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의 볼런투어*
2021년 4월 3일 토요일, 런던데리(Londonderry). 북아일랜드에 있는 이 도시의 정식 명칭이다. 그러나 이곳에 거주하는 가톨릭 주민들은 런던(London)을 빼고 데리(Derry)라고 부른다. 이곳 사람들이 런던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부활절 주말이 가까워지자 가톨릭 신자들의 지역인 보그사이드의 집들은 깃발을 내걸었다. 아일랜드 공화국을 상징하는 삼색기 혹은 초록색 바탕에 금색과 흰색으로 아일랜드 공화국을 의미하는 ‘아이리시 리퍼블릭(Irish Republic)’ 글자가 새겨진 깃발이다. 두 깃발 다 부활절 봉기를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16년 부활절 당시, 아일랜드 독립주의자들은 더블린에서 아일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며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며칠 후 독립주의자들의 무조건 항복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됐으나 이 일을 계기로 ‘자유 아일랜드’를 향한 움직임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오후가 되자 자욱했던 아침 안개가 걷히고 태양이 떠올랐다. 프리 데리 코너(Free Derry Corner) 앞에 약 5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이곳은 1968년에서 1972년까지 거주민들이 자치를 선언했던 구역이다. 사오라드(Saoradh) 지지자들이 삼삼오오 집결했다. 사오라드는 1998년 유혈 분쟁을 마무리한 ‘굿 프라이데이 협정’에 반대하는 극좌파 공화당이다. 2016년에 설립된 이 정당은 수감된 공화당원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아일랜드 공화당 수감자 복지 단체(IRPWA)’와 무장해제에 반대하는 ‘신 아일랜드 공화국군(New IRA)’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IRPWA는 매달 여기 프리 데리 코너에서 피켓 시위를 합니다. 수감자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죠.” 28세 존(1)이 설명했다. “30여 명의 공화당원이 그들의 신념 때문에 수감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24세의 데클런이 덧붙였다. 아일랜드 공화국을 상징하는 두 깃발이 길을 따라 쭉 걸려있고 기금을 모으는 저금통이 자동차 운전자들을 향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무관심하게 지나갔다. “월요일 추모식에 오셨어요?” 22세 데니가 마침내 우리에게 질문했다. “오후 2시에 크레간에 있는 묘지로 오세요.”
4월 5일 월요일, 데리. 부활절이다. 보그사이드에서 크레간 지구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벽들은 그라피티로 가득 차 있었다. “망할 놈의 영국인들.” “폴 매킨타이어(2)를 석방하라!” “부당한 영국, 정의는 어디 있나!” 묘지에 가까워지자 시위를 독려하는 포스터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사오라드 국내 사무소 직원인 33세 숀은 외투에 공화당을 상징하는 흰 백합을 달고 공화당원들의 지하 묘소로 향했다.
‘명예의 전당’이라 불리는 이곳은 신념을 위해 싸우다 죽은 아일랜드 공화국군(Irish Republic Army, IRA) 소속 지역 전투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초록색, 흰색, 주황색 부케로 장식된 마이크와 단상이 행사를 위해 설치돼 있었다. 100여 명의 시민과 10여 명의 기자를 앞에 두고 우박과 바람이 날리는 속에서 추모제가 시작됐다. 과거 감옥에 수감됐었던 47세 정치인 토미가 현재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투옥된 공화당원들이 쓴 선언문을 낭독했다. 마지막 순서로 숀이 연설을 했다. 사오라드가 이끄는 혁명 투쟁이 시급하며 통합된 사회주의 공화국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팔레스타인과 연대도 강조했다. 아일랜드 국가(國歌)가 울려 퍼지고 난 후에야 군중은 해산했다.
“좋은 전쟁, 나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경찰 헬리콥터가 이 지역 상공을 비행했다. “워터사이드에서 나흘 동안 야간 폭력 시위가 있었어요. 추모제를 기념하려고 헬리콥터를 띄웠나 보네요.” 토미가 묘지에서 나오며 비꼬면서 말했다. 며칠 전부터 북아일랜드 개신교 계열의 왕당파는 흥분 상태였다. 3월 30일 데리의 연안 지구에 있는 워터사이드에서 시위가 시작됐고 이후 이 움직임은 벨파스트, 캐릭퍼거스, 뉴튼애비까지 퍼져 나갔다. 브렉시트로 인한 불만이 쌓여 있던 차에 법원의 결정이 도화선이 됐다.
2020년 6월, 코로나19 방역으로 지역이 봉쇄돼 있던 시기였는데 신페인당(공화당의 주요 정당으로 역사적으로 IRA 계보를 잇는 정당) 지도자들은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사령관 장례식을 거행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 명령을 위반했다. 그런데 이들을 고소하지 않기로 하자 왕당파인 개신교 주민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사조직 지도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나서서 긴장을 완화하곤 했는데 브렉시트로 인해 배신감을 느낀 이들이 이번에는 나서기를 거부했다.
4월 8일 목요일, 19시경. 개신교 지역 샨킬에서 경찰 운송차가 왕당파 청년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시위대가 병과 돌을 던지는 상황에서 운송차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경찰차 뒤 길가 끝에는 왕당파의 표적이 있었다. 콘크리트 블록으로 연결한 두 개의 철문이다. 이 두 철문이 개신교 주민이 사는 이 지역과 가톨릭 주민이 거주하는 이웃 지역을 분리하는 경계선이다. 보통 경찰은 밤 10시 반쯤에 이 문을 닫는다. 그러나 최근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이 철문은 이미 닫혀있었다. 문짝에는 정부 당국이 쓴 화해의 메시지가 있었으나 시위자들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좋은 전쟁, 나쁜 평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평화를 위해 땀을 흘릴수록, 전쟁 때문에 흘리는 피가 줄어듭니다.”
전날의 충돌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왕당파는 철문을 부수고 가톨릭 주민 지역에 침입했다. 그러자 가톨릭교인 공화당파와 개신교인 왕당파와 사이에 포탄과 화염병이 오가기 시작했다. 왕당파가 경찰을 향해 일으킨 폭동이 이어진 지 일주일 후, 개신교 지역과 가톨릭 지역 간의 싸움으로 국면이 전환됐다. 10여 년 만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날 저녁, 청년들은 공격을 되풀이했다.
군중에서 해산된 많은 사람이 복면을 한 채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조용히 맥주를 마셨다. 어떤 사람들은 영국기를 높이 들고 돌아다녔다. 30분 후 경찰 지원 차량 10여 대가 도착했다. 경찰이 무기를 갖추고 스피커로 시위를 멈추라는 경고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시위대는 욕설로 답했다. 경찰이 장전하는 척하자 시위대는 조금 물러섰다. 이미 다 아는 대응 방식이 반복됐다. 청년들이 장갑차에 너무 가깝게 다가서자 경찰들은 밖으로 나왔으나 시위대가 던지는 돌을 맞자 다시 차량으로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시위는 계속됐다.
철판과 철조망으로 세운 ‘평화의 벽’
철문 맞은편에 있는 지역, 스프링필드. 여기에 도착하기 위해서 우리는 도심지로 우회해야 했다. 30여 명의 신페인당 지지자들(지역 의원, 단순 지지자, 단체 직원)이 공공 안전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을 예방하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젊은 가톨릭 신자들이 개신교 왕당파 청년들과 맞붙으러 가지 않도록 당부했다. 이 일은 그들에게 있어선 민족주의자 지역에서 공화당원들이 사회적 통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연방주의자 진영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지역은 아직 조용했다. 그러나 이 고요함이 길게 가진 못했다.
우리는 이 도시의 수많은 ‘평화의 벽’이 설치된 길을 따라 올라갔다. ‘평화의 벽’은 민족주의자와 연방주의자를 분리하기 위해 철판과 철조망으로 만든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설치된 분리장벽보다 더 높다. 1970년대 초, 폭동 때문에 영국군이 건설한 이 벽은 종교 공동체를 고립시키기 위한 용도였다. 지금은 완전히 지역 정책과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수백 미터를 갔더니 군중은 더 많아지고 차량 통행은 멈춰있었다. 줄 앞에서는 공화주의자 청년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마스크를 쓴 20여 명의 사람이 병과 돌을 던지고 불꽃을 쏘아 올렸다. 다른 한쪽에서는 장갑차 두 줄이 에워싼 물대포가 보였다. 시위대와 거리를 유지한 상태였는데 창고에만 있던 이 대포가 밖으로 나온 것은 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공화주의자 청년 폭동은 우리가 조금 전에 막 살펴본 왕당파 청년 폭동이나 다를바 없었다. 한 청년이 경찰 차량으로 돌진하면서 포탄을 발사하자 물대포가 그 청년을 향해 쏟아졌다. 자동차 뒷유리가 깨진 것으로 판단하건대 훔친 자동차가 왔다 갔다 했다. 내부에서는 두건을 쓴 수많은 사람이 테크노 음악에 춤을 추고 운전자들은 경찰 바리케이드 바로 앞에서 급정거하며 위협을 가했다. 얼마 지나자 세 명의 청년이 화염병을 들고 와서 불을 붙이려 애썼다. 마침내 화염병을 던졌을 때는 불이 붙지 않은 상태였다. 휴지조각으로 만든 화염병이었기 때문이다.
4월 10일 토요일. 벨파스트, 22시. 과거 아일랜드 국민해방군(Irish National Liberation Army, INLA)으로서 복역한 경험이 있는 패트릭은 현재 굿 프라이데이 협정에 반대하는 마르크스주의 공화당 조직인 아일랜드 사회주의 공화당(Irish Republican Socialist Party, IRSP) 당원이다. 패트릭은 집에서 나와 리처드, 스티븐, 케빈이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에 올라탔다. 우리는 샨킬을 지나 가톨릭 지구인 폴스에서 합류했다. 패트릭은 휴대폰으로 따라가야 할 길을 그때그때 알려주었다. 그 시간에 지역을 분리하는 철문이 닫혀있다는 사실을 깜박 잊었다. 우리는 두 번이나 되돌아가야 했고 결국 포기하고 도심지로 우회했다.
20여 분 후 우리는 집 앞에 멈춰 섰다. 다른 친구들이 담배에 불을 붙이는 동안, 패트릭은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그는 몇 분 후 통조림과 시리얼 등 식료품을 가득 담은 봉지 수십 개를 들고 다시 나왔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공화파 지역 내에선 식료품을 모으고 나눠주는 일이 일상화됐다고 했다. 의료진을 위한 눈 보호대 제작 같은 것도 한다고 덧붙였다. 거주민들의 일상 문제를 관리하고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이런 활동은 국가주의자들이 담당하는 지역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공화주의자의 오랜 전통이라고 한다.
벨파스트 북쪽 뉴 로지 방향으로 향했다. 민족주의자, 국가주의자들이 사는 지역이다. 전날 이 지역 청년들과 타이거 베이 청년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 23시 30분, 아일랜드 사회주의 공화당(IRSP)의 다른 당원들이 우리와 합류했다. 밤 추위에 목도리를 코까지 끌어올리고 머리에는 후드, 두건, 모자를 쓰고 나타나서 사실상 눈밖에 안 보였다.
10여 명의 IRSP 당원들은 어느 집 문을 두드렸다. 패트릭이 전날에 여기 사는 남자와 분쟁이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고 싶어서 다시 찾아온 것이다. 패트릭이 이 지역의 ‘범죄자’, 즉 경찰에 정보를 제공하거나 선동을 한다고 의심되는 ‘쥐새끼’를 몰아낼 때, 이 끄나풀은 패트릭을 ‘아일랜드 공화국군 임시파(Provisional Irish Republican Army, PIRA)’로 취급했다. 패트릭과 그의 IRSP 동료들에게 있어선 극도의 모욕이다. IRSP를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에서 신페인당으로 넘어간, 즉 혁명적 투쟁과 민중, 대의를 저버린 배신자 취급을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바로 잡는 과정이 필요했다. 패트릭의 명예를 회복하고 신페인당과 IRSP의 차이점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패트릭은 즉시 사과할 것을 요구했고, 남자는 순순히 따랐다. “문제가 발생하면 저는 이렇게 해요. 충돌이 발생하면, 그 사람을 미행해서 사는 곳을 알아냅니다. 그 후 IRSP 동지들과 함께 그곳에 다시 갑니다.” 되돌아가는 차 안에서, 패트릭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무작위로 길을 오가면서 이들은 뉴 로지를 순찰한다. 폭동의 초기 증상이라고 할 수 있는 집회는 없는지, 아니면 그저 단순하게 ‘반사회적’ 행동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반사회적 행동이라 함은, 소음공해, 마약거래, 도난 차량 경주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새벽 2시, 지역을 돌며 거주민을 돕는 일은 다 마쳤지만, 패트릭의 활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거주민들에게 행정적 도움을 주면서 남은 시간을 보낸다. 사회주택 요구 혹은 비위생적 주거 환경 고발 같은 일이다. 또한 무장 조직과 중재하는 일에도 참여하고자 한다. 이런 무장 조직들은 잘못을 한 민족주의자 청년들에게 처벌을 가하려고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 처벌은 매우 끔찍하다. 무릎 근처에 사격해, 슬개골을 파괴하는 ‘무릎 쏘기’가 가장 흔한 처벌의 형태다.
글·아드리앙 올스탱 Hadrien Holstein
정치학 연구원
번역·이정민
번역위원
*볼런투어(Voluntour); 자원봉사(Volunteer)와 여행(Tour)의 합성어로, 여가를 활용해 봉사활동과 여행을 함께 즐기는 것. 지역 노숙인 쉼터를 방문해 도움을 주거나, 야생동물을 위한 쉼터를 만드는 등 인권, 동물권, 환경 등에 유익한 활동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1) 모든 이름은 가명 처리했음.
(2) 2019년 4월, 기자 리라 맥키를 살해한 혐의가 있는 공화주의 지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