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피난’ 인정할테니 최저법인세 15%만 내!
다국적 기업들에 백기를 든 G7의 공모
너무 소극적이다! 너무 워싱턴이 원하는 대로만 따랐다! 너무 쉽게 또 다른 정부에 의해 효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 미국의 조지프 바이든 대통령이 표방한 글로벌 법인세는 사실 비웃음을 살 만한 이유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이런 숱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처는 새로운 정치적 전환점을 마련했다. 다국적기업이 더는 법 위에 군림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2017년, 구글은 숱한 조세회피지를 경유한 끝에 200억 유로의 돈을 버뮤다 계좌로 전부 이전시켰다. 그해, 이 다국적기업이 프랑스에 납부한 법인세(소득세)는 1,410만 유로에 불과했다. 공식적으로 말하자면, 프랑스에 고용된 구글 간부직 직원 700명은 프랑스에서 전혀 소득을 올리지 못한 셈이었다. 그들은 같은 그룹에 속한 아일랜드 자회사만 열심히 보좌한 꼴이 됐다. 후덕한 유럽 조세회피처의 비호 아래, 아일랜드 법인은 모든 장부기록을 도맡았다.(1)
대형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아마존은 미국에 내야 할 연방법인소득세를 매년 교묘하게 피해갔으며, 코로나 사태 이후 수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에도 당당하게 유럽 내 소득이 적자라고 신고했다.(2) 올 봄, 독립언론 <프로퍼블리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부들(제프 베조스, 마이클 블룸버그, 워렌 버핏, 칼 아이칸, 일론 머스크, 조지 소로스)이 법의 허점을 노린 온갖 절세기법을 동원해서,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단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혹은 쥐꼬리만큼만 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3)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과세나 외국인투자 등의 문제에 있어 다국적기업과 맞장을 뜰 수 있는 상대는 오로지 그들의 가장 든든한 우군인 미국뿐이다. 바이든 미대통령이 G7정상들을 상대로 법인의 결합소득(Consolidated Revenue, 모든 자회사의 소득을 합산)을 기준으로 다국적기업들에 15%의 글로벌 법인세를 부과하자고 제안하자, 평소 이 문제에 소극적이던 다른 나라들도 모두 미국의 뒤를 따르겠다고 나섰다. 과거 아무런 영향력도 없었던 누군가와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실은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2009년 G20정상회의에서 “조세회피처와 은행비밀주의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라고 선언했었다.
이번에 각국이 합의한 글로벌 법인세율 15%안은 실소가 터질 정도는 아닐지라도, 상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북미 지역의 식당에서 손님들이 호주머니에서 꺼내놓는 팁도 그 정도는 될 것이다. 이번 일은 도통 바뀌지 않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바이든 미대통령의 영향력은 자국에서보다 국제외교무대에서 훨씬 더 막강한 것이다. 바이든은 외국 친구들을 상대로는 아무런 저항 없이 손쉽게 설득에 성공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21% 법인세 증세안 통과에 실패했다. 더욱이 처음에 그가 계획한 세율은 무려 28%였다. 하지만 이 역시 야심찬 수준은 아니었다.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대통령 당선자가 백악관에 짐을 풀 당시만 해도, 미국의 법인세율은 35%에 달했다. 최근 모든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조세피난처를 근절하기는커녕, 그들의 뒤를 따라 꾸준히 과세율을 낮추는 추세다. 독일, 캐나다, 프랑스와 그 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2000~2010년 공식 세율을 30%대 밑으로 인하했다. 그럼에도 다국적기업들은 이마저도 내지 않겠다며 악착같이 각종 절세 수법을 동원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낮은 세율을 국가차원에서 허용하는 조처는 결국엔 다국적기업에게 유리한 조세제도를 만들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말이 떠오르는 시점이다. 그는 지난 6월 <르몽드>의 지면을 빌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번에 G7은 다국적기업이 앞으로도 계속 손쉽게 조세피난처에 수익을 귀속시키면서 단 15%에 불과한 세금만 내도록 법제화했다. 이로써 소수의 재벌이 다수의 국민들보다 구조적으로 더 적은 세금을 내는 세상이 도래한 셈이다.” 더욱이 이번 조처는 현재 개도국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도국은 이와 같은 국제과세제도 하에서 여전히 낮은 세수를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 개도국의 시장은 공식적으로 수익성이 낮고, 그래서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기가 어려운 원자재 거래에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영국 내 스타벅스의 소득이 제로?
그럼에도 세수가 아닌 오로지 법적 차원에서만 본다면, 이번 바이든표 최저법인세율 합의는 일종의 전진을 의미한다. 비로소 다국적기업을 법적 주체(법적 권리·의무의 귀속자)로 간주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오로지 자회사들만 개별적으로 국가가 인정하는 법적 주체로 인식됐다. 1세기 전 하나 둘씩 등장하기 시작한 다국적기업은 이런 법의 허점을 교묘히 악용해왔다. 다국적기업은 이전가격(다국적기업이 모회사와 해외 자회사 간에 원재료나 제품 및 용역에 대한 거래를 할 때 적용하는 가격-역주)이나 브랜드 지적재산권 이용료 지불과 같은 시스템을 상당히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아는 귀재들이다. 일정한 소득세율이 높은 국가에서 활동 중인 법인의 수익을, 조세피난처의 유령회사에 대대적으로 허위 귀속시키는 방식처럼, 수많은 법인을 설립하고 그 사이에 복잡한 회계학적 과정을 거쳐 기발한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가는 재능이 탁월하다.
일례로 2012년 스타벅스의 대표자들이 영국 의원들 앞에서 영국 내 소득이 제로인 이유를 설명하던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들은 조세피난처에 등록된 스타벅스 그룹 산하 여러 법인들이 스타벅스의 각종 특허권과 이용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온갖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사정을 늘어놓았다. 이처럼 각종 이용료를 소득에서 제외한 덕분에 이들은 세무당국에 영국에서 올린 소득이 마이너스라고 신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G7의 결정은 조세피난처의 역할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모든 자회사를 총망라한 다국적기업 전체의 소득을 과세기준으로 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을 보유한 법인이 누구인지, 법인의 소재지가 어디인지는 더 이상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농산물가공·IT·에너지 등의 분야에 종사하는 대기업들은 이제 버뮤다,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에 설립한 법인에 아무리 지적재산권이나 일부 자본을 이전해 봐야 소용없다. 아무리 용을 써도 세금을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아직 법인세율을 현 수준보다 훨씬 더 높이 인상하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다.
바이든의 이번 글로벌 최저법인세율 추진 과정을 지켜보면, 국제과세 문제가 애당초 오로지 회계학적 차원에만 국한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사안인지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OECD에서 이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파스칼 생아망은 어쩌면 본인이 이번 합의를 설계한 장본인이라며 한껏 으스대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합의안은 그동안 수년에 걸쳐 그가 사용해온 수사학에 철저히 배치된다. 그는 오랫동안 글로벌 법인세율 통합은 본질적으로 기술적, 수학적 지혜를 요하는 사안이며, 200여 개국의 조세제도를 조율해야 하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라고 주장해왔다. 당시만 해도 그는 모든 언론매체를 상대로 “전 세계 차원에서 법인세를 통합하는 것은, (…) 개별국의 주권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4)라고 주장하곤 했다.
면세기업, 면세지대, 자유항, 세법마트
그런데 이번에 미 정부는 단 한 번의 선언만으로 그의 주장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증명했다. 사실상 정책의 발전을 이룩하는 것은 국제회계학적 기술의 진보가 아니었다. 정책이 바로 회계학적 변화를 강제적으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조세회피처 문제는 정치적이고도 외교적인 사안에 속한다. 대기업이나 개인 자산가가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국가에서 시행 중인 법제를 무마하기 위해 또 다른 국가가 나름의 법제를 마련하는 것이니 말이다. 즉, 한 정부가 남의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바하마 의회는 ‘면세기업’(Exempted Companies)이란 제도를 만들어냈다. 면세기업은 역내에서 실질적인 활동만 하지 않는다면, 소득세를 내거나, 자산 운용 주체의 신원을 밝힐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면세기업은 오로지 해외에서 창출된 자본만 등록할 권리를 가진다. 이처럼 바하마제도는 자국을 쏙 뺀, 남의 나라의 자산운용이나 과세방식을 관할하는 법률을 제멋대로 제도화하고 있는 셈이다.
유럽연합의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경쟁 담당 집행위원은 2016년 IT 공룡 애플에 아일랜드가 제공한 조세특혜를 무효화하려고 시도했다. 당시 그녀는 아일랜드가 유럽국 차원이 아니라, 자국차원에서 개별적으로 기업에 부과할 세금을 결정함으로써 사법적 권한을 남용하는 것은 물론, 남의 나라 내정에도 간섭했다고 주장했다. 2020년 이 결정은 끝내 유럽연합 사법재판소의 판결로 효력을 잃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역외사법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한편, 오늘날 바이든표 대책이 탄생하는 밑거름을 제공했다. 미 정부는 아일랜드처럼 권력을 남용하는 나라들을 상대로 치열한 외교전쟁을 벌이는 대신, G7국가들을 설득해 그들의 제도를 무력화하는 원칙에 합의하도록 이끌어냈다. 즉, 다국적기업을 엄연한 법적 주체로 간주하기에 이른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런 조처의 실효성을 예견하기는 어렵지만, 2가지 잣대를 통해 그 효과를 가늠해볼 수는 있다. 먼저 첫 번째 잣대는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모다. 만일 인위적으로 케이맨제도, 룩셈부르크, 델러웨어주 등을 금융중심지로 삼은 대기업의 여러 자회사들 간 허위 거래가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면, 아마도 조세회피처에 자산을 은닉하는 수단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두 번째 잣대는 당연한 말이지만, 기업이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국가의 국고를 채우는 데 더 많이 기여했는지 여부다. 현재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법인세가 전체 세원(Tax Base)의 단 5%만을 차지한다. 반면, 개인이 내는 소득세나 소비세는 무려 60~65% 언저리를 오간다.
무엇보다 조세 문제는 ‘관대한 법제’가 지닌 여러 문제점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단지 기업이 실질적으로 활동 중인 국가의 세법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법률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경제자유구역(면세지역)과 자유항이 모든 노동법의 행사를 제한한다면, 그 밖의 ‘규제 천국’들은 환경법이나 인권 문제로부터 수많은 역내 기업들(케이맨제도는 주식투기, 마셜제도는 석유개발, 캐나다는 광산업 등의 분야에서)을 보호해준다. 특히 인권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다국적기업들이 세계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켜 법정에 설 경우, ‘꼬리 자르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알고 있다. 대개 판사는 법적으로 독립된 법인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자회사가 해외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모회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가령 나이지리아 원유 유출 사고로 인한 환경 피해에 대해, 모든 책임을 자회사에게만 돌리고, 네덜란드에 소재한 쉘의 모기업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2013년 헤이그 법원의 판결이 대표적이다.
이제 비로소 우리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됐다. 그것은, 이런 제도를 막을 능력을 갖춘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는 진실이다. 유럽은 유럽 내 역외탈세 현상도 막지 못했다. 오히려 유럽은 세계화의 논리에 따라 유럽대륙을 재편해왔다. 루마니아는 자유무역지대(면세지역), 몰타공화국은 자유항, 아일랜드와 네덜란드는 규제 천국, 룩셈부르크는 ‘재벌에 관대한 세법을 판매하는 대형 마트’가 되도록 방관한 셈이다.
글·알랭 드노 Alain Deneault
캐나다 멍튼 대학교 철학과 교수. 주요 저서로는 『합법적 사기. ‘조세회피처’에 관한 간략한 개요(Une escroquerie légalisée. Précis sur les paradis fiscaux)』(Ecosociété·2016)가 있다.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Boris Cassel, Matthieu Pelloli, ‘En 2018, Google n'a payé en France que 17 millions d'euros d'impôt 2018년, 프랑스에 단 1,700만 유로의 세금만 낸 구글’, <Le Parisien>, 2019년 8월 1일. Maxime Vaudano, ‘Optimisation fiscale : Google évite des milliards d'impôts en déplaçant toujours plus de profits aux Bermudes 조세최적화 : 버뮤다 법인에 매번 더 많은 수익을 이전하며 수십억 유로의 세금을 회피한 구글’, <르몽드>, 2019년 1월 4일.
(2) Rupert Neate, ‘Amazon had sales income of €44bn in Europe in 2020 but paid no corporation tax’, <가디언>, London, 2021년 5월 4일.
(3) Jesse Eisinger, Jeff Ernsthausen, Paul Kiel, ‘The secret IRS files : Trove of never-before-seen records reveal how wealthiest avoid income tax’, <프로퍼블리카>, 2021년 6월 8일, www.propublica.org.
(4) Sarah Belhadi, ‘Pascal Saint-Amans(OCDE) : “Sur l'optimisation fiscale, il fallait changer de paradigme” 파스칼 생아망(OECD) : 조세최적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 <La Tribune>, 2015년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