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로 가는 길

2021-08-31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군 및 연합군은 이길 수 없다. 이들의 패배는 기개 없는 ‘정치가들’과 싸우지 않고 도망친 현지 조력자들 때문이다.(1) 한 세기도 더 전부터 ‘등을 찌르는 비겁한 공격’에 대한 피해의식은 전쟁광들의 되새김과 복수에 대한 열망을 부채질했다. 불명예를 씻겠다는 것은, 이후에 대결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베트남 신드롬’(2)과 1979년 이란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태로 인한 ‘굴욕’을 지우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 그레나다를 침공했다. 7년 뒤 레이건 대통령의 후임인 부시 대통령은 동맹인 쿠웨이트가 침공당하자 걸프전을 시작했다. 미국에는 굴욕의 대상이고, 미국에 협력했던 이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인 카불 공항 영상들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자신의 후임으로 꼽는 아르민 라셰트는 “나토 출범 이후 가장 큰 패주(敗走)”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나토 역사상 처음으로 나토 헌장 제5조를 발동해 개입한 전쟁이다. 2001년 9월 11일 한 회원국이 공격 받았고(아프간에 의한 공격은 아니었다), 다른 회원국들은 서둘러 도움을 줬다(마르틴 뷜라르 기사 참조).

경험에 비춰볼 때, 미 행정부와 국방부가 군사작전을 수행하면 미국의 동맹국은 가신(家臣) 취급을 받았다. 그들의 군주에게 전쟁을 그만두라는 자문을 받을 권리가 아니라, 싸우다가 죽을 권리를 부여받은 가신 말이다. 이런 종류의 모욕에 익숙한 영국조차도 가신 취급에는 반발했다. 이제 우리는 희망해야 한다. 나토동맹이 아프가니스탄의 실패 때문에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 미국처럼 휘청대지 않기를 말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맞서는 대만이나 크림반도처럼.

이라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에서 신보수주의자들이 초래한 재난은 그들의 유해성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위험이 더욱 클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인명피해는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생겼다. 서구에서는 점점 더 프롤레타리아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호전적 논쟁이 오가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의 시골 출신이었다. 오늘날 어떤 학생이, 어떤 언론인이, 어떤 정치 지도자가 전사한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알겠는가? 대표자들이 시작한 분쟁에, 전 국민이 연루되고 마는 것이 징병의 비극이다.

2001년 9월부터 미 대통령은 의회의 사전승인 없이 ‘테러와의 전쟁’을 구실로 원하는 군사작전을 시작할 수 있다. 적이 지정되지 않아도, 지리적 공간과 임무기간이 지정되지 않아도 가능하다. 4년 전, 미국 상원의원들은 니제르에서 미군 4명이 사망한 후에야 그곳에 미군 800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양당 의원으로 구성된 한 단체에서 당시 조 바이든 부통령의 동의를 얻어 행정부에 제공된 백지 수표를 철회하기로 했다. 전쟁에 대한 결정은, 권력의 자의적 결정이어선 안 된다. 민주적 가치의 이름으로 수행됐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는 프랑스를 비롯해, 아프리카에 군대를 파견한 국가들에도 적용된다. 아프가니스탄과 관련해 지정학, 동맹 및 미래 전략에 대한 논의가 지혜롭게 이뤄졌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러 차기 대선 후보들의 최근 발언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탈레반 전체주의 정권을 피해 탈출하는 아프간인들을 ‘상당히 불규칙한 이주 흐름’이라고 칭하면서 안보를 앞세운 선동을 재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독재정권의 난민을 테러리스트 추정자로 탈바꿈시켜, 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을 구하고 있다.

우파 후보에는 그자비에 베르트랑과 발레리 페크레스가 있는데, 페크레스는 더 나아가 ‘세계 자유의 일부’가 카불에서 펼쳐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회당 소속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서구의 패배를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강력한 문장으로 서두를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과 관련해 종종 그랬듯, 내게 경고한 사람은 베르나르 앙리 레비(3)였다.” 결론은 “우리는 어떻게든 카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4)

이달고 시장과 페크레스에게 남은 것은 아프가니스탄 수도에서 그들이 마지막으로 승리를 거둔 군사지역에 대한 비용을 러시아와 나토 동맹에게 청구하는 것뿐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파리 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합류한 뒤 2008년 이그나시오 라모네의 뒤를 이어 발행인 겸 편집인 자리에 올랐다. 신자유주의 문제, 특히 경제와 사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신자유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그 폐해를 집중 조명해 왔다.

번역·이연주
번역위원


(1) 실제로 아프간군 사망자는 미군(2,443명 사망)보다 27배 많았지만(6만 6,000명 사망), 미국은 지난 해 아프간 정부에 상관없이 탈레반과 직접 협상했다.
(2) Vietnam Syndrome, 베트남전이 미국 사회에 초래한 엄청난 혼란에 따라, 1975년 종전 이후 미국 정치에서 미군의 해외군사 개입을 기피하는 경향(-역주)
(3) Bernard Henri Levy, 프랑스의 작가, 철학가. 1977년 첫 수필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성 La Barbarie à visage humain』의 출간과 함께 여러 정치적, 외교적, 사회적 문제에 참여하며 프랑스 정치계, 철학계, 언론계, 문학계에 있어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 신(新)철학 운동의 주창자이자 이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많은 분쟁 지역에 직접 가서 현장을 목격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 세계에 알리는 참여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역주)
(4) Anne Hidalgo, ‘L’esprit de Massoud ne doit pas disparaître 마수드의 정신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르몽드>, 2021년 8월 16일. 아흐마드 샤 마수드(Ahmad Shah Massoud)는 소련에 대한 저항을 주도한 강력한 게릴라 사령관이었고, 이후 1990년대에 라이벌 민병대에 대항하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군대를 이끌었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후 그는 2001년 암살될 때까지 탈레반의 통치에 반대하는 주요 야당 사령관이었다. 현재 그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Ahmad Massoud)가 자신을 지지하는 과거 무자헤딘 세력과 이번에 축출된 아스라프 가니 정권의 특수전 부대원들을 규합하여 탈레반에 대한 무장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