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관할하는 미국의 은밀한 ‘대사관’

2021-09-30     알리스 에레 l 교수

타이베이 시 외곽 네이후 구에 소재한 미국대만협회(AIT)는 실체를 감추고 있다. 어디에도 국기나 무장한 해군, 외교 번호판이 붙은 차량은 보이지 않는다. 건물의 정체성을 어렴풋이 드러내는 것은 입구를 장식한 독수리 국장이 유일하다. 2018년 개관한 AIT는 전 세계 외교공관이 모여 있는 신이 가(街)와도 멀리 떨어져 있다. 그나마 신이 가에 설치된 외교 공관들 역시 대개는 대사관이 아니라 각 나라의 ‘대표부’다. 대부분의 나라가 대만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탓이다.

‘실질적인 대사관’격인 AIT는 총가치가 2억 5,500만 달러(1억 9,000만 유로)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기관이다. 대만 제2의 도시로 통하는 가오슝 소재 사무소들까지 전부 합친다면, 대만 내 고용 인원은 약 500명에 달한다(베이징의 경우 1,300명). AIT는 공식적으로 미 정부의 후원을 받는 비영리단체로 분류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아시아 내 최고의 중대한 외교기관 중 하나로 통한다.

“AIT의 조직은 여느 대사관과 다를 게 없다. 정치·문화·경제 업무를 담당하는 책임자가 있고, 공보과와 무관실, 상무관실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1)라고 문화업무 담당자인 루크 마틴이 설명했다. 2009~2012년 AIT의 대표를 지낸 윌리엄 A. 스탠튼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AIT는 항상 실질적인 대사관 역할을 해왔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임무는 대만과 미국의 관계를 증진하는 것이다. (...) 대사관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 가지, 사용하는 용어다. 가령 ‘정무과’는 ‘총무과’라고 하며, 내 공식 직함은 ‘대표’지만 대만인들은 흔히 나를 ‘대사님’이라고 부른다.”

스탠튼은 여타 대사들과 달리 백악관의 지명과 상원의 인준을 거쳐 대표직에 임명되지 않았다. 전직 외교관인 그는 “우리는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받지 않고, (당시 국무장관이던) 힐러리 클린턴을 통해 받았다”라고 강조했다. 스탠튼은 현재 양밍의과대학(타이베이 소재) 부총장으로 활동하며 여전히 대만에 거주 중이다.(2) 미국 정부는 1979년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맺은 이후, 대사관을 베이징으로 이전하는 한편, 대만과는 모든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중단하는 조처를 시행했다. 그는 “2002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외교관들은 타이베이에 주재하려면, 외교관이라는 직함을 내려놓아야 했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군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을 기점으로 미국과 대만의 관계는 한층 더 공식적인 차원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2016년 차이잉원 총통 당선 이후 대만해협 양안에 고조된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심지어 마이클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직전인 2021년 1월 10일, “중국 정부를 달래기 위한 규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라고 선언하며, 미국과 대만 당국자 간 모든 접촉제한 조처를 일제히 해제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모두 대중국 ‘강경책’을 지지한다. 더욱이 바이든은 대통령 취임식장에 샤오메이친 주미 대만 대표부 대표를 초청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이것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상초유의 사건이었다! 이어 1979년 이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고위급 방문이 이어졌다. 2020년 3월(트럼프 행정부 시절), 알렉스 에이자 보건부 장관에 이어, 2021년 4월 1일 팔라우 주재 미 대사가 줄줄이 대만을 방문했다. 참고로 팔라우는 미국의 새 군사기지 설치 예정지이기도 했다. 샤오메이친 대표에 따르면, 그가 2021년 2월 9일 아태평양지역 외교안보 전문매체 <더 디플로맷>과 가진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바와 같이, “(대만에는) 방위와 안보가 제1의 과제이고, 둘째는 경제 관계, 셋째는 국제 참여와 기타 정치 파트너십”이다. 

사실 대만과 미국은 어떤 방위 조약으로도 엮여 있지 않다. 그러나 1979년 제정된 ‘대만관계법’에 의거해, 미국은 2,350만 대만인에게 자위에 필요한 무기 공급을 약속한 바 있다. 현재 미 정부는 대만에 대해 거의 독점적인 무기 판매권을 누리고 있다(프랑스 등 일부 경우는 예외). 더욱이 역대 AIT 대표들은 군수 계약액에 따라 업적을 평가받는다. “내가 회장이던 시절에는 트럼프 정권 때보다 조금 적은 130억 달러(96억 유로) 어치의 무기를 판매했다”라고 스탠튼이 강조했다. 

2019년 7월 9일, 미 의회는 대만에 대해 다목적 전투기 F-16V 66대, M1A2T 에이브람스 전차 108대, 스팅어 대공 미사일 250대, 그 밖에 각종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심지어 대만의 군수 수요에 조금 더 긴급히 대응할 수 있도록 ‘수요 평가 시스템’까지 개발했다. 2020년 11월, 4주간 대만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역사상 처음으로 대만 남부 쭤잉 해군기지에 미국의 (퇴역 군인이 아닌) 현역 해군이 파견됐다고 대만 해군 참모부는 확인’(3)해줬다. 하지만 미 정부는 중국 전투기에 맞대응할 능력을 지닌 F-35 판매만은 끝내 거부했다. 역내 유일무이한 지정학 균형의 수호자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휴스턴 세인트토머스 대학 국제학과의 예야오위엔 학과장은 “결코 지금의 역학관계를 뒤집는 게 목표가 아니다”라며 미국의 결정 근거를 설명했다. 

 

“대만은 체스판의 말이 돼버렸다”

차이잉원 정부와 전 세계 언론은 미국과 대만의 긴밀해진 관계에 박수를 보내지만, 정작 대만의 야권 인사들은 위험성을 경고한다. 국민당 대변인 호치융은 “안타깝게도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신중한 정책을 추구하는 대신, 두 강대국이 겨루는 지정학적 체스판의 말이 돼버렸다”라고 개탄했다. 오랫동안 양안통일을 절대적 과제로 간주해온 국민당은 어느새 양쪽으로 의견이 갈라졌다. 당원 일부는 이제 미국을 전략적 차원의 동맹, 중국을 중대한 경제파트너로 삼는 ‘평화적인 현상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집권 민주진보당(DPP)은 ‘평화적인 현상유지’를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미국이 중국의 압박을 견제하고, 젊은 세대가 널리 염원하는 독립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고의 동맹이라고 판단한다. 호치융은 “대만이 서로 이익이 상충하는 두 강대국과 협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한쪽 편을 선택하는 것은 전혀 이롭지 않다. 왜냐하면 아무도 전쟁이 발발하기를 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예야오위엔은 현 대외관계를 매우 균형적이라고 판단한다. “대만은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미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미국도 역시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을 필요로 한다.”

차이잉원은 부쩍 가까워진 미국과의 관계를 과시할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2020년 6월 6일, 미국이 백신 75만 회분을 무상 지원해주기로 한 데 대해, 대만 정부는 감사의 표시로 타이베이의 역사적 명소인 ‘그랜드호텔’(원산대반점) 외벽에 조명을 이용해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큼지막하게 ‘USA’라는 세 글자를 새겨 넣었다. 그로부터 14일 뒤 이번에는 미국이 250만 회분의 백신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자, 대만 최고의 랜드마크, ‘타이베이 101빌딩’은 ‘미국-대만 우정 만세’라는 문자로 장식됐다.

2020년 8월, 마지막 ‘옥의 티’를 지워냈다. 차이잉원 총통이 가축 성장촉진제 락토파민이 함유된 돼지고기에 대한 금수조처를 해제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과 오랜 갈등의 원인이 돼온 이 문제는 1994년 대만이 미국과 무역투자기본협정(TIFA)에 서명하고도 이후 수차례 육류수입 제한 등의 문제로 협상을 중단하는 걸림돌이 돼왔다. 대만 정부는 미국과 협상을 재개함으로써 앞으로 더 광범위한 자유무역협정을 이루어내어 최대 통상파트너인 중국의 의존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고 있다.

물론 차이잉원은 민주진보당 출신 전 총통 천수이볜(2000~2008년)과 달리, 자신은 대만의 독립을 공공연히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그런 반면, 정작 막후에서는 은밀히 대만의 더 많은 안전보장과 공식적 인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샤오메이친은 “이는 우리의 장기적 생존에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한 마디로 요약했다.(4)

이스라엘 로비세력에 비해 비교적 언론의 관심은 적지만, 사실 대만의 로비세력 역시 미국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무기 판매를 고무하기 위한 로비가 활발하다. “많은 싱크탱크가 미국의 대외정책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만한 분석 자료를 무수히 생산해내고 있다. (...) 하지만 이들의 연구가 미국 내 대만의 대표자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이뤄진다는 사실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미국이 군사 위주의 대외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여기는 ‘책임 있는 국정을 위한 퀸시 연구소’의 엘리 클리프턴이 취재진에게 확언했다.

가령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런 종류의 조직으로는 ‘프로젝트 2049 연구소’를 꼽을 수 있다. 대만 정부와 미 군수산업의 후원을 받는 이 싱크탱크는 미 정부가 대만의 국제 조직 참가를 비호하고, AIT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는 한편, 태평양지역 역내 동맹국들의 경제적 통합을 장려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일부 연구는 심지어 중국 침략론을 운운하기까지 한다.(5)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시진핑이 했던 연설도 도마에 올랐다. 당시 시 주석은 “대만 문제를 해결하고 조국을 완전히 통일해야 한다”(6)라고 호소하며, “그 누구도 국가의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을 수호하려는 중국 인민의 결연한 결심과 의지, 충분한 능력을 저평가해서는 안 된다”라고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AIT의 역할은 정확히 무엇인가? 이 은밀한 대사관의 수뇌부는, 취재진의 이 질문에 끝내 답변하지 않았다. 샌드라 오드커크 신임 대표가 부임한 뒤에도 상황은 전혀 변함이 없다. 대만 국방부 역시 침묵을 지키기는 매한가지다. 대만해협 안보 문제에 정통한 휴고 티어니 박사는 “분명 대만과 미국의 군대 사이에는 서로 소통 채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부분의 관계는 매우 신중한 성격을 띠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여기서 ‘신중’이란 말은 그나마 가장 부드러운 표현에 해당하리라. 

 

 

글·알리스 에레 Alice Hérait
기자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Luke Martin의 인터뷰, The KK show #67, 2021년 2월 16일.
(2) 중국, 호주, 한국 등에 부임한 적이 있는 이 외교관은 2006~2009년 주한미군사령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국방부로부터 ‘우수시민봉사훈장’을 수여받았다.
(3) Catherine Bouchet-Orphelin, ‘Exercices militaires conjoints des marines. La gifle américaine 해군 공동 군사훈련. 미국이 날린 따귀’, <Asie21-Futuribles>, Paris, 제144호, 2020년 11월.
(4) Shannon Tiezzi, ‘What to expect from US-Taiwan relations in 2021(and beyond)’, Hsiao Bi-Khim과의 인터뷰, <The Diplomat>, Arlington(미국), 2021년 2월 11일.
(5) Jae Chang, Coordinated competition in the Indo-Pacific, Project 2949 Institute, Arlington, 2021년 7월 1일.
(6) <신화> 홈페이지에서 프랑스어 연설 전문을 확인할 수 있다. 베이징, http://french.xihua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