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에 등장한 모래장벽의 지정학

2021-09-30     레미 카라욜 외

영토를 보호하거나 국경을 지키려고 벽이나 담장을 만드는 일은 전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관행이다. 현재 이 관행은 아프리카 내륙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동을 방해하고 있다. 모로코에서 알제리를 거쳐 니제르에 이르기까지 각국 당국은 비밀리에 모래 장벽을 세우고 경찰과 군인, 카메라를 동원해서 이곳을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다.

 

목적지도 모른 채 이웃집 사람과 함께 모국 기니를 떠난 유수프(1)는 전쟁 중이던 말리를 가로질러 알제리 국경을 넘고, 리비아의 뜨거운 모래사막을 걷고, 지중해의 파도를 넘어 9개월 뒤에야 유럽 대륙에 발을 디뎠다. 16세 소년, 유수프는 말리의 가오 마을과 알제리 국경을 잇는 길에 놓인 사제폭발물로부터, 위험하다는 알제리 경찰로부터, 트리폴리에서 돈을 갈취하려는 리비아 민병대로부터 도망쳤다. 그는 숨고, 눈을 내리깔고, 검문소를 피해 가야 했다. 

유수프가 가장 놀랐던 것은 동행자들과 그의 발을 묶은 게 모래장벽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알제리와 리비아 사이에 있는 국경을 넘으려고 사막에서 3일 밤낮을 걸었다. 앞으로 다닐 학교가 있는 프랑스 남부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유수프가 말했다. “엄청났어요. 갑자기 자동차로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거대한 모래장벽이 앞에 나타났어요. 안내인은 우리를 내려주면서 벽이 나올 때까지 걸으라고 했어요. 그 벽을 넘었더니 리비아였어요.”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 오는 이민자들은 모두 알제리 국경을 넘을 때 이 모래장벽을 보게 된다. 사하라의 상인과 밀수업자들은 이곳을 어떻게 우회할지 배우게 됐다. 알제리 변방 마을 주민들은 이 장벽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알제리의 사하라 영토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2~5미터 높이의 거대한 인공 사구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을 아는 알제리인은 많지 않다. 알제리 남부에서 연구를 진행했던 지정학자 라우프 파라는 강조했다. “수도 알제에서는 우리가 이 거대한 인공 장벽에 둘러 싸여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2) 

 

2,700km에 달하는 ‘안전띠’

국가체제가 독재주의든 민주주의든, 국경 수호를 위해 장벽이나 울타리를 건설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흔한 일이 됐다.(3) 북아프리카나 서아프리카에서는 드문 일이었지만, 이제는 드물지 않다. 최근 위성사진을 보면 여러 모래장벽을 확실하게 볼 수 있다.(4) 사하라 사막은 경계가 없는 광활한 사막지역이자, 무기·마약·담배·정유 밀매의 온상지이자 밀수업자와 강도, 반란군, 지하드 전투원 및 이민자들이 판치는 ‘회색 지대’로 자주 묘사됐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서양에서 홍해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모래장벽으로 나뉘어 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서사하라를 가로지는 장벽이다. 이곳은 1975년 말 스페인 식민통치가 끝난 뒤 모로코가 점유하고 있지만, 모로코로부터 서사하라의 독립을 주장하는 ‘폴리사리오 전선(알제리의 지원을 받는 단체)’이 요구하는 지역이다. ‘안전띠’라고도 불리는 이 ‘분리 장벽’은 1980년대에 모로코가 쌓은 것으로 길이가 2,700km에 달한다.(5) 

이후 점점 더 정교한 전자기기들이 이 곳을 지키고 있으며, 그 길이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1991년 9월에 유엔 중재로 휴전 협정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로코군은 기발하게도 이 장벽을 모리타니 국경까지 14km 연장했다. 사하라를 가로지르는 유일한 아스팔트길이 차단되는 것을 막고, 폴리사리오 전선이 대서양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 2021년 3월, 서사하라 북단에 알제리 국경과 좀 더 가깝게 50km 남짓한 모래장벽이 새롭게 축조됐다. 모로코 언론에서는 알제리 틴두프에 있는 폴리사리오 전선 난민캠프로 통하는 출입로를 막기 위한 방법이라고 소개했지만, 위성사진을 보면 남쪽으로 향하는 출입로를 전부 막은 게 아니었다. 

모로코의 모래장벽은 오랫동안 예외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후에 여러 국가들이 이를 모방하면서 이제 선구자적 모델로 평가받는다. 다른 국가들은 불도저로 대폭 보강한 벽으로 국경을 둘러쌌다.

튀니지와 이집트는 2011년 리비아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 무장 괴한의 습격으로부터 자국을 지킬 필요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후 튀니지가 건설하기 시작한 모래장벽은 남동부 데히바 국경 초소 인근까지 200km에 달하며 미국의 경제·기술 협조를 받은 통합전자감시체계가 구축돼 있다. 이집트는 1931년 이탈리아 파시스트가 남긴 270km 길이(지중해부터 이집트의 시와 오아시스와(Siwa) 리비아의 알자그부브 오아시스 부근까지)의 ‘국경 철조망’을 이어나갔다.(6) 이집트도 미국의 도움을 받아 리비아와 수단을 접하고 있는 서쪽과 남쪽 국경지대에 전자감시장비를 설치했다. 위성사진을 보면 수단과의 국경지역에 홍해안에서부터 내륙지역에 이르는, 30km 남짓한 또 하나의 장벽을 볼 수 있다. 이집트는 수단과 이집트 간 영토분쟁 대상이 된 ‘할라이브 트라이앵글(Hala'ib Triangle)’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이민자 감소에 공헌한 모래장벽

모래장벽에 가장 열광하는 나라는 알제리인 듯하다. 트랜치와 모래 제방, 울타리와 콘크리트 벽이 있는 모래장벽이 알제리 전 국토를 둘러싸고 있으며, 그 길이만 6,700km에 달한다. 사하라 지역에서만 군인 5만 명이 순찰을 돌고 있다. 모래장벽은 2015년 리비아 국경 지역에 건설됐고, 말리와 니제르, 모리타니 국경까지 연장됐다. 높이는 2~5m에 달하고, 트랜치와 전용도로(아스팔트길일 때도 있음)가 있으며 10km 남짓 떨어진 군부대까지 연결됐다. 위성사진을 보면 국경선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지면 높낮이에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다가 사구(모래사막인 에르그)나 산, 고원의 가장자리(암석사막인 하마다) 등 자동차가 지날 수 없는 곳에서 끝난다. 

이 모래장벽은 온전한 ‘벽’은 아니다. 이곳에는 야간에 몰래 드나들 수 있는 보행자 통로가 있다. 하지만 이 모래장벽을 넘는 것은 위험이 따른다. 유럽연합 국경관리기구(Frontex)를 통해 유럽연합과 국제이민기구(IOM)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7년에 니제르에서 오는 이민자 수가 감소했다고 한다. 니제르 아를리트와 세게딘에서 오는 이민자 수는 2016년 대비 79% 감소했다. 유럽연합과 국제이민기구는 이민자 감소 원인을 자신들의 활동이 효율적이었고, 2015년에 니제르가 불법 이민 처벌법을 제정한 데서 찾았다. 

하지만 2016년 알제리가 니제르와의 국경지대에 건설한 이 모래장벽의 영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7) 알제리의 모래장벽은 이민자 감소에 은밀하지만 지대한 공헌을 했다. 알제리가 세운 모래장벽은 지역 주민 투아레그족과 아랍 상인들의 생계가 달린 교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알제리와 니제르, 말리 국경 인근 마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군대, 세관원, 니제르인, 국제이민기구 사람들이 있는 니제르의 아사마카 국경 초소는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국경을 넘나들며 물건을 팔던 사람들은 엘 아클라(El Akla)라는 비공식적인 마을을 만들었다. 창고와 야외 시장은 2000년대 초부터 있었지만, 그 규모가 커진 것은 2013년부터였다. 현재 예외적으로 주간 통행이 허용되면서 주민들은 생활을 유지하고 있고, 반(半) 암시장은 번성하고 있다. 

 

 

“가택연금된 기분, 생업을 막아버렸다”

반면, 말리에 있는 인 카릴의 상황은 좀 더 복잡하다. 틸렘시 계곡의 아랍인들이 2000년에 세운 이 마을은 주요 무기 밀매의 온상지가 되면서 알제리 군사 작전의 대상이 됐다. 알제리는 3중으로 장벽을 쌓아서 통행을 전면 차단했다. 장벽을 3중으로 건설하면서 하나밖에 없던 출구 위치를 옮겼고, 현재 출구는 일부분 말리 영토 쪽으로 나 있다(마찬가지로 마을은 일부분 알제리 영토 쪽으로 나 있다). 시장은 그렇게 쇠락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알제리 보로즈 바지 모크타르 마을의 젊은 주민들은 ‘숨이 막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마을은 교역이 이루어지던 장소에서 ‘막힌’ 곳으로 변했다. 모래장벽이 건설되면서 인근 지역이 군사화 됐고, 국경을 넘는 모든 활동이 금지됐다. 교역, 밀매매뿐만 아니라 가축 사육도 마찬가지였다. 

말리쪽 지역에 정착한 아랍인 상인인 모하메드가 말했다. 그는 익명을 요구했다. “가택연금된 기분입니다. 예전에는 국경을 넘는 데 어려움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 복잡해졌죠. 이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한다는 말리의 한 언론인도 익명을 조건으로 말했다. “이곳은 가축 사육과 상업, 운송으로 먹고 삽니다. 다른 생업이 없어요. 이 모든 활동에는 이동이 꼭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래장벽의 존재는 더욱더 문제다. 소형 트럭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은 특히 보조금을 받는 알제리 제품(굵은 밀가루, 밀가루 반죽, 토마토 통조림)을 말리에 수출해서 먹고 산다. 모하메드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걸 못하면 먹고 살 길이 없어요.”

틴 자와틴 주민들도 궁지에 몰렸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알제리-말리 국경에 걸쳐 있으며 물이 빠진 개천을 따라 뻗어 있는 이 마을은 매우 민감한 곳이다. 이민자들이 오가는 지역이고, 사헬-사하라 지하드 단체의 주요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자 프랑스가 ‘제1의 적’으로 꼽는 이야드 아그 갈리그의 본거지다. 알제리에 속하는 지역에는 1만 명의 주민들이 고립된 채 살고 있다. 

알제리 남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인 타만라세트에서 틴 자와틴 마을까지 오려면 울퉁불퉁한 길로 9시간 넘게 와야 한다. 말리에 속하는 지역에는 공공 기관이 거의 없기 때문에 주민이 십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곳은 중앙 정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아자와드민족해방운동(MNLA)의 통제 하에 있다. 아자와드민족해방운동은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치열하게 협상한 뒤 2015년 바마코에서 평화협정을 맺었던 여러 무장세력들의 연합이다.

 

주민을 배제한 프로젝트, 폭동을 부르다 

알제리군은 국가 안보라는 명목으로 2013년 1월 공식적으로 말리와 접한 국경을 폐쇄한 이후, 2018년에 틴 자와틴 마을 외곽지역까지 모래장벽을 연장했고, ‘엘 피프(El Pipe)’라고 명명했다. 앞서 언급한 지정학자 라우프 파라는 2020년 기사에서 “이 지역 주민은 모래장벽 건설 프로젝트에서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지역 주민의 찬성도 없었고, 사막길을 꿰고 있는 청년층에 대한 지원활동도 없었고, 사하라 지역의 인간 생태학에 대한 고려도 없었다. 공공의 안전을 위한 노력은 모두 합법적이었지만, 국가에 대한 불신 및 보안기관과의 긴장관계를 키우는 절망스러운 일이 됐다.”(8) 

2020년 6월에 당국이 알제리와 말리의 경계가 되는 개천을 따라 모래장벽을 연장하자, 틴 자와틴 주민들의 절망이 폭발했다. 모래장벽에 가시철망까지 설치돼 있어서 주민들, 특히 목축업자들은 말리 영토에 있는 우물과 텃밭, 방목지뿐만 아니라 채굴이 진행 중이던 금광으로 이동할 수도, 접근할 수도 없게 됐다. 격분한 청년들은 가시철망을 없애려 했고, 보안기관과 충돌했다. 폭동이 일어났다. 20대 초반의 청년, 아윱 아그 아지가 총을 맞고 사망했다. 

이틀 뒤, 해당 지역 군사 지도자는 가시철망을 제거하고, 목축업자들을 위해서 출입구를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마그레브 국가들에 걸쳐 있는 사하라 지역에서 모래장벽은 이렇게 국경지대에 할당된 가장 엄격한 기능(장벽, 보안 장치, 방어 도구 등)을 구체화하는 수단이 돼버렸다. 분쟁의 상황에서 모래장벽은 현상 유지에 도움이 된다. 

서사하라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살바도르 협로(니제르와 리비아 사이)에서부터 홍해(수단과 이집트 사이) 인근까지 국경 간 통행은 상대적으로 수월해 보인다. 지난 4월, 변화와 화합을 위한 전선(FACT) 반군이 리비아의 페잔에서 진격해 국경을 넘어 차드의 카넴 주까지 기습했고, 이 와중에 차드의 이드리스 데비 자드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다.

모래장벽들은 여전히 그곳에 존재한다.(9) 거대함이 덜하고, 감시가 덜하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모래장벽이 남아있고, 길이가 수십 km에 달하는 것도 있다. 모래장벽은 경계선을 따라 나 있고, 국가의 영토가 어디까지인지 알려준다. 모래장벽을 축조한 것은 정부군보다는 모든 통행을 감시(와 세금징수)하는 무장 단체였다. 감시 초소 근처에 건설된 이 장애물 덕분에 비공식적이지만 금광(리비아 남부와 차드 북부에 많이 있음)의 안정적인 점유가 가능해졌고, 비포장도로나 아스팔트길 감시, 우물과 산업 시설, 공항이나 마을로 연결된 출입로에 대한 안정적인 통제도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리비아 남서부의 우바리와 가트를 연결하는 도로는 검문소 덕분에 통제되고 있는데, 이 검문소가 모래장벽으로 주변의 지맥까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리비아 남동부의 쿠프라도 거대한 모래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몰래 침입하는 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곳 마을(과 공항)에는 담장이 둘러져 있으며, 심지어 격리돼 있다. 쿠프라뿐만 아니라, 모리타니의 누아디부와 주에라트, 알제리의 틴두프, 보르즈 바지 모크타르와 인 게잠, 말리의 인 카릴, 키달, 아젤호크와 가오, 리비아의 시르테도 마찬가지다. 

리비아에서 북부 시르테와 주프라 지역 사이에 건설중인 모래장벽은 그 길이가 가장 길고(2021년 초를 기준으로 100km 이상) 가장 전략적인 국가사업이다.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인 바르네르(Wagner)가 수주했고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이 이끄는 리비아국민군(LNA)이 비용을 부담한다.(10) 이 모래장벽은 2020년 리비아국민군이 트리폴리를 장악하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 설립된 두 정부, 즉 트리폴리 정부와 투브루크 정부 간 최전선을 따라 건설됐다.(11)

신년에 설립된 임시 정부에는 이 모래장벽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2021년 2월부터 추가된 길이는 남쪽으로 몇 킬로미터에 불과하다. 하지만 걱정거리는 남아있다. 향후 리비아의 정치 과정이 실패할 경우, 이 모래장벽이 경계선이 되어, 분쟁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리비아의 국토 분열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 위와 같은 시나리오는 40여 년 전 서사하라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글·레미 카라욜 Rémi Carayol 
언론인
로랑 가뇰 Laurent Gagnol
지리학자

번역·이연주
번역위원


(1) 가명.
(2) Raouf Farrah, ‘Algeria’s migrations dilemma : Migration and human smuggling in south Algeria’, report of Global Initiative against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 New York, 2020년 12월.
(3) Stéphane Rosière, 『Frontières de fer. Le cloisonnement du monde 철의 경계선. 세계의 분할』, Syllepse, Paris, 2020
(4) Laurent Gagnol (à paraître), ‘Des lignes coloniales tracées au cordeau au cloisonnement par les murs de sable : l’héritage enseveli des frontières des nomades au Sahara central 직선으로 그어진 식민선에서부터 모래장벽에 의한 분할에 이르기까지: 사하라 중부 유목민들의 경계선에 묻힌 유산’, <Bulletin de l’Association des géographes français 프랑스 지리학자 협회 회보>, Paris. 
(5) Karine Bennafla, ‘Illusion cartographique au Nord, barrière de sable à l'Est : les frontières mouvantes du Sahara occidental 북쪽의 지도제작에 대한 환상, 동쪽의 모래장벽: 서사하라의 움직이는 국경’, <Espace politique>, n°20, Reims, 2013. 
(6) Constantino Di Sante, ‘La “pacification” italienne de la Cyrénaïque (1929-1933) 키레나이카의 이탈리아식 ‘평화’(1929-1933)’, <Revue d’Histoire de la Shoah>, n°189, Paris, 2008. 
(7) Rémi Carayol, ‘Migrants dans la nasse d’Agadez 궁지에 몰린 아가데즈의 이민자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6월호. 
(8) Raouf Farrah, ‘Tin Zaouatine, marginalisation et militarisation aux confins des frontières algériennes 틴 자와틴, 알제리 변방에서 벌어지는 소외와 군사화’, <Jadaliyya>, Washington-Beyrouth, 2020년 7월 15일. 
(9) Jérôme Tubiana et Claudio Gramizzi, ‘Lost in Trans-Nation: Tubu Tubu and other armed groups and smugglers along Libya’s southern border’, Small Arms Survey report, Geneva, 2018년 12월 ; Jérôme Tubiana et Claudio Gramizzi, ‘Les Toubou dans la tourmente : présence et absence de l’État dans le triangle Tchad-Soudan-Libye 혼란에 빠진 투부족: 차드-수단-리비아 트리앵글에서의 국가의 존재와 부재’, <Small Arms Survey HSBA Working Paper>, n° 43, Geneva, 2018년 2월. 
(10) Akram Kharief, ‘Libye, un afflux historique de mercenaires 리비아는 어떻게 용병의 메카가 됐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9월호·한국어판 2020년 10월호.
(11) 리비아에는 유엔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은 서부 이슬람주의 세력 중심의 국민통합정부(GNA, 트리폴리 정부)와 동부 세속 군벌 세력인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 중심의 리비아국민군(LNA, 투브루크 정부) 정부가 존재한다.