활’을 위한 코칭수업에서 나온 말들이다. 베탕쿠르 슈엘러 재단, 생고뱅·부이그 그룹 등 일부 파리 증시 상장 40대 우량기업(CAC40)의 후원을 받는 교육단체 ‘에네르지 죈(Énergie Jeunes; 젊은 에너지)’은, 최근 ‘소중하고 풍요로운 인간적 체험’을 추구하는 대기업 간부급 직원들에게, 공립중학교 학생들을 위한 코칭수업을 제안했다. 그 결과, 위와 같은 ‘교훈’들이 쏟아졌다.

사실 학교와 비즈니스의 접목을 보여주는 사례는 그밖에도 많다. 가령 같은 종류의 단체 ‘르 슈아 드 레콜(Le Choix de l’école; 학교의 선택)’ 웹사이트를 방문해보자. ESCP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피에르 알렉시스나 전직 컨설턴트 출신 ‘알렉상드라’ 같은 인물들이 결연한 말투로은 교사 체험담을 전한다. “나는 수학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학생과의 신뢰관계가, 게임의 승패를 결정한다!” 물론 두 사람이 임용고시를 치른 정식 교사는 아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열린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보다 공정한 교육시스템을 위해 에너지를 쏟고자 하는 것”이다.

시앙스포(Sciences Po, 파리정치대학)의 전 부총장 나디아 마리크데스코앵이 2015년 설립한 ‘르 슈아 드 레콜’은 그랑제콜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에게 파리·크레테유·베르사유·엑스마르세유의 교육청 관할 우선교육지정 중학교에서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을 해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새 학기를 앞두고, 크레테유 교육청의 교육장은 감언이설로 신입 교사들을 모집하기 위해 출장준비 중이다. 아마도 일간 <리베라시옹>(1)과 라디오 방송 <프랑스 앵테르>(2)가 이들 젊은 사절단의 체험을 소개해줄 것이다. 교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점점 떨어지는 이때, 2년 계약직 조건으로 파견될 이 젊은 교사들은, 팬데믹 속 백신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2019년 전체 임용 예정 수학 교사직의 경우, 채용율은 78%에 그쳤다. 

2017년 3월 프랑수아 올랑드가 설립한 재단 ‘라 프랑스 상가주(La France s’engage; 프랑스는 약속한다)’의 지원을 받는 ‘르 슈아 드 레콜’은 현재까지 200명의 교사를 양성하고, 센생드니 지역 학교의 50%에 교사를 파견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다. 2019년 10월, 에두아르 필리프 당시 총리는 비상계획에 따라 센생드니 지역에서 국가와 사회단체 간 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르 슈아 드 레콜’은 몽테뉴 학원의 로랑 비고르뉴 학장과 투자회사 ‘테마리스 에 아소시에’의 대표이자 ‘르 시에클’ 클럽의 전 회장인 파트리샤 바르피제 등 다양한 거물급 인사들의 후원을 받고 있다. ‘르 슈아 드 레콜’은 그 밖에도 ‘로레알 파리’, ‘토탈 재단’, ‘악사(Axa)’ 등 쟁쟁한 메세나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다.  

 

 

글·안 주르댕 Anne Jourdain
중등교사
알랑 포플라르 Allan Popelard
언론인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Lina Rhrissi, ‘Education nationale: “9~3”, v'la les renforts des grandes écoles 국가교육: “9~3”, 지원군으로 나선 그랑제콜’, <Libération>, Paris, 2017년 6월 22일.
(2) ‘L'esprit d'initiative’, <France Inter>, 2019년 8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