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지라’, 거침없는 두 얼굴

2011-10-10     모하메드 엘 오이피

1995년 이후, 카타르의 외교는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가 말한 “강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약자는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한다”는 것과 반대로 가는 듯하다. 실제로 카타르 정부의 적극적인 행동주의는 약소국도 외교정책을 펼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범아랍주의와 자유주의의 결합

강대국을 감안하지 않는 아랍 지역의 시스템 변화와 강대국, 특히 미국의 암묵적 승인이 ‘약소국’에 (외교적) 주도권을 가져다줬다. 1978년 이집트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서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90년 이걸 빌미로 미군 파병을 요청했고, 이라크는 1991년 걸프전에서 패배했다. 이로 말미암아, 아랍 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던 두 국가의 리더십이 크게 훼손됐다. 국경선 안으로 강제 철수당한 채, 아랍 국가 간 연대와 일체감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국의 정체성과 주권을 강화할 수밖에 없던 이 국가들은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영 위성TV <알자지라>의 편집 방향은 카타르 외교가 아랍 국가 간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줬다. 이슬람주의를 계도하는 범아랍주의와 자유주의를 접목한 카타르의 외교 노선이 <알자지라>의 성공과 대중성을 확보해줬고, 도하 당국은 <알자지라>를 영향력을 행사하는 능력 있는 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위세는 모호한 카타르의 외교정책에 발목이 잡혔다. 심지어 <알자지라> 위성TV의 진행자 아메드 만수르는 패널로 초대된 카타르 총리 겸 외무장관 셰이크 하마드 빈 자셈 알타니의 외교활동을 지적하며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많은 옵서버들이 카타르 외교정책의 투명성 부족을 지적한다. 카타르는 미국 밖에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가 있으면서도, 이란과 시리아 같은 아랍 지역의 미국 적성국들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외교적 접촉을 할 때는 하마스의 지도자들과도 소통했다. (중략) 2년 전에는 카타르가 형제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화해한 반면, 아랍 최대 국가인 이집트 정부와는 관계를 악화시켰다. (중략) 오늘 방송에서 우리는 카타르 외교정책의 원칙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할 것이고, 당신이 누구를 위해 이런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려 한다. (중략) 어떤 강대국들이 당신한테 지금의 자리를 허락한 것인지 알아보려 한다.”(1)

이런 변동이 생긴 원인은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간 외교적 갈등으로 2002년 이들의 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 뒤 2008년 7월 6일 양국이 체결한 협약에서 국경 문제가 카타르에 비교적 유리하게 정리되면서 갈등이 심화됐다. 그 대가로 사우디아라비아 야당은 <알자지라> 화면에서 자취를 감췄다.(2) 카타르 외무장관은 이 기간에 정치적 차원에서 양국 간 미디어 전쟁(3)이 있었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추후에는 더 이상 분쟁이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대사관 비밀 전문에 따르면, <알자지라>가 카타르의 외교 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특정 사건의 보도를 여러 차례 수정한 것으로 밝혀졌다.(4) 하지만 <알자지라>의 줄서기는 일관성이 전혀 없다. 3각 편대(카타르 외교-<알자지라> 기자-아랍 여론)의 상호작용 속에 방송사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알자지라>는 아랍 엘리트 통치자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여론의 무게를 중시하고 있다. <알자지라>의 인기를 실감하는 통치자들은 이 채널을 자신의 내부 문제에 침입한 침입자로 혹은 자신에게서 국민과의 소통 능력을 빼앗아간 탈취자로 간주한다. 아랍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알자지라>가 자신의 전문성과 아랍 야당을 중계방송하는 기능에서 정당성을 찾으며 아랍 정부를 끊임없이 압박해, 이 정부들은 더는 <알자지라>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여론 중시하며 영향력 키워

모로코의 경우에서 이런 사실을 잘 엿볼 수 있다. 2006년 11월 20일, <알자지라>는 마그레브(아프리카 서북부) 지역에 방송을 송출하기 위해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 지국을 개설했다. 모로코 정부는 이를 통해 공식적으로 모로코의 표현의 자유와 자유주의를 입증할 수도 있었지만, <알자지라>가 야당, 특히 이슬람주의 정당을 주로 채널에 출연시켰다는 이유를 들어 지난해 10월 20일 지국을 폐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난 7월 1일 모로코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이틀 앞두고, <알자지라>를 반대하는 과격한 캠페인을 주도하던 칼레드 알나세리 정보통신 장관이 이 채널의 방송 활동을 다시 승인했다.(5) 지국이 폐쇄된 이집트에서도 <알자지라>는 여지없이 혁명을 중계방송했다. 이집트 정부가 인터넷망을 차단했을 때, <알자지라>는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혼란에 빠뜨렸다.

독재자들 “없는 것보다 낫다”

<알자지라>가 현지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함으로써 <알자지라>가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생각을 아랍 지도자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아랍 당국들의 보이콧으로 <알자지라>의 방송 금지가 두 배로 증가했다. 이런 조처는 <알자지라>를 오로지 야당의 관점만 보도하는 방송사로 변질시켜, 이집트와 리비아에서처럼 미디어 권력의 역학관계에 불균형을 초래했다.

<알자지라>와 카타르의 외교정책 간 유대관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는 세 가지 주요 장애물이 있다. 첫 번째는 방법론적인 장애다. 막스 베버의 합리적이고 관료적인 국민국가를 모델로 카타르의 외교정책을 분석한다는 것은 카타르 지도자들이 끈기 있게 구축한 네트워크와 국민의 이데올로기적이고 후견주의적인 충성심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더욱이 <알자지라>를 일반적인 미디어 방송으로 간주하는 것은 이 채널을 마치 아랍 국가의 전반적인 국가 정치 현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초국가적인 정치적 현장의 대안으로 간주하며,(6) 이 채널 자체의 정치적 측면을 제거하는 처사다.

카타르 문제엔 국가주의적 태도

두 번째는 이데올로기적 장애다. 이는 카타르에 뿌리를 둔 <알자지라>가 정부의 논리를 넘어서지 못하면서도 아랍권의 여러 방송사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사람들이 종종 카타르 지도자들의 돌출 행동 앞에서 느끼는 당혹감, 즉 심리적 장애다. <알자지라> 기자들은 ‘과연 카타르 정권이 아랍 혁명을 지지하는 것이 무슨 이득이 있을까’,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독립운동 조직 파타를 옹호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표시하는데, 이는 자신을 고용한 카타르 지도자들의 탓으로 보인다. 카타르가 비행금지구역으로 선포된 리비아 상공에 군용기를 보내고, 도하에서 이스라엘 지도자를 영접하는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

거침없는 행동으로 정평이 난 세이크 하마드 빈 자셈 알타니는 이집트 당국자에게 “<알자지라>가 카타르 정부에 오히려 방해가 되고 ‘2년 전 50억 달러에 방송사를 인수하겠다는 사람도 있어’(7) 정부는 이 채널을 매각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우리가 그의 말을 믿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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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하메드 엘 오이피  Mohammed El Oifi  정치학자

번역 / 조은섭 chosub@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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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자지라>의 프로그램 <빌라 하우다우드>(Bila Hodouddml), ‘카타르의 외교정책’, 2009년 6월 24일, www.aljazeera.net.
(2) Robert F. Worth, ‘Al Jazeera No Longer Nips at Saudis’, <뉴욕타임스>, 2008년 1월 4일.
(3) 모하메드 엘 오이피, <알아라비아와 알자지라 간 대담: 미디어 외교 전쟁>, Moyen-Orient, 파리, 2010년 6월.
(4) ‘WikiLeaks cables claim al-Jazeera changed coverage to suit Qatari foreign policy’, <가디언>, 2010년 12월 2일.
(5) www.wabayn.com, 2010년 11월 23일 참조.
(6) ‘알자지라라는 민주주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5월호 참조.
(7) <빌라 하우다우드>(Bila Hodouddml) 방송 참조, op.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