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개헌이 답일까?
한 사람에게는 기회, 다른 모두에게는 교란 작전
오랫동안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독재에 시달려온 칠레에서 국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과거를 끊어내고 사회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인가? 강력한 사회운동이 일어나자 보수 성향의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새 헌법’이라는 방안을 내놨다. 이는 국민들의 항의에 굴복한 것인가, 아니면 항의를 무마할 수단을 찾은 것인가?
사람들은 알론다르 카리요가 기뻐하리라 예상했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분통을 터뜨렸다. 여러 해 전부터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활동해온 이 젊은 페미니스트 운동가는, 조국 칠레에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대통령 임기: 1973~1989) 장군이 남긴 군사 독재의 유산인 ‘1980년 헌법’이 청산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민주화 이후 집권한 정부마다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힘썼으나, 코로나19 팬데믹이 절정에 이르면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결국 정권은 ‘마그나 카르타’를 다시 써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2021년 4월 21일로 예정된 제헌의회 선거에서 기존 정당이 아닌 무소속 후보를 선택한 2,000명의 시민 추천이 용이하도록 가상 플랫폼이 마련됐다. 카리요는 ‘3월 8일 페미니스트 연합’의 동료들과 함께(1) 출마했다. 그러나 3월 2일, 카리요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선거 당국이 선거자금 조달 방식을 대중에게 공개했는데, 유사한 조건들을 대형 정당에는 적용하고 무소속 후보들에게는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카리요는 이를 ‘반민중적 차별’이라고 규탄하면서, “이미 입후보 승인 서명을 받은 450명의 무소속 후보들에게 이 장애물 통과 훈련은 언제 끝날지 모를 고된 여정이 될 것”을 예감했다.
1989년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뒤, 중남미 엘리트들은 칠레를 ‘합의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묘사해왔다. 1975년 군부가 개시한 신자유주의 반혁명의 ‘성공신화’는 불평등하고, 상품화되고, 무질서한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면서 점차 균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피노체트 장군의 군홧발에 민중운동이 무너지고 고용 불안정이 일상화되고 있었으나,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사람들의 분노는 불씨가 꺼지지 않은 채 은밀히 타오르고 있었다. 학생들, 항만 및 광산 노동자들,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들, 연금에 기대어 살아가는 퇴직자들, 채무에 시달리는 중산층 등 일부 사회계층은 2006년부터 불만을 표출해왔다. 작은 불씨들이 언제라도 큰불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칠레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2019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해 10월 9일, 우파 성향의 백만장자 대통령 세바스티안 피녜라는 “우리는 칠레를 격동 속의 중남미에서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진정한 오아시스로 본다”라며 자랑스러워했다.(2) 며칠 뒤 발생한 민중 봉기의 규모에 놀란 피녜라 정부는 국가보안법(공공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즉결 심판을 허용하는 예외법)을 빌미로, 600만 시민이 거주하는 수도의 지하철 노선을 전면 강제 폐쇄했다. 매일 밤 카라비네로(지역 경찰 병력)가 바리케이드를 뚫고 몰려드는 시위대와 맞붙었다. 지하철역 여러 곳이 불길에 휩싸였고, 경찰서 한 곳과 다국적 에너지 기업 에넬의 빌딩도 불에 탔다. 부상자도 다수 발생했다.
이른 아침, 피녜라 대통령은 평화로운 오아시스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모두 잊은 듯했다.(3) 10개 도시에 야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독재정권이 물러난 뒤 모습을 감췄던 군대가 거리에 배치됐다. 다음 날 대통령은 전투태세를 갖춘 국방부 장관과 여단장을 대동하고 국민들 앞에 섰다. 그는 비장한 어조로 “우리는 강력하고 무자비한 적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적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안중에 없고, 통제 불능의 폭력과 범죄를 저지를 태세입니다”(4)라고 말했다. 적이라고? 사람들은 북단에서 남단까지 칠레 전역에서 모여들었고, 이들 가운데 특히 젊은이들을 보면 그 규모 면에서 1980년대에 독재와 싸운 사람들이 떠오른다.
시위대의 등 뒤에서 승인된 합의
민심을 폭발시킨 기폭제는 고작 몇십 원에 불과한 지하철 요금 인상이었다. 2019년 10월 7일부터 중·고등학생들이 무임승차 시위를 벌였고, 무리 지어 개찰구를 뛰어넘으며 시민들에게 동참을 호소했다. SNS 덕분에 시위 관행들은 나날이 진화했다. 정부는 거리에 배치된 경찰 병력을 늘려 진압하려고 했으나, 이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 10월 25일, 약 200만 명의 인파가 거리에 나왔다. 칠레 역사상 최대 규모의 행진이 벌어져, 한동안 언론이 정부를 지지하는 기사를 내보낼 수 없을 정도였다. “칠레는 깨어났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완전한 민주화와 폭력적 경제 모델이 빚어낸 불만들이 모조리 되살아났다. ‘존엄의 광장’이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탈리아 광장에는 인디오 마푸체족의 깃발이 칠레 국기와 나란히 휘날렸다.
도심의 벽은 부패 스캔들로 신망을 잃은 정치권, 부정축재 사건으로 얼룩진 군부, 사제복을 입은 소아성애자들에게 선처를 베푼 가톨릭교회를 비난하는 각종 슬로건과 그라피티들로 뒤덮였다. 저녁마다 거리에서는 도시 외곽의 서민 구역과 중산층 구역의 주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데 모여 냄비를 두들기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음악회라도 열리는 듯했다. 궁지에 몰린 정부는 비상사태를 해제했고, 피녜라 대통령은 장관 2명을 해임하고 몇 가지 사소한 대책들을 발표했다.
진압이 계속됐지만 시위도 멈추지 않았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카라비네로는 광범위한 방식으로 시위대의 권리를 침해했다.”(5) 44일 동안 1만 2,000명이 넘는 부상자들이 응급실에 실려 왔다. 2,000여 명이 화기에 부상을 당했고, 350명이 눈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법원에는 경찰서에서 발생한 수천 건의 고문 사건과 공권력 집행자들이 저지른 수백 건의 성폭력 신고가 밀려들었다. 그러나 무처벌 관행은 여전하다. 2,000명 이상(재판 전 구금을 포함해)이 여전히 재판을 기다리고 있고, 심지어 1년 이상 대기 중인 경우도 있다. 여기에는 미성년자들도 포함돼 있는데, 사면을 요구하는 공산당 소속 의원 카밀라 바예호(6)를 비롯한 일부 정치인과 변호사들은 이들을 전부 ‘정치범’으로 간주한다.
국가의 오른손을 충실히 휘두르던 행정부는 곧 이 위기를 타개할 정치적 이슈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야당이 거리의 활력을 회복시켜줄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국적이고 급진적이며, 수평적인 이 운동은 신자유주의에도 지난 30년에 대한 공동 책임을 묻고 있기 때문에, 중도좌파 성향의 정당 및 노조 지도부는 이를 통제하기는커녕 겁에 질린 상황이었다. 이제 ‘폭도들’은 피녜라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국민적 압박이 거세지면서 칠레 중앙노동조합총연맹(CUT)은 2019년 11월 12일 총파업을 조직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국민적 총파업이 성공하자 사측과 라모네다(대통령 관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러자 국민혁신당(RN)과 독립민주연합(UDI)이 주도하는 여당은 교묘한 전략을 펼쳤다. 그해 11월 15일 밤, 여당은 의회 내 고위급 의원들이 ‘사회 평화를 위한 합의 및 새 헌법 제정’에 서명하게 했다. 제헌 국민투표를 조직함으로써 통제권을 다시 장악하고 사회운동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것이었다. 공산당(PC)은 이 유혹에 저항했지만, 기독민주당과 (1990~2010년에 집권했던) 사회주의자들을 비롯해 프렌테 암플리오(FA, 2011년 학생운동을 계기로 탄생한 좌파 소정당 연합)의 과반이 이러한 구상에 찬성표를 던졌다. “야당 대다수가 법치주의 붕괴와 군사 쿠데타 가능성을 내세워 야당을 겁박하는 우파에 수치스럽게 굴복했다”라고 기자 마누엘 카비에세스는 평했다.(7)
처음에는 시위에 참여한 국민들에게 등을 돌리고 합의에 서명한 것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피녜라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있다. 일부 좌파가 2020년 10월에 실시된 투표를, 초대통령 중심적·신자유주의적인 정권을 심판하고, 보다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제도를 구상하며, 구리·리튬·물 등 자원의 재국유화를 재개하고, 원주민의 권리를 인정하는 다민족 국가를 이룩할 기회로 보았기 때문이다. 투표 당일, 유권자의 절반만이 움직였다. 투표자의 78%가 제헌에 찬성했고, 79%가 직접보통선거로 선출된 의회에 동의했다. 따라서 4월 11일, 제헌의회 위원을 선출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선거를 치르게 됐다.
칠레의 정치 판도가 새롭게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공화정 200년 역사에서 칠레는 오로지 과두정치가 제정한 헌법만을 경험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의회에서 오랜 협상이 이루어진 덕분에 (세계 최초로) 동수 의석을 확보할 것이고, 관계자들이 요구한 비율에 부합하지는 않지만 원주민도 의석을 할당받을 것이다. 9~12개월의 의결 과정을 거친 뒤, 새 ‘마그나 카르타’는 다시 한번 국민투표를 통해 승인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승리라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승리인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피녜라 대통령은 뒷수습에 나섰다. 어제는 이 나라의 모든 기능을 마비시킨 장본인이, 오늘은 변화의 보증인이 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기관들이 다시 공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2021년 4월 11일에는 제헌의회 선출과 동시에, 시·구 선거가 실시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선은 언론도 독점해야 한다(1차 투표는 11월에 실시됨). 물론 대통령과 결탁한 강경파는 피노체트 장군이 쌓아올린 위대한 헌법의 업적이 무너진다는 생각에 분개할 것이다. 그러나 우파가 (제헌의회가 아니라) ‘합의’를 거론하는 데 끈질기게 매달린 것은, 새로 선출된 기구가 기술적 예비 위원회라는 테두리 내에서만 의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제헌의원들은 국제조약(즉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제출된 각 헌법 조항은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특히 우파가 연합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파에 대한 다수결 저지 원칙이 적용되지만, 중도파와 (공산당을 비롯한) 의회 내 좌파 연합은 공통된 목록에 합의할 수 없었다. 결국 사회 운동권 출신 후보들이 눈에 띄는 존재감을 표출할 기회는 사라졌다. 선출 기준을, 선거 규약에 부합하고 당선 명부의 상위 후보자들을 과잉 대표하는 국회의원 선거의 비례대표제를 모델로 정했기 때문이다.
우파를 위한 다수결 저지 원칙
이들이 정당 밖에서 후보들을 후원할 수 있다고 해도, 각 방송사별 공식 TV 선거운동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다. 따라서 소위 ‘대의’ 기구들은 독점권을 갖고 각각 수십만 달러를 선거자금(UDI는 80만 달러)으로 쓸 수 있는 반면, 운동권 후보자들은 1,700달러를 똑같이 나눠 가지게 된다. 이런 상황이니, 카리요가 ‘기업인들에게 봉사하는’ 법안을 규탄하며 분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동시에 경찰 진압도 계속됐다. 경찰은 선거를 몇 주 앞둔 3월 동안 유독 격렬하게 시위를 진압했다.
그럼에도 카리요나 생태학자 루시오 쿠엔카, 조합운동가 루이스 메시나, 페미니스트 변호사 카리나 노할레스는 이를 여전히 옳은 결정으로 본다. 이들은 환상을 품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한쪽 발은 사회운동에, 다른 발은 현재 개방되고 있는 헌법의 영역에 들여놓고 있기 때문에 싸움은 장기화될 것이다. 노할레스는 “제헌의회에서 우리의 목소리와 계획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는 투쟁의 일환으로 거리에서 우리의 요구사항을 결정하고 주장해왔다. 우리의 목소리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현재 신자유주의적 행정을 펼쳐온 정당들에 좌우되지 않는 투표를 요구한다”(8)라고 힘주어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식의 참여를 비판하면서, 권력자들의 서약에 따라 제정되는 헌법의 함정이 2019년 10월부터 이어져 온 투쟁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선거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 위해 헌법을 바꾼다는 점에서, 겉으로만 민주적인 제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2020년 말 안드레스 알라만드 외교부 장관의 설명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 독재시대의 사도는 새 헌법이 칠레를 ‘재건하지’ 않을까 우려한 모든 이들을 안심시키려 애쓰면서, 자신이 ‘엄청난 실수’라고 생각한 것을 설명했다. 오히려 그는 새 법안이 “칠레 경제 발전의 핵심 중추, 이를테면 사유재산의 존중, 개인의 주도권, 국내 및 외국인 투자자 간 차별 없는 대우와 같은 요소들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유지”(9)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의 조사를 보면, 보수 측이 이런 상황을 반길 만도 하다. 보수 측은 40%가 넘는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제헌의회에 대한 다수결 저지 비율 유지를 확실히 보장받는 반면, (PC나 FA 등) 좌파는 20% 수준이고, 무소속 후보들은 5% 미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성공에 힘입어 피녜라 대통령은 여론조사에서 약하게나마 지지율이 상승했고, 일부 측근들은 2021년 말 대선에서 그가 재기할 것을 점치기도 했다. 국민들이 모든 것을 걸고 다시 한번 일어서지 않는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글·프랑크 고디쇼 Franck Gaudichaud
툴루즈-장조레스 대학교 중남미 역사·문명학과 교수. 『황금시대의 종말. 중남미의 진보주의 정부들(1998~2018)』(Presses universitaires de Rennes, 2021) 시리즈 코디네이터.
번역·조민영
번역위원
(1) ‘Marée féministe au Chili 칠레 변혁에 앞장선 페미니즘 물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5월호, 한국어판 6월호.
(2) ‘Au Chili, les vieilles lunes de la nouvelle droite 칠레 뉴라이트 정권, 해묵은 우파 본성’,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1년 5월호.
(3) 루이스 세풀베다, ‘Chili, l’oasis asséchée 칠레, 말라붙은 오아시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2월호, 한국어판 2020년 1월호.
(4) CNN Chile, 2019년 10월 29일.
(5) ‘Ojos sobre Chile : violencia policial y responsabilidad de mando durante el estallido social 칠레에 대한 시선: 사회적 위기 동안 경찰의 지휘 책임’, Amnesty International, México, 2020년 10월.
(6) Camila Vallejo, ‘Les étudiants chiliens dépoussièrent une icône 우상에 먼지 터는 학생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9월호.
(7) Manuel Cabieses Donoso, ‘Caperucita roja y la derecha feroz 빨간 모자와 공격적 우파’, Diario y Radio U Chile, 2021년 1월 18일, https://radio.uchile.cl
(8) Candidatas independientes de la Coordinadora 8M que van a la Convención : “Nuestra voz es indelegable” 제헌의회에 출마하는 la Coordinadora 8M 소속 독립 후보들: “우리의 목소리를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El Desconcierto, 2021년 2월 18일, www.eldesconcierto.cl
(9) Rocío Montes, ‘Andrés Allamand : “Sería un gravísimo error que Chile se refundara en la nueva Constitución” 안드레스 알라만드: “개헌으로 칠레를 재건하려는 것은 심각한 실수가 될 것”’, <El País>, Madrid, 2020년 1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