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첫 서민 출신 대통령에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다
독립 200주년을 맞은 페루
오랫동안 페루에서 우파가 저지른 실수는 우파에게 이득인 것처럼 보였다. 지금의 경제·정치·보건 위기 때문에 좌파 정치인이 국가 원수가 되리라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말 많은 페루 의회에서 다수파 지지를 얻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페드로 카스티요 신임 대통령은 작은 재량권을 활용해 일하고 있다.
페루 북쪽 카하마르카에 있는 작은 도시의 자랑은 ‘두 세계의 만남’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하나는 에스파냐 정복자의 세계, 다른 하나는 1532년 잉카제국 최후의 황제 아타우알파의 세계다. 당시 둘 사이의 회담은 결렬됐다. 아타우알파와 그의 이복형제인 우아스카르가 벌인 동족상잔 전쟁을 틈타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는 아타우알파를 체포하고 처형했다. 그리고 지금의 페루와 에콰도르 지역을 정복했다. 그렇게 약탈 시대가 시작됐다.
19세기 페루가 독립한 후에도 약탈은 계속됐다.(1) 그때부터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안데스산맥 지역에선 피가 흘렀다. 주민들은 재산을 빼앗기는 등 큰 아픔을 겪었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역대 대통령들
5세기가 지난 후, 페루 대통령 선거 때 카하마르카 지역은 새로운 ‘만남’의 장이 됐다. 이 만남으로 정세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두 세계는 또다시 대립했다. 2021년 6월 6일 대통령 결선 투표에 올라온 두 후보가 그 주인공이다.
한쪽은 게이코 후지모리,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세운 독재 신자유주의 체제의 계승자다.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1990~2000년 세 번이나 대통령을 지냈으며 독재자로 유명하다. 부정부패와 인기 전술을 토대로 시스템을 구축했으나 오랫동안 ‘안정적’이라고 여겼던 페루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으며 후지모리 체제는 끝났다. 페루는 2016년 대선 이후 4명의 대통령이 등장하는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4명 중 3명은 부정부패 문제로 법정에 섰고, 1명은 자살했다.(2) 후지모리에 맞서 등장한 후보는 카하마르카 지역 출신의 교사 페드로 카스티요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그는 농사가 익숙한, ‘보통 페루인’이었다. 이것이 그의 선거 구호가 됐다.
신임 대통령 카스티요, 빈농의 아들이자 초등학교 교사출신
카하마르카의 한쪽에는 수도 리마가 있다.(3) 국가 전체 인구의 30%와 부의 48.1%를 차지하는 이 대도시는 태평양 연안에 위치하며 국가 경영을 주관하는 경제 엘리트와 피사로 군대의 후손이 산다. 다른 한쪽은 산악 지역, 농촌 지역, 페루 북부로 아타우알파 후손이 산다.
그러나, 2021년은 1532년이 아니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대선 2차 투표에 도전할 거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카스티요는 지난 7월 28일, 기나긴 선거를 마치고 대통령 취임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령 헌장을 어깨에 두르고 지역 전통 모자를 쓴 채였다. 그러나 두 세계는 없어지지 않았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국가는 분열된 상태다. 2차 선거에서 두 후보는 1차 선거 등록인 중 18.5%의 지지만 얻을 수 있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불신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심화됐다. 인구 100만 명당 약 6,000명이 사망했다. 인구 대비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세계 최대인 국가가 페루다. 대부분 민영화된 보건 시스템으로는 팬데믹을 막을 수 없었다. 마스크를 2개씩 겹쳐 쓰는 게 고작이었다. 지방 주민에게 정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빈곤과 보건 위기에 시달리는 수백만 국민을, 도시 중심각에서 빈곤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75%를 방치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구의 약 10%에 달하는 300만여 명이 빈곤에 빠졌다.(4)
주도인 카하마르카에서 한참 떨어진 페루 북부 국경지역은 전형적인 유배지다. 페루 안데스산맥 중심에 있는 작은 촌락 푸냐로 이어지는 길고 긴 길. 걷는 내내 주변을 돌아보니 썰렁하다. 산 옆구리로 탄광들과 텃밭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텃밭에는 옥수수, 강낭콩, 감자, 유카 등의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포장도로는 없고 길은 전부 구불구불하다. 비포장도로를 몇 시간 지나면, 카스티요 대통령의 생가가 나온다.
푸냐에 들어서니 한 농부 가족이 소가 끄는 쟁기를 이용하여 땅을 경작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나마 운 좋은 농부들은 다 낡아빠진 자동 경작기를 사용한다. 온종일 밭에서 일하는 것이 이 동네 일상이다. 자갈투성이 길 안쪽 깊숙한 곳에 벽돌로 지어진 집이 서 있다. 딱딱하게 다져진 땅바닥에 있는 부엌에서 숯불 아궁이 위에 놓인 냄비가 김을 내뿜는다. 전구에서 나온 빛이 메르세데스 카스티요의 얼굴을 환하게 비춘다. 그는 이 지역 농부의 상징인 챙 넓은 하얀 모자를 쓰고 있다. 페드로 카스티요가 공식 석상에 설 때마다 쓰는 모자와 비슷하다. “노예제도는 아직도 존재합니다. 페루인이 페루인을 노예처럼 착취하고 있습니다.” 메르세데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 언론에서 계속 떠들썩하게 보도한 ‘페루의 기적’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여기에 기적이 있나요? 전혀 안 보이는데요.”
리마에 있는 산 후안 데 루리간토 지역에는 유명한 언덕이 있다. 여기서 아우구스티나 카르데날은 시민이 자주적으로 관리하는 무료 급식소를 책임지고 있다. 그녀는 소위 말하는 페루의 경제 기적과 동떨어진 현실을 지적했다. “이 지역은 무척 가난해요. 일자리도, 수도도, 전기도 없어요. 주민들만 300명 있을 뿐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새로운 정치 활동가가 많이 탄생했다. 주로 여성인 이들은 원래 정치 조직이나 노동조합이 아닌 그 외부에서 활동하던 이들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사회운동가 출신인 카스티요는 국가가 이들 투쟁을 지지하기를 바라며, 이 활동가들에게 계획 실현의 장을 마련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한 노동운동가들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정치입문
새로운 대통령이 특권층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교사 카스티요가 정치판에서 무명인 것도 아니다. 2017년, 거대한 사회 운동이 페루를 뒤흔들었다. 국가가 임시직을 늘리려고 초등학교 교사직을 줄이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시골에서 반발이 컸다. 도시에서 먼 지방에서는 초등교사가 통상 사회적 요구를 대변하는 메가폰 역할을 해왔다. 사람들은 초등교사를 중심으로 도로 상태, 공공 서비스 등 각종 문제를 정리해서 항의하고 요구했다. 학교 교육자이자, 공동체 지도자였던 이들이 바로 초등교사들이다.
페드로 파들로 쿠친스키 대통령이 내놓은 신자유주의 정부 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페루 전역에 퍼져나갔고 수십만 국민이 집결했다. 페루 교원 노조(Sindicato Unitario de Trabajadores de la Educación del Perú, SUTEP) 집행부는 뇌물 때문에 정부 관계자와 하나 된 하부 조직원에 의해 잠식당했다. 이들은 더는 노조 대표단을 정부 측 지도자에게 파견하려고 하지 않았다. 노조 활동을 전개해야 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파업을 주도하는 노동운동가들은 자체적으로 조직을 정비하고 새로운 대변인을 세웠다. 그들 중 한 명이 바로 카스티요였다.
정부는 이 파업을 모택동주의를 신봉하는 과격파 좌익 게릴라 단체 ‘빛나는 길(센데르 루미노소)’과 엮으려고 노력했다. 이 일로 인해 수년 동안 페루 좌파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노동조합 내 분열을 이용해보려던 정부는 결국 굴복해야 했고 개혁을 철회했다. 2017년 파업으로 인해 카스티요 정치 기반을 형성할 수 있었다. 파업 운동가들이 조직한 ‘마지스테리오’ 네트워크는 교사들에게 귀중한 정치 운동의 토대가 됐다.
그러나 카스티요 후보가 선거운동을 위해 뿌리 내린 또 다른 조직, 농민 순찰대가 있다. 카하마르카에서 탄생한 이 조직은 치안과 법률을 담당할 정부를 대체하기 위해 출범한 조직이다. 1990년대 ‘빛나는 길’과 정부군이 대치하던 시절, 농민 순찰대는 이 게릴라 단체와 정부군 양쪽을 다 막아내며 마을을 지켰다. 평화로운 시절이 도래하고 범죄가 줄어들자 농민 순찰대의 역할은 달라졌다. 푸냐에서 몇 킬로미터 거리, 순찰대 본부가 있는 쿠야말카에서 우리는 마누엘 킨타나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동체에 식량이나, 돌봄이 필요할 때면 우리가 조직적으로 그들을 돕기 위해 움직입니다. 치안은 물론 모든 사회문제, 인프라 프로젝트까지 저희가 담당합니다.” 그의 옆에서, 또 다른 순찰자 호세 마리노가 설명을 덧붙였다. “농민 순찰대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주적 자율조직입니다. 모든 결정은 모든 단체가 모인 총회에서 이뤄집니다. 2년마다 대표를 뽑아요. 지역 및 국내 대표단에 파견 보낼 대표자를 선발하는 선거도 있습니다.”
지역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농민 순찰대는 카스티요 선거 캠페인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단체다. 이들은 팬데믹으로 심각해진 경제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직된 수많은 시민단체와 합류했다. 이런 식으로 카스티요는 전통 정당이 얻지 못했던 시민단체들의 지지를 얻었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당 밖에서 지지를 얻었어도, 정치를 하려면 정당에 소속돼 색채를 지닐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쿠바의 저명한 신경외과 의사였던 블라디미르 세론이 2009년 창설한 ‘자유 페루당’이다.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 성향을 띠고 마리아테기 사상을 따른다. 페루 지식인인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는, 유럽 사회주의를 모방이나 표절하지 않은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사회주의 사상을 전개한 인물로 유명하다. 페루는 상당히 보수적인 국가다. 자유 페루당이 페루에 어울리는 정당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2019년부터 자유 페루당은 대통령 선거를 위해 좌파라는 한 깃발 아래 다양한 좌파 단체를 결집하려 했다. 이 계획이 실패하자, 카스티요에게 시선을 돌린 것이다.
“2017년 초등교사 파업 때, 그와 만났습니다.” 세론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 후 자유 페루당을 대표해 대선 후보로 나갈 것을 제안했습니다.” 노동운동가였던 카스티요를 대선 후보로 앉히면서 세론은 “노동조합이 요구만 할 게 아니라, 권력을 잡아야 한다”라고 노조를 설득했다. “진짜 권력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준비가 돼있었어요.”
자유 페루당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 덕분에 엉뚱한 혜택을 보게 됐다. 대통령 선거운동 몇 달 전, 베로니카 멘도사 의원이 대선 후보로 나서자 우파와 민영화된 언론은 우려를 표했다. 신페루당 대표인 그녀는 페미니스트로 좌파 색채가 있었다. 그리고 자유 페루당보다 더 현대적인 공약을 발표했다. 그녀는 언론의 허수아비 ‘빛나는 길’과도, 베네수엘라와도, 쿠바와도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언론은 멘도사가 2차 대선 투표 후보가 되는 걸 막고자, 그녀가 제시한 사회적 주제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당황한 멘도사 지지자 일부는 카스티요 측으로 돌아섰다.
자유 페루당은 쿠바도, 베네수엘라도 비방하지 않았다. 자유 페루당 대선 후보로 나온 이 초등학교 교사는 1차 투표에서 선두를 달렸다. 두 길 보기를 한 덕분이었다. 한쪽은 자유 페루 정당, 다른 한쪽은 그 밖의 좌파들. 좌파 중 일부에서는 보수주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대다수 페루인들처럼 낙태와 동성 결혼에 반대했으며, 외국인 범죄자 추방을 위해 여러 번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주의 성향인 페루에서 서민 계층 기대에 부합하는 내용이었다.
보수와 진보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다
에너지 자원 국유화, 국가 역할 강화, 교육·보건 예산 증대, 농지 개혁, 민주주의 재건을 위한 새로운 헌법 제정 등. 현재 카스티요 대통령이 세운 공약은 급진적이면서도 두 진영의 요구를 잘 조화시키고 있다. 카스티요는 현 시스템을 향한 불만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현 체제와의 차별화를 통해 민심을 얻었다. 페루 조사 기관에 따르면(5) 카스티요를 뽑은 유권자 중 25%는 후지모리식 독재체제와 현 시스템에 불만을 느끼고 이를 막고자 카스티요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상당수 유권자들이, 여전히 카스티요가 제시한 큰 정부 모델 공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후지모리 시대부터 이어진 제도 해체와 연대 분열 때문에 국민들은 ‘신자유주의 상식’을 얻었다. 다국적 기업 원조에 급급한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이것이 페루 국민이 가진 신자유주의 상식이다. 그래서 많은 시민은 소매점이나 소규모 가족 기업 같은 자체적 사기업을 발전시키며 각자도생의 길을 찾았다.
이 ‘대중 자본주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너무 극단적인 방향 선회는 불안정을 동반한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런 불안감은 일부 국민들의 반공주의 사상과 융합했고 언론에서는 사납게 카스티요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영 언론사는 가짜 뉴스를 동원해 카스티요를 공격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필요한 경우 ‘빛나는 길’이 심어놓은 트라우마를 자극하며 공포심을 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점차 카스티요는 테러리스트, 공산주의자, 파괴주의로 불리게 됐고, 경제를 공산화하고 수입을 금지하고 경제를 파괴해 페루를 비극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비난을 듣게 됐다.
2021년 7월 30일, 카스티요의 첫 내각 구성이 발표됐다(국회 승인을 받기 전). 다양한 정치계 인사들과 사회운동가, 노조활동가 출신 인사들이 포함됐다. 국무총리로 임명된 귀도 베이도는 급진 좌파로 세론의 측근이다. 교육부 장관, 보건부 장관, 국방부 장관, 외교부 장관, 내무부 장관은 사회운동가 출신이 아닌 전문가로 채워졌으나, 전부 좌파다. 중요한 농업관개부 장관에 노동운동가가 임명됐고 많은 좌파 계열 정당 의원들이 행정부를 차지했다.
나름 열린 인사를 보여줬으나 언론은 노발대발했다. 장관들 이름이 발표되자마자 중도 좌파이자 후지모리 체제 반대파인 <라 레푸블리카(La República)>는 1면에서 당당하게 주장했다. “대통령님, 안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베이도를 국무총리로 임명한 것은 국가에 대한 배신이다.”(6) 다른 신문을 더 살펴보면, 만평가이자 자기 이름을 따서 만든 주간지 대표인 세사르 힐데브란트는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이렇게 지시하는 사람은 세론이다. 만약 카스티요 대통령이 세론과 거리를 두지 않으면, 이는 분쟁으로 가는 길이요, 수많은 기대를 걸었던 이 정부를 자살로 몰고 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7)
카스티요 대통령 편에 있는 사람이 소수이고, 보수주의자가 다수인 현 국회는 급진 좌파적인 내각 안을 거부할 것이다. 거부가 계속되면, 결국 카스티요 대통령이 새로운 의원들을 소환해 자신의 헌법안을 채택할 의향이 있는 입법부를 구성하게 될 위험이 있다. 아니면 새로운 정권 내부에서 일어나는 다툼에 기대를 걸지도 모른다.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 불안과 희망이 교차
페루가 민주주의, 보건, 경제, 사회 등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는 이때, 카스티요는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초기 몇 달이 관건이다. 페루 국민에게는 올란타 우말라 전 대통령의 배신이라는 트라우마가 있다. 올란타 우말라는 좌파 성향의 정치인으로 2011년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공약을 어기고 부패 혐의로 현재 조사받고 있다. 따라서 카스티요 대통령은 적어도 그가 내세운 국가 변화 공약 중 일부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카스티요 대통령의 최대장점은 실용주의 성향과 노조활동 경험으로 얻은 협상력이다. 그는 이 장점을 이용해 현 정치 무대를 뒤엎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정치판을 재구성하는 일은 권력 지지에만 달린 문제가 아니다. 게이코 후지모리는 (자신이 패배할 선거를 무효로 하려고) 대선에 불복하며 현 국정을 마비시켰다. 재계 일부에서는 이것이 경제 이익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고 유권자 비난을 받는 체제를 지지하지 않기로 했다. 게이코 후지모리가 연속 세 번이나 대선에서 낙선한 결과 극우파 후보가 당선되리라는 꿈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자금 세탁과 조직범죄 혐의를 받는 후지모리는 이제 법정에 섰고 그녀를 대신해 야당의 리더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
페루는 국회의 힘이 강력한 국가인 만큼 카스티요 대통령의 앞길은 더 험난할 것이라 예상된다. 자유 페루당과 그의 동맹 정당인 ‘페루를 위해 함께’당은 의회 130석 중 42석만 차지하고 있다. 2021년 7월 26일, 중도 우파 연합이 여당 의장직을 차지했다. 그러므로 행정부는 동맹을 맺은 이 중도파 의원들과 타협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탄핵하는 일이 일상인 페루(2016~2020년, 4년 동안 4명의 대통령이 탄핵됐다) 국회에서 이제 제도 안정을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
“우리는 매우 야심찬 목표를 세웠습니다. 페루는 모든 것이 다 필요합니다. 국가 재통합을 위해 나아가는 길에 저는 너나 구분할 필요없이 페루 국민 여러분 모두가 필요합니다.” 2021년 7월 28일 신임 대통령 카스티요가 선서한 내용이다. “우리 조상 케추아족은 거대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같은 힘, 같은 마음, 같은 목표로!’ 사회 발전과 정의, 이것이 모든 페루인의 새로운 목표입니다.”
독립 200주년이 되는 2021년, 페루는 불안과 희망 사이에서 과거의 싸움을 다시 한 번 재현할 것 같다.
글·로맹 미귀스 Romain Migus
기자, 라틴 아메리카 정보 제공 사이트 <레 되 리브(Les 2 rives)>(les2rives.info) 개설자.
번역·이정민
번역위원
(1) Renaud Lambert, ‘Icare ou l’impossible démocratie latino-américaine(한국어판 제목: 라틴 아메리카의 실현 불가능한 민주주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3월호, 한국어판 2021년 2월호.
(2) Romain Migus, ‘Le tourniquet présidentiel péruvien 페루 대통령 회전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1월호.
(3) Instituto Nacional de Estadistica e Informatica, www.inei.gob.pe
(4) ‘Empleo informal afectó a más de 11 millones de Peruanos en el 2020’, <La República>, Lima, 2021년 6월 10일.
(5) ‘Informe de opinión’, Instituto de Estudios Peruanos, Lima, 2021년 6월.
(6) ‘No, señor presidente’, <La República>, 2021년 6월 30일.
(7) César Hildebrandt, ‘Cerrón es el que manda’, <Hildebrandt en sus trece>, n° 550, Lima, 2021년 6월 30일.
페루 신임대통령이 직면한 적색경보들
전직 내무부 장관인 카를로스 바솜브리오 이그레시아스는, 페루가 마주한 위험을 경고했다. 일주일 전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이 취임했다(<엘 코메르시오(El Comercio)>, 리마, 2021년 8월 4일). 이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는 긴박한 위험에 처했다. (...) 국가 계획이 독재적 성격을 띠면서 민주주의 수호가 관건이 됐다. 언론의 자유는 이런 권위주의적 계획 실행에 언제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아우구스토 알바레스 로드리치 편집장은 신임 대통령과 페루의 새로운 권력자라고 여겨지는 블라디미르 세론(‘자유 페루당’의 창시자로 마르크스주의 지식인, 카스티요 후보를 지지함.) 사이의 대화를 상상했다(<라 레푸블리카(La República)>, 2021년 8월 5일).
블라디미르 세론 : 안녕하세요, 대통령님. 페드로 카스티요 : 블라디미르 의원님, 안녕하세요. 블라디미르 : 왜 오늘 국민대담화를 할 거라고 발표하셨죠? 페드로 : 취임 후 일주일이 지났으니 국민이 제 발언을 기다릴 것 같아서요. 블라디미르 : 전혀 아닌데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침묵하실 때가 훨씬 멋지신데요. 꼭 필요할 때 말씀하시면 됩니다. 제가 그 때를 알려드릴게요. (…) 페드로 : 아, 알겠습니다. (…) 사람들이 말하길, 제가 신임 투표를 위해 국회에 제출하려고 만든 내각 구성안을 의원님이 바꿀 거라고 하던데요. 블라디미르 :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 겁니다. 국회에서 내각 구성안을 발표할 때, (…) 각자의 주관적 혹은 객관적 이익, 표면적 혹은 심오한 이익, 보수 혹은 진보의 이익, 물질적 혹은 정신적 이익을 발표하게 될 겁니다. 페드로 : 무슨 말씀이신지요? 설명 좀 해주세요. 블라디미르 : 나중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음, 잠깐만요, 제가 에보(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전 대통령)와 줌(Zoom)에서 만나기로 해서요. 나중에 전화하겠습니다. 조국 아니면 죽음을 달라. 형제여, 우리는 이길 겁니다.
카스티요 대통령이 보란 듯이 쓰고 다니는 모자에 담긴 깊은 뜻이 무엇일까(<엘 코메르시오(El Comercio)>, 2021년 8월 7일)? 정치가 마리오 기벨리니는 모든 페루인이 우려하는 이 질문에 대답했다. 카스티요 대통령이 절대 벗지 않는 챙 넓은 흰 모자는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카스티요 정부의 상징이 됐다. 필자는 이 정부의 공식 모자야말로 카스티요와 세론이 세운 정치 프로젝트에 숨겨진 본성을 드러내는 단서라고 확신한다. 모자는 그늘을 만든다. 카스티요 대통령과 그의 멘토는 빛과 투명성을 피하려는 관리방식을 고수한다. 권력자들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려고 한다. 그들의 애매모호한 책략과 그들 주변을 맴도는 이들의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게 막는 것이다.
급격한 방향 전환 페루 독립 200주년(2021년 7월 28일) 기념일에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카스티요 대통령은 급격한 변화를 강조했다.
“페루가 독립을 선언하고 공화국이 된 지 200년이 되는 상징적 날인 오늘, 저는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 페루가 부왕 통치에서 독립했으나 대다수 페루인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페루의 새로운 공화국 정부는 소위 ‘원주민’들을 계속해서 2등 시민으로 취급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 그리고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이전 아프로페루비안 공동체에 합류했습니다. 새로운 피가 더해지면서 우리 핏줄은 더 풍부하고 다양해졌으나 겪어야 하는 고통도 있었습니다. 머나먼 과거에서 가져온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20세기 말까지 ‘인디오’들은 국가를 위해 다수의 (도로 건설) 공사, ‘도로 징병’을 해야 했습니다. 아마존에서는 고무제조업이 발전하면서, 많은 부족이 노예처럼 착취당하는 경영 방식을 견디다 못해 차라리 고립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제 핏줄에는 페루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자부심과 고통이 흐르고 있습니다. 저 역시 우리 조상이 피땀 흘려 세운 이 국가의 아들입니다. 제 부모님이 겪었던,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 고통 위에 창설된 국가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인생은 들판에서 맞이하는 차디찬 아침이었습니다. 어린 제 아이들을 안아 들었던 팔은 농부의 팔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침묵을 강요받은 페루의 역사가 바로 저의 역사입니다. 저는 추구르의 작은 마을에 있는 10475번 시골 학교에서 공부하던 어린아이입니다. 이 이야기가 더는 예외가 아님을 알리기 위해 오늘 저는 이 자리에 있습니다.” 2021년 8월 2일, 새로운 외교부 장관으로 엑토르 베하르가 임명됐다. 그는 남미국가 연합(Union of South American Nations, USAN)과 라틴 아메리카·카리브 국가 공동체(Community of Latin American and Caribbean States, CELAC)가 실시하는 베네수엘라 정책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페루는 오랫동안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사퇴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봉쇄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페루 정부는 이미 베네수엘라에서 일하고 있는 유럽 국가 및 다양한 라틴 아메리카 국가와 협력하여 베네수엘라 내부 일에 간섭하지 않으면서 현재 정치 흐름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데 전념할 것입니다. 우리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사회적 권리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적 개혁에 지지를 표합니다. (...) 우리는 (이전 정치인들이) 남미 국가 연합(USAN)이 제정한 협정을 폐기하기 위해 국회에 요구했던 내용을 철회합니다. 반대로 우리는 남미 국가 연합(USAN) 협정을 더 공고히 하고 현대화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우리가 한마음으로 추구하는 것은 (...) 페루가 라틴 아메리카·카리브 국가 공동체(CELAC)와 하나 되어 힘차게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카리브 국가 공동체(CELAC) 역량을 증진하고 더 강한 공동체로 만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