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가 이긴 에콰도르 대선, 좌파 운명은?

2021-09-30     기욤 롱 l 에콰도르 전 외무부장관

남미 에콰도르에서 전직 은행가 출신 기예르모 라소가 좌파 성향 경제학자 안드레스 아라우스를 상대로 지난 4월 11일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번 선거로 에콰도르가 사회주의로 회귀하기 보다는 개방적인 시장 정책을 유지하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우파 정당의 승리는 최근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에서 좌파 정당이 승리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추세를 꺾은 것으로 풀이된다. 좌파에서 출발해 우파로 돌아선 레닌 모레노 전대통령이 자신의 친정인 좌파의 유산을 파괴해, 다시 우파 집권의 길을 닦았다. 새 정권 하에서 에콰도르 국민들에게 희망의 빛이 보일 것인가?

 

지재 에콰도르의 사정은 매우 나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더욱 열악해졌다. 정부는 2020년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1만 3,932명으로 집계했으나,(1) 1,700만 인구의 에콰도르에서 최근 몇 년 간 초과 사망자 수가 4만 명을 넘어섰다.(2) 그 원인이 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팬데믹이 야기한 보건 위기의 결과임은 부인할 수 없다.

 

고용주에게 칼자루를 준 경기침체

이런 상황은 SARS-CoV-2(코로나바이러스의 정식 명칭)가 출현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만신창이가 된 경기침체를 더욱 악화시켰다. 2020년 국내총생산(GDP)은 10% 급락했고, 이 수치는 19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통계 자료들을 통틀어 여태까지 국민계정에 기록된 바 없는 가장 심각한 수준이 될 것이다. 실업률(6.6%)은 2009년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불완전 고용은 23.4%에 이르렀다.(3) 정부는 이런 위기에 긴축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2019년에 이미 축소된 국가 교육 예산은 2020년에 25% 삭감됐다.(4) 팬데믹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레닌 모레노는 퇴임하기 전, 40억 달러의 정부지출을 추가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5) 모레노는 이를 틈타 노동법을 개악했다. 이제 고용주들은 계약 조항을 일방적으로 변경하고, 근무시간 및 작업일정, 임금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됐다.(6)

모레노의 대통령 취임 당시 공공부채 총액은 GDP의 40%에 달했다. 그러나 전임 대통령의 채무 비율을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는 모레노는, 미지불 금액을 GDP의 65%로 올려놨다(국가채무는 팬데믹 이전인 2020년 1월에 이미 53.4%에 달했다). 2019년 초, 모레노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원조를 요청했다. IMF의 신임 총재인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가 긴축정책을 반대했음에도, IMF는 경기를 더욱 후퇴시킨 개혁 실행에 IMF가 개입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워싱턴에 소재한 이 기구가 에콰도르에서 실시한 이 개혁 방안은 이런 점에서 에콰도르 국민들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 우파 자유주의자들도 이 권고안을 무시하기로 다짐했다. 예를 들어 2020년 10월 1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총 16명의 후보 가운데) 선두를 달리는 세 후보 중 하나인 기예르모 라소는 “우리는 그들이 제시한 방안이 불황을 가중시킬 것임을 IMF에 분명히 밝힐 것”이라고 주장했다.(7) 그러나 2018년에 라소는 IMF와 ‘가능한 한 조속히’ 협정을 체결하라고 모레노 정부에 촉구한 바 있다.

 

조세회피 의혹을 받는 금융가, 라소

기예르모 라소 신임대통령은 방코 과야킬 그룹의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대주주의 한 사람이며, 경영주 및 금융계를 대표해왔다. 라소의 선거운동은 모레노가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들인 주류 언론의 지지를 받았다. (89) 2013년 첫 번째 대선 도전에서 코레아에게 패하고, 2017년에 두 번째 도전에서도 실패한 라소는 세 번째 도전에서 승리했다. 그의 선거운동은 자유주의 및 보수주의 진영에서 직접 지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세금, 관료주의를 비판하고, 에너지를 ‘민영화하는’ 문제와 관련해 민간 부분을 극찬하며, 개인의 자유를 찬양하고,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무기 소지를 허용하는 것 등이다. 

에콰도르 국민들은 라소를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자밀 마후아드 정부(1998~2000)에 참여했고, 과야스 주 주지사를 지냈으며, 이후 잠깐 재정경제부 ‘특임장관(Superminister)’을 맡은 이력 덕분이다. 라소가 정부에서 활동한 이 시기는 정치 및 경제적 위기가 극심한 기승을 부린 10년(1996~2006)의 정점을 찍은 때였다. 10년 동안 7명의 대통령이 교체됐고 하룻밤에 군사정권이 들어서기도 했다. 선출된 대통령 중 누구도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1999년 16개 은행이 파산했다는 것이다. 예금계좌는 동결됐고, 에콰도르 화폐인 수크레화가 붕괴했다.

2000년 1월 9일, 에콰도르는 결국 달러화를 공식화폐로 채택했다. 인플레이션과 통화 가치 하락을 종식시키기 위한 과감한 조치라고는 하나, 그 사회적 비용은 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시 거대한 국외 이주의 물결이 나라 전역을 휩쓸었고, 에콰도르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이 암울한 시기를 벗어났다. 라소는 자포자기한 예금주들의 동결된 공적 예금 증서를 반값에 사들여 부를 축적했고, 지금까지도 조세회피처에 다수의 해외계좌를 보유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라소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9)

 

채굴에 맞선 환경운동가, 과르탐벨

라소에게 패배한 환경운동가 ‘야쿠(Yaku)’는 과거 카를로스 페레스 과르탐벨로 불렸으나 자신의 이름을 케추아어(語)로 ‘물’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야쿠는 선거에서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권리 옹호와 생태학 관련 이슈를 제기했다. 현재 에콰도르 남부의 한 지방정부 수장인 그는 젊은 유권자들, 특히 환경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의 표심을 잡고자 역동적인 선거운동을 벌여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는 자신이 밀어붙이는 개발 모델을 홍보하기보다는, 해변에서의 요가와 신(新) 안데스 정신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개발지향적인 시류를 쫓았던 라틴아메리카 좌파와는 달리, 고유의 정체성과 공동체주의에 공감하며 채굴주의(자원을 채굴해 최소한의 가공 과정을 거친 후 수출하는 활동)에 반대하는 물결에 편승하는 선거운동을 벌였다. 라틴아메리카 좌파에 대한 그의 적대감은 볼리비아 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가 2019년 11월 11일 쿠데타로 축출된 다음 날, 그를 ‘작은 독재자’(10)로 규정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후 그는 미주기구(OAS)(11)가 부정선거에 관여했다며 (근거 없는 비난)을 되풀이했다.(12)

2017년 라소에게 투표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던 ‘야쿠’는 하이메 바르가스와 레오니다스 이자가 대표하는 좌익과 갈등을 빚고 있는 원주민 운동의 우익 소수파 출신이다. 2020년 10월 민주주의를 회복한 볼리비아에 에보 모랄레스가 귀환하면서 에콰도르의 좌파 후보인 안드레스 아라우스와 매우 공개적인 방식으로 회동할 것을 제안했을 때, 하이메 바르가스와 레오니다스 이자는 이를 수락했다.

 

‘시민혁명’을 앞세운 젊은 아라우스

2007년 코레아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탄생한 ‘시민혁명’ 운동은, 자신들의 역사적 테두리 안에 있는 후보가 아닌 안드레스 아라우스를 선택함으로써 반대파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에콰도르 헌법은 최고위직을 수행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을 35세로 정하고 있다. 올해 만 35세가 된 아라우스는 자신의 입후보로, 인구의 40%가 16~39세인 지역과, 16세부터 선택적으로 투표가 가능하고 18세부터 의무 투표가 시행되는 지역에서 표심이 움직여주기를 바랬으나 희망사항으로 끝났다. 아라우스에 쏟아지는 공격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우파들이 몇 년 전부터 이구동성으로 부르짖은 말들을 되풀이한 것이었으나 보수 언론의 선동은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13) 아라우스에 대한 비판의 또 다른 축은 그가 주장한 경제의 ‘탈 달러화’였다. 달러화가 에콰도르 경제를 심각하게 구속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1999~2000년의 대위기 이후 미국 달러를 에콰도르 통화로 채택함으로써 통화 불안정을 종식시켰다고 연결지어 생각한다. 따라서 국민들은 달러화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아라우스의 선거운동은 주로 SNS 등을 통해 이뤄졌다. 아라우스는 달러화를 위협하는 자들은, 오히려 달러를 해외로 대량 반출할 수 있도록 금융 규제 완화를 지지하는 이들이라고 반박한다. 실제로 라소와 페레스는 외화유출세(ISD)를 폐지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전의 코레아와 페레스처럼, 결국 아라우스도 ‘카스트로-차베스주의’(14)의 망령으로 몰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사실상 모든 헤드라인을 장악한) 우파 언론은 카라카스(베네수엘라)의 열악한 상황을 여러 면에 걸쳐 다루면서 아라우스의 선거운동을 비판했다. 지난 몇 년간 베네수엘라 난민이 에콰도르로 대거 유입됐다는 뉴스를 내보내면 이런 각도의 공격 효과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멕시코(2018), 아르헨티나(2019), 볼리비아(2020)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승리했고, 2020년 10월 칠레는 국민투표로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남긴 헌법을 몰아냈다. 아라우스가 승리했다면,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 세력의 귀환이 됐겠지만, 선거결과는 좌파의 예측을 빗나갔다. 

 

 

글·기욤 롱 Guillaume Long
에콰도르 전 외교부 장관, 워싱턴 DC. 소재 경제정책연구소(CEPR) 애널리스트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Covid-19 en Ecuador : 204 249 casos confirmados ; muertes en el contexto de la pandemia ascienden a 13 932 에콰도르의 코로나19 : 확진자 20만 4,249명, 유행 상황에서 사망자 1만 3,932명’, El Comercio, Quito, 2020년 12월 17일.
(2) ‘Ecuador acumula más de 25 000 muertes por causas inciertas en 2020 에콰도르에서 원인불명으로 2020년 2만 5,000명 사망’, El Comercio, 2020년 11월 29일.
(3) 에콰도르에서 불완전 고용은 최저임금(2020년 400달러) 미만을 받거나, 일할 의향이 있음에도 정규직으로 일할 수 없는 경우를 일컫는다. 국립통계조사청, www.ecuadorencifras.gob.ec
(4) Mariela Rosero 마리엘라 로세로, ‘USD 894 millones menos tiene Educación, en este 2020 2020년 교육 예산 8억 9,400만 US 달러 삭감’, El Comercio, 23 juin 2020년 6월 23일.
(5) Evelyn Tapia 에벨린 타피아, ‘Lenín Moreno anuncia siete medidas ; recorta USD 4 000 millones del gasto público 레닌 모레노 7개 조치 발표: 공공 부문에 40억 US 달러 삭감’, El Comercio, 2020년 5월 19일.
(6) María Vanessa Silva 마리아 바네사 실바 & Mónica Orozco 모니카 오로즈코, ‘La flexibilización laboral incluye las jornadas y la remuneración 노동 유연화에 노동 시간 및 임금 포함’, El Comercio, 2020년 5월 17일.
(7) ‘Guillermo Lasso : “Los compromisos que haya asumido este gobierno con el Fondo Monetario Internacional son de este gobierno (de Lenín Moreno)” 기예르모 라소: “IMF와 이 정부가 한 약속은 (레닌 모레노) 정부의 것이다”’, El Universo, Guayaquil, 2020년 10월 14일.
(8) ‘Lasso exhorta a Moreno a negociar con el FMI antes de que sea tarde 라소는 너무 늦기 전에 모레노가 IMF와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La República, Guayaquil, 2018년 10월 14일.
(9) Cynthia García, ‘Lasso, el magnate de las offshore 라소, 해외에 재산을 축적한 부호’, Página 12, Buenos Aires, 2017년 3월 15일.
(10) 2019년 11월 11일, 반모랄레스 시위 도중 ‘정치 및 군사적 억압에 희생된 사람들과 연대하는’ 회합에서.
(11) Guillaume Long 기욤 롱, ‘Le ministère des colonies américaines 미국의 손아귀에 예속된 미주기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5월호, 한국어판 2020년 6월호.
(12) Anne-Dominique Correa 안도미니크 코레아, ‘Bolivie, chronique d’un fiasco médiatique 실패한 언론의 연대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10월호.
(13) Perry Anderson, ‘Au Brésil, les arcanes d’un coup d’État judiciaire 브라질 부패스캔들의 진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9년 9월호.
(14)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2016년 사망)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2013년 사망)를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