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주, 그리고 새로운 국면을 맞은 지정학

2021-08-31     조르주 르푀브르 | 인류학자

“누군가 진실을 말한다면, 그에게 말 한 필을 줘라. 도망치는 데 필요할 테니.”

아프가니스탄 속담이다. 2021년 4월 14일, 바이든 미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부대를 모조리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약간 화난 말투로 2020년 2월 체결된 도하 협정을 언급하며, “나라면 달리 협상했겠지만, 미 정부가 체결한 협정이니 그 의미는 가볍지 않다”라고 밝혔다.(1) 

도하 협정을 체결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탈레반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며 여러 수 양보했다. 게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협정 승인 요구 조항까지 수용했다.(2) 다가온 3월 10일, 협정은 미국을 포함한 안전보장이사회의 만장일치로 결의안 2513으로 승인됐다.

미국 정부는 앞서 두 차례나 협정을 승인했으므로, 이제 와서 입장을 번복할 수 없는 처지였다. 바이든은 협정문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영토점령에 나서며 모두를 아연하게 만들기 전, 탈레반이 노리던 바였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당시, 미국 대사관 및 관련 인력 상당수가 아직 철수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질서 있게 진행되던 철수는 곧 공포에 찬 도주로 변모했고, 공항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카불의 분위기는 평온했다. 평소처럼 8월 19일 독립기념일 기념행사가 있었고, 같은 날 치러진 시아파의 아슈라 축제도 무사히 마쳤다.(3)

 

발언권을 잃은 미국, 러시아의 고민

미국은 이제 정치적 발언권을 잃었다. 미국과 함께 활동한 국가 대부분은 대사관도 함께 철수했지만, 러시아와 중국, 이란, 파키스탄, 터키 대사관은 평소처럼 열려 있는 상태다. 아프가니스탄의 운명은 이제 해당 지역의 정세에 달렸다.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곳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 서로 헐뜯는 한편, 중국은 상황을 진정시키는 중재자 역할을 맡는다. 러시아와 이란은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 정계 모두와 교류한다. 인도는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보인다.

러시아 정부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2018년에 러시아는 탈레반과 아프간 공식 대표단 양측 간의 첫 만남을 주선했다. 2019년 2월에는 두 번째 회담이 열렸다. 탈레반은 군사정복을 단념했다고 주장하며 권력 분담을 협상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오늘날 그 약속은 자신들의 성공에 취해 흐려졌다. 하지만 지난 3월 18일 회담 자리에서 외교부 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잊지 않고 이 점을 주지시켰다.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 화해협의회(HCNR, High Council for National Reconciliation) 간 대화는 미국, 중국, 파키스탄의 입회하에 이뤄졌다. 해당 국가 모두가 탈레반에게 임시연합정부에 참여하라고 종용했다.(4)

러시아는 특히 자국 세력권 내에 놓인 중앙아시아 국가의 안전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7월 5일,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국경과 맞닿은 아프가니스탄 북부지역이 탈레반에게 모조리 점령당하자, 1,000명이 넘는 아프간 군인이 타지키스탄으로 피난했다. 푸틴 대통령은 즉시 타지키스탄 대통령 에모말리 라흐몬에게 “필요할 경우 러시아 군대를 지원하겠다”라고 약속했다. 3일 후, 물라 오마르와 함께 탈레반을 창설한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포함한 탈레반 지도부 최상층은,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정부가 임명한 아프가니스탄 문제 특별 대변인 자미르 카불로프를 만났다. 탈레반은 카불로프에게 아프가니스탄 인접국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상황은 순조로운 듯했다. 오래전부터 러시아는 탈레반을 이슬람국가(IS)를 견제할 최적의 대항세력으로 여겼다. 

카불로프는 이슬람국가의 규모가 최소 2만 명이라고 주장한다. 수치는 과장된 감이 있지만, 이슬람국가의 활동이 전 세계에 뻗어있다는 우려는 사실이다. 반면,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이외의 지역을 넘보는 야망은 전혀 없다. 게다가 1996~2001년과는 달리, 이번 정권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기 어렵다. 따라서 그들에게 러시아는 아주 중요한 패다.

 

이란 내 아프간 난민, 200만 이상

이란의 입장은 러시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비슷한 근심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국가(IS)는 이슬람국가-코라산 지방(IS-KP)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1747년 아프가니스탄 건국 전 코라산 지방은 카스피해부터 인더스강까지 뻗어있던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였다. 이슬람국가에 ‘코라산 지방’이라고 붙은 것은 곧 이란 동부 지역 전체에 그들 세력이 흥하고 있다는 증거다. 두려움이 커진 나머지 이란 외교부 장관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는 주로 아프간 출신 하자라족으로 구성된 파테미윤 사단(Liwa Fatemiyoun)을 카불에 파견해 이슬람국가와의 전투를 지원하겠다고 약조했다. 파테미윤 사단은 이미 시리아 전쟁에서 이슬람국가와 싸운 적이 있다.(5)

두 가지 악 중에서 차악을 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아파 이란은 탈레반과 손잡았다. 몇 가지 모순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탈레반은 수니파 근본주의자로 이란의 영원한 라이벌 사우디아라비아와 한편이다. 그리고 과거 탈레반 정부는 시아파 소수민족 하자라족을 탄압했지만, 이란 정부는 그들을 보호하려 한다. 이란 정부는, 1996~2001년처럼 탈레반이 절대 권력을 잡기를 원하지는 않지만, 탈레반의 실패도 원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에 또다시 내전이 터지면 다시금 난민이 대거 유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란에 공식적으로 80만 명에 이르는 아프간 난민이 살고 있다. 2020년 10월, 이란 정부는 비공식 난민까지 합하면 그 수는 200만이 넘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수치는 유엔 난민 기구(UNHCR)에서 다시 인용됐다.

7월 8일, 러시아와의 만남이 끝나자마자 또 다른 간부가 지휘하는 탈레반 대표단이 테헤란으로 향했다. 자리프는 러시아보다 한층 더 강하게 아프가니스탄에 거국정부(특정한 정당이나 정파에 한정되지 않은 정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같은 자리에 초대된 아프가니스탄 화해협의회(HCNR) 대표단은 탈레반과 만났지만, 결정적인 성과는 없었다. 현 단계에서 이란으로서는 자국이 아프간 문제의 주요 관계자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로선 두 아프간 진영 사이 어떤 협상도 타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파키스탄 외교부 장관 샤 마흐무드 쿠레시가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요컨대 탈레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슬람 토후국을 부활시키려 한다. 이슬람 율법이 헌법을 대신하는 체제다. 반면, 아프가니스탄 화해협의회(HCNR) 대표단은 모두 이슬람 공화국 지지자로, 헌법과 선거제도를 갖춘 체제를 옹호한다.(6) 두 관점이 서로 양립하는 건 불가능하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다음 날부터 아프간 내부 협상이 재개됐다. 협상은 타국의 입회 없이 화해협의회(HCNR) 의장 압둘라 압둘라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탈레반 지도부와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2001~2014년)이 참석했다. 전 군벌 세력과 이슬람당(Hezb-i-Islami) 간부들은 승자에게 줄을 대고 이슬람 토후국 체제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이슬람당 당수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러시아, 이란, 파키스탄이 입을 모아 외치는 임시연합정부가 얼마 남지 않았다. 탈레반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시기는 몇 주 후 군대 철수가 완전히 끝날 때쯤이 될 듯하다.

이때 파키스탄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듯하다. 긴장감이 잔뜩 고조된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외교관계가 나아진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아프간 국가안보 고문 함둘라 모히브는 부지불식 간에 이뤄진 탈레반 점령을 우려하면서, 파키스탄 내부 상황을 ‘매음굴’이라고 표현했다.(7) 두 나라 사이의 깊은 적대감을 자극하는 과격한 발언이었다. 갈등은 국경지역에 자리잡은 파슈툰족 문제로 구체화했다. 이들은 국경선을 경계로 두 나라에 걸쳐 존재하며 탈레반 대원 대부분은 파슈툰족 출신이다.

아프가니스탄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선, 일명 듀랜드 라인(Ligne Durand)을 국경선으로 인정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8) 6월 20일, 긴장감 속에서 진행된 아프간 채널 <톨로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쿠레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좋은 이웃으로 공존하길 원한다면 듀랜드 라인이 공식적인 국경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라!”

 

“아군을 잘못 골랐다. 하지만...”

사실은 파키스탄마저도 탈레반의 약진, 그리고 뒤따라오는 군벌 민병대의 재무장 가능성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1996년 탈레반의 집권에 공헌한 장본인임에도 말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탈레반이 정권을 잡는 데 일조했지만 그들의 태도는 기대만큼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탈레반도 듀랜드 라인을 국경선으로 인정하길 거부했다. 2005년 이후 파키스탄은 아프간 탈레반의 변형인 파키스탄 탈레반(Tehrik-i-Taliban Pakistan)의 피해국이 됐다. 우즈베키스탄과 위구르족 지역 알카에다 조직과 긴밀히 연결된 단체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와지리스탄 지역에 자리 잡고 반정부 테러 행위를 주도했다. 6월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의 거리두기가 드러난다. “우리는 전시상황에서 아군을 잘못 선택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이 있다.” 칸 총리도 아프간 연합정부를 지지한다.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 카마르 자베드 바즈와도 마찬가지다. 파키스탄이 외교정책을 재고할 만한 이유가 있다. 탈레반의 강경함을 완화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파키스탄의 숙적 인도는 아프가니스탄의 제1원조국으로, 2001년부터 지원한 금액은 30억 달러가 넘는다. 그랬던 인도가 최근 들어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발을 뺀 듯하다. 탈레반 재집권을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이 비난하는 것처럼 인도의 목적이 해당 지역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면, 투자의 결과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이견의 여지없이 이 지역 최고 강대국으로 꼽히는 중국은 신중한 태도를 일관하고 있지만, 미군의 빠른 철수에 우려를 내비친다. 탈레반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바다크샨 지방을 점령하려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단체들과 손잡았다.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IMU), 이슬람 지하드 연합(IJU), 타지키스탄 자맛 안사룰라(Jamaat Ansarullah)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테러 단체는 신장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무장조직 튀르키스탄 이슬람당(Turkistan Islamic Party) 소속 위구르족과 연결돼 있다. 중국 정부는 탈레반과 우호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이 조직망을 교란시키는 데 이용할 심산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광맥을 자랑하는 미스 아이낙 구리광산, 그리고 아프간 북부지역에 매장된 탄화수소에 중국이 거액을 투자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은 경제개발 만이 아프가니스탄을 안정시키는 길이라고 여기며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CPEC) 사업 참여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 사업이 현실화돼도,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국제 평화회담을 열려고 애쓰던 터키는 미군이 철수한 후 카불국제공항의 보안을 맡아주겠다고 제안했다. 탈레반은 제안을 거절했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적어도 북대서양 조약기구 내에서 체면치레는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 같은 ‘애프터 서비스’를 제안하며 미국과의 긴장관계를 완화할 수 있었다. 

 

 

글·조르주 르푀브르 Georges Lefeuvre
인류학자, 전 파키스탄 주재 유럽연합 고문, 국제관계전략연구소(IRIS) 객원연구원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 Remarks by president Biden on the way forward in Afghanistan’, ‘Speeches and remarks’, 백악관, Washington, DC, 2021년 4월 14일.
(2) ‘Agreement for bringing peace to Afghanistan’, 3장 1항, 2020년 2월 29일, www.state.gov
(3) 이맘 후세인의 죽음을 기리는 시아파 축제로, 탈레반은 수니파다.
(4) ‘Joint statement on extended “troika” on peaceful settlement in Afghanistan’, <ReliefWeb>, 2021년 3월 18일, https://reliefweb.int 
(5) ‘Exclusive interview with Iran’s foreign minister Javad Zarif’, <Tolo News>, 2020년 12월 21일, https://tolonews.com
(6) ‘Qureshi voices concern over current situation in Afghanistan’, <Afghan Voice Agency>, 2021년 6월 23일, https://avapress.com
(7) ‘Afghan NSA Mohib “brothel house” remarks spark diplomatic row with Pakistan’, <Asian News International>, 2021년 6월 8일, https://www.aninews.in
(8) 참조기사 : ‘La frontière afghano-pakistanaise, source de guerre, clef de la paix 불화의 씨앗 평화의 열쇠, 아프간-파키스탄 경계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0년 10월호, 한국어판 2010년 12월호.

 

 

탈레반, 휴스턴에서 보낸 기분 좋은 한때

 

1997년 12월, 물라 무함마드 구스가 지휘하는 탈레반 대표단이 사상 최초로 텍사스 휴스턴에 입성했다. 탈레반을 초대한 석유화학 기업 유노컬은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다.(1) 대표단은 5성급 호텔에 묵으며 휴스턴 시내, 동물원, 미항공우주국(NASA)을 두루 방문했다. 쇼핑을 즐기고 마틴 밀러 유노컬 부회장과 저녁도 했다. 밀러 부회장은 그 후에 카불과 칸다하르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유노컬이 아프가니스탄을 가로질러 중앙아시아와 파키스탄, 인도를 잇는 송유관을 건설하려면 새로운 아프간 정권을 설득해야 했다. 이는 자그마치 100억 달러짜리 사업으로, 아르헨티나 경쟁사 브리다스(탈레반은 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도 초대를 받는다)를 비롯해 노리는 기업이 많았다. “문제는 탈레반 정권이 석유산업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교육자 자질을 최대한 발휘해야 했죠.” 마틴 밀러 부회장의 후일담이다.(2) 

탈레반 정권은 유노컬의 보살핌을 받으며 여러 차례 휴스턴을 오갔다. 슈거랜드와 오마하(네브래스카주), 워싱턴에도 다녀갔다. 탄자니아와 케냐에서 미국대사관을 노린 테러 행위가 발생하고 며칠이 지난 1988년 8월 20일, 클린턴 대통령은 보복 조치로 아프가니스탄 알카에다 훈련 캠프에 폭격을 명령했다. 

탈레반의 미국 방문은 중단됐지만, 유노컬은 연락을 유지했다. 2001년 7월, 탈레반 대원 4명이 은밀히 휴스턴을 찾아와 협상을 재개하려 했지만 9·11테러로 논의는 완전히 끝나버렸다. 20년 후, 셰브론이 유노컬을 인수하고 송유관 건설사업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탈레반은 다시 휴스턴을 찾을지도 모른다.  

 

 

(1) ‘Oil barons court Taliban in Texas’, <The Telegraph>, 런던, 1997년 12월 14일.

(2) Tore Buvarp의 다큐멘터리 <Taliban Oil (Java Films, 201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