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미국의 실패와 혼돈

2021-08-31     마르틴 뷜라르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부편집장

‘제국의 무덤’. 이 말이 아프가니스탄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과거 무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도 정복하지 못했던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대영제국, 20세기 소련에 이어 21세기에는 미국을 영토 밖으로 몰아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20년에 걸친, 자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을 펼쳐왔다. 미군은 38개국에서 파견된 병력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지휘 하에 전투를 지속해왔으나 결국 완전한 패배를 기록하며 철군을 시작했다. 아직 현지에 남아 있는 미군 병력도 “2021년 9월 11일까지” 완전히 철수할 예정이다. 이 날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게 된 9·11테러가 일어난 지 꼭 20년이 되는 날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5월 1일까지로 예정했던 철군 결정이, 약 4개월 연기됐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의해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증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 작전’을 시작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2001년 말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며 승리를 선언했다. 미국의 보복은 성공적이었다. 남은 과제는 미국의 계획에 부합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세계 최강국인 데다가, 이미 사회주의 적국을 패배시킨 미국으로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민주주의’라는 명분 덕택에 ‘세계 자유의 수호자’ 타이틀을 선점할 수 있었다. 서구의 국가 지도자들도 미국 편에 섰다.

그 후 약 10년, 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마지막이 돼야 할 또 한 번의 공격을 위해 병력 증파를 결정했다. 그리고 뒤이어 파키스탄의 은신처에 도피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1년 5월 1일 공식 발표를 통해 “알카에다와 벌여온 전쟁 중 최대 승리”라며, “미국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자화자찬했다.

또 다시 약 9년이 흐른 2020년 2월, 트럼프 정부는 탈레반 조직과 카타르 도하에서 만나 평화협정을 맺는 데 합의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철수에 합의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의 재정적·정치적 지원을 받던 아프가니스탄 정부와는 아무런 협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뜻은 물론, 나토 회원국들과의 조율조차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미군 병력이 2,500명, 나토 차원에서 파견된 병력은 7,100명(독일 1,300명, 영국 1,100명, 이탈리아 900명, 조지아 수백 명, 폴란드 수백 명. 프랑스는 2014년 전원 철수)에 달한다. 군 관련 종사자로 미국, 아프가니스탄, 그 외 국가에서 투입된 민간인 1만 7,000명으로서는 갑자기 철수를 통보받은 셈이었다. 제국이 결정을 내리면, 속국은 그저 따라야 했다. ‘아시아판 나토’를 내세워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새로운 적, 중국을 견제하려는 이들에게는 숙고해봐야 할 부분이다.

 

전례 없는 폐허, 여성에 대한 탄압

미국의 경우 사실 전략에만 참여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이 전쟁에 무려 1조 달러를 쏟아부으며 엄청난 전쟁비용 대부분을 책임졌다. 또한 전장에 파견된 병력은 총 77만 5,000명으로, 오바마 전 대통령(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의 증파 직후에는 주둔 병사의 수가 10만 명에 달하기도 했다. 그 밖에 첨단 군장비나 드론 병기들이 도입됐고,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비정부기구(NGO) 수십 개도 현지에 파견됐다. 

한편 중간집계된 피해 규모도 엄청나다. 국제연합에 따르면 전쟁으로 인한 아프가니스탄인 사망자는 최소 16만 명으로 추정되고, 그 중 민간인 사망자는 4~6만 명에 달한다. 미군 사망자는 2,400명, 연합군 사망자는 1,500명(그 중 프랑스 군은 약 90명), 군 관련 민간인 사망자는 1,800명을 기록했다. 재난 수준에 가까운 이런 인적·물적 피해는 아프가니스탄을 전례 없는 폐허로 만들었다. 그나마 나아진 것은 여성인권이다. 적어도 도시 지역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는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탈레반 세력은 여성들을 가정에 묶어두고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작가, 언론인, 의사, 교사 등으로 일하는 여성들은 목숨을 건지려면 해외로 도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여학교를 겨냥한 테러가 최근 몇 달 동안 급증했다. 서구의 ‘문명화’가 낳은 쾌거가 있다면, 아프가니스탄을 세계 최대의 아편 생산국으로 만든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아편 공급량의 90%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된 것이고, 아프가니스탄 국내총생산(GDP) 중 아편수출액은 15%에 달한다.

한편 아프가니스탄 정치 체제는 ‘도둑 정치(Kleptocracy)’로 변질됐다. 미국의 군사고문인 크리스토퍼 콜렌다 대령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완고한 입장을 표명했다. “부패는 암과 비슷하다. 피부암 같은 작은 부패는 대처가 가능하다. 그리고 정부 차원의 부패는 대장암과 같다. 피부암보다는 심각하지만 종양을 제때 제거한다면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도둑정치는 뇌종양처럼 치명적이다.” 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둑정치가 나타나고 있다고 본 것이 2006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탈레반이 파고들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 있었다. 

특히 서부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는 탈레반을 다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사실 탈레반은 5년에 걸친 집권 이후, 즉 미국의 공습 직전까지만 해도 파키스탄의 언론에서는 그들이 “더 이상 국민들의 지지를 기대할 수 없다”고 봤을 정도다. 그러나 이제 ‘탈레반이 과연 정권을 탈환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다.

 

방탄조끼를 입고 민심에 호소하다

부시 전 대통령이 “선의의 전쟁”(2001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정당한 전쟁”(2001년),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반계몽주의와 테러리즘에 맞서는 전쟁”(2008년), 그리고 베르나르 앙리 레비, 파스칼 페리노, 스테판 쿠르투아 등 정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프랑스 지식인들이 “우리의 전쟁”이라고 일컬었던 이 전쟁은 전 세계를 테러로부터 보호하고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을 야만적 상황에서 구출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전 프랑스 외무부장관의 말처럼 ‘방탄조끼를 입고 마음을 얻어내는’ 꼴이었다. 이들은 총칼과 거액을 쏟아부으면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패배가 명백할 때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곳에서 내정간섭을 요구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이제 리비아, 시리아, 사헬 지역에서도 탄띠를 두른 채 인권을 수호하는 형태가 반복되고 있다(‘우호국’인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제외). 물론 선의 편을 선택한 셈이므로 양심에 거리낄 것도 없다.

하지만 ‘선’은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침공 이후 혼란만 가중됐다. 이슬람국가(ISIS)와 같은 단체들이 뿌리를 내렸고, 사회와 국가기관들은 붕괴됐다. 국민들의 갈등과 분열은 내전으로 치달았다. 이런 모든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 원칙들은 무너져 내렸다. 이길 수 없는 이 전쟁과 관련해, 서구 국가에서는 기만, 부패, 고문, 공작, 자유의 박탈 등이 일어났다.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여전히 수감자 40여 명이 적법한 절차 없이 구금돼있으며, 해외 곳곳에 미국의 심문 시설이 운영 중이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가 이런 내용을 폭로해,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으며 수감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또한 2019년 12월 9일에는 <워싱턴포스트>가 ‘아프가니스탄 문서’를 입수 및 공개하며 미 당국자들의 소행을 폭로했다. 약 2,000쪽의 이 자료에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재건 특별감사관실’(SIGAR)이 전쟁에 직접 관여한 인물들과 인터뷰한 내용이 포함됐다. 이로써 고위 당국자들과 군 장교들이 자국은 물론 전 세계 국민들에게 거짓 정보를 발표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지난 6월 사망)이 ‘눈송이’라는 시적인 이름을 붙였던 기밀 메모가 공개됐다. 그 중 전쟁이 시작된 후 약 6개월이 지난 2002년 4월 17일자 메모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우리에게 안정성을 보장할 그 무엇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중략)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는 불가능할 것이다. 살려달라!” 

 

“누가 악인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2003년 9월 8일자 메모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누가 악인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미 국방부 사이트에 “수많은 성과가 있었다”라고 적은 전쟁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보고서에서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잊힌 전쟁’이라 부르고, 미국이 초점을 잃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와 신화는 다른 법이다.”

군인, NGO 요원 등 아프가니스탄 현지의 ‘정보원’들에게는 ‘긍정적 지표’만 전달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졌다. 마이클 플린 장군은 이것이 성가실 정도였다고 말했다. “대사들부터 하위 직급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가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일까? 그렇다면, 왜 이토록 패배감이 드는가?” 이것이 2015년의 일이다. 모두들 상습적인 도박꾼들처럼 다음에는 잘 될 거라고, 다음 전투가 마지막일 거라고 단언할 뿐이었다.

국제법도 박살났다. 미국은 아무런 승인도 없이 아프가니스탄에 먼저 폭격을 쏟아부었다. 국제연합에 지원을 요청한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국제연합은 2001년 9월 12일부터 12월 20일까지 만장일치(러시아와 중국 포함)로 관련 결의안들을 가결시켰다. 이제 이 전쟁은 정당방위나 침략국에 대한 무력사용(국제관계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원칙)의 범주를 벗어났다. 이것이야말로 ‘테러와의 전쟁’이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보호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국가에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처럼 ‘예방적 전쟁’이 공식화된 덕분에 미국은 이라크와 리비아에도 개입할 수 있었고, 프랑스 역시 말리 내전에 개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테러들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민주주의 파탄의 또 다른 결과로, 자유를 말살하는 법이 생겨났다. 미국의 ‘애국자법’, 프랑스의 ‘긴급사태법’이 그것이다. 특히 긴급사태의 경우 지방 또는 중앙행정당국의 결정에 따라 집회금지, 임의체포가 허용된다. 아시아의 ‘그레이트 게임’ 속에 빠진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이 패권 다툼에는 미국의 동맹국이면서도 탈레반 세력 일부를 보호하고 있는 파키스탄, 발루치스탄 지역의 반파키스탄 무자히드(종교적 사명 아래 전쟁하는 전사를 의미-역주) 단체들을 지원 중인 인도,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이 신장 지역의 안정성을 파괴할까 우려하는 한편, 인도와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의 풍부한 광물자원을 곁눈질하고 있는 중국 등이 얽혀 있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러시아의 개입, 박해받은 하자르족 난민들을 수용한 이란 등도 제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패배에는, 서구권의 각종 실패가 집약돼 있다. 우선, 미국이 베트남전 이후 그 어떤 무력 충돌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군사적 실패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이 더 해롭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실패했다. 새로운 정권들(아프가니스탄부터 이라크에 이르기까지)의 심각한 부패, 참정권에 대한 불신 확산 측면에서 도덕적 실패이며, 침공을 한 사람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실패다. 현지 정부들이 무너지고 축출해야 했던 세력들이 단기간에 최고 권력을 차지할 상황이므로 정치적으로도 실패한 것이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미국 내에서 합의를 얻으면서, 마침내 직접적 군사개입과 ‘장기전’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이제 새로운 시대의 시작과 함께, 미국의 선민의식은 사라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이든 대통령이 내놓은 ‘민주주의 세계를 이끌어가기’라는 정책명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패권주의적 의지는 베트남전 패배 이후에도 꺾이지 않았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에서 얻은 쓰라린 경험도, 미국에는 교훈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한국 등 동아시아 담당. 주요 저서로 『용과 코끼리의 경주(La Course du Dragon et de l'éléphant』(Fayard, 2004)와  『서구의 아픈 서구 (L'Occident malade de l'Occident)』(Jack Dion과 공저, Fayard, 2010) 등이 있다. 

번역·김보희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