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개발에 반대한다, 고로 정부에 반대한다”

남미 채굴주의 비판 사상의 이면

2021-07-30     마엘 마리에트 외

보수 진영의 적개심과 마주하던 남미 좌파 지도자들은 또 다른 반대 세력에 부딪혔다. 정부가 과거의 경제모델에 매달린다고 비난하는 자칭 ‘진보주의’ 사회 운동가와 지식인들이다. 그들이 규탄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천연자원 채굴, 즉 국가를 포식자로 만드는 ‘채굴주의’다.

 

울창한 나무들, 사방으로 흐르는 맑은 물. 이런 숲속에서 원주민 마을 주민들이 광산개발 계획에 맞섰다. 광산개발이 시작되면 산은 파괴되고, 산 중턱에 자리한 작은 나무 오두막집 앞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노는 풍경은 사라질 위험에 처한다. 열대우림의 지상낙원 한복판에서 열매를 따는 장면 사이로 원주민 투쟁가와 비탄에 빠진 주민들은 광산개발이 환경오염과 폭력을 몰고 온다고 고발한다.

이윽고 시위 장면이 이어지면서 중간중간 피투성이 상처, 그리고 주먹을 치켜든 남성의 곁에서 소리 지르는 여성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영화관에 불이 켜지고, 관객들은 에콰도르의 광산개발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노천 광산개발, ‘침식’당하는 권리(A cielo abierto. Derechos minados)>를 연출한 영화감독 포초 알바레스에게 갈채를 보낸다.

알바레스의 작품만이 아니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10여 명의 영화감독, 기자, 예술가와 학자들이 한목소리로 채굴주의, 즉 수출을 목적으로 천연자원을 채굴하는 행위를 고발한다.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서도 부촌에 자리한 오초이메디오(Ochoymedio) 영화관, 그리고 매년 사회참여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항구도시 두아르느네(Douarnenez)에 이르기까지, 줄거리는 모두 비슷하다. 양심 없는 초국적 기업이 등장하고, 원주민 마을에 초읽기가 시작된다. 현대사회의 포식자에게 맞서 절망 어린 고함이 울려 퍼진다. 여기서 대개 정부는 공범으로 등장한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들이 자칭 ‘좌파’정부라는 점이다.

 

좌파의 기만, 우파의 귀환, 파차마마의 실종

해당 주제와 관련해, 저명한 지식인 중 한 명인 에두아르도 구디나스는 “남미의 좌파정부들이 유권자들을 속였다”라고 주장한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니콜라스 마두로, 아르헨티나의 네스토르 키르히너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히너, 그리고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와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등 남미 좌파 정치인들은 “신자유주의와 완전히 단절했다”라고 주장한다. 구디나스는 “그들의 이런 주장은 거짓”이라고 지적했다. 남미 ‘좌파’ 정부의 재분배 정책은 천연자원 개발에 달렸다. 그는 “그들이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수정, 혹은 완화할 수 있다고 변명하며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라고 지적했다. (1) 구디나스는 “이는 실패할 것이 뻔한 도박”이라고 덧붙였다.

신자유주의적 행보를 보이는 좌파는 채굴주의를 시류에 맞게 재구성했고, ‘신채굴주의’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이제 채굴주의는 남미의 진보 성향 정부를 비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됐다. 사회 운동가와 학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우파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정적을 누를 수만 있다면 환경보호에 대한 신념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2019년 말 볼리비아의 사례를 살펴보자. 당시 볼리비아의 동쪽을 초토화시킨 대규모 산불은 지난 몇 십년간 농지의 경계가 팽창했기 때문에 발생한 참사였다. 

볼리비아의 카톨릭 극우파 수장이자, 농업계 엘리트들을 주축으로 운영되는 산타 크루즈 시민 위원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루이스 페르난도 카마초는 갑작스레 지구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2) 지역의 고목들을 “구하려고” 모인 군중들 앞에서 카마초는 “환경을 보호하고 삼림을 복구할 것”을 약속했다.(3) 하지만 몇 주 후 쿠데타가 모랄레스 정부를 전복시키고 카마초가 행정부에 진출했을 때, 그가 처음 한 말은 “대지의 어머니 파차마마(잉카문명에서 섬기던 여신)가 대통령궁에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였다.(4)

이 같은 우파의 귀환은 남미에서 진행된 사회변화 프로젝트 초기에 환영을 받았지만, 이제는 채굴주의를 경멸하게 된 일부 지식인들에게 경종을 울린 듯하다. 에콰도르 헌법제정의회 의회장이자 경제학자인 알베르토 아코스타를 떠올려보자. 마찬가지로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헌법제정 과정을 지원했던 에두아르도 구디나스, 그리고 2000년대 말 볼리비아의 부통령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와 오랜 대담을 나눴던 아르헨티나 사회학자 마리스텔라 스밤파도 있다. 모두 남미지역의 주요 인물이다.(5) 정권을 잡은 진보 진영이 ‘배신’하자, 이제 누구와도 얼마든지 연합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자칭 ‘좌파’ 지식인이라면 절대 가까이하지 않을 무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스위스 나이프를 닮은 ‘신채굴주의’

스밤파는 자신의 저서에서 ‘신채굴주의’라는 개념을 여러 개의 도구가 달린 스위스 나이프에 비유했다. 신채굴주의는 자원을 채굴한 영토가 확장됨에 따라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경제 위기’,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위기’, 그리고 가정 내 ‘가부장제의 위기’를 한 번에 깨닫게 해준다. 아울러 더 나은 미래를 만들 방법을 제시한다. “인류세 시대의 문명이 직면한 사회·환경 위기에 대처한다는 것은, 대세인 채굴주의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큰 도전이다.” “자연의 권리, 상호성, 탈가부장제, 생태여성주의 등을 기반으로 하는 탈채굴주의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시 말해, 원주민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 “행복한 삶(아이마라어로 Sumak qamaña, 케추아 어로 Suma kawsay)”, 자연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삶이다.(6)

신채굴주의 비판이 주는 이점은 이론적인 측면만이 아니다. 남미 사상가들은 비판 사상의 개념을 완벽하게 다듬은 후 널리 알렸다. 그들은 남반구에서 시작된 남반구 정치의 진행 과정, 그리고 소위 ‘좌파’가 만들어낸 좌파의 야망을 고발한다. 동시에 비판 사상의 대변인들을 전 세계로, 특히 비판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먼 북반구 대학 지식인들을 향해 들이밀었다. 키토나 파리 생미셸 거리 영화관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세계 유명 언론지에 비판 기사를 기고하면서, 비판 사상은 대중과 학계 양쪽에서 빠르게 인지도와 정당성을 확보해준다.

구디나스가 2010년대에 신채굴주의 비판 전문가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연구에 대해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스페인어로 발표된 학술 기사와 출판물을 찾아주는 검색 엔진 구글 아카데미코에서 검색해보면, 2010년 전만 해도 그의 연구가 인용된 횟수는 매년 110회를 채 넘지 않았다. 그 이후 인용수는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해, 2016년부터는 꾸준히 1,400회 이상을 유지했다. 남미 진보 진영 지도자가 쓴 고발문이나 재판에서 구디나스를 언급하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광산 채굴을 다루는 사회 과학 논문에서 인용되지 않은 경우는 더욱 드물다. 그가 정립한 개념들은 논리적 타당성이 널리 입증됐기 때문이다.

너무 유럽 중심적이라는 이유로 마르크스주의와 완전히 결별한 비판 사상은 북반구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 같은 시류에 빠진 것은 환경보호론자만이 아니다. 남미 좌파는 피지배층, 광산개발 여파에 휩쓸린 원주민들처럼 힘없는 이들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짓밟고 ‘지구 파괴’의 공범이 됐다. 채굴주의는 “진보 진영”이 민주주의를 얼마나 경시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주민들에게 ‘더 나은 삶’이란?

도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돈을 위해 움직이는 좌파 정부의 배신, 그리고 연대해 투쟁하는 원주민 공동체가 완전한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이런 관점만으로, 현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아코스타와 구디나스 일행은 웨비나로 토론회를 열고, 탄원문을 기고하면서 “본질적인 가치로의 회귀가 시급하다”라고 주장한다.(7) 대지의 어머니 파차마마를 기리고 검소함에서 만족을 얻는 삶이다. 이런 행사들은, 시민들이 그들의 연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학 밖에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2018년 초, 에콰도르 툰다이메 시의 사례를 살펴보자. 2020년부터 채굴이 시작된 노천 구리 광산(일명 ‘전망대 프로젝트’) 가까이 자리한 마을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할까? 지역 지도자들이 정치적 인지도를 위해, 혹은 관광 등 다른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지지하기 때문에 광산에 반대하면 주민들은 보통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렇지만 모두가 “더 나은” 삶을 꿈꾸고, 광산은 그 꿈을 이뤄줄 수단으로 보인다. 광산 인근 주민들은 광산 채굴권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정부는 지역사회에 상당한 액수의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15세의 카리나 막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곳 청년들은 부모들처럼 전기도 공급되지 않는 오두막에서, 칼 하나만 들고 일하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 40대의 카를로스 텐데차는 “광산수익 덕택에 도로가 생겼다”라면서, “이제 과일과 사냥감을 팔러 옆 마을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라며 좋아했다. 아이들도 학교에 갈 수 있게 됐다. 80대 남성 폴리비오 후에파는 광산수익으로 수도공사를 한 덕분에 식수가 공급돼 기쁘다. “전에는 몇 킬로미터를 걸어, 물을 길어서 지고 와야 했어요.” 

물론 마을사람들 모두가 천연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에콰도르 인타그 지역 광산개발 반대운동, 페루의 콩가 프로젝트 등 유명세를 얻은 투쟁운동으로 인해 이와 비슷한 개발계획이 주민들의 환영을 받는다는 사실은 덮인다. 구디나스는 이를 “원조주의(정부가 취약한 환경에 노출된 개인에게 주거, 보건, 교육 등을 원조하며 정부에 의존하게 만드는 일련의 행위-역주) 함정”이라고 반박한다.(8) 

채굴주의 덕택에 재분배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수익을 재분배한 덕분에 채굴에 대한 주민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주민들은 점점 정부의 원조에 익숙해지며 독립성을 잃어간다. 신채굴주의 비판은 프로이드식 감정 부정과 닮았다. 자신만 옳다고 믿는 것이다. 주민들이 광산개발에 반대하면 ‘본보기’가 되고, 찬성하면 ‘부정부패가 팽배한 마을’이 된다. 

카를로스 페레스 과르탐벨의 연설이 바로 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50대 에콰도르인 변호사이자 코레아 전 대통령 반대파인 과르탐벨은 몇 년 전 채굴주의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정부의 횡포와, 이에 대한 국민의 염증을 알렸다.(9) 그는 광산개발 반대운동 덕분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2021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20%의 표를 얻었다. 과르탐벨의 연설은 진보 사회주의 성향을 띠고 있다. 그는 광산 대기업이 원주민 공동체에 “원한 적도 없는 꿈을 심어줌으로써 원주민 문화를 변질시켰다”라고 비판한다. “진보라는 생각 그 자체”조차도 말이다.

 

인터넷으로 서구문명에 맞서는 원주민들

과르탐벨은 원주민들의 대리 예언자 역할에서 그치지 않고, “야쿠 사차(케추아어로 ‘언덕의 물’)라는 이름으로 개명해 새로운 정체성”을 찾았다. 그는 “서구 문명에 물들지 않은 원주민들이야말로 인류구원의 열쇠가 되는 진리의 수호자”라고 주장한다. 한편, 현대사회의 몇몇 장점은 인정한다. 원주민 마을에 인터넷이 들어온 덕분에 광산 및 석유 채굴 계획에 맞선 “종합적인 저항운동”이 가능해졌다. 아울러 투쟁을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되는 듯하다.

그 사이 다행히도 아코스타를 주요 지지자로 확보한 악시온 에콜로히카(Acción Ecológica) 같은 비정부기구들이 행동에 나섰다. 키토에 자리한 이 조직은 특히 인터넷 활동이 활발하며, 정치단체 및 자선 종교단체와 긴밀히 연계한다. 그들은 환경운동에 관한 기사 목록 및 지역 인사 연락망과 같은 취재의 단서를 직접 손에 쥐여준다. 다른 동료 기자와 연구자들이 툰다이메 광산을 둘러싼 갈등을 취재하러 왔을 때처럼, 악시온 에콜로히카의 운영진 글로리아 치카이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정보를 모조리 제공해주고 최근 에콰도르의 ‘채굴주의’ 갈등에 관한 기사를 쓴 해외 유명 언론사 이름을 줄줄이 댔다. 

이들의 취재도 단체가 제시하는 방향과 조언에 따라 진행됐다.(10) 이처럼 악시온 에콜로히카는 어느 부분에 초점을 두고 분석해야 하는지 해외 언론사에 알린다. 또한,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과 같은 환경운동에 화두를 제공하는데, 이는 세계 곳곳에서 상영되는 환경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분석의 출처이기도 하다. 그들의 주장은 조금씩 선명한 윤곽을 갖춰간다. 정부는 다국적기업의 유혹에 넘어가 천연자원 개발을 허가한다. 정부의 다른 동기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땅을 파헤쳐 주주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목적인 기업에 개발을 허가하는 것과 소득의 재분배라는 정치적 목표 사이 간극은 크기만 하다. 

2014년과 2016년, 볼리비아에서 도입된 광산법은 협동조합과 초국적기업 간의 계약을 금지하는 법이다. 이는 광산 내 노동환경(노조활동, 급여 등)을 규제하려는 시도였다. 광산 협동조합은 약 12만 명에 달하는 광산 노동자의 90%를 차지했지만 2000~2020년 동안 광물 생산량은 전체의 17%에 불과했다. 정부는 1980년대 민영화된 이후 불법 행위가 만연한 광산업계를 다시 규제하려 나섰다. 너무 작은 규모라 기업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채굴현장을 맡은 가족 단위 소규모 생산업자들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된 상태였다. 아울러 천연자원 개발을 강요하는 구식 생산구조를 바꾸는 것이 정부의 정치적 목표인 듯하다.

그러나 순차적인 경제개발 단계를 건너뛸 수는 없다. 해체 전의 소련처럼 동맹국에 지식과 기술을 전수해 산업 개발의 속도를 올려줄 산업 국가가 이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어렵다. 2020년 10월, 1차 투표에서 55% 이상의 지지를 받고 볼리비아의 대통령이 된 루이스 아르세 카타코라는 아직 재정경제부 장관이었던 당시 자신이 고안한 “생산 공동체 사회·경제모델” 프로젝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공적 투자 금액을 확실하게 끌어올리고 소득을 재분배하며, 경제에서 국가가 구심점이 돼 내수를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11)

구체제의 주요 요소(특히 천연자원 개발)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수출중심 모델”을 바꾸고 “산업과 관광, 수공업과 농업 개발 중심의 모델”을 도입하려는 목적으로만 차용한다.(12) 그의 경제 계획에서 전문가들은 현재의 모델이 낡은 신식민주의식 경제 논리에 갇혀 있다고 분석한다. 즉,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국가의 주권을 공고히 함으로써 산업을 개발하고 생산구조를 현대화해야 한다. 그는 이것을 채굴주의에 의존하는 볼리비아를 해방할 유일한 해법으로 여긴다.

 

신채굴주의 비판 사상의 역설

생산구조를 바꾸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정부의 임기 동안 생활수준이 빠르고 구체적으로 향상되거나, 아직 결실을 보지 않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변함없는 지지를 얻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급진파 혁명주의 사상가들에게 이런 사실은 중요치 않다. 진보주의 정부가 무엇을 하건, 늘 같은 비난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전문가들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국가를 산업화라는 기나긴 여정 속에 밀어 넣기로 했는가? 지구 지킴이를 자처하는 이들은 “채굴주의!”라며 고발한다. 사기업과 비공식 협동조합 간의 계약을 바로잡음으로써 막대한 힘을 가진 광산업을 규제하려고 하는가? 비평가들은 입을 모아 “채굴주의!”를 외친다. 원자재 수출로 얻은 이익을 빈곤을 없애는 데 사용한다? 전문가들은 “채굴주의!”라며 분개한다.

요컨대 그들은 ‘즉시’ 자본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처럼 그럴듯해 보이는 급진주의도 치욕스러운 자본주의 시스템과의 급격한 단절이 경제적으로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글을 통해 모두에게 주장의 순수성을 부각하지만, 실현방법을 찾기 위해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한편, 자연보호가 우선순위인 다른 이들은 화석연료와 광물 채굴 중단을 보장한다면 자본주의의 일종이라도 개의치 않고 환영한다. 노동자들이 뭐라고 떠들건 그들에겐 중요치 않다.

역설적이게도, 신채굴주의 비판 사상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가부장적이고 고압적인 정부의 개입을 거부하며, 소득의 재분배는 광물 채굴을 허용할 명분을 제공하는 포퓰리즘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계획경제는 지역 공동체의 ‘자립심’을 앗아 간다고 여긴다. 외부에 완전히 개방돼 자본의 흐름이 자유로우므로 지역 공동체가 고유의 자율적인 법제를 적용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여긴다.

자유방임주의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정부가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개인 간의 교역이 이상적으로 이뤄지는 시장이 형성된다고 믿는다. 탈채굴주의를 전파하는 사상가들은 인위적인 개입이 없다면 자연의 조화가 스스로 조절함으로써 사람들 간 교역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이상적으로 만들 것으로 전망한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보수주의 사상을 원칙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변화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바꾸려는 인간의 개입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으로 본다면 정치 활동은 자연의 질서를 정비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질서는 알맞은 방향과 적절한 속도로, 저절로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나무 자전거, 광산 없는 국가

2021년 2월, 에콰도르 대선 캠페인 당시 과르탐벨은 에콰도르를 “광산 없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불가피하게 따라올 경제소득 감소를 얼버무리려 “정부 축소”도 불사하겠다고 한다.(13) 그는 “공공부문 예산을 삭감하는 긴축정책에 돌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르탐벨은 2019년에 에콰도르 남쪽 아수아이 지방 도지사로 당선됐고, 생각하던 바를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공무원의 월급을 반으로 줄였고, 이제 이동수단은 자전거만 이용합니다.”(14) 아무 자전거가 아니다. “탄소 발자국을 줄여줄 대나무 자전거입니다.” 과르탐벨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 채 이렇게 덧붙인다. “자전거는 기계주의에서 벗어나는데 적합한 수단입니다.”(15) 

2019년 10월, 자유주의 대통령 레닌 모레노가 국제통화기구(IMF)와 맺은 협약에 반발해 민중 폭동이 일어났고, 8명의 사망자와 1,5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반면 모레노의 전임자인 코레아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IMF의 간섭을 일절 거부했다). 과르탐벨은 협정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과의 자유무역 협정에 관해서는 “두 번 생각할 것 없다”라고 평가한다.(16) 그의 발언에 담긴 정치성을 살펴보면, ‘진정한’ 좌파의 이름으로 “원주민 지도자 과르탐벨이 구현하는 새로운 진보·환경·민주주의 급진 세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남미와 유럽 사회 과학계 인물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17) 

이 같은 지지층은 과르탐벨의 신채굴주의 비판 사상이 자유주의 우파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놀랍다. 과르탐벨은 몇 년 전부터 자유주의 우파와 연합하기 시작했다. 2017년, 그는 코레아 전 대통령과 같은 당 출신인 모레노 후보에게 표를 던지지 말 것을 호소했다. 그는 기에르모 라소 후보를 지지했는데, 라소는 에콰도르 주요 은행 중 하나인 과야킬 은행의 전 회장이자 조세 회피처에 은행계좌를 보유한 대부호다. 1990년대 말 라소가 재정경제부 장관이었을 시절 도입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에콰도르에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를 몰고 왔다. 당시 우리의 취재에 응한 과르탐벨은 진지한 태도로 라소가 “가장 확실한 환경보호 정책안”을 내놨기 때문에 그를 지지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라소의 선거 공약에서 그 정책이 해당하는 부분을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2021년 대선 1차 투표 결과 3위로 밀려나기 전까지, 과르탐벨은 결선투표에서 좌파의 안드레스 아라우스 후보와 맞붙을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사이 “에콰도르는 지하에 묻힌 자원을 그대로 내버려 두도록 용납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던 라소 후보는 재빠르게 과르탐벨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18) 두 인물이 가까워졌지만 과르탐벨을 지지하는 학계와 지식인층, 환경운동가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대나무 자전거를 타고 선거 집회에 가거나, 길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과르탐벨의 모습은 지지자들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일까?

에스페란사 마르티네스는 악시온 에콜로히카의 전 회장이자, 석유 채굴로 피해를 입은 원주민 및 남반구 생태계를 보호하는 국제 환경단체 ‘오일워치(Oilwatch)’의 창립자다. 과르탐벨을 지지하는 마르티네스는 포럼에 참여하거나 아코스타와 책을 공동저술하는 등 대의의 대변인으로서 활동 중이다. 스밤파는 아르헨티나 일간지 <엘 디아리오> 기사에서 과르탐벨의 대선결과를 뜻밖의 성과이자 “새로운 좌파의 가능성”으로 해석한다.(19)

 

다를 게 없는 두 진영, 거짓과 모순

그런데 ‘좌파’ 과르탐벨은 2019년 10월,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부를 전복시킨 쿠데타에 대한 언급을 꺼린다.(20) 또한, “임시 정부”라고 주장하는 헤아니네 아녜스의 독재 정부에 맞서려 하지 않았다.(21) 아녜스 정부가 사회단체 지도자 다수를 탄압했음에도 그는 “사회주의운동당(에보 모랄레스의 소속정당)의 독재”를 막을 심산으로 오히려 아녜스 정부를 옹호했다. 아녜스가 임시 대통령이 된 후 터진 항의시위에서 원주민 시위자 36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2021년 3월 소송이 제기됐을 때조차 말이다. 수익분배가 다국적 기업에 치우친, 정부에 불리한 계약이라는 이유로 2010년에 코레아 정부가 종결시킨 석유 채굴 계약이 2018년 7월 13일, 에콰도르의 전 대통령 모레노가 승인한 법령으로 부활했다. 과르탐벨은 이 법령에 대한 비판도 삼갔다.

그는 “다를 게 없는 두 진영 사이에 거짓과 모순이 존재한다”라고 지적한다. 한편에는 아라우스, 니카라과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가 있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식민지식 채굴주의를 위시한 진보주의 진영이다. 다른 한편엔 라소,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 마우리시오 마크리, 베네수엘라의 신자유주의 의원이자 자신이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이라고 선언한 후안 과이도, 그리고 아녜스가 있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식민지식 채굴주의를 위시한 자유주의 진영이다.(22) “생태계를 파괴하고 문화와 민족을 말살하는” 신채굴주의 좌파 진보 정부가 다가오는 “문명의 위기”에 일조하고 있다. 결론은 명백하다. 세계 곳곳에 산재하는 야쿠 페레스 과르탐벨 같은 이들을 지지해야 한다. 그들의 정치적 기준은 늘 한 방향, 즉 “사회주의 빼고 전부”를 가리킨다.

2019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와 함께 아르헨티나에 부활한 페론주의, 2020년 볼리비아 대통령으로 당선된 루이스 아르세 카타코라, 2021년 페루에서 뜻밖의 선전을 보인 페드로 카스티요까지, 남미에서 사회주의 모델을 옹호하는 이들이 주로 당선됨으로써 학계나 환경운동의 세력권에 닿지 않는 일반 국민이 선호하는 바가 잘 드러난다. 하지만 최근 에콰도르 대선에서 코레아 전 대통령을 계승하는 안드레스 아라우스 후보를 누르고 라소 후보가 당선됐다. 이는 사회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반채굴주의를 부르짖는 언론에 가로막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글·마엘 마리에트 Maëlle Mariette 
탐사보도 기자
프랑크 푸포 Franck Poupeau 
사회학자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 Eduardo Gudynas, ‘Estado compensador y nuevos extractivismos. Las ambivalencias del progresismo sudamericano’, <Nueva Sociedad>, n° 237, Buenos Aires, 2012년 1-2월호.
(2) Maëlle Mariette, ‘En Bolivie, sur la route avec l’élite de Santa Cruz ‘원주민 대통령’ 모랄레스를 내쫓은 산타크루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7월호. 한국어판 2020년 8월호.
(3) ‘Cabildo da ultimátum a Evo para que anule leyes que incendiaron la Chiquitania y aprueba voto castigo y federalismo’, <Brujula Digital>, 2019년 10월 4일, www.brujuladigital.net
(4) ‘“Nunca más volverá la Pachamama al Palacio de Gobierno”’, <El Grito del Sur>, Buenos Aires, 2019년 11월 12일.
(5) Maristella Svampa & Pablo Stefanoni, ‘Entretien avec Álvaro García Linera, vice-président de la Bolivie 볼리비아 부통령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와의 대담’, ‘La Bolivie d’Evo. Démocratique, indianiste et socialiste ? 에보 모랄레스의 볼리비아는 민주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원주민을 위한 나라인가?’에서 발췌, <Alternatives Sud>, vol. 16, n° 3, Centre tricontinental - Syllepse, Louvain-la-Neuve - Paris, 2009.
(6) Maristella Svampa, 『Las Fronteras del neoextractivismo en América latina. Conflictos socioambientales, giro ecoterritorial y nuevas dependencias 』, Bielefeld University Press, 2019.
(7) < Entretien avec Eduardo Acosta 에두아르도 아코스타와의 대담>, Maëlle Mariette 연출. 2017년 11월 20일. 
(8) Eduardo Gudynas, ‘Caminos para las transiciones post-extractivistas’, Alejandra Alayza et Eduardo Gudynas(책임연구원), 『Transiciones. Post-extractivismo y alternativas al extractivismo en el Perú』, Red Peruana por una Globalización con Equidad (RedGE) et Centro Peruano de Estudios Sociales (Cepes)에서 발췌, Lima, 2011.
(9) Thalia Flores, ‘Indígenas de Ecuador marchan contra el Gobierno de Correa’, <ABC>, Madrid, 2015년 8월 4일.
(10) (관련 사례) ‘Shuar tribe face government in Amazon mining protests’, <Al-Jazira>, 2016년 12월 29일, www.aljazeera.com ; ‘Rebelión en la Amazonía’, <El País>, Madrid, 2017년 2월 16일; ‘Amazon land battle pits indigenous villagers against might of Ecuador state’, <The Guardian>, 런던, 2017년 3월 19일; ‘La minería amenaza a los indígenas shuar en Ecuador’, <The New York Times>, 2017년 3월 27일.
(11)  Luis Arce Catacora, 『El Modelo económico social comunitario productivo boliviano』, Loipa Editora, La Paz, 2015.
(12) Luis Arce Catacora, 『El Nuevo Modelo económico, social, comunitario y productivo』, Economía plural, n° :1, 재정경제부, La Paz, 2011.
(13) 에콰도르 RTS 채널에서 방영되는TV프로그램 <La Noticia>, 2020년 9월 22일. 
(14) ‘Yaku Pérez : “No es descabellado un acuerdo comercial con Estados Unidos”’, <El Universo>, Guayaquil, 2021년 1월 14일.
(15) ‘Yaku Pérez, el candidato ecologista’, 아르헨티나 방송 <Pensamiento profundo>, 2020년 10월 16일, www.labarraespaciadora.com
(16) ‘Yaku Pérez : “No es descabellado…”’, 위와 동일.
(17) ‘Manuela Picq y Yaku Pérez también tienen su apoyo internacional’, <Plan V>, Quito, 2021년 2월 22일.
(18) Doménica Montaño, ‘Medio ambiente : ¿Qué proponen los candidatos presidenciales en Ecuador?’, <Mongabay>, 2021년 2월 1일, https://es.mongabay.com
(19) Maristella Svampa, ‘Yaku Pérez y otra izquierda posible’, <El Diario Argentina>, Buenos Aires, 2021년 2월 8일.
(20) Renaud Lambert, ‘En Bolivie, un coup d’État trop facile 볼리비아, 너무나 손쉬운 쿠데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2월호. 
(21) Maristella Svampa, ‘Bolivia y sus derivas argentinas’, <Perfil>, Buenos Aires, 2019년 11월 30일.
(22) ‘Desde Ecuador para los pueblos, las izquierdas y las mujeres del mundo’, <DemocraciaSUR – CLAES>, 2021년 2월 12일, http://democraciasu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