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뒷마당, 중남미를 공략하는 중국

2021-09-30     안도미니크 코레아 l 기자,전 에콰도르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의 딸

미국 선박이 중국 영해를 통과하고, 그 사이 중국은 더 조용히 미국이 ‘뒷마당’으로 간주하는 중남미 지역에 포석을 깔고 있다. 2010년대 중반에 선출된 중남미의 보수 우파 정부들은 미국의 품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이내 미국이라는 동맹국이 까다롭고 너그럽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020년 12월 9일, 미국의 개발원조 기관인 국제개발금융공사(Development Finance Corporation, DFC)가 중남미 국가를 위한 ‘새로운 모델’의 기본 협정 꾸러미를 들고 에콰도르에 당도했다. 이 기본 협약에는 12년 전에 에콰도르가 중국과 체결한 ‘약탈적 고금리 채무’를 갚아 줄 35억 달러 차관을 미국이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에콰도르는 그 대가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중국 기업을 전 세계 5G 설치 계약에서 배제하려고 2019년 출범시킨 ‘클린 그리드(Clean Grid)’에 동참하기로 했다.

2021년 1월 14일 에콰도르의 보수파 대통령 레닌 모레노는 미국 행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재차 확인시켰다. 이에 따라 에콰도르는 인공지능, 로봇화, 사물인터넷(IoT) 산업 발전이 저해될지도 모른다. 한편 미국은 이 협정의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국제개발금융공사 최고경영자 애덤 볼러는 “독재주의 국가가 타국에 부당한 위압을 가하지 못하도록 국제개발금융공사가 창설됐다”라고 설명했다.(1) 미국 정부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려온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공략에 무관심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중남미 5G 시장 진출 가능성이 상황을 반전시켰을 것이다. 미국이 비판하는 ‘중국의 중남미 공략’은 역설적이지만 미국이 스스로 택한 지정학적 전략의 직접적인 결과다. 그러므로 현 상황은 용(중국)의 술책보다는 독수리(미국)의 부리질에 가깝다.

중국은 2002년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중남미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혀왔다. 그 첫 번째 요인으로는 미국의 관심이 다른 지역에 쏠려있었던 점을 꼽을 수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0년 대선 당시 중남미 지역에 대한 ‘미국 정부의 무관심’을 불식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으나, 2001년에 9·11 테러가 발생하자 임기 내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기에 바빴다.(2) 2009년 4월, 백악관 입성 3개월이 지난 시점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과 중남미 국가 간의 ‘새로운 관계의 장’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3) 하지만 중남미보다 더 치중해야 할 지역이 있었다. 2011년, 오바마 행정부는 자국 외교 전략의 중심축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는 ‘재균형’ 외교정책을 추진하면서 지정학적 우선순위에서 중남미를 후순위로 뒤에 두었다.

중국이 리오그란데 강(Rio Grande, 이 강을 경계로 앵글로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를 구분) 이남에서 성공을 거둔 두 번째 요인은 중남미를 휩쓴 1980년대 외채위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관리 체제’하에서 구조 조정이 강행됐다. 이 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60~1979년 동안 80%에서 1980년~1999년 사이 11%로 급격히 꺾였고,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인구는 1980년에 약 1억 2,000만 명에서 2004년에는 2억 1,000만 명 이상으로 거의 2배로 증가했다. 이처럼 빈곤율이 높아진 데는 일정부분 2000년대 초반의 좌파 정권 집권이 한몫했다. 미국의 간섭에 진력이 난 중남미 좌파 정권의 ‘붉은 물결’은 미국 정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2007년에 에콰도르 대통령으로 갓 선출된 라파엘 코레아는 세계은행 책임자를 ‘외교상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선언했다. 이후 코레아 대통령은 만타에 있는 미군 기지를 폐쇄하고 미국과 진행 중이던 자유무역협상도 중단했다. 같은 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IMF와 세계은행에서 탈퇴하고, 이들 기관에 대해 가난한 나라를 ‘약탈’하는 ‘제국주의의 도구’라고 비난했다.(4)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2008년 쿠데타 시도를 겪은 후에 미국 대사와 마약단속국(DEA) 직원을 추방토록 했다. 그는 5년 후에 미국의 대외 원조 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가 “복지 향상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추구한다”라고 비난하며 추방을 결정했다.(5) 같은 시기에 이들 정부는 일부 천연자원을 국유화하고 자국에서 활동하는 초국적 기업의 수익에 대한 세금을 인상했다. 보스턴 대학의 경제 연구원이자 중남미 관계 전문가인 레베카 레이는 “이런 조세 조치로 좌파 정부가 제시한 새로운 여건에서 더 이상 활동하지 않으려는 여러 서구 기업들이 이 지역을 떠나게 됐다”라고 지적했다.

 

열매를 맺는 ‘상호승리 전략’ 

이 같은 맥락에서 외부세력의 개입을 거부하는 중남미 국가들의 요구를 충족할 만한 기술력과 자금력을 두루 갖춘 국가는 거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시선이 중국으로 쏠렸다. 중국은 2008년에 첫 발간한 대 라틴아메리카 정책보고서에서 자국이 중남미 국가와 유사한 발전단계에 있다고 평가하면서, (6) ‘상호 평등과 호혜, 동반 발전’에 기반한 협력을 약속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중국 금융 기관(중국 국가개발은행과 중국 수출입은행)은 국제 자본시장에서 금융 조달이 어려운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 에콰도르와 같은 중남미 국가에 차관을 제공했다. 중국은 미국보다 조건이 유연해서 채무액을 원자재로 변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방식 덕택에 중국은 높아져 가는 중산층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천연자원을 조달할 수 있었다. 

현재 중국은 브라질, 칠레, 페루, 우루과이의 최대 교역국이자 중남미 지역의 최대 채권국이다. 2005년부터 인프라 사업(항만, 도로, 댐, 철도 등)에 출자된 액수가 1,370억 달러에 달하며, 오늘날 중국이 중남미에 제공한 금융지원 규모는 세계은행과 미주개발은행(IDB)의 합계액보다도 많다.(7) (8)

갑작스럽고 대대적인 중국의 공세에 대해 일각에서는 “미국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다 ‘중화 제국’의 굴레를 쓰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도 일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 자유대학의 현대정치연구소(CEVIPOL) 연구원 소피 빈트겐스는 “남남협력(South-South Cooperation)이라는 담론 너머에 비대칭적 관계가 남아있다. 중남미 국가들은 중국 덕분에 대 미 통상 의존도를 낮추게 됐다. 반면, 중국은 중남미에 공산품을 수출하고 원자재를 수입하는 방식으로 남-북(선진국-개발도상국) 교역 모델을 답습한다”라고 분석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중남미의 진보 경제학자들이 20세기 내내 비판했던 ‘의존’ 현상이 이어지는 셈이다. 이런 의존성은 중국의 ‘신 실크로드(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중남미 18개국이 참여하면서 더 강화될지도 모른다. 이 프로젝트는 2013년에 시진핑 주석이 중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물류망을 구축하기 위해 착수한 대규모 건설 사업이다. 중남미는 인프라 투자가 부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미주 개발은행에 따르면 중남미 지역의 연간 재정 지출의 2.5% 수준으로, 사하라 이남 지역 다음으로 저조) 이런 우려는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된다.(9) 베이징의 주요 건설 사업 중 대서양과 태평양 연안을 연결하는 남미대륙횡단철도 사업은 지역 경제계, 그중에서도 브라질의 구상에 잘 부합한다. 오스발도 로살레스 전 유엔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ECLAC) 국장은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따라 국가 개발을 시장의 힘에 내맡긴 채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면서 생겨난 간극을 메우고 있을 뿐이다. 현재의 통상 구조는 중국보다는 과거의 간극에서 비롯됐다”라고 주장한다.  

‘신 실크로드’ 사업을 향한 관심도 높아서 중국(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참여국들에 ‘하나의 중국 정책(One-China policy)’을 따르도록 요구한다. 2017~2018년에 엘살바도르,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이 이 사업 참여를 위해 중국을 외교적으로 인정하기로 하면서 중남미 내 대만 수교국은 9개국으로 줄었다. 아시아의 거인 중국은 대서양과 태평양이 교차하는 지점의 카리브해 국가들과 협력하면서 전략적 무역 요충지에 대한 접근권 뿐 아니라 국제기구 내 지지 세력까지 확보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태도를 서슴없이 비난한다. 2019년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 뤼강은 “(미국이) 중남미를 뒷마당으로 여긴다”라며 “중남미 국가의 진정한 우방은 중국”이라고 대내외에 천명했다.(10) 하지만 중남미인들은 중국 기업이 미국 기업보다 반드시 이타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미주 간 대화를 위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Asia and Latin America for the Inter-American Dialogue)’의 마거릿 마이어스 국장은 “중남미인들 사이에서 중국은 평판이 좋지만은 않다. 중국의 투자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2014년 에콰도르에서는 대형 수력발전 댐 코카코도 신클라이르(Coca Codo Sinclair, CCS) 건설 현장 침수 사고로 노동자 13명이 사망하면서 부조리한 근무 조건이 밝혀졌다. 1년 후, 페루 라스밤바스주에서는 4명의 목숨을 앗아간 구리 광산 사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고, 올란타 후말라 페루 대통령은 해당 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18년, 볼리비아는 로시타스(Rositas) 수력발전 댐 건설을 연기했다. 지역 사회에서 사업 착수 전에 사전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항의했기 때문이다. 소피 빈트겐스 연구원은 “중국은 양자 협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국가 간 경쟁을 야기한다. 이는 환경과 노동 관련 협약 기준의 약화로 이어진다”라고 분석했다. 레베카 레이는 “중국 투자자들의 환경과 노동 성과는 서구인들보다 못하지 않다”라고 반박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최선은 아니라는 점에는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다시 한번 미국의 품으로 갔지만

2014년부터 대다수 중남미 국가에서 정권을 잡은 우파 정부는 미국의 지정학적 선호도에 맞춰 대열을 재정비했다. 그 결과, 중국은 동맹국에서 위험 국가로 전락했다. 2019년에 워싱턴을 방문한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중국이 “실현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중남미 국가에는 갚을 수도 없는 막대한 부채를 지우고, 이를 다시 재무 레버리지로 활용한다”라고 말했다.(11)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 중국과 맺은 협정의 내용이 “불투명하다”라고 평가하면서 “국가에 해를 끼친다”라고 비난했다.(12) 2018년 선거 유세 기간에 브라질 보수당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후보는 브라질의 가장 주요한 사회 기반 산업에 해당하는 쇠고기와 콩 수출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크게 의존한다면서 “중국은 브라질에서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브라질을 산다”라고 말했다.(13)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히면 대다수 지도자는 IMF의 체제에서 위안을 찾는다. 2018년에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IMF로부터 아르헨티나 역대 최대 규모에 해당하는 총 57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2019~2021년에 에콰도르와 콜롬비아의 두 보수 우파 대통령 레닌 모레노와 이반 두케는 엄격한 종합 대책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각각 45억 달러와 110억 달러를 지원받았다. 하지만 국민의 반대가 일어나 결국 긴축 정책을 철회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청색 물결(우파 집권)’은 중남미의 지정학적 위치를 약화한다. 외부 압력에 대한 주요 방어막으로 작용하는 지역 단위의 통합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중남미 33개국이 결집하는 유일한 포럼이자 중국과의 주요 논의가 오가는 장(場)인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 공동체(CELAC)에 참여를 중단하기도 했다. 아울러, 2018년 베네수엘라 사태를 둘러싼 회원국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역내 6개국이 남미국가연합(UNASUR) 참여를 중단했다. 남미 국가연합은 미주기구(OAS)의 균형추 기능을 담당해왔다. 2019년에는 남미국가연합을 대체하는 협의체로 프로수르(PROSUR)라는 약어로 더 잘 알려진 ‘남미 발전을 위한 포럼’을 발족했다.(14) 2014~2017년에 남미국가연합 사무총장을 역임한 에르네스토 삼페르 피사노 콜롬비아 전 대통령(임기 1994~1998)은 “이 고약한 기구는 사실상 ‘남미 발전을 위한 포럼’이 아니라 ‘북미 발전을 위한 포럼(PRONORD)’이라는 명칭이 더 잘 맞는다”라고 꼬집었다. “이 우파 국가 간의 동맹을 유지하는 바탕에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증오와 미국에 대한 노예근성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분열된 중남미는 다시 한번 북미 독수리한테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

 

중국, 백신 수백만 회분 전달

2016년,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는 전임자들처럼 이 지역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했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고 재정적으로 베네수엘라의 숨통을 막는 데에 혈안이 된 트럼프 대통령의 대 중남미 정책은 미국 히스패닉계 커뮤니티의 요구와 함께 중남미로부터의 이민 억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2017년에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멕시코, 칠레, 페루가 비준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국을 탈퇴시키기도 했다.

중국의 제조업 육성 청사진인 ‘중국 제조 2025(Made in China 2025)’ 전략은 전환점을 맞았다. 2015년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 계획은 로봇 공학, 인공지능, 정보화와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 투자를 확대해 기술적 자주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1년 후, 중국은 새로운 대 중남미 정책 백서에서 과학적, 기술적 혁신에 더 초점을 맞춘 ‘새로운 단계’를 열겠다고 밝히면서 군사 분야 ‘교류’를 시작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15)

마이어스는 “이제 중남미 내 중국 투자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라면서 “이제 중국은 신발이나 섬유, 플라스틱 들통 대신 첨단 기술 콘텐츠를 갖춘 각종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한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여러 통신 회사는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에 감시 카메라를 수출하고 베네수엘라에 ‘스마트 신분증’을 납품하게 됐다. 그 밖에도 아르헨티나 북부 파타고니아 고원에서 우주 정거장 건설에 착수했고, 2015~2019년에는 여러 중남미 국가에 6억 1,500만 달러에 달하는 무기와 전투 시스템을 수출했다. 

 

중남미에 드리운 ‘기술냉전시대’의 그림자

미국이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려 보니,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통상 규칙을 제시할 만한 역량을 갖춘 기술 강국으로 거듭났다. 2017년 중국의 특허 출원 건수는 미국의 2배였다. 미국의 지배가 흔들리는 것을 느낀 트럼프 대통령이 비로소 반응을 보였다. 2017년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했다.(16) 2년 후, 트럼프 정부는 화웨이, ZTE, 다화, 하이크비전이 중국 공산당(CCP)을 대신해 외국 정부를 ‘감시’하며, 미국의 기술을 훔쳐 갈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 기업이 중국 기업으로부터 장비를 사들이지 못하게 했다. 

머지않아 ‘기술 냉전’ 시대의 철의 장막이 중남미에도 드리울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을 지낸 렉스 틸러슨은 2018년에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에서 진행된 연설에서 “중국은 경제력을 이용해 중남미 지역을 통제한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중남미는 이윤 추구에만 급급한 신제국주의 세력에 기댈 필요가 없다”라며 경각심을 높일 것을 촉구했다.(17) 과거 먼로주의를 절로 연상케 하는 연설이었다.

그 이후 미국은 중남미 지역에 대한 통제권 회복을 위해 공세를 강화했다. 2018년 9월, 미국 정부는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대만과 단교한 도미니카공화국, 엘살바도르, 파나마 주재 미국 대사들을 자국으로 소환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마이크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은 파나마를 방문해 후안 카를로스 바렐라 정부에 중국 기업의 ‘약탈적 경제 활동’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18) 이후, 파나마는 중국이 자금을 지원한 5개의 건설 사업을 취소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칠레를 방문했을 때도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에게 중국 정부가 화웨이를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19) 몇 달 후에 칠레 정부는 환태평양 해저 광케이블 구축 사업에 응찰한 화웨이의 입찰을 무효로 하고 일본 기업에 사업권을 부여했다. 2020년 11월, 당시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 키스 크라크는 브라질을 방문해 ‘클린 네트워크’ 동참을 요청하면서, “화웨이는 중국 공산당 감시의 중추”라고 강조했다.

‘중국 고립작전’에는 금융과 통상 장치도 동원된다. 2018년에 미국은 미국, 멕시코, 캐나다 간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기회를 활용해, 3국 중 어느 국가라도 ‘비시장경제(NME) 국가’와 무역협정을 체결하면 다른 두 국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여기에서 ‘비시장경제 국가’란 기본적으로 중국을 뜻한다. 그리고 2019년,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는 ‘신 실크로드’ 구상에 대한 대응으로 ‘미주 성장(Growth in the Americas) 이니셔티브’라는 6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중남미 14개국이 이 이니셔티브에 동참하기로 했다. 물론, 베네수엘라와 니카라과, 쿠바는 참가 대상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2020년 9월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주개발은행 총재 자리에 낙하산 인사로 ‘미주 성장 이니셔티브’를 설계한 마우리시오 클래버 커론을 임명했다. 이 기관은 전통적으로 중남미 출신 인사가 총재직을 맡아왔다. 삼페르 피사노 전 콜롬비아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미주개발은행을 ‘볼모’로 잡은 유일한 목적은 단 하나, 이 기관의 차관 조건을 수정해 “중국을 중남미에서 몰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의 외교적 제스처 보다는 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에 훨씬 더 무게가 실리게 됐다. 초기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원지로서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실추됐지만, 빠른 경제 회복을 이루면서 중국은 중남미 지역에서 국가 위상을 높일 만할 새로운 열쇠를 손에 쥐게 됐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중남미는 열악한 공중 보건 체계로 인한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고, 큰 타격을 입었다. 중남미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8%에 불과하지만, 2020년 9월, 코로나19와 관련된 사망자의 약 1/3이 중남미에 집중됐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이 지역은 120년 만에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2020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이 7.7% 감소했고 빈곤율은 10%나 증가했다.

 

중남미 접종 백신의 절반이 중국산

중남미대륙 남부의 인접 국가들이 겪는 곤궁에 워싱턴은 무관심했지만, 중국은 신속히 지원을 제공했다. 마스크 수십만 장, 각종 의료 장비(환기 장치, 스캐너, 테스트 꾸러미)를 기부했고, 의료 인력을 파견해 도움이 필요한 지역 병원을 지원했다. 칸시노 바이오로직스(CanSino Biologics)의 콘비데시아(Convidecia)와 시노백(Sinovac)의 코로나백(CoronaVac)이 상용화되면 중남미 국가에 10억 달러를 지원해 백신 구매를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까지 인구가 가장 많은 중남미 10개국에서 사용된 백신의 절반 이상이 중국산이라는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의 뉴스는 별로 놀랍지 않다.(20)

이해관계가 얽힌 외교적 연대는 쉽게 무너져 내린다. 삼페르 전 대통령은 “중국은 먼저 친구를 만들고, 이익 추구를 위해 그들과 협력한다. 중국은 이런 전략으로 좌우 이념을 뛰어넘어 중남미 각국 정부의 환심을 샀다”라고 설명한다. 중국의 전략 덕에 불안에서 벗어난 현지 국민의 환심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아들 에두아르두 보우소나루 하원의원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은 중국 공산당’이라고 비난한 메시지를 리트윗하면서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한 바 있다. 그런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돌연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정부에 머리를 숙이기로 했다. 중국은 브라질의 요구에 기꺼이 응했다, 2021년 1월에 중국은 브라질이 코로나백(CoronaVac) 2,500만 회분을 생산할 수 있도록 원료 5,400리터를 공급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5G 사업 국제 입찰에 화웨이의 참여를 배제하기로 했던 방침을 취소했다.

 

“미국은 우리를 돕지 않는다”

대만의 수교국들은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분자진단 장비가 부족해 백신 접종 캠페인이 상당히 지연됐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17일 기준, 중남미 지역 대다수 국가의 인구 12.6%가 예방 접종을 받았으나, 대만의 수교국은 접종률이 1%를 밑돌았다.

지난 4월, 남미에서 유일하게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인 파라과이는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자국민 국민 전체가 면역을 획득하기에 충분한 백신 1,400만 회분을 지원받는 내용의 법안을 논의했다. 당시에 미국 국무장관 앤서니 블링컨은 친미 성향의 마리오 압도 베니테스 파라과이 대통령을 접촉해 의료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여당이 장악한 상원은 결국 이 법안을 부결시켰다. 이 법안의 발의를 주도한 좌파 상원의원 중 한 명인 에스페란자 마르티네즈는 “우리 동맹국은 자국민에게는 쉴 새 없이 예방 접종을 하지만, (중국) 백신을 수입하면 우리가 공산주의자가 될 것이라며 백신을 수입하지 못하게 한다”라고 하소연했다.(21)

온두라스의 경우, 코백스(Covax)를 통해 공급되는 (당초 세계보건기구 주도로 모든 개발도상국가에 충분한 백신을 배분할 계획이었으나) 백신이 너무 지연되자, 2021년 5월에 인근 국가 엘살바도르로부터 코로나19 백신 3만4,000회분을 공여받았다. 온두라스 정부의 카를로스 알베르토 마데로 수석 조정관은 “온두라스 국민은 중국이 동맹국들을 돕는 사실을 알고는, 우리 동맹국은 대체 왜 우리를 돕지 않는지 묻는다”라고 말했다.(22)  앞으로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미국은 동맹국에 잠재적인 ‘외교정책의 변화’를 경고할 시간에 차라리…. 

 

 

글·안도미니크 코레아 Anne-Dominique Correa 
기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Demetri Sevastopulo et Gideon Long, « US development bank strikes deal to help Ecuador pay China loans », <파이낸셜 타임스>, 런던. 2021년 1월 14일.
(2) Tim Padgett, ‘Why Latin America Bashes Bush’, <Time>, 뉴욕, 2005년 11월 4일.
(3) Michael Reid, ‘Obama and Latin America’, <Foreign Affairs>, 뉴욕, 2015년 9월-10월호.
(4) ‘베네수엘라, IMF와 세계은행에서 탈퇴’, AFP 통신, 2007년 5월 1일.
(5)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볼리비아에서 USAID 추방’, 2013년 5월 1일, rfi.fr
(6) ‘China’s Policy Paper on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신화통신>, 2008년 6월 6일.
(7) Katherine Koleski et Alec Blivas, ‘China’s Engagement with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U.S.-China Economic and Security Review Commission, Washington, 2021년 5월 18일.
(8) Macarena Vidal Liy, ‘China prestó más dinero a América Latina en 2015 que el BM y el BID juntos’, <El País>, 2016년 2월 12일.
(9) Eduardo Cavallo, Andrew Powell, ‘Informe macroeconómico de América Latina y el Caribe 2019’, BID, 워싱턴, 2019.
(10) ‘China says U.S. criticism of its role in Latin America is “slanderous”’, <로이터>, 런던, 2019년 4월 15일.
(11) Nelson Renteria, ‘Responding to El Salvador president-elect, China denies it meddles’, <로이터>, 2019년 3월 14일.
(12) ‘EEUU llegó a un acuerdo con Ecuador de USD 3 500 millones para ayudarlo “a salir de la trampa de la deuda china”’, 2021년 1월 16일, infobae.com
(13) Jack Spring, ‘Discurso anti-China de Bolsonaro causa apreensão sobre negócios com o país’, <로이터>, 런던, 2018년 11월 25일.
(14) 창설에 참여한 국가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가이아나, 페루, 파라과이 6개국이다.
(15) ‘Policy Paper on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신화통신>, 2016년 11월 24일.
(16) 신 국가 안보 전략 발표 연설, 2017년 12월 18일.
(17) ‘Alarma a EE.UU. la penetración de China en América Latina’, <엘 파이스>, 마드리드, 2018년 2월 2일. 
(18) Edward Wong, ‘Mike Pompeo Warns Panama Against Doing Business With China’, <뉴욕 타임스>, 2018년 10월 19일.
(19) Ignacio Guerra, ‘Mike Pompeo advierte a Chile sobre China y Huawei : Esa infraestructura presenta riesgos a los ciudadanos de tu país’, 2019년 4월 12일, emol.com
(20) Michael Stott, Bryan Harris, Michael Pooler, Gideon Long , Benedict Mander et Jude Webber, ‘Chinese jabs dominate Latin American vaccination campaigns’, <파이낸셜타임스>, 런던, 2021년 5월 9일.
(21) Ernesto Londoño, ‘La gran crisis de la COVID-19 en Paraguay abre una oportunidad diplomática para China’, <뉴욕타임스>, 2021년 4월 16일.
(22)Michael Stott, Kathrin Hille et Demetri Sevastopulo, ‘US to send vaccines to Latin America after Taiwan ally warns of pivot to China’, <파이낸셜 타임스>, 런던, 2021년 5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