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먹고사는 러시아의 방위산업
군이 산업의 중심을 이루던 시대는 지났다. 수많은 신생 군수업체가 러시아와 수출 시장을 놓고 경쟁하고 있지만, 정부의 오랜 홀대 속에 러시아군은 낙후된 무기에 만족하는 처지다. 이런 상황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대대적인 군 현대화 투자에 나섰다.
러시아는 2008년 8월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와 벌인 전격전에서 승리하고도 10월 이후 전면적 군개혁에 돌입했다. 군사전문가 알렉산더 골츠는 “러시아 지도층은 지혜로운 면을 보여줬다. 정부가 전쟁에 승리하고도 개혁에 나서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10년간 역대 군사령부들은 저마다 막대한 국방예산을 지원받으며 호시절을 누렸지만, 2008년 위기를 계기로 러시아군이 얼마나 노후화했고, 현대전을 치를 능력이 안 되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국방장관은 크림전쟁 이후 150여 년 만에 대대적 국방개혁을 해야 했다”고 풀이했다. <<원문 보기>>
조지아 전쟁에서 뻗친 망신살
러시아군의 약점은 1990년대 체첸과 벌인 두 차례 전쟁에서 이미 노출됐다. 하지만 조지아 전쟁은 군 수뇌부는 물론 정치 지도층까지 사안의 심각성을 깊이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조지아 전쟁에서 러시아는 교전을 시작한 지 48시간 만에 승기를 잡고, 전투를 벌인 지 5일 만에 자국 요구가 담긴 휴전협정을 체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군의 지휘·통제 체제는 물론, 정찰·통신 시스템이 얼마나 낙후됐는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투기 없이 교전에 나선 조지아의 지대공 공격에 러시아는 전투기 4대(수호이-25 전투기 3대와 정찰임무를 띤 트폴레프-22 장거리 폭격기 1대)를 잃었다고 했다.(1) 이에 대해 조지아는 격추한 전투기 수가 21대에 달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분명 러시아는 조지아에 견줘 훨씬 뛰어난 디지털 장비와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체코산 T-72 개량 전차와 현대식 통신 설비가 탑재된 이스라엘제 무인정찰기로 무장한 조지아군은 기술적 측면에서 더 우세했다.
러시아가 무기 현대화에 많은 예산을 투입해 새롭게 군개혁에 나서는 모습을 지켜보면, 조지아 사태에서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가늠할 수 있다.(2) 2010년 12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2010년 수립된 군 현대화 계획에 따라, 2020년까지 매해 국내총생산(GDP)의 2.8%에 해당하는 22조 루블(약 5500억 유로)을 군 현대화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1990년대 이후 수출에만 의존해오던 분야에 막대한 규모의 공공투자를 하기는 냉전 종식 이후 처음이다. 무기 수출입에다 잇단 군 현대화 계획에 따라 투입될 국방예산까지 합산하면, 향후 러시아 군산복합체에 투자될 금액은 어림잡아 5570억 유로(약 8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3)
러시아군은 15년째 새 무기를 구매한 적 없다. 한 예로 러시아 공군은 2003년까지 단 한 대의 전투기도 구매하지 않았고, 2003년이 돼서야 불과 몇 대를 도입했을 뿐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현재 러시아군이 운용 중인 무기 가운데 ‘최첨단 명품 무기’(4)라고 불릴 만한 것은 단 15%에 불과하다고 했다. 최근 발표된 개혁안은 낙후된 군을 현대화하기 위해, 2015년까지 전체 무기의 30%를 현대 기준에 상응하는 신식 무기로 교체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대대적인 무기 현대화 계획 발표
현재 러시아가 보유한 무기는 전부 공산주의 시절에 개발하거나 제조한 것들이다. 두 가지 예외는 있다. 먼저, 수호이 T-50 5세대 전투기다. 수호이 T-50은 현재 미군이 운용 중인 록히드마틴 F-22 랩터의 경쟁 기종으로, 오늘날 대적할 상대가 없는 가히 하늘의 최강자로 통한다. 2010년 초 T-50 시제품의 성능을 테스트한 뒤 러시아는 물론 인도와 베트남 군까지 T-50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해당 전문가들은 비행이나 엔진 성능 등에서 수호이 T-50은 5세대 전투기라기보다는, 좀더 발전된 4세대 전투기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두 번째 예외는 러시아 첨단기술의 결정체인 대륙 간 탄도미사일 ‘불라바’다. 불라바는 그동안 수많은 기술적 난관에 직면해왔다. 군사전문가 골츠에 따르면 “불라바는 각종 부품 결함으로 인해 시험발사에 실패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그는 “러시아 방산 분야의 생산 사슬이 끊기면서 대량 무기 생산이 힘들어진 것이 반복된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소련이 해체된 뒤 수천 명의 과학자가 조국 러시아를 떠났다. 반면 신규 채용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 러시아 군산복합체는 모든 현대화 계획에서 배제되면서 차츰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는 방위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사이에 세대 교체 문제로 나타났다. 현재 방산 종사 기술자의 평균연령은 무려 58살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러시아가 앞으로 소비에트 시절에 준하는 무기 제조 수준을 회복하기는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2006년 3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알제리를 방문한 뒤, 러시아는 알제리와 미그-20 전투기를 포함한 80억 달러어치의 다양한 무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2008년 알제리는 ‘품질 불량’을 이유로, 지난 2년간 공급받은 무기 15기를 전부 러시아로 되돌려 보냈다. ‘미그’ 전투기의 문제점은 두 가지였다. 먼저 전자 시스템이 계약 당시 사양과 일치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부품은 옛 소련 시대에 제조하고 남은 낡은 재고품을 사용했다. 러시아는 알제리가 전투기를 반품 처리하는 것을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반송된 전투기는 곧바로 자국 군대에 배치됐다.
고르시코프 항공모함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역시 러시아 방위산업의 굴욕을 보여주는 예이다. 본래 이 항모는 소련 시절 ‘바쿠’라는 이름으로 운용되다가, 훗날 러시아로 넘어가면서 소련의 영웅 세르게이 고르시코프(1910~88) 제독의 이름을 붙여 ‘고르시코프’라했다. 그 뒤 경제난으로 인해 고르시코프는 퇴역하고, 1996년 매각 방안이 결정된다. 2004년 인도가 9억5천만 달러(약 6억6천만 유로)에 매입하겠다고 나섰다. 인도는 이 항모의 이름을 전설적 왕의 이름을 붙여 ‘비크라마디티야’로 바꿨다. 계약 내용이 몇 차례 변경됐다. 항모 크기를 키우기 위해 순항미사일 발사대가 철거됐다. 갖은 우여곡절과 계약 수정 끝에 매입액이 당초 금액의 3배로 훌쩍 뛰어올랐다. 2008년 예정된 항모 인도 시기가 2012년으로 지연됐다. 러시아의 최대 무기수입국 인도에서 고르시코프를 둘러싼 논란이 고조됐다. 결국 격렬한 반발에 직면한 인도 정부가 신무기 공급처를 새로 물색하기에 이른다.(6)
그러나 산업과 기술 이미 퇴락
지난 1월 러시아 해군이 프랑스에서 미스트랄 전함 2척을 공급받기로 계약한 사건은 러시아 방위산업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경향을 잘 보여준다. 미스트랄함 구매 소식에 러시아는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자국 조선업체의 폐업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19억 달러(약 13억 유로)에 달하는 이 무기 공급 계약은 응당 국내 업체와 맺어야 한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미스트랄함은 군인 700명과 군 수송 차량 60여 대, 헬리콥터 16기를 실을 수 있는 거대 함선이다. 조지아전과 비슷한 전쟁 상황에서는 잠재적 대지 공격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러시아가 외국 무기를 수입한 것은 미스트랄함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러시아군은 이미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과 무인정찰기 12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 2010년에는 러시아 땅에서 이스라엘 기술의 무인정찰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새 계약을 맺기도 했다.(8)
루슬란 푸코프 러시아전략·기술센터 소장은 러시아가 무기를 수입하는 것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붉은 군대’ 수요 전량을 충족할 정도로 자급자족 능력이 뛰어나던 옛 소련의 군산복합체를 환기하며, “그때가 오히려 특이한 경우였다”고 말했다. “전세계 국방 지출의 절반에 달하는 막대한 국방 예산을 누리는 미국도 외국에서 무기를 수입한다. 무기 수입은 러시아 정부가 국내 방위산업이 좀더 높은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이다. 품질 및 가격 경쟁력 제고는 물론, 납기일도 더 잘 준수하도록 만들 수 있다.”
수출 무기, 품질 불량으로 반송
향후, 특히 현재 진행 중인 대규모 군비 증강을 위한 협상들이 타결되고 나면, 러시아 국방부가 해외 군수업체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사례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세르듀코프 국방장관이 국내 무기 구매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것은 아니다. 한편 조금 다른 맥락의 이야기이지만, 미군도 칼라슈니코프에서 수송헬기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산 무기 수입을 늘리는 추세다. 미 국방부가 과거 소련 무기를 운용하던 새 동맹국들에 값싸고 관리가 수월한 기초 기술 무기를 제공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 등에 공급하기 위해 총 8억 달러어치의 러시아 수송헬기 Mi-17 59기를 구매했다.(9)
오늘날 고전을 면치 못하기는 러시아 민간 방위산업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부터 러시아 정부는 옛 소련 시절 추진하다 중단된 글로나스 ‘위성항법 시스템’(GPS) 사업 재개에 나섰다. 미국의 GPS, 유럽의 ‘갈릴레오’의 경쟁 시스템인 글로나스 구축 사업은 1990년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재임 시절 중단됐다. 그 후 2002년 러시아 정부가 이 사업을 다시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 2011년까지 글로나스 시스템을 완전히 구축하기 위해 신규 위성 24기를 발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0년 위성 발사 실패로 위성 3기가 파괴되면서 약 3억4800만 유로의 손실이 발생했다. 오늘날 글로나스 시스템은 여전히 다른 경쟁 시스템에 비해 정확도나 커버리지 면에서 성능이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전체 시스템이 흔들리는 실정이다.(10) 한편 민간항공 분야에서 러시아는 국내 제품보다 에어버스나 보잉사가 만든 화물수송기를 더 선호한다. 반면 러시아 수호이가 개발한 여객기 ‘슈퍼제트 100’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민간 방위산업도 고전
2008년부터 추진한 군개혁과 최첨단 군사기술을 둘러싼 막대한 투자는 2020년 이후에야 결실을 맺을 것이다. 그때 러시아 국방 분야는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 있을까? 저널리스트 안드레이 솔다토프는 “조지아 전쟁 때문에 군 현대화 정책이 시행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정책이 구상됐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이번 군개혁을 조지아전에 대한 징벌로 인식한다. 그 결과, 군부 내에서는 불만이 팽배하다. 지난 2년 동안, 조지아전에 참전해 러시아 승리에 공헌한 여러 특수부대(일명 ‘스페츠나즈’)가 해체됐다. 의무병역제도가 철폐되고, 10만 명의 장교가 군복을 벗었다. 그렇다 보니 평소 수동적이고 정치에 무관심하던 군대 내부에서 슬슬 저항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정부의 애초 목표는 병력을 120만 명에서 100만 명으로 감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러시아 병력은 그보다 훨씬 적은 75만 명까지 줄었다.
러시아가 프랑스와 미스트랄함 공급 계약을 맺을 당시, 이 문제를 놓고 강하게 반발한 나라는 조지아와 발트 3국(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뿐이었다. 미스트랄함이 발트해와 흑해에 배치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폴란드나 터키는 전혀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상황에 비추어볼 때, 러시아는 두 중소강국에는 군사적으로 그다지 위협적 존재가 되지 못한다. 러시아가 그나마 강대국 사이에서 현 위상을 유지하는 것은 그저 낡은 핵무기를 보유한 덕분일 뿐이다. 겉으로는 강경한 발언과 수사학을 일삼지만, 실제 러시아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일이 점차 잦아지고 있다. 이를테면 러시아는 미국이 중앙아시아에 미군 기지를 설치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했지만, 정작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미군의 군수품 보급은 러시아 철도를 통해 이뤄졌다. 2010년 9월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성화에 못 이겨 이란에 대한 S-300 대공 미사일 공급 계약을 전격 취소했다.
러시아군의 위상이 이토록 약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붉은 군대에 이어 러시아 군대에서 장교를 지낸 알렉산드르 페렌디지에프 교수는 고질적 부정부패가 원인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러시아의 정치 지도자들은 돈이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인식한다. 이런 뿌리 깊은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군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금융전문가 출신 세르듀코프가 국방장관에 내정됐다. 하지만 국방 시스템이 진정 환골탈태하려면 정부의 실질적 통제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과연 전면적 군개혁이 실현될지 미지수다. 페레스트로이카(12)와 그외 다양한 후속 조처가 실행되는 과정에서, 러시아 군산복합체는 신(新)경제에서의 역할에 대한 정치적 비전과 계획이 미비해 많은 문제를 겪었다.
고질적 부패로 군 위상 악화
오늘날 핵심 권력층은 또다시 러시아 ‘현대화’ 논의에 나섰다. 하지만 모두 ‘개혁’이란 단어만은 교묘히 피하려고 한다. ‘개혁’이란 단어는 동구권 붕괴로 인한 과거의 트라우마, 혹은 그 이전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비에트 시스템을 변화시키려 한 여러 정책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결국 개혁은 더 이상 오늘의 의제는 아닌 셈이다. 그렇다고 메드베데프 대통령이나 그 참모들이 러시아가 석유 및 가스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낙후된 경제구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러시아는 광물자원이 전체 수출의 70%를 차지하는 반면, 공산품 수출은 단 5%에 불과하다.(13) 만일 메드베데프의 현대화 정책이 관료 차원의 부정부패 척결이나 경제 분야에 발전된 과학 기술을 도입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그 정책은 금세 불완전하거나 더 나아가 피상적 계획으로 인식될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국방 분야에 대한 천문학적 예산 투입과 현재 진행 중인 현대화 논의를 서로 연계해 생각할 수 없을까? 그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모스크바 스콜코보를 러시아판 실리콘밸리로 만들기 위해 2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14) 하지만 옥사나 가만 골루츠비나 모스크바대학 정치학 교수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 내 32개 과학 거점 도시는 재정 지원 부족으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모두 러시아가 소비에트에서 물려받은 과학 기반 시설의 실상이나 방위산업이 지닌 잠재력을 간과하고 있다. 새로 발표된 정책이 러시아 방위산업을 첨단화하는 데 관심 없다는 점은 매우 놀랍다. 고르바초프에서 옐친, 푸틴에서 메드베데프에 이르기까지 결코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흐름은, 모두 저마다 러시아 방위산업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해왔다는 점이다. 루카노프 편집장은 현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은 초음속 항공기를 제조해야 할 공장에서 냄비를 생산하게 하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1990년대 ‘가이다르 개혁’(1992년 6~12월 러시아 총리직을 수행한 예고르 가이다르의 이름을 붙인 개혁)에 나서면서, 군산복합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이를 다른 경제와 분리해 수출에만 의존하도록 방치했다. 그 결과, 이제 러시아 군산복합체는 자국 경제 시스템에 속하지 못하게 됐다.”
러시아 군산복합체의 실상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오늘날 러시아에서 통용되는 몇 가지 신화가 전부 거짓임이 드러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2008년 조지아 전쟁 이후 널리 확산된 냉전 체제 부활이라는 신화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사실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령부를 위협해 러시아에 이득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물며 NATO 자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편 러시아에 팽배한 또 다른 고정관념은 푸틴이 옐친 대통령 시절의 과두지배 세력과 대립하며 옛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 (KGB) 출신이나 군부 중심의 정권을 구축하는 것이다. 러시아 신흥재벌(올리가르히)인 유코스 석유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회장이 2004년부터 줄곧 감옥 신세를 지고 있어 이런 인식에 더욱 무게를 실어준다. 하지만 옥사나 가만 골루츠비나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푸틴 측근이 KGB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나 군부 출신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야는 주로 에너지 수출 분야”라고 지적한다.
집권층은 에너지 분야에만 눈독
옛 소련은 물론 현 러시아 지도층이 국내 방위산업을 첨단화하는 문제를 군개혁이나 현대화 계획의 핵심 과제로 삼으려 한 적은 없었다. 소비에트 시절 방위산업은 불투명한 경영을 일삼으며 변화를 거부한 채 막대한 예산을 잡아먹는 분야로 여겼다.(15) 고르바초프 시절 개혁가들은 군산복합체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리라는 상상은 결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군산복합체와 함께하기보다는 배제하는 쪽을 택했다. 몇 차례 개혁 과정에서 국내 최첨단 방위산업을 활용하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개혁가들은 첨단 방위산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채 자국 방위산업체를 사양길로 내몰았다. 메드베데프 대통령 역시 오늘날 현대화 계획을 내놓았지만, 이 개혁이 가져올 정치·사회적 파장을 우려한 나머지 현재로서는 러시아판 실리콘밸리라는 모델을 선전하는 데 만족하는 실정이다. 러시아는 가스, 석유 및 기타 광물 자원이 풍부해서, 이 자원들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지도층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런 나라라 해도 과연 첨단기술 개발을 소홀히 해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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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비켄 슈테리앙 Vicken Cheterian
언론인이며, <페레스트로이카에서 무지개 혁명으로, 사회주의 이후 개혁과 혁명>(From Perestroika to Rainbow Revolutions, Reform and Revolution after Socialism·허스트 출판사·런던·2011년 출간 예정)을 썼다.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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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 러시아 전문가들이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격추된 전투기는 모두 6기에 이르며, 그 가운데 최소 절반이 지상에 있던 러시아군에 의해 격추된 것으로 나타났다. 루슬란 푸코프, ‘8월의 전차’, <CAST>, 모스크바, 100~108쪽, 2010, www.cast.ru.
(2) <네자비시마야 가제타>, 모스크바, 2010년 8월 9일.
(3) <리아 노보스티>, 2010년 11월 25일, http://en.rian.ru/military_news/20101125/161496063.html.
(4) <블룸버그>, 2011년 3월 18일, http://www.bloomberg.com/news/2011-03-18/medvedev-says-russia-to-triple-military-salaries-next-year-1-.html.
(5) 윌리엄 오덤, <The Collapse of the Soviet Military>, 예일대 출판부, 104쪽, 1998.
(6) ‘“Second-hand” Gorshkov costlier than new warship’,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 2009년 7월 24일.
(7) ‘Russia arms exports to reach records 10 trillions dollars in 2010’, <노보스티>, 2010년 10월 28일, http://en.rian.ru/military_news/20101028/161115404.html.
(8) ‘Israel signs $400 million deal with Russia’, <UPI>, 2010년 10월 15일, www.upi.com.
(9) ‘On Pentagon Wish List : Russian Copters’, <월스트리트 저널>, 뉴욕, 2010년 7월 8일.
(10) ‘Russia to launch new batch of Glonass satellites by June’, <리아 노보스티>, 모스크바, 2011년 7월 8일.
(11) 비켄 슈테리앙, ‘개혁에 나선 러시아 군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0년 9월.
(12)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개혁 프로그램 명칭.
(13) ‘Medvedev calls for economy reform‘, <BBC 뉴스>, 런던, 2009년 11월 12일.
(14) ‘Russia’s Skolkovo may cost $2 billion in next 3 years‘, <리아 노보스티>, 2010년 6월 1일.
(15) 아치 브라운, <The Gorbachev Factor>, 옥스퍼드대학출판부, 159쪽,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