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반동적 교육 개혁 '거국적 저항'

2008-12-30     세르주 카드루파니 | 교육학자

2008년 3월 15일 이탈리아의 12개 대학 총장들은 볼로냐에서 '가장 생산적인 대학연합회 구축'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순전히 회계와 생산 제일주의를 바탕으로 대학들을 경쟁시키면서 재정을 확충하는데 있었다.1) 그런 식으로 고등교육 과정에서 '아지엔달리자지오네(aziendalizzazione, 기업을 모델로 삼은 서비스 변화)'로의 이행은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얼마 후 '생산성'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총장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신들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를 만장일치로 반대한 점이 역설이라면 역설이었다.
 
 교육, '공금 낭비' 여론 희생양 삼아
 이미 허약한 이탈리아 경제를 재정 위기가 강타하던 순간에 권좌에 오른 베를루스코니는 예산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선언했다. 6월 25일 장관회의는 9분 만에 85개 조항의 '긴급조치'(후에 133조로 전환한 법령)를 채택했는데, 고등교육 분야의 지출을 상당히 삭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로마 대학 헌법학 교수 가에타노 아자리티가 '대학의 안락사'라고 명명한 이러한 조치는 순전히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고, 교육과 연구를 희생시키는 대신 일부 경제 분야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자리티 교수에 따르면 대학이 새 교수를 채용할 때마다 두 명의 교수가 활동을 그만 두어야 한다. 또 민간 금융 이용과 등록금 인상 내용도 담겨있는데, 빈민층 학생들은 대출을 신청할 수 밖에 없다. 8월 28일 마리아스텔라 젤미니 공교육·대학 및 연구부 장관은 또 다른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예산 삭감 말고도 '1명 담임교사제'(이탈리아에서는 초등학교에서 각 과목을 여러 교사들이 가르친다)의 부활을 담고 있었다. 그러한 조치는 아이들의 학업 시간 축소를 의미한다. 법안은 또 옛날 학교의 부활을 연상시키는, 중도 좌파였던 전임 정부가 이미 내용을 발전시킨 행동점수제의 부활도 명시했다.
 비슷한 성격의 '개혁'들이 학교의 낭비,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비싼 인건비'라는 주제를 놓고 여러 우파 지도자들이 벌이는 캠페인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정치인들은 공금 낭비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깊은 불신을 교육 쪽으로 돌리려 애쓰고 있다. 물론 국민의 불신은 대부분 근거가 있다. 우파와 좌파 정부가 십년 전부터 추구한 경향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개혁'에 반대하는 참여 작가이자 연극인인 한 인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명 담임교사제의 무미건조한 부활이 논의되는 3년 사이에 8만7천명의 교사 자리가 사라졌습니다. 10점 만점이라는 해묵은 점수와 행동점수제를 부활시키는 동안 사람들은 사립학교에 대한 지원액 증가 만큼 공립학교에 대해서도 지원이 풍부하게 이루어지길 기다리고 있지요. 사립학교 지원액은 국민들을 희생시키면서 2001년엔 무려 65% 증가했습니다."
 
 시위·파업, 학교·기업 휩쓸다
 2008년 가을, 각급 학교 개학 현장은 당연히 시끄러웠다. 9월 15일 로마의 이크발 마시흐 학교의 교사와 학부모들은 학교를 점거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탈리아 전역으로 재빨리 확산되었고, 'Non Rubateci il Futuro(우리의 미래를 훔치지 마세요)'란 구호가 내걸렸다. 학생, 학부모, 교사들은 학교에서 잠을 잤고, 현수막을 내걸었으며, 함께 시위를 벌였다. 마미아니 중학교 점거 이후 학교 건물을 점거하고, 회합을 가지며, 토론을 벌이는 열풍은 중등교육 현장에까지 번졌다.
 10월 5일 피사에서 대학이 개강하자 이번에는 고등교육 기관들이 시위에 동참했다. 10월 7일에는 로마 소재 사피엔사 대학의 총장실이 점거되고, 15일에는 1만 명의 학생들이 운집하며, 시위대가 테르미니 중앙역을 점거했다.
 10월 17일 주요 노조들이 총파업을 벌인 날 거대한 행렬이 로마 거리를 누볐고, 5만 명의 학생들이 시위에 합세했다. 볼로냐, 밀라노, 토리노, 나폴리, 파도바, 팔레르모에서도 대학들이 점거되었다. 이런 운동은 스스로 'Onda anomala(놀라운 파도)'라고 이름을 지었다. 30일이 되자 행렬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다음 날에는 학생 대표단이 이탈리아 노동총동맹(CGIL) 소속 금속 노조의 연례 총회장에서 총파업 구호를 외쳤고, 노조가 그것을 받아들여 12월 12일을 행동의 날로 정했다.
 '파도'를 일으킨 투사들은 다양한 형태의 투쟁을 전개했다. 회합, 블로그, 인터넷을 통해 수백 개의 성명서를 발표한 후 함께 내용을 수정하는가 하면, 교수들은 길거리에서 강의하면서 자신들의 분석 내용을 발표했다. 볼로냐의 작가 단체 우밍(Wu Ming)은 학생들이 차고 넘치는 계단식 강의실로 초대를 받았다. 사회 지성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대학 내에서 사회적 약자들과 대학생들의 자치 조직이 태동하고 있다"고 사피엔사대 문과대학생인 알리오차는 들려줬다. 은행원이기도 한 그는 "그중엔 임시직 노동자인 동시에 학생 신분인 사람도 있고, 임시직 연구원도 있다"면서 "우리는 취약한 신분으로 늘 소외받는 일터에서 주요 노조들과 협력하며 10월 17일 총파업을 벌였다."고 말했다.
 
 비폭력 시위로 사회적 호응 이끌어
 오늘날 이탈리아는 세대를 이으며 변화되기 어려울 만큼 출생률이 낮은데다, 이민자들만큼이나 청소년들로 인해 불안해하는 나라다. 전 정권에서 경제부 장관을 지낸 모 인사는 이탈리아 젊은이들을 'bamboccioni'로 묘사했다. 이는 가정을 떠나기엔 너무 어리면서 몸집이 큰 유아를 지칭하는 말이다. 피렌체에 거주하는 프란체스코 박사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이번 운동은 반항과 세대 단절의 담론이 다시 등장했음을 의미합니다. 사회의 취약성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투쟁이자, 젊은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조직 사회를 거부하는 움직임입니다.

경제위기 처방…'1인담임제·등록금 인상' 등 교육 예산 삭감
각급 학교·학부모,노조 연대시위·파업 '놀라운 파도' 전국 확산


 그는 또 이번 운동의 특징을 두고 "극좌가 의회에서 사라지고, 미국의 양극 모델을 답습한 정치의 역동적 재구성이 완료되는 순간에 일어났다"고 정의하며 "정치를 하는 새 방식이 태어난 것인 만큼, 모순, 양면성을 포용하며 새롭게 시작하자."고 말했다.
 '놀라운 파도'는 폭력의 세계에 노출됐을 때 놀랍도록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지난 10월 29일 신파시스트 그룹이 시위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 후 신파시스트 그룹이 쇠막대로 무장한 채 트럭을 타고 상원 가까이 위치한 보행자 지역으로 몰고 들어갔을 때 경찰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스킨헤드들이 채찍과 몽둥이를 휘둘러댈 때 13~14세의 어린 청소년들이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광경은 정권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점거당한 대학들을 소개시키기 위해 경찰을 보내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난 두렵지 않아요'라는 현수막이 맞섰다. 이 구호는 이탈리아 반도 전역에 울려 퍼졌다.
 '테러 격화시기(1970~80년대-역자 주)'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조작한 국가에서 시위대가 비폭력을 본능적으로 선택한 것은 준법 지상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 역을 봉쇄하고 길을 차단했지요. 그것은 진압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한 이탈리아 경찰과의 직접적 접촉을 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으로부터 빠져나와 우리를 눈에 띄게 만들며, 대학뿐만 아니라 세대 전체, 무수한 사회계층을 위해서 싸우려는 목적과, 위기와 관련된 담론으로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운동이 얼마만큼 호응을 얻을지 가늠해보았습니다."
 
 '놀라운 파도'시위 진정될 기미 없어
 11월 15일과 16일 로마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다음 날, 연구, 교육학, 사회보장 등 여러 분과에 걸친 전국의 대학 관계자들이 모여 '대학의 자체 개혁'을 위한 일련의 성명서를 작성했다. 그중 1천여 명의 사람들이 서명한 사회 보장 관련 분과는 보고서 앞쪽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빚을 지면서 고등교육 시스템으로 들어오고 있다. 반면 그들이 접하는 지식들은 점점 더 질이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투쟁은 지식 생산과 교육이 항상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노동시장과 사회보장의 토양 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
 12월 12일 총파업 전날 젤미니 수상은 입장을 후퇴했다. '1명 담임교사제'의 재도입이 자의적이고 학교들이 종일 문을 열 수 있는 대신, 고등교육 개혁은 2010년으로 연기되었다. 그러나 예산은 문제 삼지 않았다. 폭우와 홍수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노동총동맹 및 주요 노조들이 주도한 시위들과 '놀라운 파도'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탈리아 노동총동맹은 참석자 수를 150만 명으로 추산했다. 현재로선 연말 공백 기간이 지난 후 시위가 다른 양상을 띠게 될지언정, '파도'가 진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놀라운 파도'는 '당신들의 위기에 대한 대가를 우리가 치르지 않겠다'는 구호를 이탈리아 반도 전역에 퍼뜨렸다. 경제와 금융이 전 세계에 걸쳐 붕괴된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사회운동인 이 시위가 아마 마지막 사례는 결코 아닐 것이다. 파도를 즐기는 '서퍼'들은 이오니아 해 반대편인 그리스에서 유사한 움직임이 벌어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그곳에선 젊은이들의 봉기가 또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그리스 청소년들과의 연대 시위를 통해 총파업을 이끌어냈다. '파도'의 구호는 이웃 국가 아테네에서 경찰에 의해 숨진 젊은이 알렉시스 그리고로풀로스를 암시하며 "포착 불가능, 통제 불가능, 재현 불가능. 가슴에 알렉시스를 품고 그리스부터 이탈리아까지!"라고 외치고 있다. 도처에서 사람들은 '파도'를 희망하고 있는 중이다. 해일이 몰려올 수도 있지 않을까?

 


 

* 그르노블3(스탕달)대학 교수, 특히 <위가 없는 문학>의 저자로 유명하다.

1) '재정적 견고함'과, 상하이 대학의 분류기준에 따른 순위에 따라. 크리스토프 샤를이 쓴 '유럽 대학의 순위를 매겨야 하는가?'를 읽어볼 것.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7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