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친이슬람'으로 '미 헤게모니' 견제

2008-12-30     자크 레베스크 | 법학자

  참혹한 체첸 전쟁에도 불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03년 10월10일 57개 이슬람 국가가 참여하는 이슬람협의기구 정상회담에 초대받은 최초의 비이슬람권 국가수반이 되는 개가를 올렸다. 그로선 정치적, 외교적 승리였다. 러시아 연방 국민 15% 이상이 이슬람인이며1), 21개 자치공화국 중 8개 공화국 국민들이 이슬람인이라고 주장하면서2), 러시아는 이 국제기구의 옵서버 회원 자격을 획득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지원 덕택이었다.
 그 후 푸틴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부 장관 같은 러시아 지도자들은 줄곧 "러시아가 일정 부분 이슬람 세계의 일원"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2003년 10월16일 <알자지라>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은 "서유럽의 이슬람인과는 달리 러시아의 이슬람인은 원주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슬람이 기독교보다 먼저 러시아 영토에 존재했다고까지 단언했다.3)
 이에 따라 모스크바는 아랍, 이슬람 세계 전체와 정치적 특권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스크바는 원래 유럽 국가인 러시아가 서구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중재자로서 수행해야 할 역사적 사명을 갖고 있음을 자임하고 있다. 이런 주장들의 의미와 효과 그리고 이와 관련된 정책들은 다음 3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이슬람' 친화, 국내 통합 및 대미 견제
 첫째, 이런 주장들은 체첸 전쟁의 악영향을 러시아와 나머지 세계에서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러시아 이슬람인의 국가에 대한 귀속 의식을 강화시키면서 인종적으로 다수인 러시아인과 러시아 이슬람인 사이의 갈등을 회피하거나, 적어도 축소시키는 것이다.
 푸틴은 "이슬람 혐오증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단지 체첸에서 뿐만 아니라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의심되는 모든 사람을 축출했던 일을 고려할 때, 푸틴의 주장은 일견 모순되기도 하다. "테러리즘이 어떤 종교, 문화 혹은 전통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푸틴은 확언했다. 9·11 전후, 푸틴은 일관되게 체첸 반군들을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로 지목했지만, 그 후론 '이슬람'이라는 언급을 피하면서 '국제 마약 무기 밀매 범죄 집단과 연관된 테러리스트들'이라고 말을 바꿨다.
 둘째, 아랍, 이슬람 세계와의 특권적 관계를 추구하는 것은 '세계의 다극체제를 강화하려는' 러시아 외교정책의 공식목표다. 달리 말해, 미국의 일방주의와 헤게모니 장악에 대한 저항 축들을 지원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워싱턴의 외교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적대감을 전 세계에 더 많이 배양하는 것이다. 이제 러시아는 이란과 시리아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터키와 강력한 정치적 관계를 맺고자 한다.
 특히 경제적 동기는 러시아가 국제무대에 복귀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는 에너지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크렘린은 러시아를 1차 에너지 원료수출국이 아닌 다른 국가로 변신시키기 위해, 첨단 기술 분야의 국제 경쟁력을 보유한 핵에너지와 발전소 수출 분야를 그같은 미래의 중요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다. 1990년대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을때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로 첨단무기 수출이 떠올랐던것과 같다.
 크렘린은 더 이상 형식적인 동맹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다. 상하이 협력기구(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처럼, 러시아가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립을 피하면서, 자발적이고 강력한 정치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란이 상하이 협력기구의 정식 회원국이 되기를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옵서버 자격만을 유지하게 된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한 일이다.
 
 '정체성' 고민의 일환, 이슬람 정책
 셋째, 이슬람 세계에 대한 러시아의 새로운 정책은 국내적 측면과 국제적 측면에서 소비에트 이후의 러시아 정체성을 찾는 고통스런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새로운 정책은 상황에 따른 정치적 기회주의로만 치부될 수는 없는 것이다.
 러시아 아카데미 회원인 세르게이 로고프는 2005년 외무부 공식보고서에서 "러시아 정책에서 이슬람 요인에 대한 고려는 일차적으로 정체성의 문제"라며 "이런 이유 때문에 러시아는 유럽적 의미의 민족국가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슬람 세계와 우리의 관계는 우리의 안전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명시했다.
 이 말은 매우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2003년 9월 이고르 이바노프 당시 외무부 장관은 이라크 전쟁이 전 세계의 다른 곳에서 뿐만 아니라 러시아 영토에서도 테러 공격의 수치를 증가시켰다고 단언했다. 그 때는 이라크 전쟁의 끔찍한 결과중 하나인 베스란(Beslan)의 비극이4) 발생하기 전이었다. 이 끔찍한 결과들이 러시아의 이런 태도를 설명해 주고 있다.
 실제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미국 주도 이라크 전쟁의 국제적 정당성을 박탈했던 일도 아직 생생하다. 이런 공동협력을 통하여 모스크바는 새로운 다극체제의 씨앗을 뿌리고자 했다.
 푸틴과 메드베데프를 필두로 한 러시아 지도자들은 '문명의 충격'이 실제로 실현될까봐 걱정한 것 같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이스라엘의 비타협적 정책에 대한 워싱턴의 무조건적이며 전례 없는 지지를 목격한 후에 등장한 지도자들이다. 그래서 미국의 이란 공격이 국제 정세에 재앙을 일으키고, 그 결과 러시아 근처의 광대한 지역과 여러 개의 구소련 공화국, 그리고 러시아 자체에 엄청난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란으로 대표되는 양면적 대외관계
 러시아가 이란과 맺고 있는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 중 하나도 바로 이런 사실이다. 테헤란은 중국, 인도 다음으로 러시아 무기산업의 세 번째 주요 고객이고, 핵발전소의 통제된 수출 창구이며 러시아의 중요한 지정학적 파트너다. 테헤란 지도자들은 체첸 반군에 대한 지지 표명을 여전히 삼가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은 반(反)탈레반 무장 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미국보다 훨씬 이전부터 공동으로 협력했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이 체첸 전사들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체첸의 독립을 인정한 세계의 유일한 국가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주변 이슬람권 안정화…체첸 등 국내통합 목적도
이슬람협력기구 옵서버 참가, 이란·터키·사우디 등 포섭


 한편 모스크바는 이스라엘에 대한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발언을 '수치스럽다'고 규정했다. 특히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과 더불어 경제 제재를 가결하면서 이란에 대해 의미심장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군사적 후속 조치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경제 제재를 제한하고 축소했다.
 이란과의 관계 악화를 무릅쓰면서도 러시아는 자국이 핵무기 확산방지체제의 책임있는 당사자로 행동하고 있음을 미국과 다른 서구 국가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또한 러시아는 국제원자력기구와 타협하라고 테헤란을 설득하고 있다. 러시아는 제한적이고 점진적 제재에 참여하면서도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위협을 가능한 한 먼 미래로 미루고자 한다. 러시아가 주변국들의 핵무기 보유를 원치 않는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미국의 이란 공격으로 야기되는 불안정에 직면하기보다는 차라리 핵을 가진 이란과 공존하기를 선호하는 것도 사실이다.
 
 터키·사우디 등 친미국가에도 유화책
 이런 양면적 태도는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들인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에 정치적으로 접근하게 했다. 이란의 경쟁자인 이 두 국가는 당연히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두려워하면서도 러시아와 같은 이유로 미국의 군사 행동에 반대한다. 이 두 국가는 가장 가까운 주변 이웃과 자국에 미치는 군사 행동 결과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결과 터키는 자국의 국경에 사실상 독립한 쿠르드 국가가 출현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 문제 자체도 이란이 불안정해지면 심각하게 악화될 것이다. 러시아는 자국과 터키 사이의 경제 교역과 정치적 공조가 200년 만에 유례없는 정점에 이르는 이 시기에 당연히 더 많은 이득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그보단 낮은 수준이겠지만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사담 후세인에 대한 적개심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미군에게 기지 사용을 허용하기도 했다. 2007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혹은 소비에트 국가 수반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무기 판매와 핵발전소 건설 계약을 제안했다.
 또한 이슬람 러시아인들이 더 많이 메카 성지 순례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첸 반군이 요구한 독립 인정따윈 언급할 필요도 없었고, 2002년까지 리야드에서 공개적으로 언급되었던 체첸 반군 지원 이야기도 사라져버렸다.

 


 

* 몬트리올 퀘벡 대학교 정치과학법학대학 교수, <1989년 제국의 종말 : 소비에트 연방과 동유럽의 해방>의 저자, 시앙스포 출판사, 파리, 1995.

1) 이 수치는 현 상황과 일치하지 않는다. 러시아와 서구 분석가들에 의하면 이슬람 공동체의 높은 출생율과 중앙아시아 자치공화국 국민의 이민 때문에 2012년에는 이슬람 러시아인이 급격히 증가한다. 드미트리 쉬라펜토크, <이슬람과 러시아 정교 : 유라시아주의에서 이슬람주의까지>, <공산주의자와 후기-공산주의자 연구>, 런던, 41호, 2008, pp 27-46.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인구 전문가 중 가장 뛰어난 머레이 프레쉬백은 이 추정치가 매우 과장되어 있고, 그처럼 짧은 기간에는 결코 확인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2) 체첸 공화국 외에 인구쉐티, 다그헤스탄, 아디그헤, 카바르디노-발카리, 카라차이-체르케시, 바쉬키리, 타타르스탄 공화국이 있다. 타타르스탄과 바쉬키리 공화국이 가장 크고 인구수도 많으며 가장 많은 수의 이슬람인이 살고 있다. 타타르족의 반 이상이 타타르스탄 외부에 살고 있다. 이 숫자만으로도 모스크바 지역이 바쉬키리보다 좀 더 많은 이슬람 인구를  갖고 있다.
3) 이슬람은 7세기 말부터 러시아 영토에 퍼져 살기 시작했다. 반면 최초 러시아 국가가 기독교를 공식 종교로 채택한 때는 10세기말이 되어서였다.
4) 2004년 9월 1일 인구쉐티 공화국의 베스란 학교에서 1천300명 이상의 어린이들과 성인들이 인질로 잡혔다. 이틀 후 소련 안보국 요원들의 습격으로 인질 사태가 끝났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344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는데 그중 대다수가 어린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