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 열기에 휩싸인 러시아

폭넓은 의견을 품은 러시아 국영 방송

2021-07-30     크리스토프 트롱탱 | 기자

정치 토론 방송이 러시아 방송계를 점령하고 있다. 이같은 토크쇼는 러시아 정부의 시각을 대변하지만, 우리의 예상처럼 통제된 하나의 의견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지정학에서 사회이슈까지 폭넓은 주제를 두루 다루며, 소위 ‘전문가‘들이 설전을 벌이는 곳이다.

 

“따지기 좋아하는 국민을 다스리길 원하십니까? 국민이 생각하고 따지지 못하게 하려면 감정을 이용해야 합니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 『랑제 공작부인(La Duchesse de Langeais)』(1843)의 한 대목이다. 러시아인은 ‘따지기 좋아하는 국민의 전형’이다. 최근 몇 년간 러시아에서 다양한 정치 토크쇼가 생겨났다. TV프로그램은 황금시간대에 공영채널에서 생방송으로 접할 수 있다.

매일 아침, 제1 채널의 간판 토크쇼 <미래가 말해주리라>에서는 “침묵할 수 없는 주제”들을 다룬다. <로시야1> 채널에서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차례 방영되는 <60분>은 “최신 시사의 행적”을 뒤쫓는다. <테베 첸트르(TV Tsentr)> 채널에서는 <각자의 진실>을 통해 “사건의 이면”을 드러낸다. <NTV>의 <만남의 장소>는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곳”이다. 늦은 밤 <제1채널>의 <(블라디미르) 솔로비에프와 보내는 저녁>은 하루를 마무리해준다. <알 권리>, <추신>, <위대한 게임>, <반박할 수 없는 논리> 등 한층 학술적이고 다채로운 주간 토론 방송도 있다. 최신 시사를 다루는 생방송이기 때문에 막판에 주제가 결정되기도 한다.

 

“토크쇼, 대중을 위한 정치 교재”

토크쇼 프로그램의 높은 비중과 다양성도 놀랍지만, 최근 5~6년간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채널마다 토크쇼가 1개 이상 있다. 저녁 시간대 편성된 방송은 1시간(<60분>)에서 2시간15분(<미래가 말해주리라>)까지 방영된다. <솔로비에프와 함께하는 저녁>처럼 방영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합산하면 1일 약 15시간의 토론이 방송되는 셈이다. 유튜브, 얀덱스 등 플랫폼 재방송 시간은 제외한 계산이다. 토론의 주제는 주로 최신 시사와 관련된 타국의 정치지만, 계기가 있다면 다방면의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2018년 케메로보의 쇼핑몰 화재, 2020년 음주음전으로 사람을 치어 죽인 연출가 미카일 에프레모프의 음주운전 치사, 혹은 러시아 소셜미디어에서 “집요하게 공격하는 문화”가 만연한 현상 등이 혀 위에 올랐다. 

“사실 방송은 대중에게 유일한 정치 교재다. 국제 정치에 대한 시사와 경향에 대한 분석을 수백만 명의 러시아 시민들에게 전달한다.” 게보르그 미르조얀은 모스크바 소재 러시아 정부 산하의 국립 금융대학 매스미디어과의 학과장이다. 그는 최근 칼럼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다른 해결책이 있는가? 사람들은 이제 전문서적이나 전문지를 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학술지는 본래 시사문제를 다루기 어렵다. (…) 그리고 러시아 사회는 책을 많이 읽던 소련 국민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진지한 문서를 읽던 습관과 능력을 잃어버렸다.”(1)

학계의 지식과 신랄한 독설이 부딪히며 토론은 종종 난장판이 된다. 모든 참가자가 동시에 말하고 이따금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예능과 교양이 딱 절반씩 섞인 광경이다. 늘 출연하는 사회자와 고정 출연자끼리 의기투합하고, 서로 말을 놓기도 한다. 시청자들은 넷플릭스 요리 프로그램에서 보던 익숙한 얼굴을 알아본다. 이미 촬영장이 익숙한 세르게이 마르코프 같은 논객이다.(2) 이 모든 요소가 모여 성공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방송 무대는 참가자들끼리 이데올로기에 대해 언쟁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존중과 우정이 싹트는 사랑방이다.

러시아를 특별대우하지 않는 외국인 참가자들은 러시아가 서구 언론에서 묘사한 ‘괴상한 지옥’이 아님을 인정한다. 심지어 유머를 발휘할 때도 있다. 2021년 3월 1일 베를린에서 열린 <미래가 말해주리라>의 이원방송에서 독일인 기자 펠릭스 슐츠가 자국에서 시행 중인 자가격리 조치에 대해 불평했다. “적어도 모스크바에서는 이동의 자유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한 번에 한 명씩밖에 만날 수 없어요. 제한조치는 분명히 선거 때까지 연장될 것입니다.” 이어서 백신 장려 캠페인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아름다운 우리의 민주주의는 900만 명을 위한 백신을 확보했음에도 국민에게 백신을 맞힐 능력이 없습니다. 주사기가 모자라서요!” 스튜디오에 자리한 사회자 예카테리나 스트리제노바는 연민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과장된 감정을 드러낸다. “당신을 모스크바로 데려와 구해주고 싶어요! 힘내요, 펠릭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이 보기에 이들은 ‘정부의 앞잡이’다. 순진하거나, 혹은 신기술이 익숙지 않아 아직도 TV에 사로잡힌 국민은 정부가 보여주는 TV프로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른다. 일각에선 국민을 상대로 뻔뻔스럽게 ‘푸틴식’ 관점을 홍보하는 토크쇼의 간판 사회자들을 포함해 “이들 방송은 모두 유죄”라고 고발한다.

 

“프로파간다가 왜 나쁜 건가요?”

자유주의 야당 정치인 크세니야 소브착의 도즈(Dojd’), 반부패 운동가이자 현재 수감 중인 알렉세이 나발니의 나발니 라이브(Navalny Live) 같은 유튜브 채널은 250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유머와 재능을 발휘해 정부에 대한 혐오를 마음껏 표현한다.(3) 그들은 팬들에게 “수치스럽고 역겨운 프로파간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설파한다.(4) 인터넷 시청자 기준으로 보면, 토크쇼는 러시아 국민 대다수를 사로잡았다. 솔로비에프, <미래가 말해주리라>, <위대한 게임>의 유튜브 구독자는 600만여 명, <만남의 장소>의 구독자는 1,200만 명에 달한다. 공중파(주요 공영채널)에서의 성공은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심야시간대 <솔로비에프와 보내는 저녁>의 시청률은 20%에 달한다. <로시야1> 채널의 <60분>은 12%이고, 그 뒤를 <제1채널>과 <테베 첸트르>, <NTV>가 따른다. 2017년부터 이들의 시청률은 5~10%를 유지하고 있다.(5)

“정부에도 고유의 관점을 가질 권리, 그 관점을 선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파간다’라는 용어가 왜 문제시되는 것인지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용어입니다. 예컨대, 건전한 생활양식이나 세계평화에 대한 선전활동이 왜 나쁜지요?” 막대한 시청자를 자랑하는 <만남의 장소>의 간판 사회자 안드레이 노르킨이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6) 백발, 엄격한 느낌의 각진 안경, 절제된 어조. 노르킨은 러시아 방송계에서 가장 경험 많은 사회자 중 하나다. 그의 경력은 1990년대 <NTV> 채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NTV>는 ‘공격용 도구’로 취급을 받았다. 백만장자 블라디미르 구신스키가 대통령 보리스 옐친을 공격할 때 쓰는 도구 정도로 취급받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뒤, 가스프롬 미디어 홀딩이 <NTV>를 인수한다. 가스프롬 미디어는 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한 기업으로, 이제 <NTV>는 간접적으로 정부의 관리 하에 놓였다. 반전된 상황도 노르킨의 확신을 흔들지 못했다. 토론에서 늘 중립을 지키는 그의 굳건한 태도는 반정부 진영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어느 정도 공격적인 태도는 불가피합니다. 방송편성표 상에서 우리 방송의 성향을 보여주는 문제이니까요. 또한, 대중이 원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노르킨은 이렇게 평가한다. “토크쇼는 방영시간대에 따라 성격이 달라집니다. <만남의 장소>는 오후 시청자가 주된 대상입니다. (…) 우리 방송은 합리적인 논쟁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면도 보여줘야 합니다.”(7)

어두운 스튜디오에서 학술적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놓던 소련 시대 방송과 작별을 고한 후, 러시아에 토크쇼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토크쇼 황금기’는 2014~2015년부터다. 당시 주된, 혹은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던 주제는 바로 우크라이나였다. 우크라이나의 변칙적인 태도, 친 서구적 외교 전략, 이어지는 설전은 분노에 기름을 부었고, 말싸움은 몸싸움으로 이어지기 직전이었다. 이 같은 사회 충격을 완화하고자 정치학자, 연구자, 외교관, 그리고 ‘자칭’ 전문가들은 방송에서 과격한 언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미국은 절대로 백신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초기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방송은 속칭 ‘악마의 변호사’들을 초대해 종종 극단적으로 상대편의 견해를 대변할 것을 요청하는 토크쇼였다. 러시아 정부에 화가 난 우크라이나 논객들은 ‘침략국’의 생방송에 출연해 불만을 쏟아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기자 야니나 소콜롭스카야, 정치학자 바실 바카로프와 비아체슬라프 코브툰이 돌아가면서 출연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내정간섭을 비난했고,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권에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결사적으로 옹호했다. 또한, 아조프 특수부대나 극우 민족주의 정당 우익 섹터(Pravy Sektor) 같은 신파시스트 조직의 위협을 최소화하려는 목적도 있었다.(8) 

그 반대편에는 러시아와 이해관계로 얽힌 정당들이 자리해 러시아 정부에 반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2019년 12월 13일 방영된 <미래가 말해주리라>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왜 거절합니까? 러시아에 손해를 입힐 목적인가요? 오히려 당신 자신이 손해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다른 곳에서 똑같은 천연가스를 시가로 구매할 테니까요!”

마찬가지로 지난 3월 25일 방영된 <60분>에서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실패한 코로나 대응 조치를 조롱한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의 백신을 오만하게 거절했지만, 서구에서 들어올 백신 배달이 무기한 연기되자 결국 턱없이 적은 양의 인도산 백신을 고가에 수입했다. 요컨대, 러시아는 인접국 우크라이나가 굴욕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열렬한 태도로 서구에 구애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현재까지 우크라이나의 노력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고, 서구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3월 11일자 방송에서 솔로비에프가 상황을 요약한다. “미국이 여러분에게 군사 지원을 할지 몰라도, 백신은 지원해주지 않습니다.”

외국인 시청자가 토크쇼를 본다면, 방송에서 들리는 자유분방한 어조에 놀랄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민주주의적 기준에서 보면 몇몇 출연자들의 발언은 방송계에서 제명돼야 마땅해 보인다. 일례로, 니콜라이 스타리코프는 2019년 3월 5일(스탈린의 기일)에 방영된 <미래가 말해주리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를 포함한 러시아 국민 대다수는 스탈린이야말로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라고 여깁니다.” 지난 3월 3일, <만남의 장소>에서 올레그 바라바노프는 “러시아 정부를 대신해 저라도 (코로나19의 높은 사망률에 대해) 거짓말하겠습니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미카일 델리야긴은 2021년 4월 21일자 <미래가 말해주리라>에서 돈바스 지역 분쟁 강도가 한풀 꺾인 것에 대해, “전쟁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며, 이는 미국에 있어서 치명적인 위협”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게이 프라이드나 미국이 최근 궁리 중인 젠더 정책에 관한 토론에서 러시아인 참여자들이 내뱉는 폭력적인 언사는 말할 나위도 없다.

때론 사회자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기도 한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일어난 다음날인 2019년 4월 16일에 방영된 <미래가 말해주리라>에서, 유럽 우월주의 논객 알렉상드르 시틴은 선을 넘어버렸다. “두 화재 사고를 비교하는 것은 잘못됐습니다. 한쪽은 유럽 고전 문화의 정수가 파괴된 사건이고, 다른 한쪽(2014년 5월 2일 오데사 노동조합 건물에서 일어난 화재로 친러시아 시위자 몇십 명이 사망한 사건)은 보잘것없는 인간 유전자가 약간 손실된 사건입니다.” 사회자 아나톨리 쿠지체프는 침착함을 잃지 않은 태도로 그에게 스튜디오 퇴장을 요구했다. 선글라스를 쓴 채 특유의 현학적인 어조를 구사하는 시틴은 다른 토크쇼에서 재빠르게 자기 자리를 찾았다.

 

논객들을 전멸시키는 사회자, 셰이닌

논란의 여지가 가장 큰 사회자는 아트욤 셰이닌이다. 벗겨진 머리, 희끗희끗한 턱수염, 토론장 중앙을 향해 다리를 벌리고 선 셰이닌은 ‘애국심’을 숨기지 않는다. 게다가 출연자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슴없이 비난을 퍼붓는다. 그의 기벽은 유명하다. 출연자에게 장황하고 난해한 질문을 던지며 상대방의 논거에 경고를 보낸다. 이런 셰이닌의 공격에 만신창이가 된 상대방이 내놓는 답은 이미 유효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은 게 돼버린다. 셰이닌은 그 대답마저 논파해버린 후, 온갖 정성을 들여 그가 찾는 정답을 암시한다. 질문 세례 끝에 드디어 상대방에게 발언권을 주자마자 셰이닌은 말을 끊고 과장된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럴 줄 알았어요! 내기라도 할 걸 그랬군요! 이런 의도를 숨기고 있었군요. 이렇게 말하려는 심산이었죠….” 요컨대, 그는 단호한 의견과 가차 없는 태도로 토론을 장악하며 ‘초대작의 사회자’라는 핵심 역할을 공고히 한다.

셰이닌이 좋아하는 들러리 출연자로 마이클 봄과 마이클 와시우라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에게 반감이 있는 미국인이다. 미국 중서부 억양으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두 사람이 미국 정치, 새로운 러시아 제재, 민주주의,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정책, 진보주의에 대한 의견을 밝히면, 셰이닌은 부드러운 태도로 이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며 토론을 이어간다. 다루기 쉬운 또 다른 샌드백으로 정치학자 안드레이 니쿨린이 있다. 그는 푸틴 정부의 무조건적인 반대파다. 푸틴 정부가 외국이나 초국가적 기관을 상대로 무슨 일을 하든, 절대로 옳다고 말하는 법이 없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에서 벌어진 가혹 행위에 대한 미국의 제재, 파마산 치즈 수출 금지 조치에서 유럽의회 제외 등은 그들이 보기에 러시아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당하고 필요한 조치였다. 셰이닌은 이 논객들의 논거와 자존심을 단번에 짓밟는다.

셰이닌의 이런 태도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 이면에는 방송계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통찰이 숨어있다. “저는 이 시대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러시아에 황금기가 끝나고, 사람들이 두 편으로 찢어져 서로 싸우는 전쟁의 시기가 왔습니다. 과거엔 저 같은 외모와 성미를 사진 사람이 TV 사회자가 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9) 분열된 사회, 그리고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에 완전히 치우친 매체는 서구권의 전유물이 아니다.(10)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이데올로기 분열은 좌-우파의 이분법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다름 아닌 자국 주권론자와 ‘외국 정당’의 대립이다. 현재 대다수를 이루는 전자는 희생이 따를지라도 강대한 러시아를 표방하는 까탈스러운 푸틴식 정치를 추구한다. 후자는 ‘제5열’ 혹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간첩’이라고 불린다. 좀 더 중립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자유주의자’다. 그들은 러시아가 억압과 모욕을 무릅쓰고 서구의 뜻에 따름으로써 상대국들과 신뢰를 쌓길 바란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애국 열사들은 이들을 매국노로 여긴다. “그들을 정확한 명칭으로 불러야 합니다. 반대파는 사실상 매수된 스파이로, 아군이 아닙니다.” 솔로비에프가 2021년 3월 11일에 한 발언이다. 보통 스튜디오는 ‘문명국’들 간의 협력에 러시아가 합류하길 바라는 이들, 그리고 사회자들에게 암묵적인 지지를 보내며 중국이나 미국과 대등하게 시합하고자 하는 이들로 나뉜다. 러시아에서 오랜 논쟁의 대상이었던 ‘유럽파’ 대 ‘슬라브파’ 구도도 현대의 탈을 쓰고 부활했다.

이 논란을 요약해주는 유명한 논쟁이 있다. 2017년 6월 22일 방영된 <솔로비에프와 보내는 저녁>에서 정치학자 아리엘 코엔과 상원의원 뱌체슬라프 니코노프가 맞붙었다. “러시아가 계속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점점 강해지는 서구의 제재를 받게 된다면 러시아의 경제는 끝장입니다. (…) 기술과 시장, 그리고 개발에 필요한 자본을 누가 우리에게 제공하죠?” 코엔이 걱정하자 니코노프가 반박한다. “제2차 대전 말기부터 시작된 통상 금지로, 미국은 우리에게 뭘 팔거나 기술을 전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 오늘날 우리는 원자력 기술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의 군사체계, 우주항공기술, 수출 중인 백신, 이 모든 것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러시아의 역량을 증명합니다.” 

지난 3월 27일 방영된 <알 권리>에서, 정치학자 세르게이 카라가노프는 이 같은 종류의 논쟁에 마침표를 찍을 필요가 있다고 밝힌다. “명백한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러시아인)는 진정한 유럽인의 자격이 있는가?’ 하는 영원한 질문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유럽은 이제 우리 마음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우리가 유럽 문화를 끌어왔던 만큼, 우리도 톨스토이, 체호프, 차이코프스키 등을 통해 유럽 문화에 이바지한 바가 있습니다. 불행히도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던 유럽은 이제 그 물이 말라버렸습니다. 이제 우리가 전혀 모르는, 새롭게 떠오르는 다른 문화로 눈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봐줄 만한 인종차별”이 된 러시아 혐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인이자 <RT채널> 편집장인 마르가리타 시몬얀은 주기적으로 토크쇼에 출연한다. 시몬얀은 미국 교류 프로그램 <영 리더스(Young Leaders)>에서 중도하차했다. 미국에서 받은 저널리즘 교육은 자신들의 주장에 맞춘 교화처럼 느껴졌고, 이는 서구가 러시아에 들여온 이데올로기 전쟁에 눈을 뜨게 해줬다. 시몬얀은 2017년 10월 14일, <알 권리>에 출연해 말했다. “소련 시대가 지난 후였어요. 저널리즘 대학에서는 다원주의와 객관성 원칙에 대해 가르칩니다. 전체주의가 서구에서 유래했다고 누가 믿겠어요? 미국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낼 배짱이 있다면 푸틴과 러시아에 대한 중립적 의견만 낼 수 있어요. 푸틴에게 이용되는 바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모든 게 끝이에요. 수많은 기자가 마녀사냥을 겪었어요. 이 <뉴욕 타임스> 기사를 보세요. RT와 접촉하는 기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징계를 받았습니다. 거대한 압력이 들어와 우리와 같이 일하는 걸 막고 있어요. 주류와 다른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금지하는 겁니다. 이게 전체주의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전체주의인지 모르겠습니다!”

토크쇼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서구와의 오해’다. 낙관론자에게는 ‘오해’이지만, 비평가들이 보기에 이는 ‘선천적인 러시아 혐오’다. 모스크바 국립 국제 관계 대학교 국제 관계학과 교수 올레그 바라바노프는 <만남의 장소>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게스트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2017년 6월 8일)에서, 러시아 혐오가 서구 엘리트 대다수에게 “봐줄 만한 인종차별”이 됐다며, 강해진 집단주의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 정치 체계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한다.

최근 발생한 시위의 시발점은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3월 25일)이었다. 그는 “러시아와 중국이 백신을 ‘신종 세계 대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고발했다. 러시아가 백신 확보 및 스푸트니크V와의 공동생산에 관심을 보이는 모든 유럽 국가에 백신 제공을 제안했음에도 말이다. 3월 26일 <각자의 진실> 촬영장에서는 정치학자 막심 유신이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저는 프랑스를 좋아하고 옹호하지만, 이번만큼은 경악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24시간 내 4만 5,000명이 감염되면서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바이러스 발발 이래 최악의 상황입니다. 두다나(폴란드 대통령),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라면 이 같은 발언을 할 만합니다. 하지만 마크롱이 장본인이라니, 프랑스와의 우호적 관계를 기대했는데 비관적인 생각이 듭니다.”

이런 방송은 물론 객관성과는 거리가 멀다. 공공기관의 지휘하에 단단한 애국심으로 무장한 유명 기자들, 그리고 정치 성향에 따라 분류된 ‘전문가’들이 참여해 방송은 활기를 띤다. 그들의 결론이 무엇인지는 쉽게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내·외국인 정부 비평가를 섭외해 발언권을 줌으로써 토론이 다원주의적인 것처럼 보이려 노력한 공로는 분명하다. 미국이나 유럽 토크쇼에서 러시아, 중국, 혹은 이란 논객이 출연하는 경우를 들어본 적 있는가?

러시아 방송계는 러시아를 악마로 변모시키는 서구 매체에 맞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돌려준다. 소련 시대의 흐루쇼프를 연상케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유분방한 기벽을 조롱했으며, 오늘날에는 브레즈네프를 연상시키는 바이든 대통령의 지적 능력을 걱정한다. 지난 3월 17일, ABC채널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을 “살인자”라고 평한 것을 들먹이며 <60분>의 간판 사회자 예브게니 포포프가 풍자한다. “입조심을 하기로 했는지, 아니면 생각을 바꿨는지, 혹은 벌써 잊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발언을 한지 12일 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을 기후 회담에 초대한다.”(2021년 3월 29일)

풍부한 재치와 아이디어에 있어서 러시아 방송계가 서구의 경쟁자들을 부러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하지만 러시아 언론이 국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사실상 전무하다.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주장은 아무리 터무니없을지라도 국제 언론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그에 맞서는 힘은 없다. 4월 1일자 <미래가 말해주리라>에서 마르가리타 시모니안은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 언론 전쟁에서 적군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닙니다.” 

 

 

글·크리스토프 트롱탱 Christophe Trontin
기자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 Gevorg Mirzoyan, ‘Pourquoi la Russie a besoin de talk-shows politiques 러시아에 정치 토크쇼가 필요한 이유’, <Snob>, 모스크바, 2021년 1월 6일(러시아어).
(2) Sergueï Markov, ‘Le mystère des talk-shows politiques russes 러시아 정치 토크쇼의 미스테리’, <Moskovski Komsomolets>, 2017년 5월 26일(러시아어).
(3) Hélène Richard, ‘Alexeï Navalny, prophète en son pays?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의 선구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1년 3월호.
(4) <Parasites 기생충>, 알렉세이 나발니의 다큐멘터리, 2020년 5월 10일, YouTube.
(5) Institut Mediascope pour la population urbaine.
(6),(7) Youlia Doudkina, ‘Comment sont organisés les talk-shows politiques russes 러시아 정치 토크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squire>, 2019년 7월 9일.
(8) Emmanuel Dreyfus, ‘En Ukraine, les ultras du nationalisme 우크라이나의 극단 민족주의자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4년 3월호.
(9) Youlia Doudkina, ‘Comment sont organisés les talk-shows politiques russes’, art. cit. 상단 인용
(10) Serge Halimi & Pierre Rimbert, ‘Un journalisme de guerres culturelles 분열을 팔아야 먹고 사는 언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1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