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 ‘색조주의’가 계급을 가르는 라틴 아메리카

2021-07-30     에제키엘 아다모브스키 | 역사학자

19세기에 독립한 라틴 아메리카는 식민지 시대 당시 지배적이었던 인종 계급제도를 공식적으로 철폐했다. 이제 더는 원주민 후손, 노예 후손, 지배자였던 유럽인 후손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식민 제국 시대의 민족 분류 대신 오늘날에는 피부색으로 사회적 지위를 따지는 ‘색조주의’가 대륙을 지배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도 역시 자본주의 계급제도가 존재한다. 이 계급은 이미 존재하는 민족·인종차별에 기반해 세워졌다. 16세기 식민지 시대에 생긴 두 계층은 식민지 전쟁에서 패배한 원주민과 식민지를 정복한 스페인 혹은 포르투갈 사람이었다. 그리고 노예제도의 발달로, 법적·민족적·사회적 지위가 구분된 제 3계층이 생겼다. 그러나 서로 피가 섞이면서 이 3개 계층도 뒤섞였다. 17세기가 되자, 인종을 분류하는 ‘카스타스 시스템’이 생겼다. 100% 백인이 아닌 이들을 혈통에 따라 세분화해 법적으로 분류했다.

자신들이야말로 ‘선’이라고 주장하는 독립파는 이런 모든 사회적 계층 분류체계를 폐지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라틴 아메리카에는 ‘색조 주의’가 남아있다. 피부와 모발의 색상을 비롯해 온갖 신체적 특징으로 사회 계급을 분류하고 낙인을 찍는다. 이 시민 계층은 ‘색조’라는 막연한 요소에 따라 분류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혈통’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생겼다. 그것은 ‘자본’이다. 자본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배경, 교육수준을 갖췄으면 다소 ‘모호한 색조’를 지닌 이들도 ‘백인’이 되는 것이다.

 

‘크레올(Créole)’이라는 총칭

혈통계급을 의미하는 용어는 라틴 아메리카의 토착 원주민 ‘인디오(Indio)’를 비롯해 인디오와 유럽인의 혼혈 메스티소(Mestizo)와 촐로(Cholo), 흑인과 백인의 혼혈 물라토(Mulato), 중국인을 뜻하는 치노(Chino) 등 다양하다. 또한 파르도(Pardo; 검은, 회갈색), 모레노(Moreno; 갈색), 모로초(Morocho; 머리털은 검고 얼굴은 흰), 카페오레(Café au lait; 우유를 탄 커피) 등 색상 형용사들도 다채롭다. 다소 모호하고 중의적인 이런 기준으로 이 계급시스템이 유지됐으며 돌발적인 상황에도 적응할 수 있었다. 

반면, 혼혈인보다 백인 이주민이 많은 앵글로아메리카에서는 인종 계층이 흑백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단 한 명의 흑인 조상이 있어도 백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한 방울 규칙(One-drop rule)에 의해, 오직 100% 백인 혈통만 ‘백인’으로 인정한다. 다른 인종의 피가 단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백인이 아니다. 즉 흑인이다. 따라서 라틴 아메리카와는 달리, 앵글로아메리카에서는 혼혈을 싫어한다. 앨라배마 주에서는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는 법안을 2000년까지 유지하다가, 최근에 폐지했다. 반면, 라틴 아메리카에서 이런 인종차별적 법안은 2세기 전에 거의 사라졌다.

이렇게 두 사회의 시스템이 다른 이유는, 해당 사회(국가)의 탄생 배경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미국은 ‘특정 민족’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앵글로 색슨계 백인이 미국의 ‘창시자’이자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민족’은 국가 창설 이전의 개념이다. 국가가 세워지면서 ‘소수민족’에 속하는 여러 집단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런 과정을 거쳐 다인종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다문화주의는 소수민족이 국가에 동화됐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미국에서는 이 소수민족이 차별받고 있다. 소수민족은 백인이 일임하는 근본적인 역할에 영향력을 거의 미치지 못한다. 

라틴 아메리카는 그들의 ‘시조’가 어떤 민족인지에 관심이 없다. 스페인에서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포르투갈에서 통치권을 재획득한 이후 라틴 아메리카의 주권은 국민에게 돌아갔다. 존재했던 민족을 바탕으로 국가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민족이 탄생한 셈이다. ‘크레올(Créole)’이라는 용어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본래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유럽인 자손을 지칭하던 ‘크레올’은, 시간이 흐르면서 현지에서 태어난 모든 이들을 총칭하는 용어가 됐다.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 국가의 지도자 엘리트층은 자신의 국가가 이런 혼혈 원칙을 바탕으로 형성됐다는 설에 긍정적이다. 그들은 ‘혼혈’의 나라 멕시코, ‘인종 민주주의’ 브라질, ‘카페오레’의 나라 베네수엘라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그들 자신을 ‘백인과 유럽인의 국가’로 여긴다. 

 

카베시타 네그라, ‘백인국가’에 의문 던져

이런 상황 속에서 20세기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민중운동은 자연스럽게 계급의 정체성에 의미를 뒀다. 멕시코의 제도혁명당에서부터 브라질의 노동자당, 페루의 아메리카 혁명 인민 동맹, 아르헨티나의 페론당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좌파 정치조직은 노동자, 농민인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이런 분야에서 특히 탁월했던 조직이 아르헨티나의 페론당이다. 이들이 호소한 ‘노동자’는 ‘카베시타 네그라(Cabecita negra, 검은 머리)’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짙은 피부색의 노동자로, 한 계층을 이룬다. 이런 애매모호한 상황은 ‘백인국가’라는 시각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럼에도 인종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조직이 활발하지 않다. 다양하고 혼합된, 유럽 출신들이 많은 사회계층으로 구성된 국가라서 이런 움직임이 약한 것으로 보인다.

변화는 다음의 세 가지 요소에 의해 일어났다. 우선 원주민, 아프리카계 자손들이 인종차별 문제에 끈질기게 저항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공익활동과 정부의 힘이 약해졌다. 마지막으로 북아메리카에서 도입된 다문화주의와 ‘정체성 정책’이 여론에 미친 영향이다. 비정부기구(NGO), 대학, 사회운동가들이 이런 담론을 주도하고 있다. 좌파도 이 정체성 보호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제2계급’으로 취급받는 시민들의 설움을 타파하고자 함이다. 볼리비아에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임기 2006~2009)이, 에콰도르에서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임기 2007~2017)이 역임하면서 헌법 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다민족’ 국가 창설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브라질에서는 2008년 노동자당이 라틴 아메리카 최초로 대학 입시에서 인종별 할당제를 시행했다. 대학은 흑인과 원주민 학생을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해야 한다. 빈곤층, 대개 유색 인종을 우대하는 사회정책을 필두로 ‘다름의 권리’를 주창하는 이런 움직임은, 인종차별주의를 표출한다는 강한 역풍을 맞기도 한다. 이 역풍은 대통령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2019년 쿠데타 당시, 볼리비아 보수 우파는 ‘인디오’와 그들 문화에 대한 증오를 마음껏 표출했다. 인디오 깃발을 불태우고 그들의 문화적 상징을 발로 짓밟았다. 1998년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당선된 우고 차베스, 이제 막 페루 대통령으로 당선된 페드로 카스티요도 자국 내 반동분자들의 인종차별적 조롱을 견뎌야 했다. 

 

반인종차별주의 정책, 과연 필요할까?

진보적인 정부의 새로운 목표 덕택에, 차별철폐와 사회개혁을 연결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일례로, 브라질에서는 앞서 언급한 인종별 할당제 때문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어떤 진보주의자들은 “라틴 아메리카 현실과는 동떨어진 앵글로아메리카식 인종분류를 도입했다”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국민토론에서 쟁점으로 떠오른 사안은 대학 내 전문가 위원회를 선정하는 문제였다. 이 위원회의 역할은 ‘인종으로 사기 치는 사례’를 골라내고 누가 흑인이고 누가 흑인이 아닌지 구분하는 소위 객관적인 근거를 결정하는 것이다.  

모든 새로운 정책에는 대가가 따른다. 인종문제에 초점을 둔 정책은 계급 정체성을 약화할 수도, 강화할 수도 있다. 멕시코의 초칠(Tzotzil)족에서부터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마푸체(Mapuche)족에 이르기까지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원주민 부족은 수백 개다. 소수자인 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온갖 차별을 받고 있다. 콜롬비아의 라이잘(Raizal), 브라질의 키롬볼라스(Quilombolas) 등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수십 개의 아프리카계 후손 집단도 마찬가지다. 땅에 관한 권리와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이 집단들은, 거센 반대에 부딪힐 경우 공동 정체성을 강화하고 ‘우리’와 ‘우리가 아닌 이들’의 경계선을 더 확실히 그을 것이다.

한편, 특정 인종집단에 속한 것도 아닌데 인종차별에 희생되는 이들도 있다. 서민계층의 대다수에 속하는, 짙은 피부색을 지닌 수백만 명이 그런 경우다. 이들이 소수일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라틴 아메리카 인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은 다양한 계기로 자신이 속한 민족을 새삼스럽게 자각하곤 한다. 에르베 도 알토와 파블로 스테파노니의 연구에서 관련 사례가 나온다. 2000~2006년 볼리비아에서 자신을 ‘백인’으로 인식하는 인구 비율은 26%에서 11%로 감소했다. 그러나 자신을 ‘현지인’이라고 여기는 인구 비율은 10%에서 19%로 상승했다.(1) 

그러나 가장 흔한 이들은, 자신의 선조를 별로 인식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개 빈곤층에 속하며, 자신의 피부색과 자신의 처지가 연관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반인종차별주의 정책은 큰 의미가 없다. 반인종차별주의 정책에는, 어떤 이들을 ‘다르다’라고 여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수’에 속하는 이들을 구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브라질 등에서 전투적인 아프리카계 후손 단체는 스스로를 ‘소수집단’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소수집단과의 동화’라는 이 목표는 과연 실현 가능할까? 그리고 바람직할까? 브라질 사회에서 혼혈 인구의 비율은 상당히 높다. 그러나 인종차별주의는 여전하다. 이처럼 다양한 혼혈 인구의 존재는 전통적인 인종구별 방식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흰 피부를 지니지 못한 이들에게 유의미한 공동체는 단 하나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 사회다. 

 

 

글·에제키엘 아다모브스키 Ezequiel Adamosky
아르헨티나 역사학자, 정치활동가

번역·이정민
번역위원
 


(1) Hervé do Alto와 Pablo Stefanoni, 『Nous serons des millions 우리는 수백만이 될 것이다』, Raisons d’agir, Paris,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