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은 무장을 해제하지 않는다

2021-09-30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의 겸손은 절대 오래가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패주한 지 한 달 만에 미국은 제국의 질서를 복구했다. 최근 미국이 프랑스에 안긴 모욕이 그 증거다. 사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탈레반이 카불 공항을 점령하자마자 신보수주의자들(네오콘)이 다시 활개 치기 시작했다. 서구는 ‘아프가니스탄을 잃어버렸다’. 따라서 다른 모든 곳에서 서구의 존재를 다시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다음 전투에서는 결코 후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서구의 전략적 경쟁국들, 특히 중국과 러시아에 보여주기 위함이다.

미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전력이 있는 밋 롬니 상원의원은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라고 요약하며, “우리는 과거보다 더 큰 위험에 처해있다. 우리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1)라고 덧붙였다. 근동지역에 혼란을 일으켰던 미국은 이제 태평양으로 눈을 돌려 중국에 맞설 해군을 파견하고 있다. 이 문제를 가볍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와 미국 간 현 외교위기의 주요 쟁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높은 수익을 기대했던 잠수함 계약을 빼앗긴 프랑스의 분노가 핵심이 아니다. 사실 이번 위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미국이 영국, 호주와 결성한 반(反)중국 군사동맹에 유럽이 어떻게 대응할 것 인지다. 대대적인 공개 망신, ‘동맹들’의 배신, 중대한 지정학적 결정에 대한 협의 부재 등보다 더 우선시해야 할 문제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15년 동안 미국이 준 모욕에 익숙해졌다. 미국이 프랑스 대통령들을 감청했다는 사실이 위키리크스에 폭로됐으며, 프랑스 기업 알스톰(Alstom)은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에 의해 분할됐다(법률적 음모에 의한 노상 강도질과 다름없었다). 미국은 또한 쿠바와 이란에 국제법을 위반하는 제재를 가했으며, 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프랑스 기업과 은행에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했다.(2)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호주와 미국이 합작한 일격에 양국 주재 자국 대사들을 무기한 소환하지 말고, 제국의 민낯을 폭로한 줄리언 어산지나 에드워드 스노든에게 정치적 망명을 즉시 허가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온 세계가 주목하는 멋진 반격이 됐을 것이다.

프랑스 정치인들이 잡담하는 동안, 프랑스의 지위는 격하되고 있다. 프랑스는 미국이 지휘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통합사령부에 복귀했다. 이는 프랑스의 외교주권에서 더 많은 부분을 미국의 가신(家臣)들이 모인 유럽연합에 양도하는 셈이다. 프랑스는 또한 대(對)러시아 제재를 유지하며 유럽이 미국이나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유일한 가능성인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의’ 유럽 통합을 위한 모든 합의를 막고 있다.

프랑스가 존재감을 지키려면, 미국이 준비 중인 태평양 전쟁(3)을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을,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베트남, 한국, 인도, 인도네시아에 시급히 각인시켜야 한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파리 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합류한 뒤 2008년 이그나시오 라모네의 뒤를 이어 발행인 겸 편집인 자리에 올랐다. 신자유주의 문제, 특히 경제와 사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신자유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그 폐해를 집중 조명해 왔다.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CNN>, 2021년 8월 29일. 
(2) Jean-Michel Quatrepoint, ‘Au nom de la loi...américaine 미국법의 이름으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월호. 
(3) Martine Bulard, ‘L’Alliance atlantique bat la campagne en Asie 중국의 독주에 맞선 아시아 ‘나토’의 탄생가능성’,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