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탈세계화, 계급투쟁, 그리고 국제연대를

2011-10-10     장마리 아리베

유럽연합은 부채 위기 심화로 해체 직전에 있다. 미국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기침체를 벗어날 묘안을 짜내는 데 골몰하고, 아시아는 성장이 정체될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화를 찬양하던 목소리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탈세계화’ 주장들에 대한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금융시장의 맹렬한 공격으로 약화된 사회는 이제 임계점에 도달했다. 경제제도가 흔들리면서 그 진상을 가리고 있던 이데올로기의 장막도 찢겨졌다. 시장의 효율성을 찬양하며 세계화를 소리 높여 외치던 이들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그 반명제를 중심으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다시 말해 교조적인 세계화주의자와 그 ‘안티들’ 사이에 그어진 대립선이 금융시장의 독재를 비판하는 경제학자와 정치학자 사이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비판은 유럽헌법안을 반대하는 움직임 속에서 구체화됐다. 지난 몇 달간 발표된 언론 사설과 기사, 책들을 살펴보면 보호주의로의 회귀, 유로존 탈퇴, 탈세계화 등의 주제가 전면에 등장했다. 현 자본주의 위기의 성격, 필요한 규제적 틀, 민주주의 주권과 관련한 논쟁들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1)

기한 다돼가는 자유이용권, ‘세계화’

1980년대 초부터 자본 구조는 금융투자자에게 최대의 수익을 보장해주는(‘주주 가치 창조’가 대표적이다) 한편, 끊임없이 노동력 가격을 인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요컨대 금융 수익은 노동력 가치 하락 덕분에 가능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면서 각국의 복지·조세 시스템은 경쟁관계에 놓였다. 이것이 완곡어법으로 표현된 ‘세계화’라는 말이 지시하는 현실이다. 1960~70년대를 거치며 이윤율 저하의 위기를 맞은 자본은 전세계적으로 다시금 반격을 개시했다. 임금보다 우위에 선 금융자산을 소유한 지배계급이 승리하고, 사회의 규제 장치는 금융시장의 요구에 따라 조정됐다.

이렇게 형성된 자본 구조가 무너지기까지는 단 20년으로 족했다. 2000년대 첫 10년 동안 미국의 이윤율은 제자리에서 맴돌았고, 임금 하락을 보전하기 위해 빈곤계층에게 제공된 신용대출만으로는 과잉생산을 흡수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경제위기의 충격은 자본의 이동 속도만큼 신속히 전세계로 확산됐다.

탈산업보다 본질적인 건  불평등

현 위기는 각국이 지닌 문제들의 합으로 설명할 수 없다. 국내 문제에서 비롯된 위기가 여러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고 가정할 때 원인을 규명할 길은 더욱 난감해진다. 현 위기는 세계화가 ‘성숙한’ 단계까지 진행된 자본주의 전체의 위기다. 기본적인 재화와 서비스 생산뿐 아니라 건강·교육·문화·천연자원·생물까지 상품 범주로 포섭해 ‘주주 가치 생산’이라는 논리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결과다.

따라서 세계화는 상품의 자유로운 교역, 혹은 순환으로만 정의될 수 없다. 땅에 발을 붙이지 않은 금융은 오늘날 이중의 제약으로 가치법칙에 발목이 잡혀 있다. 무한한 임금 압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동력 가치 상승은 불가피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전제가 되는 물질적 생산의 토대가 갈수록 약화·축소되고 있다.(2) 이처럼 현재의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의 과잉 생산’과 ‘새로운 발전 모델의 전망 부재’라는 이중의 문제를 드러낸다.

탈세계화를 주창하는 좌파의 논의는 주로 고용 파괴와 선진국의 탈산업화를 초래하는 세계화에 대한 비판에 집중돼 있다. 자크 사피르는 “1990년대 중반까지 신흥국의 생산력은 선진국과 힘겨루기할 정도까지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이나 동유럽의 생산력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자 선진국의 산업생산시설들이 통째로 이 국가들로 이전되기 시작했다”(3)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이 부상한 때보다 15년 전에 이미 선진국의 지배계급과 임금노동자들 사이의 역관계가 역전됐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프랑스를 예로 들면, 1980년대 10년간 부가가치 중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하락하고 실업률은 급증했다(1980년대 말 비금융기업 부가가치 중 임금 비율은 1973년 대비 5%포인트, 1982년 대비 약 10%포인트 하락).(4) 그 뒤 1997~2001년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임금 가치 하락과 실업률 증가 현상이 변함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그 결과, 노동자들 간의 경쟁은 심화되고 기득권 세력의 입장은 더욱 강화됐다. 따라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임금 가치가 하락한 것에 대해 신흥국에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지배계급의 공세로 선진국 내 ‘자본 대 노동’의 관계는 자본에 유리하게 재편됐고, 노동자 사이의 임금 분배 구조도 변형됐다(스톡옵션 형태로 자본의 일부를 할당받아 고위급 직원들은 엄청난 보수를 받게 됐다). 기술적 능력을 인정받은 고위급 노동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강화된 반면, 하위 노동자들은 ‘사회적 덤핑’ 대상으로 추락했다.

계급투쟁이 국가 간 대립으로 전화되지 않게 하기 위한 이론적 신중함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프레데리크 로르동은 이런 신중함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고 본다. “세계화 경제의 구조상 중국 노동자와 프랑스 노동자는 대립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5) ‘보호주의’라는 해결책은 국가 간 대립을 계급투쟁보다 우선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 자본주의 위기의 구조적 성격은 자본주의하의 사회적 관계를 다시 사고하도록 요구하고, 각국의 민중이 과연 국가 차원의 해결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품게 한다.

긴급히 필요한 규제와 투쟁 공간

극히 예외적인 국가들(가령 에콰도르)을 제외하면, 각국 정부는 위기의 대가를 국민에게 떠넘기느라 여념이 없고, 지배계급은 이 기회를 통해 더욱 단합된 모습을 과시하고 있다. 어떤 국가도 한 국가에서 시작된 디폴트 사태가 연쇄반응을 일으키듯 확산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 결과를 감당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경제는 침체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는 교역과 금융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주요 다국적기업들이 국가 경제의 발전 경로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세계화는 생산 문제이기도 하다.(6) 그런 의미에서 위기에 대항한 규제와 투쟁을 위한 공간의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글로벌 거버넌스’에 문제를 제기하고 강력한 국제기구에 대한 ‘환상’(7)을 비판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할까? 글로벌 거버넌스라는 말의 ‘공허함’을 폭로하고 주요 8개국(G8), 주요 20개국(G20) 혹은 강대국 통치자들의 비밀 회동이 시간만 질질 끌면서 실패만 거듭하는 상황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면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어떻게 하면 세계적 차원의 규제 장치를 도입할 수 있을까?’ 탈세계화를 주장하는 좌파들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케인스주의적 규제 방식이 도입된 브레턴우즈 체제의 시대를 자주 언급한다.

자본주의의 철폐나 제한을 말하기에 앞서 시급하게 규제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농업과 관련 있다. 오늘날 농산물은 전면적으로 규제가 철폐된 시장에서 유통됨에 따라, 남반구 국가의 양질의 토지가 식량 자급이 아닌 수출용으로 전용되고 있다. 또한 전반적인 구매력 감소로 수요는 감소하는 반면, 세계 농산물 가격은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 농산물, 나아가 모든 원재료 공급이 투기와 시장변동에 내맡겨진 상황에서 어떻게 각국이 상대적인 자율성을 행사하고 식량 주권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8)

두 번째 이유는 전세계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 있다. 2009년 덴마크의 코펜하겐, 2010년 멕시코의 칸쿤에서 열린 포스트 교토 협상의 실패는 다국적기업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강대국들 간 이해관계가 충돌한 것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이들의 이면 협상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글로벌 시민 의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지난해 4월 볼리비아 정부의 제안으로 열린 ‘기후변화 세계민중회의’가 좋은 예다.

농업과 기후 문제, 그리고 민주주의

농업과 기후 문제는 자본주의 세계화의 이면에 숨겨진 발전 논리를 급진적으로 변혁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국가 주도의 포드주의 모델을 고수하는 탈세계화주의자들은 이 필요성을 자주 간과한다. 포드주의 모델은 신자유주의 모델에 비해 더 잘 제어된 것은 사실이지만 파괴적 생산주의를 초래한 원인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민주주의 주권이 행사되는 장소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만나게 된다.

우선 탈세계화주의자들이 민주주의 주권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보자. 프레데리크 로르동은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국가주권의 재구성이라는 해결책은 지금 이곳에서 바로 실행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다른 어떤 해결책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구조개혁을 통해 국가주권을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선별적 보호무역, 자본 통제, 은행에 대한 정치적 규제 등은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모두 완벽히 실행할 수 있는 조처들이다.”(9) 로르동이 제시한 세 가지 구조 개혁의 차원은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세계화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가 속 빈 강정이 되고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할 곳간 열쇠가 금융시장에 넘어가버린 상황에서,  이런 개혁이 ‘지금 이곳에서 바로 실행할 수 있는 효과적인 해결책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는 쓰러지는 주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권을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벅찬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제는 일국 차원을 넘어 (특히 유럽의 경우) 지역 차원까지 확대·수행돼야 한다. 자본의 힘에 대항한 투쟁은 더 이상 국내 차원에 국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가적 차원이 부차적인 것이 돼간다고 말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국가 단위로 작동하는 반면, 환경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개혁과 규제는 국가 단위를 초월한다는 모순이 존재한다. 민주주의의 공간을 점차 유럽 전체로 확장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의 위기는 각국 위기의 총합이 아니다. 따라서 일국적 해결책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이제 남은 질문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해체하기 위한 작업이 어디서부터 시작돼야 하는지다. 단기적으로는 대부분의 공공부채가 부당하고 모두 상환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런 결정은 어려움에 처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유럽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고, 당연히 각국의 부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또한 유럽의 모든 은행을 사회화하고 강력한 누진과세를 재도입해야 한다. 이런 조처들은 이자소득을 최소화함으로써 “금리 생활자를 안락사시키겠다”(케인스)는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10)

일단 디폴트, 그다음 금융지배 해체

중·장기적으로는, 탈자본주의적 방향으로 발전 모델을 급진적으로 변혁하는 프로세스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의 금융지배를 해체하기 위해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는 장외 주식 거래와 파생상품 거래 금지, 금융 거래 과세 등이 있다. 더 나아가 비상업적 활동과 생태적 균형을 보존하면서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이윤 추구 논리가 지배하는 상업적 영역을 엄격히 제한하는 조처를 도입해야 한다.

이 모든 조처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엇일까?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보호 장치(노동권·사회복지·자연 보호)을 마련하는 것이 반드시 보호주의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탈세계화 혹은 보편화의 대상 영역을 선별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 작업을 통해 더 명확한 지향점을 찾고, 사회의 사회·생태적 전환점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진정한 국제적 협력관계 구축을 위한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세계화에 대해 치밀하게 비판하면서, 동시에 표면적인 반대 논리에 의심 품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것이 ‘대안세계화’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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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리 아리베 Jean-Marie Harribey 
국제투기자본 감시 시민연대인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에서 펴낸 <발전의 미래는 있는가: 절약과 연대의 사회를 위하여>(Mille et Une nuits·파리·2004)를 편집하고, <노망 든 자본, 경제학 비판 단상>(Le Passant·베글·2002)을 썼다.

번역 / 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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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논쟁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탈세계화 혹은 대안세계화?’(http://alternatives-economiques.fr/blogs/harribey/2011/06/07), ‘행복한 탈세계화? 논쟁의 기본 요소와 프레데리크 로르동과 동료들에게 보내는 답변’(http://alternatives-economiques.fr/blogs/harribey/2011/06/16, http://www.fredericlordon.fr/triptyque.html, Bernard Cassen & Jacques Sapir, http://www.medelu.org) 참조.
(2) J. M. Harribey, ‘글로벌 위기, 감당할 수 있는 발전, 가치, 부, 화폐의 고안’, Forum de la Régulation, 파리, 2009년 12월 1~2일, http://harribey.u-bordeaux4.fr/travaux/monnaie/crise-valeur-monnaie.pdf.
(3) J. Sapir, ‘잘못은 세계화에 있는가?’, Daniel Cohen과 Jacques Sapir 대담, <Alternatives Économiques>, n°303, 2011년 6월호.
(4) INSEE, J.P. Cotis 보고서, ‘부가가치와 이윤 분배, 프랑스의 소득 격차’, 2009.
(5) 프레데리크 로르동, ‘새로운 세계화는 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8월호.
(6) M. Husson, ‘바닥 없는 위기’, 2011년 7월 28일, http://hussonet.free.fr/sansfond.pdf.
(7) 프레데리크 로르동, 같은 글.
(8) Aurélie Trouvé & Jean-Christophe Kroll, ‘알맹이 없는 공동농업정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1월.
(9) F. Lordon, ‘누가 탈세계화를 두려워하랴?’, 2011년 6월 13일, http://blog.mondediplo.net/2011-06-13-Qui-a-peur-de-la-demondialisation.
(10) François Chesnais, ‘부당한 채무, 은행의 입김에 놀아나는 공공정책’, 파리, Raison d’agir,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